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4 - 254. 타워 (9)
[끼이이이이이!]
도끼를 꼬나 쥐고 달려드는 나와 지수를 보며 울음을 토해내는 거미 변종. 놈은 도끼날을 막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앞세웠다.
콰득!
푸른 불이 휘감긴 도끼가 변종의 껍질에 박힌다. 그러나 크기가 작아지면서 껍질이 두꺼워진 것일까. 도끼날은 팔을 가르지 못하고 간신히 껍질에 박히기만 했을 뿐이었다.
-턱! -턱!
그나마 괴물의 육체를 불사르며 기세를 키워나가는 푸른 불이 거미 변종을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파르르!
뒤로 물러난 것이 놈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는지 변종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입을 더욱 길게 찢으면서 안에 나 있는 뾰족한 이빨들을 전부 드러내 보였다.
식도를 따라 솟은 이빨들이 떨리는 모양새가 끔찍하다. 이빨에 한번 긁히기라도 한다면 곧장 피가 철철 날 것 같았다.
"으얍!"
바닥을 박차며 내달린 지수는 그러한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끼를 휘둘렀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변종의 등에 있는 시체였다. 푸른 조각을 먼저 낚아챌 심산인 듯했다.
서걱!
본체와 다르게 상대적으로 얇은 나무 껍질로 뒤덮여 있는 시체는 지수의 도끼를 막지 못했다.
-툭!
깔끔하게 잘린 팔이 단면을 그대로 내보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잘린 단면에서는 체액이 샘솟지도 않았다. 그저 끈적끈적한 액체가 방울방울 무리를 지었을 뿐.
"아저씨! 여기! 이거 쓰면 불 마구 쓸 수 있는 거 맞지?!"
지수는 곧장 바닥에 떨어진 팔찌를 주어 내게 던졌다. 무슨 이유로 팔찌를 먼저 노린 건가 싶었는데, 의왕시 캠프에서 한세아의 푸른 조각을 깨먹었을 때의 이야기를 떠올려서 그랬나 보다.
탁!
나는 팔을 뻗어 날아오는 팔찌를 붙잡았다. 왼손을 주먹 쥐어 푸른 조각을 꽉 잡았다. 얼핏 보니 조각 안에 담겨 있는 입자는 절반도 되지 않는 삼분의 일 정도만 차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내 부담을 덜어 주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화르르륵!
나는 조각에서 푸른 입자를 뽑아 쓰며 불을 크게 키웠다. 손전등이 필요가 없을 만큼 주위가 밝아졌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 거미 변종의 동공에 푸른불이 아른거린다.
그와 동시에.
"흡!"
도끼를 넘어 몸 주변까지 푸른 불을 휘감은 채 앞으로 달렸다. 그러면서 도끼를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끼아아아아아!]
불투명한 동공이 크게 확장되며 괴성을 길게 내지르는 거미 변종. 놈은 불길에 닿지 않기 위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친 모습이었다.
쿵!
변종의 육중한 몸체가 후방에 있는 비상문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의미였다.
"이런 씹!"
크기와 다르게 매우 재빠르게 움직인 녀석 탓에 내 도끼를 허망하게 공기만을 갈랐다. 그래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변종의 상체에는 기다란 상흔이 새겨졌다.
후두둑-
철퍽- 철퍽-
빼곡한 이빨의 일부와 살점 따위가 아래로 떨어진다. 치명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아쉬웠다.
"현우씨! 지수씨! 숙여요!"
한세아가 강화탄이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다시 한번 쏘아지는 푸른빛 한줄기가 곧장 거미 변종을 향해 날아갔다. 나, 지수, 거미 변종이 난동을 부리면서 생겨난 흙먼지를 뚫고서.
그 순간.
뿌드드득!
거미 변종이 등에 붙여 놓은 시체를 뜯어내 강화탄을 막았다. 그러나 두꺼운 껍질이 달려 있던 팔과 달리 시체는 얇은 껍질을 가졌기 때문에 전부 막아 내지는 못했다.
퍼-엉!
맹렬하게 회전하는 탄환은 괴물이 내세운 시체를 뚫고, 이내 놈의 상체에 직접 타격을 가했다. 응축된 푸른 입자가 터지면서 피해를 입힌다. 이번에는 치명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철퍽- 철퍼덕-
절반 이상 상체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폭발에 찢긴 살점과 잡다한 뼈들이 뭉텅이로 떨어져 바닥을 수놓았다. 비릿한 혈향이 우리의 코를 자극했다.
쾅! 쾅! 쾅! 쾅!
[끼아아아아악!]
거미 변종이 고통에 몸부림친다. 놈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팔에 의해 복도 벽에는 선이 좍좍 그어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놈이 흘리는 피가 더 많아졌다.
바로 그때.
[여기서 나가━━!]
언제 몸부림을 쳤냐는 듯 몸을 일으킨 변종이 분노를 토해냈다. 사방으로 퍼지는 괴성에 창문이 덜덜 떨렸다. 복도를 웅웅 울리는 소리에 우리의 몸도 떨렸다.
그와 동시에.
"···헉?!"
나는 폐에 담고 있던 숨을 모조리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놈이 앞뒤 안 가리고 몸을 내게 날린 것이다. 정확히는 복도를 따라서 돌진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
빠르게 바닥을 내딛는 역관절 다리는 내가 멈춰 세울 수도 없었다. 질량의 차이가 워낙 큰 까닭이었다. 놈의 팔이 나를 꽉 붙들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팔이 한쪽밖에 없어서 붙잡힌 것에 불과한 것이지, 아니었다면 내 몸은 반으로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리라.
"아저씨! 아으!"
그 모습을 본 지수는 변종의 등에 올라탔다. 그녀는 도끼를 휘두르려고 자세를 잡으려고 했으나, 놈 또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도는 매번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다.
촤르륵-
시체가 뜯어지면서 생긴 상처에서 체액이 등판을 미끄럽게 만들기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우씨! 지수씨!"
아직 방에 있던 한세아가 소총을 들고 뛰쳐나왔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언가가 그녀의 조준을 방해하는 것 아니었다. 나와 지수가 거미 변종과 같은 경로상에 있는 까닭에 쏠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가 맞게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몸에 두른 푸른 입자로 이루어진 막이 총알을 막아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그도 그럴게, 입자의 상태도 최상이 아니었고, 그 양도 적었으니까.
화르르르륵!
푸른 불은 여전히 변종의 몸체에 달라붙어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검은 재가 휘날리는 걸 보니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건만. 거미 변종은 꿋꿋하게 움직여 나를 밀어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쿠웅-!
"컥!"
나는 반대편 복도 끝에 몸을 부딪치게 되었다.
"아윽!"
등판에 올라타 있던 지수도 균형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특유의 유연함으로 금방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순간 비틀거렸다. 피해를 완전히 상쇄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후우웅-!
등을 타고 흐르는 고통과 함께 기묘한 파장이 다시금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작동을 멈춘 엘리베이터나 비상등에 불이 들어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불안정하게 전등이 깜빡거렸다가 꺼지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
어느새 코너로 몰린 나와 지수는 입을 꾹 다물고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섰다.
덜컹! 쿵!
콰르르르-
무심코 뒷걸음질을 치면서 엘리베이터 문을 밀자, 문은 굳게 닫혀 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뒤로 넘어가며 아래로 떨어졌다. 큰 힘을 담아 밀지도 않았건만. 눈 깜빡할 새에 문이 떨어진 것이다.
···띵!
[8층. 치직- 문이 열립니다.]
승강기가 8층에 도착했다는 안내음이 들린다. 승강기 문이 열리는 소리까지도.
기이잉-
전원이 들어온 엘리베이터는 8층에서 멈추지 않고, 무게추가 달린 와이어를 움직이며 또다시 위로 상승했다. 승강기가 이동하자 바람 한줄기가 같이 따라 올라간다.
그와 동시에 사람 크기의 고치들이 엘리베이터 통로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뭐야."
나와 지수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얼굴이 바싹 굳었다. 내가 본능적으로 푸른 불을 아래로 던지자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밝히면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지하까지 연결된 통로를 메우고 있는 더 많은 주머니들이었다. 고치가 미처 막지 못한 썩은 내가 승강기를 따라가는 바람을 타고 훅 느껴진다.
간혹 꿈틀거리거나 울룩불룩거리는 고치들이 있는 걸 보니 곧 태어날 거미 변종의 새끼이거나 죽지 않은 먹잇감이 담긴 주머니인 듯했다.
"진짜 가지가지하네···."
지수가 통로를 흘깃거리면서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끼아아아악!]
푸른 불이 통로로 떨어지는 모습을 본 거미 변종은 발작하며 나를 바깥으로 끄집어내 던졌다.
"아저씨! 괜찮아?"
놈에게 노려지지 않은 지수가 뒤로 날아가는 나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 그녀의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으나 역시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쿨럭! 큭, ···괜찮아."
나는 괜찮다는 손짓을 보내며 방금 내가 본 광경을 다시금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알? 알이라고?'
거미줄로 둘둘 감겨 있는 알집들이 통로를 메우고 있는 모습은 이곳이 변종의 둥지라는 걸 짐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오로지 엘리베이터 통로 안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어두운 통로에서도 그것만큼은 명백하게 보였다.
심지어 승강기가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아두는 거미줄 다발이 있기까지 했다. 지하 쪽에 위치한 알집을 지키기 위함인가 보다.
게다가 지수가 지금 후각을 자극하는 썩은 내를 미리 감지하지 못했던 까닭은 각 수직 통로 층을 막고 있는 빼곡한 거미줄에 구멍을 뚫렸기 때문이리라.
아무래도 몸을 숨기고 있던 건,
이 건물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건,
최대한 흔적을 지우며 움직였던 건,
···우리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