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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41화 (242/497)

Chapter 241 - 241. 죽음 (3)

쩌저저저적!

쿠웅-!

단단한 아스팔트 도로가 갈라지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들이 거짓말처럼 무너지는 광경은 주먹을 꽉 쥐게 만들었다.

그 손에 땀이 진득하게 배이는 것은 덤이었다.

[크아아아악!]

[끼에에에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리가 확 벌어진 상태였던 나무 인간들마저 건물 잔해를 넘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쿠당탕!

콰직!

놈들은 툭툭 튀어나온 파편들에 걸려 끊임없이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일어나 다가오고 있었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타고 있는 차량을 향해서.

"세아씨! 아직 멀었습니까?!"

나는 한세아를 재촉하면서 언제라도 짐을 챙겨 빠져나갈 준비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곧장 뛰어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험비에 시동이 제발 걸리기를 바랐다. 우리가 달리는 속도보다 차량의 이동 속도가 당연히 훨씬 빠르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뛴다고 해도 저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도 했고.

[구-오-오-오-오!]

상대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단순히 이동만으로도 건물을 무너트리는 것을 어떻게 죽인다는 말인가.

이런 상황이 온다면 처음부터 아이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미끼가 될 생각이긴 했으나, 막상 직접 몸으로 겪게 되니 잠시나마 후회가 들 정도로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다.

"하, 하고 있어요! 제발 걸려라···!"

한세아는 열쇠를 돌렸다가 풀기를 반복하며 시동을 걸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키기기기긱-

하지만 쉽사리 살아나지 않는 엔진은 귓가를 불편하게 자극하는 소리만 토해낼 뿐이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

···························쾅!

건물 하나가 무너진다. 그 주위에는 아파트가 붕괴되면서 생긴 흙먼지와 검은 점 하나가 떠 있었다. 지수가 쌍안경으로 보았던 까마귀인 모양이다.

···············쾅!

··················퍼엉!

건물이 또 하나 무너진다. 까마귀는 떨어져 내리는 파편을 피해 날아다니면서 무언가의 이목을 끌려고 하고 있었다. 간혹 뒤늦게 폭발음이 들리는 걸 보면 유인을 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아이들이 아무리 산을 타는 게 익숙하다고 해도 벌써 저기까지 갔을 리가 없다. 그럼 대체 까마귀는 왜 저곳에서 저런 행동하고 있는가.

'···우리 때문이야.'

첫 만남 때 그러했듯이 까마귀 자기 나름대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는 심산인 듯했다. 녀석이 유도를 성공하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큰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쾅!

아파트 단지가 기울어지다가 무너진다. 여전히 까마귀가 필사적으로 유인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그것의 형체가 언뜻언뜻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지렁이?'

나는 순간적으로 보인 형체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셀 수 없이 빼곡한 가로 주름과 햇빛을 반사시키고 있는 미끈미끈한 점액질의 표면이 마치 지렁이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확실하지는 않았다.

바로 그때.

부르릉- 달달달달달-

차량 외부에서 느껴지고 있는 진동이 아닌 내부에서 정확히는 엔진에서 시작된 진동이 느껴졌다. 마침내 시동이 걸린 것이다.

"됐다···! 다들 꽉 잡아요!"

한세아는 곧장 엑셀을 꾹 밟았다.

부아아앙-!

콰르르륵!

순간 확 올라간 속도에 타이어가 헛돌면서 자갈들을 사방으로 밀어낸다. 그것도 잠시, 선로 사이에 설치된 나무판자를 디딘 바퀴가 차량을 앞으로 밀기 시작했다. 차량이 앞으로 튀어 나간다.

"으헉!"

급발진에 가까운 출발. 나는 몸이 뒤로 확 젖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몸을 잡아주는 안전 벨트 덕분에 그리 크게 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니 지수와 예린이 각자 자세를 잡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를 꽉 잡아 지탱해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끼에에에엑!]

간발의 차로 험비를 놓친 나무 인간들이 시끄러운 괴성을 질러 가며 화를 표출했다. 지치지도 않는 놈들은 계속 몸을 꺾어가며 움직이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차량을 따라잡을 속도는 아니었다.

부르르릉!

한세아는 계속해서 차를 몰면서 사이드미러를 보았다. 그녀는 빠르게 뒤로 멀어지는 나무 인간들을 보며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드드드드드드-!

지축을 뒤흔드는 진동이 여전히 따라붙고 있었으니 말이다.

[구오오오오오-!]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포효 소리와 함께.

"아, 진짜 끈질기네!"

지수가 흙먼지를 몰고 다니는 그것을 보며 짜증을 냈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쾅! 콰르르릉!

건물이 쪼개지는 것도 아니고 통째로 들렸다가 넘어지는 모습은 우리를 쫓고 있는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케 했다.

'까마귀가 안 보여.'

하늘에 찍힌 점처럼 보이던 까마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디 녀석이 크게 다치지 않았기를 바랐다. 불과 어제 부상을 입은 녀석이 아니던가. 비록 금방 나았다고는 하더라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할 여유 따위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지금 당장은 녀석보다 우리의 코가 석 자인 상황이었으니까.

"세아씨는 앞으로 쭉 달리십쇼! 지수 너는 예린이 챙기고!"

그나마 다행인 건 철도길로 진입하니 길을 가로막는 차량이 없다는 것이다.

시내에 있는 도로는 여러 차량들이 방치된 채 본래의 용도가 아닌 길을 막는 장애물로 탈바꿈된 상태였으니 그쪽으로 가면 지금처럼 속도를 못 냈겠지. 그럼 우린 얼마 도망치지도 못하고 저 거체에게 짓밟히고 말았을 거다.

"언니! 계속 밟아요!!"

"아으! 그냥 엔진 상태고 뭐고 최대한 밟을 테니까 손잡이 꽉 붙잡고 나 있어요!"

사이드미러와 전방을 번갈아 보는 한세아.

"흣···!"

그녀는 철도 담벼락을 타고 넘어온 나무 인간 한 마리를 발견했다. 순간 망설인 듯 핸들을 손으로 꽉 쥐었으나 속도를 줄이지는 않았다.

그러한 행동은 그녀가 얼마나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알려주었다.

고작 차로 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총으로 죽이는 느낌과 차로 쳐서 죽이는 느낌은 체감의 정도가 다르지 않은가.

단순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엑셀을 밟아 치는 것의 무게감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건 확실하게 다를 터다.

퍼-억!

한세아는 이내 전방의 나무 인간을 그대로 차로 들이 받았다.

텅! 터텅-!

촤르르륵!

차에 치인 놈은 선로 위를 통통 튕겼다. 손이 자갈밭을 긁는 건 덤이었다. 자잘한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끄아아아악!]

머리를 부숴야 죽는 나무 인간의 특성상 겨우 차에 치인 것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놈은 기어코 다시 일어나 험비에게 달려들었다.

부르릉!

그러나 닿지 않았다. 놈의 손은 여타 나무 인간과 같이 허망하게 공기만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우리도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번에도 군복을 입고 있는 나무 인간이 차량을 쫓는 대열에 합류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쩌저저적-

지각이 갈라지면서 생긴 틈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거체가 움직이면서 생긴 틈이었다. 놈은 괴성도 지르지 못한 채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지각에 틈이 생겼다는 걸 감춰 주었다.

'대체 얼마나 크길래···!'

무엇의 변종인지 확정 지을 수 없었으나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위험하다는 건 명백했다.

공격을 가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이동하는 것뿐이건만. 몸의 움직임만으로 지각을 가르는 생물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험비가 정체불명의 변종보다 더 빨랐다. 이대로만 간다면 거리가 점점 벌어져 저것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고가 도로 아래를 지나갈 때 발생했다.

콰직! 콰지직! 우득!

고가 도로 위를 배회하고 있던 나무 인간들이 차의 배기음에 자극을 받아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광경이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얼핏 집단 자살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풍경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진짜로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쿠웅-!

그중 한 마리는 타이밍이 어찌나 잘 맞았는지. 놈은 자갈밭도 아니고 험비 위에 제대로 안착하기까지 한 것이다.

"으아···!"

이상을 감지한 한세아가 핸들을 꺾어가며 천장에 달라붙은 놈을 떨구려고 했다.

끼기기긱! 끼이익!

자갈을 모조리 밀어내고 드러난 흙바닥에 스키드 마크가 남도록 험비를 좌우로 꺾어 보았지만, 나무 인간은 거친 운전에도 떨어지지 않고 차체에 손을 박아 넣어 끝까지 버텼다.

그녀의 운전은 오히려 차량의 상태만 더 악화되는 결과만 불러오고 말았다. 열을 받은 엔진 혹은 타이어에서 회색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 오르다가 바람에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진다.

끼이이이익- [크아아아아악!]

차체가 기울어지는 소리 사이에 이를 딱딱 부딪치며 괴성을 지르는 나무 인간의 괴성이 섞여 들린다.

콰드득!

단단한 차체가 나무 인간의 괴력에 조금씩 찌그러지며 죽는소리를 토해낸다. 놈의 뭉툭한 손가락이 차체를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다 헤진 군복을 입은 나무 인간은 이내 검은 이끼가 잔뜩 붙어 있는 팔을 그대로 차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문 한쪽이 뜯어져 있는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꺄아악!"

예린이 비명을 지르며 나무 인간의 팔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아이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이런 씹! 예린아!"

나는 이를 악물면서 아이를 돕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콰직!

파열음이 차량 내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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