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55화 (256/497)

Chapter 255 - 255. 타워 (10)

[끼아아아아악!]

통로로 접근하지 말라는 듯 위협적으로 팔을 휘두르는 거미 변종. 우리를 이곳으로 밀어 넣은 주제에 둥지의 존재를 들키니 역으로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

괴물에게도 모성애가 있다는 것일까.

둥지에 있는 알집을 지키려는 변종의 행동은 그러한 추측을 하게 만들었다. 수원고등학교에 있던 거미 변종 또한 화원에 강한 집착을 드러냈었으니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겠지.

화르르륵-

강하게 타오르는 푸른 불.

그러나 아직 거미 변종을 죽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괴물들 중에 가장 무섭다고 할 수 있었던 누더기 변종마저 불태운 푸른 불이 말이다.

비록 누더기 변종의 마무리는 검은 나뭇가지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피해가 적게 들어가는 것도 처음이었고.

'···장갑이 얼마나 두껍길래······.'

도끼 날을 놈의 팔에 박아 넣었을 때 느껴졌던 껍질의 두께는 상상이었었다. 그 탓에 불이 놈을 서서히 태우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예상할 수 없었다.

나는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거미 변종과 그 뒤에 있는 수직 통로를 바라보았다.

승강기, 수직 통로, 알집, 둥지, 다시 승강기.

이대로 서로 갈길 가면 좋을 텐데, 거미 변종은 둥지를 지키면서도 나, 지수를 여전히 노리고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먹잇감들을 이대로 놓아줄 수 없다는 듯이.

우리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면 놈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온다.

우리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면 놈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이동 속도는 아무리 빨리 내달린다고 해도 거미 변종의 이동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거리를 벌려 도망치는 것은 무리이리라.

"현우씨!"

한세아가 예린의 손을 잡고 거리를 조금 좁혔다.

나는 말없이 손만 들어 그녀들이 오는 것을 막았다.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 대신에,

"···지수야, 너도 봤지. 통로에 알 같은 거."

눈을 흘깃거려 지수에게 말을 걸었다.

"응."

"거길 노리자."

"···어떻게?"

"위에서 엘리베이터를 떨어트릴 거야. 그러면 한 번에 쓸려 나가겠지."

둥지를 끔찍이 여기는 거미 변종이니 알을 지키기 위해 승강기를 막아 설 가능성이 컸다. 그러다가 어쩌면 엘리베이터에 맞아 죽거나 그로기 상태에 빠지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럼 우리는 그 틈에 도망칠 수 있겠지.

"뭐? 그럼···."

지수는 뒷말을 흐렸지만 무슨 말이 나올지 나도, 지수도 이해하고 있었다.

내 계획대로 하기 위해서는 나를 여기에 두고 지수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소리였다.

아직 기묘한 파장이 주는 영향이 사라지지 않았을 때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제일 위층으로 보내야만 하니까. 중간중간 제동장치를 망가트리는 건 덤이었다.

게다가 위로 올라간 사람이 내 신호를 제때 제대로 인지할 수 있어야 했다. 청각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내가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거센 빗소리 때문에 들을 수 없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서 지수밖에 없었다.

지수에게 거미 변종과 첫 조우 때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시켜서 미안했지만, 망설이면서 우물쭈물 거리다가는 아무것도 못 하고 시간만 허비하는 셈이다.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처음부터 푸른 불을 쏘아내 통로를 불태우는 것이 상책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통로 군데군데에 형성된 거미집들이 푸른 불을 금방 꺼트리는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푸른 불로 통로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들어가야만 하는데 그러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수직 통로로 푸른 불을 던지고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분노한 거미 변종에게 금세 따라잡히겠지.

"층마다 올라가면서 통로 한 번씩 살펴봐 줘. 거기에 승강기의 속도를 제어하는 제동장치랑 비상정지장치가 있을 거야. 그것들은 꼭 부숴야 해. 와이어를 전부 끊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잘 모르겠으면 그냥 보이는 장치는 다 부숴."

"······또 다치면 가만 안 둘거야."

"걱정하지 말고 위로 올라가. 이번에는 서로 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 이번에는 일행이 나눠지지도 않을 것이고, 누구 하나 죽거나 다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금방 위에 도착할 수 있어. 신호 주면 바로 와이어 끊을 게."

지수는 입술을 강하게 짓씹더니 엘리베이터 통로 뒤편에 있는 비상구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언니! 나도 같이 가! 가루를 뿌려야 엘리베이터가 도중에 안 멈추잖아! 이게 소중하기는 해도 오빠랑 언니들보다는 아니니까! 그러니까 이걸 다 쓰더라도 구할 거야···!"

"···아으! 알았어! 네가 맞으니까 빨리 따라와! 시간 없어!"

"응···!"

지수의 말을 들은 예린은 푸른 가루를 자기 몸에 뿌리더니 자기 언니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각종 물건이 들어 있는 가방을 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니 푸른 가루가 무게의 부담을 덜어 준 모양이다. 희미한 바람이 아이의 몸 주변을 돌고 있으니 거의 확실했다.

[끼아아아악!]

자리에서 이탈하는 지수와 예린을 본 거미 변종은 격분하며 막아서려고 했으나,

쐐애액!

내가 휘두른 도끼에 의해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카-앙!

껍질 장갑이 밀어낸 도끼날이 뒤로 확 밀려난다. 비록 큰 피해는 아니었지만 정신을 팔리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

사실 지수를 위로 보내지 않고 다 같이 힘을 합쳐서 변종을 죽이는 방법도 있기는 했다. 다만 내가 그러지 않은 건 지수의 상태가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비틀거리거나 현기증이 이는지 간혹 머리를 감싸 쥐었으니 말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런 지수의 상태는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몸이 제때 반응하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는데 어찌 지수를 그대로 둔다는 말인가.

그렇기에 차선으로 승강기를 추락시킨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게 그나마 나은 방법이다.

나는 그리 판단했다.

바로 그때.

"현우씨! 옆으로 피해요!"

소총을 견착한 한세아가 거미 변종에게 총구를 겨눴다.

탕! 탕! 탕!

파바박!

내가 옆으로 구르자마자 쏘아지는 총알. 그것들은 곧장 거미 변종의 몸체에 박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일반 소총탄은 껍질을 뚫지도 못했다.

"이제 강화탄은 한 발밖에 안 남았어요!"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탄환을 보며 한세아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건 제일 마지막에 쓰시고 일단 소총으로 견제만 최대한 해주십쇼! 지수가 위층에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넵!"

"흐읍!"

나는 왼손에 쥐고 있는 푸른 조각을 더욱 강하게 쥐며 입자를 뽑아냈다. 왼손에서부터 시작된 입자의 회오리가 혈관을 타고 몸으로 퍼졌다.

덜컹!

콰르르-

지수와 예린이 계단을 타고 올라간지 시간이 30초도 흐르지 않았는데 통로에서 철문이 하나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들이 제 할일을 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캉! 카캉!

엘리베이터 문은 아래로 떨어지면서 수직 통로 곳곳에 부딪치며 소음을 냈다.

그 수만 벌써 셋.

우리가 있는 건물의 층수는 7층, 제일 높은 층은 15층이니 지수가 10층을 넘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덜컹!

눈 깜빡할 새에 떨어지는 또 다른 철문들. 그녀들은 벌써 15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도 내 할 일을 해야겠지.'

그리 생각하며 푸른 불을 도끼에 담아 위에서 아래로 공기를 갈랐다. 그러자 궤적을 따라 형성된 유선형의 푸른 입자 덩어리가 앞으로 쏘아졌다.

가만히 두면 푸른 입자가 둥지에게 피해를 가할 것이다, 라는 건 거미 변종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놈은 피하지 않고 맞는 것을 택했다.

···펑!

후두둑-

푸른 입자 덩어리가 터지면서 거미 변종의 껍질과 이미 상처가 있던 부위에 추가 피해를 입혔다. 떨어지는 질척질척한 살점과 함께 구역질나는 썩은 내가 풍겨 온다.

[끄르륵··· 쿠웨웩!]

변종은 세로로 찢어진 입으로 미처 소화되지 않은 것들을 토해냈다.

철퍽철퍽-

나무 인간의 팔, 반쯤 녹은 머리통, 녹지 않은 머리카락, 형체도 알 수 없이 찢어진 옷 조각, 검은 이끼가 붙어 있는 나무 껍질 따위들이 한데 뭉쳐 석재 바닥에 질척하게 늘어붙었다.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금이 놈을 몰아붙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탕! 타탕!

쐐애액!

총성이 복도를 메아리치면 칠수록, 내 도끼가 허공을 가르면 가를수록 물러서지 못하는 거미 변종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마침내 놈의 제일 후미에 있는 다리가 엘리베이터 문턱에 걸쳐졌을 때.

화르르륵!

나는 다시 한번 푸른 불을 최대한 응축해서 집어던졌다.

이 불이 얼마 가지 못하고 꺼질 것이라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허나 그것은 거미 변종이 알지 못 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불은 놈의 시선을 한동안 이끌어 줄 훌륭한 미끼가 되리라.

[끼아아아아악! 안 돼━!!]

변종은 남아 있는 한쪽 팔을 뻗어 불덩어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괴물의 동공에 푸른 불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맥없이 당했던 수원 고등학교와는 매우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고무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때랑은 달라.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내 옆에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푸른 입자를 다뤄 괴물에게 효과적으로 피해를 줄 수도 있어.

도망만 치다가 죽기 직전까지 갔던 그때와는 다르단 말이다.

그러니까.

"뒤져. 이 괴물 새끼야."

나는 그 말과 동시에.

빠아악!

푸른 불이 거미줄을 태우고 있는 광경을 괴물답지 않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보고 있는 거미 변종을 발로 강하게 밀었다. 남아 있는 푸른 입자를 모조리 다리에 둘러 힘을 강화시킨 후였다.

[끄륵?!]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이 밀려난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통로 안쪽으로 밀어넣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지수야! 마지막 와이어 끊어-!!"

나는 내 외침이 수직 통로 위쪽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크게 소리쳤다. 내 목소리가 담긴 메아리가 통로를 웅웅 울렸다.

타-앙!

휘리리릭!

내 소리를 감지한 지수가 도끼로 강철 와이어 다발을 끊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꽉 조여진 뭉치가 외부에서 가해진 힘으로 터져 나가는 소리였다.

이윽고.

끼기기기긱-!

승강기를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와이어가 끊어지자 승강기는 순식간에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일정 속도 이상으로 올라가는걸 막아주는 제동장치나 비상정지장치들은 이미 지수가 망가트린 후였기 때문에 그것들은 추락을 막기는커녕 속도를 줄이지도 못했다. 그저 길을 훤하게 터주었을 뿐.

까가가각!

덕분에 점점 속도가 붙는 엘리베이터는 벽면을 긁으면서 내려올 수 있었다. 주홍빛 불똥이 인정사정 없이 튀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끼아아아아아악!!]

위에서 떨어지는 고중량의 물체를 감지한 거미 변종이 길게 울부짖었다. 놈의 불투명한 동공은 추락하는 승강기와 아래쪽에 있는 둥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푸화아악!

이내 판단을 마친 변종은 꽁무니에서 거미줄을 마구잡이로 뿜어냈다. 강철 와이어만큼이나 두꺼운 거미줄들이 빠르게 통로를 메우기 시작했다.

놈이 통로에서 빠져나오려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다. 수직 통로에는 내가 막고 있는 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층마다 문이 다 있었으니까. 아직까진 거리가 조금 있으니 바깥으로 나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 내는 거미줄의 강도를 믿는 모양이다.

실제로 거미줄는 같은 무게의 강철과 비교하면 20배나 질긴 특성을 가졌으니 놈의 의도대로 추락하는 승강기를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변종으로 바뀐 지금은 그 강도가 더하면 더했지 약하지는 않을 것이고.

-철컥!

어디까지나 한세아가 강화탄이 장전된 권총을 겨누고 있지 않고 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변종의 행태에 코웃음을 친 그녀는 곧장 방아쇠를 당겨 마지막 강화탄을 쏘았다.

타-아아앙!

아래로 쏘아지는 푸른빛줄기가 통로를 틀어막고 있는 거미줄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며 전진했다. 막혔던 구멍이 한방에 뻥 뚫리는 광경은 우리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통할 거라는 걸 암시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휘이이이잉!

예린이 만들어 낸 바람이 승강기를 더욱 아래로 밀어 버리며 추락 속도를 더해주었다. 돌풍이 통로를 훑고 지나가자 나와 한세아의 몸이 뒤로 확 밀려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텅━!

엘리베이터가 무방비 상태가 된 거미 변종을 그대로 직격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