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53화 (254/497)

Chapter 253 - 253. 타워 (8)

"······!"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일어났다.

거미 변종은 분명 복도 끝에 있었건만. 반대편 끝방에 있던 우리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 놈이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한세아가 락스를 뿌려 우리의 흔적을 지웠다고 했는데, 역시 그것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인가.

락스 냄새 또한 이질적인 냄새이긴 해도 복도 전체에 퍼져 있는 상태이니 우리가 있는 방을 쉽게 특정할 수 없었을 터다.

정확히는 그래야만 했다. 한곳에 몰려 있는 것과 사방에 퍼트려진 건 엄연히 다르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닥친 상황은 그것이 틀렸다는 걸 알려주었다.

쾅쾅쾅쾅쾅!

콰직! 기기긱-

문이 조금씩 우그러지면서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놈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철문에 구멍을 내기도 했다. 언뜻언뜻 푸른 발광체가 보인다.

휘이이이···

그렇게 송송 뚫린 구멍으로 독한 락스 냄새가 담긴 바람이 방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끼아아아아악!]

거미 변종이 내지르는 소리가 좀 더 명확하게 들려왔다.

"···대비하십쇼. 곧 들어올 겁니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거미 변종이 우리의 존재를 확신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어차피 저 문이 뚫리면 벼랑 끝에 몰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강화탄은 3발밖에 안 남았어요, 현우씨. 더 만들고 싶어도 입자도 모자라고, 시간도, 총알도 없어서···. 무엇보다 권총이 더 버티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요."

한세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무기를 점검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권총은 어두운 이곳에서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망가진 상태라는 게 보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세아의 말마따나 시간도 없었고, 입자도 모자랐으며, 가장 중요한 탄알조차 모자랐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잠을 자면서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는 것이다. 심장 속에 담긴 입자도 같이.

꽈악-

도끼 자루를 쥔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아직 몸 이곳저곳이 잔뜩 쑤셨으나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거미 변종을 상대할 수 있을 듯했다.

"소총은요?"

그리 판단한 나는 한세아에게 예비군에서 가져온 총의 상태를 물었다.

"그것도 이제 한 탄창하고 반 정도···. 개미굴에서 거의 다 썼어요. 총은 2정이나 있는데 이것도 총알이···."

"괜찮습니다. 그 정도면. 저 문이 열리면 바로 강화탄 쏘시고, 그 뒤로 총 쏘는 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세아씨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넵!"

비록 멀리 퍼질 사격음이 걱정되긴 했지만, 거세게 내리는 폭우가 총 소리를 최대한 막아주리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래도 나무 인간들이 몰리겠지.

그러니 놈을 재빠르게 해치우고, 층마다 비상구 문을 완전히 잠가야 했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있는 7층으로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지수야, 움직일 수 있겠어?"

이번에는 지수에게 물었다. 가뜩이나 상태가 이상했던 그녀가 걱정되었던 까닭이다.

나와 같이 전열을 담당하는 지수였지만, 여차하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후열로 뺄 생각하고 있었다. 크기가 작은 거미 변종이라면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으니.

"할 수 있어. 나를 뭘로 보고? 몸도 이제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문에 뚫린 구멍을 노려보고 있던 지수. 그녀는 귀를 쫑긋거리면서 도끼를 앞으로 내세웠다. 그녀의 꼬리는 일자로 곧게 설지, 다리 사이로 들어갈지 갈팡질팡하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콰앙-!

끼기기긱-

최대한 버티고 있던 문이 부서지고 말았다. 너덜너덜해진 문짝은 거미 변종이 손으로 집어 복도 구석으로 날려 버렸다.

[끼이이이이!]

우리를 발견한 거미 변종이 울부짖는 것과 동시에.

"세아씨!

나는 머리를 숙이며 한세아를 불렀다. 전방이 비었으니 마음 놓고 쏘라는 신호였다. 당장 보이는 건 한 마리뿐. 놈의 옆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저 거미 변종만 죽이면 우리는 다시 안전해지리라.

타-아아앙!

푸른빛 한 줄기가 내부를 환하게 밝히며 쏘아졌다.

카가가가가각- 맹렬하게 회전하는 탄환. 그것이 거미 변종의 팔에 나 있는 나무 껍질에 파고든다. 본디 머리통을 노리고 쏘아진 총알이었으나 놈이 재빨리 팔을 들어 막은 것이다.

그리고.

우직!

찌지직-

거미 변종이 자기 팔을 뜯어 옆으로 내던졌다. 마치 자기가 맞은 공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는 듯 망설임이 없는 행동이었다.

철퍽- 후두둑-

뜯어진 팔의 단면에서 끈적한 체액이 떨어진다.

퍼-엉!

끝에 가서 푸른 폭발을 일으키는 강화탄은 치명상은커녕 놈의 팔 한쪽만 겨우 터트릴 수 있었다.

"······뭔?!"

빈틈을 노리고 거미 변종에게 달려들던 나와 지수는 당혹성을 토해내면서 급하게 옆으로 굴러야만 했다.

[······.]

괴성조차 지르지 않은 거미 변종이 남은 팔 한쪽을 곧장 휘둘러 우리를 노렸기 때문이다.

콱! 콰직!

송곳 같은 손톱이 바닥을 인정사정 없이 파고들어 자국을 남겼다. 검은 입자가 소용돌이치는 손톱은 바닥의 강도에 상관없이 두부처럼 구멍을 뚫었다.

"······파란색. 어, 언니야. 푸른 입자가 저 괴물 등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어요! 저래서 검은 입자가 안 보였던 거예요! 푸른 입자도! 서로 같이 없어져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던 예린이 망설임을 끝내고 입을 열어 외쳤다.

아이의 외침에 나, 지수, 한세아의 시선이 거미 변종의 등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푸른 조각이 달려 있는 팔찌가 있었다. 정확히는 손목에 팔찌가 끼워진 사람의 상체가 있었다.

푸른 조각이 내뿜고 있는 빛은 지수와 한세아가 가지고 있는 조각을 향해 있었다. 서로 이끌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저게 우리 위치를 알려 준 거였나?'

예린이 말한 내용은 이미 지수가 우리에게 한차례 말해주었던 이야기다. 허나, 저것이 나침반처럼 우리를 가리키고 있는 건 몰랐다.

그리고 거미 변종의 등에 접목된 것처럼 붙어 있는 사람은 성별,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껍질에 뒤덮여 있는 상태였다.

그래, 조각 사용자가 우리만 있을 리가 없었다.

한세아도 처음에 조각을 그냥 도로 주변에서 주운 것이지 않은가.

의왕시 캠프에서도 푸른 조각의 존재를 알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처럼 푸른 조각을 쓰는 이름 모를 사람, 우리와 달리 혼자였던 성별 모를 사람은 혼자였던 탓에 거미 변종에게 죽은 모양이다.

당하기 전에 우리와 만났더라면 동료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가정을 하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이미 죽은 저 사람은 놈에게 사냥 당한지 시간이 많이 흐른 것처럼 보였으니까.

"이제 강화탄 2발 남았어요! 권총 식을 때까지 소총으로 쏠게요!"

"으헉!"

나는 한세아의 말에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없어진 문 너머로 팔을 이리저리 휘적거리는 거미 변종의 팔을 피하기 바빴다.

그그극-

툭- 투투툭-

거미 변종의 손이 벽면을 긁어 기다란 상흔을 만들어 낸다. 임시로 장식된 선반 위 화분 모형, 동물 조각상 따위의 물건들이 마구 떨어진다.

으직!

거미 변종이 자기 발치를 건드린 조각상을 발로 밟아 으깼다.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부서진 조각상을 향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

"······."

지금 나와 지수, 거미 변종은 좁은 문틀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사람이 둘 정도 지나가도 충분한 크기였으나 상대적으로 복도나 방 크기보다는 작은 문틀. 이래서야 대치만 하루 종일 이어질 것 같았다.

결국 거미 변종이 우리를 끝장내든, 우리가 놈을 끝장내든 뭘 하기 위해서는 나가야 했다. 비상구도 바깥에 위치하기도 했고, 시간이 끌리면 끌릴수록 불리한 건 우리였다.

쏴아아아아아- [키아아아아악!]

[크어어어억!]

빗소리 사이에 들려오는 나무 인간들의 괴성이 한층 더 요란해졌다. 총성이 들린 이후부터 쭉 저런 상태로 변했으니 우리와 거미 변종이 내는 소음에 자극을 받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창! ······콰직!

간혹 지상에서 시작된 유리가 날카롭게 깨지거나 금속 사물이 휘어지고 찢겨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올라와 귀를 약하게 자극했다.

[아히이······]

거미 변종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신이 유리해진다는 걸 안다는 듯 팔 한쪽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눈은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렇게 사냥을 해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모양이다.

"지수야,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뒤따라와."

"···후우, 알았어."

나와 지수는 각자 도끼를 꽉 쥐며 몸을 낮췄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미 변종을 밀어내기 위한 준비 동작이었다.

탓! 타타탓-!

화르르륵!

잠시간의 심호흡 끝에 나는 푸른불을 휘감은 도끼를 위로 쳐들었다. 놈의 불투명한 동공에 푸른 불이 아른거리는 것이 보인다.

파지지직!

지수도 소방 도끼의 자루를 양손으로 잡았다. 가시적인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스파크가 도끼날에 튀기 시작했다.

이윽고.

"지금!!"

각자가 품고 있는 푸른빛이 검은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