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6 - 256. 타워 (11)
으지직!
철퍽! 철퍽!
거미 변종의 몸통이 터져 나가면서 안에 담겨 있던 체액들이 뭉텅이로 비산한다. 사방으로 퍼진 체액들이 나와 한세아뿐만 아니라 문틀이나 벽면에 인정사정없이 늘어붙었다.
승강기는 아직 7층 통로에 반쯤 걸쳐져 있는 상태. 장갑의 단단함과 변종 특유의 강한 생명력이 기어코 추락하는 엘리베이터를 막아 세운 것이다.
[끼━이이이이익!]
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면서 어떻게든 위에서 짓누르는 승강기를 밀어내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중이었다.
그것이 더 내려오지 못하게 문틀에 남은 팔을 집어넣고, 밑에서는 통로 벽면에 역관절 다리를 박아넣어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끼긱-! 끼기긱!
변종이 몸을 꿈틀거릴 때마다 끈적한 체액이 잔뜩 묻은 승강기가 들썩거린다.
빠각! 빠드득!
말없이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문턱에 걸쳐져 간신히 버티고 있는 거미 변종의 손가락들을 발로 우스러뜨렸다.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수수깡처럼 부러지면서 더 이상 승강기의 중량을 버티지 못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탕! 탕!
거기에 한세아가 소총으로 승강기 밑면에 있는 거미 변종을 쏘았다.
[끼에에에에엑!]
거미 변종의 단말마가 길게 늘어지다가,
-쿠웅!
콰직!
승강기가 수직 통로 제일 하단부에 닿는 것과 동시에 소리가 끊겼다. 통로 벽면에 붙어 있던 알집들이 우수수 뜯어져 나간 것은 덤이었다.
손전등을 아래로 비추자 전에 비해 훨씬 깔끔해진 수직 통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떤 미동도 존재하지 않는 걸 보니 거미 변종이 확실하게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새끼를 끔찍이 여기는 거미의 모성애를 이용한 방법이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지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성애를 이기지 못한 거미 변종의 말로. 그러나 동정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생존에 비겁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아닌 당연히 괴물이 죽어야 했다. 인간을 사냥감으로 아는 괴물 말이다.
"허억···, 허억···. 세아씨, 빨리 지수랑 예린이랑 합류합시다."
성공적으로 변종을 죽였지만, 감상에 취하고 있을 여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이 정도 규모의 둥지를 저놈 혼자서 관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적었으니까.
둥지를 본 순간부터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하기도 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건물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현실은 변치 않았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으나 그래도 나가야만 했다.
애초부터 거미 변종과 싸운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나마 안전한 도망을 치기 위함이었지 않았나.
이 건물에서 다시 쉬기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였다.
"넵! 현우씨, 제가 부축해 줄 테니까 저한테 기대요."
"괜찮습니다. 그 정도로 힘든 건 아니라서요. 세아씨는 괜찮죠?"
"제가 뭐 막 움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총만 좀 쏜 건데, 힘들게 뭐가 있겠어요?"
나와 한세아는 서로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비상문을 열었다. 지수와 예린도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일 테니 중간에서 합류하면 될 듯했다.
급하게 움직이느라 상당히 지쳤을 그녀들을 위해서 15층에서 합류하고 싶긴 했으나, 완강기는 10층까지만 설치되어 있어서 지수와 예린이 내려오기는 해야 했다.
'아니면 그냥 이대로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한 방법인데···.'
굳이 완강기를 이용해서 내려갈 필요는 없었다. 아직 나무 인간들이 건물 1층을 점거한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하게 내려가는 건 처음부터 염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의미도 없었다.
기묘한 파장의 영향은 다시 사라졌고, 내려가다가 승강기가 중간에 멈추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니 말이다.
"지수씨랑 예린이. 내려오는 중이겠죠?"
"그럴 겁니다. 그래도 지쳐서 중간에 주저앉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올라가서 데려오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여기서 소리쳐서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또 다른 괴물 불러올 수도 있으니 하면 안 될 것 같네요. 아닌가? 이미 총을 쏴서 의미가 없으려나요?"
"저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소음은 조심하는 게 좋겠죠. 아무리 총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고 해도요."
무얼하더라도 합류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한 나와 한세아는 일단 10층으로 올라갔다.
쏴아아아아-
···다각······다각······다각
그러다가 빗소리 사이사이에 희미하게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나는 무심코 중앙에 위아래로 뻥 뚫려 있는 계단층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때였다.
"···이런 씹."
밑에서 빠르게 계단을 타고 올라오고 있던 거미 변종들과 눈이 마주친 것은.
[끼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하나도 아니고, 다수의 거미 변종들이 세로로 찢어진 입을 크게 벌리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놈들의 손에는 사냥하고 돌아왔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 죽은 나무 인간들이나 아직 살아 있는 나무 인간들이 들려 있었다.
"···위! 위로 올라가요!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치고 완강기에 걸려고 했던 로프를 다시 가방 안에 집어넣은 한세아가 내 손을 붙잡고 위로 뛰기 시작했다. 한 치의 틈도 내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행동이었다.
완강기에 로프를 걸 시간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 밑에서 올라오는 거미 변종들과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벌리기 위해서는 갈팡질팡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물론, 대충 로프를 걸고 뛰어내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중간에 로프가 풀리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추락하고 말겠지. 우리가 무사히 내려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완강기에 걸린 로프를 거미 변종들이 끊기라도 한다면 낭패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는 10층이지 않은가. 아무리 몸이 강화가 되었어도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무사할 것이다라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한세아가 무슨 방도가 있다고 했으니 지금은 일단 그녀를 믿는 것이 좋으리라.
그렇게 계단을 13층까지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헤엑···어, 언니. 헤엑··· 헤엑··· 오빠···! 사방에 퍼져 있던 거, 검은 것들이 여기로 몰려들고 헤엑- 있어요-!"
계단층 중간에서 기운을 잃고 축 늘어진 지수를 부축하고 있던 예린과 마주쳤다. 아이는 말할 힘도 없는지 숨만 격하게 들이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우리를 불렀다.
아이는 거미 변종의 소리를 들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당연히 들을 수밖에 없었겠지. 눈으로 입자의 움직임을 보기까지 했고.
그리고 어쩐지 조용하더라니 무리한 지수가 정신을 잃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아이의 힘으로는 언니를 지탱하는 것도 겨우였을 테니까.
"수고했어, 예린아! 지수는 이제 내가 데리고 갈게! 그리고 이거 받아!"
나는 예린에게서 지수를 빼앗듯이 건네 받으며 곧장 등에 업었다. 지수를 고쳐 업는 사이에 손에 쥐고 있던 푸른 가루를 예린에게 내밀었다. 내구도가 다한 푸른 조각이 어느새 가루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네, 네!"
예린은 정신이 없는 얼굴로 유리병을 열어 내가 건넨 가루를 서둘러 담았다. 가루로 요정을 부릴 수 있는 아이니까 알아서 잘 사용하리라 믿었다.
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
···쿵! ···쿵! ···쿵!
밑에서 거미 변종들이 손에 쥐고 있던 나무 인간들을 전부 버린 채 나, 지수, 예린, 한세아를 바싹 뒤쫓고 있었다. 움직이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한층 한층 올라올 때마다 놈들은 벽면에 몸을 부딪혔다.
쩌저적-
놈들의 두껍고 단단한 장갑이 벽을 허무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아아아아악!]
우리가 죽였던 거미 변종의 괴성과 비슷하다못해 거의 동일한 소리. 허나 그 안에 담긴 힘은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만큼 밑의 괴물들이 강하다는 의미였다.
························쿵!
···············쿵!
·········쿵!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초조함은 더해 갔다. 우리는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압박감을 억지로 외면하면서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갔다.
마침내 도달한 15층 위에 위치한 옥상 문.
문에는 사슬이 걸려 있었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부식이 진행된 쇠사슬이라 강도는 매우 약할 테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사슬을 끊는 건 그나마 손 쉬운 일에 속했다.
철그럭!
"문! 문 열게요!"
한세아가 앞으로 튀어 나가 문고리에 걸린 사슬을 단박에 제거해 버리고는 눈 깜빡할 새에 문을 열었다.
덜컹!
휘이이이이-!
경첩이 비명을 내지를 틈도 주지 않은 채 문이 열렸고, 거센 비바람이 순식간에 안쪽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후두둑- 후두둑-
비상구 계단을 타고 빗물들이 마구 흘러 내려간다. 기껏 씻고 갈아입었건만.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다시 젖고 말았다.
"이제 다시 닫으십쇼!"
"넵···!"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옥상으로 몸을 밀어 넣으면서 발을 뒤로 차 옥상문을 닫았다.
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린이 눈치껏 닫힌 문에 걸쇠를 걸어 잠그는 것과 동시에.
쾅쾅쾅쾅쾅쾅!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펴졌다.
문을 타고 흐르는 빗물들이 튈 정도로 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