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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45화 (246/497)

Chapter 245 - 245. 석수역 (2)

쾅! 쾅! 쾅!

전차 상단부에 있는 해치뿐만이 아니라 포구쪽에 있는 해치마저도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고철 덩어리로 변한 전차 내부에 나무 인간들이 여럿 있는 모양이다.

끼긱- 끼기기···

해치가 열리지 않게 막고 있는 장치가 죽는 소리를 토해낸다. 아직 내부까지 녹이 쓸지는 않았는지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는.'

석수역은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군인들이 있는 곳이자, 전차들의 무덤이었다.

한때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탑승자를 지켜 주던 장갑이 이제는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막고 있는 벽으로 변모한 모양새였다.

"하아···, 이대로 지나갑시다. 굳이 자극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해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조용하게 말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이 날카롭게 변하고 있었다.

"···넵."

한세아 역시 조용하게 답했다.

뒷좌석에 몸을 바싹 굳힌 채 앉아 있는 지수와 예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뻥 뚫린 공간 너머 적나라하게 보이는 바깥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후방에 달려 있는 연료통, 장갑이 뜯어져 훤하게 드러난 공축 기관총, 여분의 탄통,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급탄 가방, 총구가 날아간 K2C1, 바닥을 장식한 여러 탄피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감싸고 있는 넝쿨 줄기.

전차 안의 나무 인간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전까지만 해도 전차 장갑에 부착된 여러 장비를 확인해 보려고 했건만. 그러한 계획은 시도도 하기 전에 무산이 되고 말았다.

'공축 기관총은 다 부식돼서 쓸모가 없다고 해도.'

최소한 기름때가 잔뜩 묻은 드럼통에서 연료라도 조금 빼 보려고 했는데, 이 역시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시야가 제한되는 이곳에서 섣불리 바깥으로 나갔다간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하물며 나무 인간들이 전차 안에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는 더욱 그러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달달달달달달달-

덜컹- 덜컹-

험비가 위아래로 흔들린다. 선로 위에는 자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빠각! 빠드득-

무엇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 잡다한 조각들이 두꺼운 군용 타이어에 짓밟혀 바스러진다. 간혹 바닥에서 튕긴 파편이 유리창문을 툭 건드렸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쾅쾅쾅쾅!

[끼에에에엑!]

[크아아아아악!]

차량이 전차 앞을 지나갈 때마다 격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전차 장갑을 뒤덮은 녹이 부스스 떨어진다.

예린은 놈들이 내는 괴성을 들을 때마다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아이는 이내 제 언니의 품으로 파고들어가 귀를 막았다. 꼬리를 다리 사이로 말아 넣는 건 덤이었다.

한세아와 지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녀들은 괜스레 손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나무 인간들이 우르르 튀어나오지는 않고 있었지만,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모르니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런 행동은 안 그래도 없는 체력을 자꾸만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부르르릉-

어느덧 험비는 승강장을 지나 역사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아저씨, 여기서부터 서울이야. 뭐, 고작 역에서 막 벗어났을 뿐이지만."

다행히 아무 일없이 석수역에서 빠져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쉰 지수가 말했다. 그녀의 귀가 약하게 쫑긋거린다.

그래, 역사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서울에 발을 들이밀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안양시에 모호하게 걸친 부분이 아닌 진짜 서울특별시 말이다.

"어···, 현우씨? 이제 더 앞으로는 못 갈 것 같은데요?"

한세아가 전방을 살피면서 곤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방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전차들의 무덤을 기껏 빠져 나왔는데, 이번에는 거대한 장애물 하나가 길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엉망으로 꺾인 가로등, 옆으로 넘어진 두터운 콘크리트 기둥, 간신히 달려 있는 소음방지벽, 뜯겨나간 배수관, 융기한 도로판.

호암대교와 기암대교가 부서지다 못해 완전히 폭삭 무너져 내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대교 사이에 있는 서해안고속도로도 똑같이 무너진 상태였다.

험비라고 해도 저 장애물을 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아니, 확실하게 불가능했다. 처음으로 넘어야 하는 장애물조차 차체의 높이를 월등히 넘어갔으니까.

그 탓에 타이어가 타고 올라갈 수도 없었다.

"음. 좌측으로는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안양천 건너편으로요. 물이 깊어 보이지도 않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좌우측의 길을 가늠해 본 후에 말했다. 무너진 도로의 조각들이 있는 건 동일했지만, 그나마 안양천 건너는 그 정도가 덜 했기 때문이었다.

끼기기긱-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한세아가 핸들을 돌리자 구동축이 비명을 질렀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덜컹! 덜컹!

쾅! 와르르-

그녀는 곧장 험비를 좌측 담벼락에 차를 박았다. 이미 상당히 내구도를 잃었던 회색 벽돌로 이루어진 담은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조각조각 나뉜 회색 벽돌들이 쏟아진다.

이윽고.

첨벙!

경사로를 내려간 차량은 안양천에 바퀴가 잠기게 되었다.

부스스- 부스스-

안양천을 뒤덮다시피 자란 억센 수풀이 차체를 인정사정 없이 긁어댄다. 길이가 좀 더 긴 것들은 차량 내부로 들어오기도 했다.

물에는 그 흔한 민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단 한 마리도.

수풀 속에 숨어 있는 것일 수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적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나뿐만이 아닌 지수, 예린, 한세아 또한 안양천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보이는 건 오직 수풀뿐이었다.

덜컹! 덜컹!

끼기긱-

안양천을 완전히 건넌 험비가 경사로를 올라갔다.

그렇게 차량은 턱이 낮아진 고가교를 밟고, 또 다른 수풀을 통과하고, 사방으로 뻗친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넝쿨이 휘감긴 어느 컨테이너 창고를 지나쳐 기아 교차로로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펑!

쿠르륵-

엔진에서 검은 연기가 솟는 것과 함께 기어코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차체를 약하게 흔들던 진동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키기기긱-

한세아가 당황하며 시동을 다시 걸려고 했지만, 시간이 상당히 지나도 시동이 다시 걸리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차량 내구도가 움직일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땅에서 차를 꺼낸 순간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아쉽지 않다는 건 아니었지만.

"가방 챙겨서 내립시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많이 왔어요."

내 말을 들은 지수, 예린, 한세아는 미련이 넘치는 눈으로 사거리 한복판에 세워진 험비를 바라보다가 각자 짐을 챙겨 내렸다.

통통-

우리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차체를 몇 번 두들겨 주었다. 험비 덕분에 지렁이 변종으로부터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상대적으로 편하게 올 수 있기도 했다.

"지수야."

그리고 나는 일행을 잠시 멈춰 세운 다음에 지수를 불렀다.

"하아··· 하아···, 응?"

"나한테 업혀. 너 그러다가 쓰러지겠어."

"아니, 나 괜찮은데? 진짜야!"

"잔말 말고 업히기나 해. 안전한 곳 찾을 때까지만 업어 주는 거니까. 주변에 나무 인간들 보이면 바로 내려줄 거고."

"그······. 알았어."

손을 갈팡질팡 움직이던 지수는 이내 내 등에 올라탔다. 그녀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팔과 다리를 강하게 감아왔다. 열이 오른 그녀의 몸이 곧장 느껴졌다.

몸에 열이 이렇게 많은데 고집스럽게 버티려고 했다니.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 지수의 몸을 쉬게 만들어 줘야 할 듯싶었다.

"예린이도 업어 줄까?"

그 모습을 지켜 보던 한세아가 예린을 보며 물었다.

"아뇨! 전 걸을 수 있어요! 괜찮아요!"

당차게 고개를 젓는 예린. 아이는 손만 잡아주면 된다는 듯 한세아의 손을 잡았다.

저벅- 저벅-

나는 지수를 업은 채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예린과 한세아는 그런 우리를 뒤쫓아왔다.

······우르릉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

"아저씨, 비 오려나 봐. 공기도 꿉꿉하고."

귀를 쫑긋거린 지수가 나를 더 강하게 안으며 속삭였다.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있는 손이 간지러웠다. 살랑거리는 지수의 꼬리가 내 손을 간지럽히고 있나 보다.

그녀는 처음에 거절했던 것이 무색하게 나를 놓칠 새라 뒤에서 꽉 안았다. 간혹 킁킁 거리면서 숨을 크게 들이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부끄러우니까 하지 말라고 살살 흔들었지만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보라는 듯이 냄새를 더 맡았다.

"그러게. 얼른 찾아야겠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답했다.

확실히 서울이라 그런가 위로 올라갈수록 고층의 커다란 빌딩들이 우후죽순 세워져 있었다. 건물 안에 득실거릴 나무 인간들을 떠올리면 크다고 좋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위험하면 위험했지.

"현우씨, 저기 어때요? 예린이가 그나마 저 건물이 제일 안전해 보인다고 했어요."

이마의 땀을 훔친 한세아가 우측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건 공사가 진행 중인 거대한 건물이었다. 완공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완공 직전인 만큼 내부에는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있을 수 있는 건 인부들이 변한 나무 인간들일 것이다.

그 수는 주변에 있는 아파트 단지보다 현저하게 적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처음부터 사람들이 사는 건물과 아직 입주가 진행조차 되지 않은 건물의 차이는 매우 크니까.

그리고 예린이 안전하다고 한 말은 검은 입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한번 들어가서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길거리에 나무 인간들도 안 돌아다니고···. 전부 다 안에 들어가 있나?'

나는 그리 생각하며 지수를 고쳐 업었다.

"으핫!"

"미안. 많이 흔들렸어?"

"아니···. 나 왜 이러지? 그냥 멍 때리고 있었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깜빡 잠들었었나 봐."

지수는 고개를 도리도리 치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녀는 팔을 들어 입가를 슥 닦았다.

"조금만 참아."

그러고 보니 그녀의 체온이 한층 더 올라간 것이 느껴졌다. 내가 움직이면서 생긴 열인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닌 모양이다.

"현우씨, 여기서 우측으로 꺾으면 돼요."

"예? 바로 여기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요?"

"넵!"

"뭐, 알겠습니다."

나는 일단 한세아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의미 없는 행동을 할 것 같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한세아가 이 건물이 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렇게 행동하는데 한몫했다.

[emart24]

식량과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편의점이 시야에 들어왔지만 그곳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었다.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건물 자체가 폭삭 주저앉은 상태였으니까. 멀쩡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편의점을 지나치고 다리를 좀 더 놀리다 보니, [광명 소하지구 지식산업센터 신축공사]

[안전은 기본. 품질은 자존심]

이번에는 공사 현장의 가림판이 눈에 보였다.

"여기! 이 문 열면 될 것 같아요!"

한세아가 앞장서서 문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눈은 가림판 너머를 바삐 살폈다. 혹시나 이 너머에 나무 인간들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출차 전 좌우 확인>

철그럭- 끼이이이익-

우리는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는 게이트를 좌우로 밀어 틈을 만들었다.

바로 그때.

후두둑- 후두둑-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우리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하늘을 물들이는 먹구름이 점점 끼더니 기어코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빗방울이 얇은 것도 아니고 상당히 굵었던 터라 오래지 않아서 폭우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결국.

"아···. 어쩔 수 없네요. 일단 여기로 들어가서 비 좀 피합시다. 세아씨,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었죠?"

"넵! 아마 이 건물이··· 아니다. 확정되면 말할게요. 제 기억이 맞는지 아직 확실하지가 않아서···."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지친 몸을 이끌고 인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공사판 안쪽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종이 비행기를 들고 있는 곰 형태의 조각상들이 그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무감정한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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