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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40화 (241/497)

Chapter 240 - 240. 죽음 (2)

"언니, 출발해요."

지수가 머리를 푸르르 털며 말했다. 그녀는 나무 인간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차 끌고 다닐 때부터 예상했잖아요. 그냥 걷는 게 아니라서 소음이 꽤 크니까. ···그래도 비가 그친 지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가 움직이는 게 생각보다 느리네."

그녀의 말은 끝에 가서는 작은 중얼거림이 되었다.

"후우···, 알았어요. 그럼 다시 출발할게요."

한세아는 멈췄던 차량을 엑셀을 밟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부르르릉-

키긱- 키기긱-

험비는 순식간에 팔을 휘적거리는 나무 인간을 지나쳤다. 사이드미러에 비쳐지고 있는 나무 인간. 놈이 차체를 붙잡기 위해 팔을 뻗었으나 허망하게 허공만 가르는 것이 보인다.

[끄아아아악!]

까각- 까드드득-

나무 인간이 분통을 터트리며 팔을 더 거세게 휘적거린다. 다리도 좀 더 빨리 놀린다.

그러나 지수의 말처럼 나무 인간의 표면은 바싹 말라 있는 상태였기에 이동 속도가 느렸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범주 안에서의 이야기였다. 차량보다는 느리나 걷는 속도보다는 빨랐으니 말이다.

차량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고라니 떼를 쫓던 나무 인간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흐···. 근데 내가 언제 잠들었지? 갑자기 괴성 들려서 깜짝 놀랐네."

지수가 눈가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얼추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직 자는 예린의 상태를 확인했고, 붕대가 감긴 자기 꼬리의 상태도 살펴보았다.

상태가 나쁘지 않은 듯 그녀는 꼬리로 바닥을 탁탁 두들겼다.

"많이 피곤할 만하지. 어젯밤에 그렇게 격하게 움직였으니까. 몸은 좀 어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오른쪽 볼을 가리켰다.

"아직 멍해. 아직 꿈에 있는 느낌···. 그리고 이상하게 몸이 덥네. 왜 이러지? 응? 왜, 뭔데. 내 볼에 뭐 묻었어?"

"너 거기 침 엄청 묻었어. 아까 입 벌리고 자더니 그냥 홍수처럼 쏟아졌나 보다."

"······!"

몸에 열기가 오르는지 상의를 펄럭거리던 지수는 화들짝 놀라면서 흥건한 침에 의해 볼에 바싹 달라붙은 머리카락들을 정리했다.

"빨리 좀 말해주지···!"

"나도 방금 본 거야. 닦아주고 싶어도 조수석에 있어서 손도 안 닿고. 아무튼 더 자지 않아도 되겠어?"

"응. 기왕 이렇게 된 거 계속 일어나 있어야지. 이제 슬슬 도심으로 들어가는 것 같으니까. 그럼 나무 인간들도 점점 많아질 텐데 자고 있으면 큰일 나잖아. 뭐, 애초부터 그 상황에서 잘 수도 없겠지만. 아저씨야말로 안 자도 되겠어?"

"어, 아직 괜찮아. 버틸 만해."

나는 지수에게 대답하면서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무너져 내린 벽돌 벽, 기울어진 실외기, 봉쇄된 아파트 주차장 입구, 녹이 점령한 차량.

13층짜리 아파트와 5층짜리 빌라들이 좌우로 줄지어 세워져 있는 모습. 그러나 보기 흉할 정도로 균열이 가 있는 탓에 매우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는 대낮인데도 말이다.

도로에 있던 전봇대가 반으로 꺾여 건물을 파고들어 간 모습도 그러한 평가를 내리는데 한몫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막하지는 않았다.

[끄르르륵!]

[키아아악!]

[그어어억!]

차량을 뒤따르고 있는 나무 인간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부르르릉-

쨍그랑!

차량의 엔진 소리를 들은 나무 인간들이,

아파트 건물 내부에 몸을 숨긴 그것들이,

퍼억- 철퍽- 우드극-

관절과 피부 겉면에 붙어 있는 나무 껍질들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지상으로 떨어졌고, 마네킹이 움직이는 듯한 특유의 분절된 움직임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쯧. 예린아, 이제 일어나. 잠은 조금만 더 있다가 자자."

꽁무니를 따라오고 있는 나무 인간들을 보던 지수는 혀를 차면서 자는 예린을 깨우기 시작했다.

"흐응···."

다행히 아이는 칭얼거리지도 않고, 금방 눈을 떴다. 예린은 짧은 사이에 생긴 눈곱을 떼기 위해 손등으로 눈가를 비볐다. 고양이 세수였다.

"현우씨, 지금까지 이동했던 것처럼 철도로 갈 거죠?"

긴장한 얼굴로 차량을 몰고 있던 한세아가 물었다. 그녀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듯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치고 있었다. 핸들에 땀이 진득하게 묻기도 했다.

"네. 일단 철도로 가되, 길이 막혀 있으면 바로 방향을 트는 걸로 합시다. 철도길 담벼락은 그냥 차로 박으면 넘어질 거고요."

나는 그녀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내가 이런다고 긴장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앞으로 쭉 가야겠네요."

한세아는 내 손을 잠시 보더니 살포시 웃었다. 그녀는 이내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부르르릉-

차량의 바퀴는 꾸준히 굴러간다.

유리 너머의 풍경도 꾸준히 이동한다.

번화가에서 벗어난 시골 풍경, 쓰러진 전봇대, 위로 넓게 펼쳐진 나뭇가지, 이름 모를 교회, 부서진 십자가, 전선줄 대신 넝쿨 줄기, 찢어진 현수막, 엎어진 리어카, 대롱거리는 태양열 집열판, 차를 쫓는 나무 인간들.

서서히 높아지는 건물 층수, 늘어나는 방치된 차량들, 영업하지 않는 부동산 건물과 식당가, [장내로 1→203], 찌그러진 건물 간판들, 괴물의 손에 의해 깨지는 유리창, 생명력이 없는 거리, 마른침을 삼키는 우리, 확연하게 수가 늘어난 나무 인간들.

번화가로 돌아온 풍경, 더 높아진 건물 층수, 고층 아파트 위의 거목, 넘어진 오토바이, 문이 열린 화물 트럭, 눅눅해진 택배 상자, 지워진 중앙선, 갈라진 도로, 아무도 없는 정류장, 허물어진 담벼락, 불이 들어오지 않는 신호등, 시끄럽게 괴성을 질러대는 나무 인간들.

[↑서울 Seoul]

[↑안 양 역 Anyang Station]

흘깃 위를 바라보니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 위치가 틀어진 것도 아니니 이대로 앞으로 가면 선로가 있는 역이 나올 듯했다.

[삼덕 도서관]

지어지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때 지식의 보고였을 도서관은 이제 그 흔적만 겨우 남아 있었다. 화재라도 난 듯 그을음이 건물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을음마저 뚜렷하지 않았다. 짙은 초록색의 넝쿨이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었으니까.

[안양 지구대]

회색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의 지붕에는 3개의 깃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조리 꺾여 있어서일까. 깃대에 걸려 있던 깃발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서 주차장에는 경찰차뿐만이 아니라 여러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다만 서로 부딪치고 차체가 박살이 나 있는 광경은 이곳에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암시했다.

반쯤 열린 경찰차 문에서 반으로 쪼개진 무전기 하나가 외로이 대롱거리는 모습을 끝으로 경찰서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크아아아아악!]

[끼에에에엑!]

이제는 수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나무 인간들이 차량을 쫓고 있는 중이었다.

안양역과 점차 가까워질수록 주변에 세워진 건물들 또한 매우 높아진 층수를 자랑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건물 안에 있던 나무 인간들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와장창!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은 건물 유리창을 깨고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들은 험비를 붙잡기 위해 기괴한 팔을 뻗어 왔다. 처음부터 거리를 배회하고 있던 놈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손잡이 꽉 잡아요!"

쾅-!

우리는 길을 가로막는 차량을 밀치며 지치지도 않고 계속 따라오는 나무 인간들을 피하며 안양역으로 움직였다.

키기기기긱!

다행히 튼튼한 차체는 험한 운전을 버텨주었다. 비록 엔진의 불안한 소리는 더 커졌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 더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차량이 내는 소음이 만만치 않았지만, 차량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험비가 없었더라면 이 공간을 무사히 지나갈 수 없었을 가능성이 컸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헛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안양역이 건물 자체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폭삭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안양역뿐만이 아닌 그 주변의 건물들 또한 마찬가지인 모습이었다. 마치 무언가가 깔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세아씨! 방향 틀지 말고 그냥 건물 잔해 위로 올라가십쇼! 충분히 밟고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간판조차 보이지 않는 안양역의 잔해를 보며 외쳤다.

본래라면 건물을 빙 돌아가서 선로로 넘어갔어야 했지만 괜히 시간을 끄는 것보다 곧바로 잔해를 밟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으으···! 알았어요! 다들 이 악물어요! 조금 흔들릴 테니까!"

한세아는 엑셀을 꾸욱 밟아 속도를 높였다.

부르르릉!

빠각! 빠가각!

군용 타이어가 건물 잔해를 인정사정없이 누른다.

덜컹! 덜컹!

간혹 큼지막한 잔해를 누를 때면 그만큼 차체가 위로 붕 떴다.

"으악!"

"꺄아악!"

"으야!"

니, 지수, 예린은 보조 손잡이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잠깐이라도 손을 놓는다면 금방이라도 바깥으로 튕겨 나갈 것 같았으니까.

특히 지수와 예린이 더욱 그러했다. 그녀들이 있는 뒷좌석에는 문 한 짝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부웅-!

건물 파편을 밟으면서 엄청나게 흔들거리던 험비는 납작한 건물 잔해를 타고 거짓말처럼 위로 다시 한번 뜨게 되었다.

-쿵!

"억!"

낙차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큰 충격이 전해졌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부유감과 동시에 허공에 뜬 몸이 이곳저곳에 부딪힌다.

그나마 몸을 붙잡고 있던 안전 벨트 덕에 이 수준에서 그친 것이지, 벨트가 없었더라면 어디 하나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끼이이이익!

촤자자작-

···쿠르륵

차량의 바퀴가 헛돌면서 바닥에 깔린 자갈들을 이리저리 튕겨 낸다. 그것도 잠시, 험비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면서 이내 멈출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동이 꺼지면서 속도가 줄어든 것이었다.

그리고.

"······."

"······."

우리도 몸에 힘을 겨우 풀 수 있었다.

"세아씨, 시동 다시 걸 수 있겠습니까? 안 되면 여기서 내려야 하는데."

"어흑···머리야. 시동 한번 걸어볼게요. 지금 바로 다시 걸면 걸릴 수도 있어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나와 한세아가 차량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이에 지수가 손에 쌍안경을 들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한세아가 다시 시동을 거는 동안 혹시 모를 위험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선로가 조금 찌그러지긴 했지만 거의 멀쩡하고··· 어? 저기 까마귀다. 벌써━ 아니, 잠깐만."

"왜 그래?"

나는 그녀를 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쌍안경으로 까마귀를 보던 지수의 얼굴이 싸악 굳었다. 그녀는 이내 한숨 돌리고 있던 한세아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네?"

긴장으로 인해 굳은 손을 쥐었다 피며 풀어 주고 있던 한세아가 고개를 들었다.

바로 그때.

드드드드드드드!

지면이 거칠게 흔들렸고, 좌우로 늘어선 건물들이 제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이리저리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콰장창!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유리창들이 죄다 깨져 나가며 곧 다가올 죽음을 암시했다. 잘게 부서진 유리창은 건물 벽면을 타고 아래로 떨어진다.

···쨍!

그렇게 떨어진 유리 조각들은 한 번 더 잘게 나뉘어 가루를 휘날렸다.

"언니! 시동 빨리 걸고 최대한 밟아요! 빨리! 서둘러요!!"

땅을 울리는 진동을 느낀 지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예린을 꽉 안았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예린도 불안을 달래기 위해 마주 안았다.

[구-오-오-오-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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