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2 - 242. 관악역 (1)
[크아아아악!]
나무 인간 특유의 움푹 파이고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이 예린을 똑바로 바라본다. 놈은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먹잇감을 붙잡기 위해 오른팔을 뻗었다. 입을 크게 쩍 벌린 채.
지저분한 나무 껍질이 자란 손이 예린을 붙잡기 직전,
-콰직!
빨간 소방 도끼가 나무 인간의 팔목에 박혔다. 그러나 협소한 공간 탓에 충분한 힘이 실리지 못했는지 도끼날은 간신히 나무 껍질을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아오···!"
지수는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나무 인간의 팔을 향해 발을 뻗었다. 정확히는 비스듬히 박혀 있는 도끼날을 향한 것이었다.
덜-컹!
팍- 파악-!
그녀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몸을 가볍게 띄운 후, 허릿심을 실어 발길질을 가했다. 단단한 워커의 밑창이 뭉툭한 도끼날의 뒷면을 인정사정 없이 누른다.
그와 동시에.
콰직! 콰드득!
전면의 날카로운 도끼날이 나무 인간의 껍질을 뚫고 점점 더 깊숙하게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팔 한쪽을 고스란히 헌납하게 될 상황인 나무 인간은 어떻게든 지수의 발길질을 피하려고 했으나, 놈이 할 수 있는 건 시끄러운 괴성을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팔 한쪽은 차체를 붙잡고 있고, 나머지 한쪽은 도끼에 의해 고정이 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내 동생 건들지 말고 저리 꺼져!"
지수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 나서 있는 힘껏 도끼를 발로 찼다.
콰지지직!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나무 인간의 팔은 기어코 뜯겨 나가 흉측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보였다. 질긴 껍질 아래에 썩어들어가는 살점, 연한 살점에 파묻힌 누렇게 변한 뼈 따위들이 내뿜는 썩은 내가 코를 자극했다. 간신히 헛구역질을 참은 그녀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콰직!
[끄아아아악!]
팔을 잃고 뒤로 확 젖혀진 나무 인간은 곧장 도끼를 회수한 지수가 내지른 일격에 남은 팔 마저 잃게 되었다. 놈은 달리는 차량에서 떨어져 나갔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덜-컹! 덜컹덜컹!
차량이 자갈과 선로를 연달아 밟으면서 위아래로 흔들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콰직! 빠드득! 빠각-!
차 밑에서 무언가가 으깨지고,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지수가 처리한 나무 인간이 타이어를 타고 말려 들어가 갈려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예린아, 괜찮아?"
"으, 응. 고마워, 언니."
지수가 놀란 예린을 다독이면서 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없어진 차문은 외부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모습을 크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갈, 넝쿨, 나뭇가지, 초록 수풀, 검은 선로, 나무판자, 고압 전선줄, 금속 전신주, 다시 자갈.
반복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풍경 사이로 이질적인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차체에 박힌 나무 인간의 손가락들이었다. 못처럼 박혀 있는 그것들은 본체인 나무 인간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은 아직 차체에 박힌 상태였다.
뜯겨진 살점 사이로 길게 찢어진 피부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끔찍하다.
"···지수야, 다친 데는 없지?"
"응,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총은 집어넣어도 돼."
"후우···, 다행이다."
나는 한세아의 허리춤에서 뽑아낸 권총을 내려놓았다. 탄약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어지간해서는 쏘지 않으려고 했지만, 너무 아끼는 것도 문제였으니까.
그래도 일단 지수가 나무 인간을 무사히 처리한 덕분에 탄약을 아끼기는 했다.
'한숨 돌릴 시간도 없어.'
당장 급한 불인 나무 인간의 침입은 막아 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거대한 괴물이 우리를 뒤쫓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쩌저저저적!
처음에는 거리가 조금 벌려지나 했지만, 이내 그렇지 않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는 고착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던 까닭이다.
거리는 대략 100m.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거리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거리다. 차량을 타고 있는지금 같은 경우에는 짧은 거리였다.
괴물이 일부러 속도를 맞춰주는 건지 아니면 놈 또한 속도가 한계에 달해 거리가 유지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변종이 이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그도 그럴게, 놈의 방향은 처음부터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콰콰콰콰-
흙먼지의 폭풍이 험비를 잡아 먹기 위해 멈추지 않고 다가온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폭풍은 지상을 잡아먹어 가며 접근하고 있었다.
부르르릉!
험비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일직선으로 된 선로 위를 계속 달렸다.
달달달달달-
엔진에서 시작된 불안한 진동이 기세를 키워나갔다. 희미하지만 검은 연기까지 나오는 듯했다. 안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은 엔진이 한층 더 악화된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조 손잡이를 꽉 잡고 지켜보던 우리는 차량이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강하게 바랐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계속 되고 있을 때.
"현우씨! 저기! 관악역이예요!"
한세아가 눈짓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관악역(안양예술공원)]
역사 위에 올려진 간판이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는 모습이 곧장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곧장 전방을 확인하기 위해 쌍안경으로 전방의 모습을 확인했다. 차량이 지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역이 온갖 장애물로 막혀 있기라도 한다면 낭패이지 않은가. 그럼 바로 우리는 뒤에서 따라붙은 죽음에 의해 죽고 말 것이다.
그러니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역의 상태를 확인하는 건 필수이리라.
'다행히 지나갈 길은 충분━'
나는 긴장과 초조함에 쿵쿵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입술을 짓씹었다.
바로 그때.
콰아아앙-!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타고 있는 차량을 쫓고 있던 변종이 지면을 가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땅 아래에 있던 놈이 갑작스레 위로 솟구치며 등장한 것이다.
푸화아악!
온갖 먼지와 흙들이 뒤섞여 검게 보이는 먼지 폭풍이 주변을 확 퍼진다. 위로 솟구친 힘이 너무 강한 탓인지 흡사 폭탄이 터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굉음에 귀가 먹먹해진 것이 느껴진다.
삐이이이-
먹먹해진 귀에 이명이 길게 늘어진다.
후두둑- 후두둑-
탁! 타타탁!
등장 과정에서 자잘한 흙 알갱이들이 아닌 손바닥만 한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면서 차체를 두들겼다. 차체가 튼튼해서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일반 차량이었으면 유리창과 금속 차체가 형편없이 깨지거나 구멍이 뚫렸겠지. 차체가 막지 못한 파편이 우리에게 부상을 가져다주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땅속을 기어 다니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두꺼운 몸통, 붉은색 피부, 피부에서 솟는 끈적한 점액질, 머리 쪽에 형성된 환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로 주름, 끊임없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근육.
놈은 지렁이와 매우 흡사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크기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며, 한계까지 벌려진 원형의 입에 수많은 이빨들이 빼곡하게 나 있었다는 것이다. 저런 생명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지렁이의 크기를 억지로 부풀려 놓으면 이런 느낌일까.
'···군인들이 저런 거랑 싸웠다고?'
이제서야 막혔던 의문이 하나 풀리는 기분이다.
어째서 역 주변에 포탄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어째서 군인들이 전쟁 물자를 챙기지도 못하고 도망갔는지.
나는 오히려 군인들이 어떻게든 싸워볼 생각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누구라도 저 거체를 보면 전의를 잃고 도망 갔을 테니까. 그 정도로 놈은 매우 거대했다.
카드드드득!
쩍 벌어진 입으로 들어간 것들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전부 무자비하게 갈려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튼튼한 험비라고 해도 저것의 입에 들어가는 순간 형편없이 찢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이게. 아니, 무슨 크기가······."
한세아가 전방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를 보다가 사이드미러로 후방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미처 말을 끝맺지 못했다.
휘이이이···!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한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핸들을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도 떨림을 더해 갔다.
"······."
"······."
비명도 지르지 못한 지수와 예린은 말을 잃어 버렸다. 살짝 들려 있던 그녀의 소방 도끼가 힘을 잃고 아래로 수그린다. 그녀들의 꼬리는 다리 사이로 말려 들어갔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활로를 찾기 위해 눈을 바쁘게 이리저리 굴렸다. 다시금 관악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 통로, 2층짜리 역사, 하늘색 지붕, 회색에 가까운 하얀 외벽, 역 'ㅅ'자의 형태인 승강장 지붕, 길게 늘어진 화물 열차, 엎어진 평판차, 주변에 널브러진 견인 곡사포들.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는 포구.
여타 역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포탄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