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52화 (253/497)

Chapter 252 - 252. 타워 (7)

"······!"

명백한 변종의 존재감에 나와 지수는 몸이 바싹 굳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키려는 폐를 간신히 억눌러 소리를 죽였다.

······다각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의 희미한 윤곽이 벽을 짚는 것이 보인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인 듯했다.

···턱 ···턱

이어서 복도로 나온몸통과 함께 여러 개의 다리가 바닥을 딛는 소리가 들렸다. 어지럽게 겹쳐 들리는 소리는 그것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적어도 4개 이상이었다.

[끼이이이이···]

그것은 우리가 샤워실로 썼던 방 앞에서 멈춰 섰다. 뒤이어 킁킁 거리는 냄새 맡는 소리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그극- 그그극- 끼기기기긱-

이번에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문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우리 생각대로 사람이 아닌 모양이다. 내심 그러지 않기를 바랐건만.

쏴아아아아아-

비가 내리는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반짝거렸다가 사라진다. 좌우로 흔들리는 발광체는 심해에서 아귀가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빛을 내는 것 같기도 했다.

바로 그때.

번-쩍!

외부에서 어두운 복도를 환하게 밝히는 번개가 쳤다. 그와 동시에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기다란 팔, 각다귀 같은 손, 8개의 역관절 다리, 나무 인간의 상체들, 세로로 길게 찢어진 입, 불투명한 동공.

그리고 놈이 손톱으로 벽을 긁어대고 있는 모습까지.

'······거미 변종.'

나는 지수를 슬그머니 뒤로 끌면서 물러났다. 머릿속에 남은 강렬한 기억이 식은땀을 잔뜩 흘려보낸다.

수원고등학교.

그곳의 악몽이 재림했다.

***

"아, 아저씨."

나와 함께 뒤로 물러난 지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속삭이듯 불렀다. 그녀의 꼬리는 다시 사이로 말려들어가 있었다.

지수 또한 거미 변종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아니, 좋지 않은 기억만이 있는 까닭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듯했다. 그때와는 달리 강해졌다고 해도 말이다.

그도 그럴게, 놈의 기괴함이 주는 공포는 그 당시의 우리에게는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만큼 자극이 강렬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최대한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전자 도어락의 건전지를 미리 빼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문이 열려 있는 내내 시끄럽게 울려 댔을 것이고, 문이 닫히면 또 닫혔다는 전자음을 냈을 것이다.

그런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면 거미 변종에게 우리가 여기 있다고 위치를 대놓고 알려주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소리를 신경 쓰는 지수의 조심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우리 얼굴에 떠오른 심각성을 감지한 한세아가 눈빛으로 물었다. 그녀는 예린의 복장을 점검하고 있었다.

"···거미 변종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건지 그 통로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거기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우리만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손전등을 켜 글씨로 정보를 전달할 생각은 꿈도 못 꿨다. 혹여 바깥으로 새어 나간 빛이 복도에 있는 거미 변종을 자극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지수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한세아와 예린.

"하,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한세아는 두통이 이는 듯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활동 반경이 건물 전체가 아니었나 봅니다. 세아씨 말대로 다른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파장이 퍼질 때만 통로에서 잠깐 나오던가 하는 식일 수도 있고요."

나도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이 건물로 들어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탐색을 마치고 들어오지 않았던가.

무언가 있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게 거미 변종일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것도 예린에게 감지되지 않은 변종이라니?

'···아니, 잠시만.'

나는 놈의 등에서 반짝거린 푸른빛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것이 어둠 속에서 미끼를 낚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면, 그것이 지수와 한세아가 가지고 있는 조각이라면, 예린이 알아차릴 수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푸른 조각은 우리 인간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타 생명체를 적대시하는 변종에게는 검은 조각이 들어 있었기에 여태 그런 줄 알고 있었건만.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지수가 해결해주었다. 밤눈이 좋은 그녀이니 나보다 눈에 담은 것이 더 많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저씨, 그거 봤어? 놈의 등에 달려 있는 거."

"푸른빛 말하는 거지?"

"그것도 있지만 그게 달린 부위 말이야."

지수는 내 말에 수긍하는 한편, 일부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그녀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말을 이었다.

"······꼭 억지로 접목된 것처럼 사람 상체 하나가 더 붙어 있었잖아. 뒤로 확 젖혀진 몸 하나가 놈이 움직일 때마다 달랑거렸었는데 그건 못 봤나 보네."

"···시체가 변종에게 붙어 있었다는 말이야?"

"응, 확실해. 거기에 푸른 조각이 걸려 있었어. 나나 세아 언니가 가지고 있는 조각이랑 똑같아 보였고."

역시 그 탓에 예린이가 감지를 못한 것인가. 거미 변종의 등에 달린 것이 새로운 기관일 가능성은 낮아졌으나 여전히 의아한 건 매한가지였다.

푸른 입자는 어떻게 충전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아마 조각은 이상한 파장이 지나갈 때마다 충전이 됐을 거야.'

그러면 조각 안의 푸른 입자가 바닥나지 않은 것이 얼추 이해가 간다. 실제로 지수와 한세아의 푸른 조각도 파장이 지나가니 소량뿐이더라도 충전이 되긴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충전하는 사람이 없어도 조각 안에 푸른 입자가 남아 있을 수 있던 것이리라.

고개를 돌려보니 파장의 효과가 끝난 듯 주위가 다시금 어둠에 잠긴 것이 보였고, 전자제품의 가동 소리 또한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

쾅! 쾅쾅쾅쾅쾅!

[끼아아아아아악!]

거미 변종이 방을 부수고 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방 안에 가득 담긴 이질적인 냄새를 맡은 놈이 발광하는 소리였다.

그곳에 우리가 남긴 흔적이 잔뜩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드득- 빠각! 빠가각! 우직!

방음 효과를 넘어선 소음이 철문과 여러 개의 벽을 뚫고 우리의 귀에 꽂힌다.

"혹시 몰라서 복도에는 락스랑 세제 뿌려서 저희 냄새 최대한 지워 뒀어요. 조용히만 한다면 우리가 여기 있는 줄은 모, 모를···, 모르지 않을까요?"

한세아가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 말했다. 자연스레 그녀의 목소리도 떨려서 나왔다.

그녀는 과거 고등학교 앞 모텔에서 혼자 지냈을 때처럼 세제로 흔적을 지웠다고 이야기했으나 그 방식이 지금도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거미 변종이 방만 박살 내고 돌아가기를 바랐다.

우리가 남긴 흔적이 가득한 방이 미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쏴아아아아아-

바깥은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전보다 더 거세진 것 같기도 했다.

[끄아아아악!]

[키에에에엑!]

지칠 줄 모르는 나무 인간들은 여전히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비가 오래 내리면 내릴수록 그것들은 더욱 신나서 날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깥을 나간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비라도 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빛 한점 없는 장소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손전등이라도 키는 순간, 주변에서 나무 인간들이. 수많은 나무 인간들이 우리를 덮치겠지. 나와 지수는 어찌 분전하더라도 한세아와 예린은 순식간에 당하고 말 것이다.

"세아씨, 로프는 언제든지 꺼낼 수 있도록 준비해주십쇼. 여차하면 문 열고 비상구로 뛸 겁니다. 거기서 위로 가도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아마 아래로 뛸 것 같습니다. 매듭은 아직 안 풀었죠?"

거미 변종을 상대하려면 할 수야 있을 것이다. 허나 놈이 한 마리만 있는지 확실할 수 없는 데다가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우리로서는 그저 위험한 장소에서 벗어날 계획을 최우선으로 잡고 싶었다.

"넵, 매듭은 그대로예요. 근데 아니, 그. 저···이번에 이능이···. ······아무것도 아니예요."

한세아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머금은 말을 그대로 삼켰다. 그녀는 예린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벽에 기댄 채로 긴장한 몸을 애써 달랬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침묵에 빠진 상태로.

거센 빗소리가 우리의 숨소리와 말소리를 거의 완벽하게 숨겨 주고 있었지만, 그것이 완벽하다는 생각은 내 바람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눈치를 보던 지수가 슬쩍 내 손을 잡아 왔다. 불안에 떠는 얼굴을 한 지수는 계속해서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바로 그때.

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

복도를 울리는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지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다급한 손짓으로 일행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쾅!

쾅쾅쾅쾅쾅!

기어코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위치를 알아차린 거미 변종이 우리가 있는 방문을 거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콰직! 콰각!

[끼아아아아아아악!]

조금씩 우그러지는 철문 너머로 그것이 지르는 괴성이 건물을 울렸다.

콰지지직!

날카로운 손톱이 문을 뚫고 들어왔다가 빠르게 빠지면서 우리 시야에 들어온 모습이 하나 있었다.

···바로 거미 변종이 가진 푸른 조각이 우리를 향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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