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46화 (247/497)

Chapter 246 - 246. 타워 (1)

우리는 들어가기 전에 건물 현관문 입구 앞에 잠시 멈춰 섰다. 다시 한번 들어가도 되는 건물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쏴아아아아-

어느새 폭우로 변한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관찰을 건너 뛰어서는 안 되니까.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행동이었다.

후두둑- 후두둑-

완연하게 굵어진 빗줄기가 나, 지수, 예린, 한세아를 무자비하게 두들겼다. 뭉친 머리카락 끝으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오전에 높게 떠 있던 태양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하늘 가득 몰려 있는 먹구름에 의해 시야가 매우 어두워졌다. 분명 아직 낮인 게 분명한데도 말이다.

메인 건물이 아닌 안양천 쪽에 붙어 있는 건물.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들어갈 예정인 15층짜리 건물은 부속 건물처럼 보였다.

산산조각 난 유리창, 바닥을 채운 유리 조각,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쇠 파이프, 수많은 균열이 가 있는 벽면.

그 건물 로비의 현관문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들은 수많은 사람이나 나무 인간들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리고.

휘이이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펄럭이고 있는 전단지 하나. 그것은 금이 간 유리문에 간신히 붙어 있었다.

[광명 소하지구 첫 복합지식문화타워!]

-드라이브인 시스템, 테라스 특화, 소형 평면, 기숙사 별동 설계 등 비즈니스의 신세계를 열다

"제 생각이 맞았네요. 여기 G타워예요. 지금 우리가 들어갈 곳은 기숙사동이구요."

찌푸렸던 미간을 푼 한세아가 찢어지기 직전인 전단지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G타워라, 나도 이름은 들어 보았다.

분명 부동산업자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각종 시설이 결합한 센터 건물이었었다. 병원과 여러 문화시설이 한데 모인 이른바 '똘똘한 한 채'라고 하던가.

하지만 다 한때인 이야기였다.

그래, 한때 말이다.

"원래 5월에 완공 예정이었는데 사태가 3월에 터져 가지고 지금은 완전 텅 빈 건물이나 다름없을 거예요. 바닥에 있는 발자국들이 로비에만 남아 있는 걸 보니 사람도, 나무 인간도 없나 봐요."

"아저씨, 얼른 들어가자. 이러다가 예린이 감기 걸리겠어. 세아 언니 말처럼 안에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니까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 아, 그리고 나 이제 내려 줘도 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걷는 게 낫기도 하고."

"그래? 알았어."

"응. 업어 줘서 고마웠어, 아저씨."

지수는 등에 업힌 채로 나를 강하게 안았다가 내려왔다. 등에서 느껴지던 그녀의 체온이 사라지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예린의 눈으로 검은 입자가 없는걸 확인했고, 지수의 귀로 건물에 인기척이 없는걸 확인했다. 게다가 한세아의 말마따나 완공 직전인 건물만큼 텅 빈 건물은 없겠지.

예린이가 이 건물을 제외하고 주변의 아파트나 여타 빌딩에는 검은 입자들이 그득그득하다고 했으니 사실상 선택지는 이곳밖에 없는 셈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우리가 할 수 있는 확인은 거의 다 했건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불길함이 내 발걸음을 자꾸만 멈칫거리게 만들었다.

건물 전체를 타고 흐르는 적막감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탓일까.

알 수 없었다.

피로감이 극에 달한 탓에 괜스레 신경이 과민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바로 그때.

[크아아아아악!]

[끼에에에에엑!]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기 위해 건물 안에 숨어 있던 나무 인간들이 바깥으로 나오는 소리가 귀를 건드렸다. 적어도 수십은 가뿐히 넘는 소리가 어지럽게 겹쳐 들리고 있었다.

그러한 괴성은 우리를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강제로 등을 떠밀었다.

지금 상황에서 나무 인간들과 조우하게 되면 매우 낭패였다. 비를 머금은 놈들은 몸이 말라 있을 때와 달리 매우 강해지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일행이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뭐든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휴식이 간절하기도 했다.

이윽고.

"···들어가자. 놈들이 우리를 보기 전에."

"넵!"

"무슨 소리 들리면 바로 말해 줄게, 아저씨."

"저도요! 저도 뭐가 보이면 바로 말할게요!"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G타워의 기숙사동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빠각- 빠드득- 빠가각-

찰박-찰박-찰박-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깔린 유리 조각이 비벼지는 소리를 낸다. 그사이에 고여 있는 물이 튀는 건 덤이었다.

후두둑- 후둑···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빗줄기는 더 이상 우리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몸에 도는 한기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현우씨, 바로 위로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둘러볼 필요도 없을 것 같구요. 저기 보면 알겠지만 전부 비어 있잖아요. 가구도 없어요. 물건은 당연히 없구요."

내가 무의식적으로 층별안내도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한세아가 한 말이었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고개를 올리니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역만 나누는 유리 벽만이 겨우 세워져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15F:

-14F:

-13F:

···

-2F:

-1F:

···

-B3:

-B4:

2대의 엘리베이터 사이에 층별 안내도가 붙어 있기는 했다. 다만 칸이 전부 공백이었을 뿐이지. 아마 입주가 완료되기 전이라 그런 듯했다.

"아저씨, 계단은 이쪽이야."

지수가 자신과 예린의 꼬리의 물기를 짜내면서 말했다.

주르륵-

뚝- 뚝-

꼬리털이 머금고 있던 물이 아래로 후두둑 떨어졌다.

"후우···."

우리는 심호흡을 내쉰 후 비상문을 천천히 열었다. 이미 지수의 확인을 거쳤지만 무언가가 숨을 죽이고 숨어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섣부른 행동으로 위험에 처하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끼이익······

비상구가 열리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웅웅 울린다.

규칙적인 간격과 높이를 가진 수많은 계단, 푸른 비닐이 뜯어 지지도 않은 철제 손잡이와 기둥,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는 램프, 불이 들어오지 않는 비상등.

비상 계단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전기가 돌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예린아,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걸어."

"응, 언니!"

예린에게 신신당부하는 지수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손전등을 키고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그와 동시에 발 소리나 숨소리 따위가 메아리처럼 길게 늘어진다.

쏴아아아아······ [끼아아······악···]

바깥에서 들리는 빗소리와 나무 인간의 괴성 또한 길게 늘어지는 소리로 들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들리는 소리에 긴장감이 한층 더해졌다.

"···7층. 7층부터가 기숙사니까 거기까지만 가면 돼요."

비에 젖은 옷이 주는 한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는 한세아. 그녀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나, 지수, 예린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작은 소리조차 메아리치는 장소이기 때문에 말을 아낀 것이다.

그리고 환기가 되지 않는 탓일까. 내부는 생각보다 꿉꿉했다. 숨 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2F.

별일 없었다.

3F.

역시 별일 없었다.

4F.

계단 벽 너머 존재하는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즉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숨을 죽여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와이어가 흔들린 소리라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금속 와이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는 불규칙적으로 들렸다.

5F.

건물 외벽에 붙은 파란 비닐들이 비바람에 격하게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발걸음 소리를 지워 버릴 만큼 매우 요란한 소리였다.

지수의 안색이 좀 더 나빠졌다. 그녀는 더운지 상의를 계속 펄럭였다. 나는 그녀에게 업히라고 제안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어 사양했다.

6F.

비상 계단에 있는 작은 유리창문으로 옥상 정원이 보였다. 옥상 정원에는 넝쿨이 가득했다. 지수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씻고 가고 싶은 눈치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자꾸만 땀을 흘려서 그런가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주변이 그렇게 덥지는 않건만. 역시 몸 상태가 좋지 않나 보다. 얼른 푹 쉬게 해줘야 할 듯했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한 한세아는 일행을 잠시 멈춰 세웠다. 그녀는 이내 가방 겉에 달린 정수기 말통을 꺼냈고 그곳에 빗물을 한가득 담았다. 가까운 곳에 끊어진 배수관이 있었기 때문에 물을 빠르게 채울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움직였다.

7F.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7층의 비상문 앞에 도착했다. 혹여 문이 잠겨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끼익···

아래보다 한층 부드럽게 열리는 문.

"······."

나는 살짝 열린 문틈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크게 다를 것 없는 7층의 모습. 여전히 불이 꺼져 어두웠고, 여전히 인기척 하나 없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여러 개의 문이 줄지어 있는 것이었다.

총 19개의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상태. 그중 하나는 재질이 철로 되어 있었다. 또 다른 비상문인 모양이다.

나와 지수는 복도로 나가기 전에 앞서,

끼긱-

승강기 문을 살짝 열어 손전등으로 안을 비추었다. 승강기는 7층에 멈춰 있었는지 별다를 것 없는 내부가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춰 있어서 다행이었다.

각층의 엘리베이터 통로를 확인하지 못해서 내심 불안했건만.

어차피 건물에 전기가 도는 것도 아니니 승강기는 움직일 일이 없을 터다. 그러니 이렇게 정지한 승강기는 수직 통로를 틀어막는 하나의 바리케이드가 되리라.

화물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지만, 옆에 위치한 2대의 중앙 엘리베이터 문은 어찌된 영문인지 열리지 않았다. 힘을 더 준다면 문짝이 아예 떨어져 나갈 것 같았기에 섣불리 힘을 쓰기가 망설여졌다.

"······아무것도 안 들려. 아니, 그냥 와이어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 괜찮을 것 같아."

미세한 소리도 감지할 수 있는 지수가 문에 귀를 바싹 대고 소리를 듣고 나서 한 말이었다.

"엘리베이터도 확인했으니까 멀리 갈 필요 없이 바로 앞에 있는 방으로 가는 게 어때요? 여기 널린 게 방이니까 일단 들어가 보고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가자, 지수야. 예린이도 조금만 더 힘내. 다 왔어."

"응···."

"네, 헤엑···."

나는 지수와 예린을 뒤에 두고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방 앞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그리고 곧장 들어 올린 도끼로 전자 도어락을 내려쳐 부쉈다.

캉!

한 방에 부서진 도어락의 손잡이. 마스터키나 비밀번호를 아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이 부수어야만 했다.

방 내부에는 간단한 기본 인테리어가 깔끔하게 시공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집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대로 방치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으니 말이다.

그동안 문이 열리지 않았던 덕분인지 안쪽에는 먼지도 그다지 많이 쌓이지 않은 상태였다.

벌컥- 쏴아아아아아-

손으로 얼굴의 땀을 훔쳐 낸 한세아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었다. 거센 비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마구 들어온다.

"자, 우리 일단 한숨 푹 자기 전에 몸부터 씻을까요? 다들 찝찝하잖아요.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창문을 활짝 연 한세아가 창틀에 넓적한 판자를 끼우며 말했다. 갑자기 판자는 어디서 났나 했더니 이제 보니 침대 틀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보며 짐짓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이 방은 샤워실이예요."

하지만 옷이 비에 젖어 몸의 굴곡이 훤히 드러난 모습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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