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8 - 258. 안개의 도시 (1)
[끼아아아아악!]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떠난 옥상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우리를 놓친 거미 변종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는 중이었다.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지르면서.
쾅! 콰직! 콰드득!
헬리포트를 유지하고 있던 금속 뼈대들이 놈들의 손아귀에 의해 인정사정 없이 분해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우리도 저 꼴이 되었을 거라는 상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꺄아아아악!"
지수가 눈을 질끈 감으면서 변종에 못지않은 비명을 질러댔다. 두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걸 보니 본능적으로 발을 디딜 판을 찾는 듯했다.
예린은 혼이 쏙 빠진 얼굴로 입을 열지도 못했다. 다만, 몸을 웅크리고 꼬리가 다리 사이로 말려들어가 있는 모습은 아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괜찮아! 안 떨어져!"
나도 까마득한 아래를 보자 심장이 쿵쿵거렸으나, 이내 그녀들을 다독이면서 외쳤다. 옆으로 쭉 뻗은 날개 덕분에 땅으로 곧장 추락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으니까. 날개는 무거운 짐 가방의 무게도 버티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날고 있다는 말이었다.
"으으···!"
시간이 지나도 추락하는 느낌이 들지 않자, 지수는 눈을 슬쩍 떴다. 그녀 또한 예린처럼 꼬리가 다리 사이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날개가 펼쳐진 한세아를 필두로 나, 지수, 예린은 그녀의 뒤에 솟은 푸른 선으로 묶여 있는 상태.
쏴아아아아아아-
후두둑- 후두둑-
일직선으로 이동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빗줄기가 우리의 얼굴, 팔, 다리, 옷 가리지 않고 강타한다. 굵은 빗방울이 온 몸을 두드리니 피부가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우리 꼴도 난장판이었지만,
[크아아아아악!]
[끼에에에에엑!]
지상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한밤중에 사방으로 뿜어지는 푸른빛을 본 나무 인간들이 발작을 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오징어잡이 배에 달린 조명을 보고 달려드는 오징어들처럼, 개떼같이 몰려오고 있는 나무 인간들과 거미 변종들. 놈들은 빠른 이동 속도로 우리를 뒤쫓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네온 사인같은 푸른빛을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는 푸른 날개가 하늘을 메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빠각! 콰직! 콰드드득! 우득! 와장창!
철판이 구겨지고, 전봇대가 부러지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놈들이 우리를 뒤쫓는 상황이 이어지니 도로에 방치되어 있던 차량들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형체마저 잃게 되었다. 한층 더 개판으로 변한 지상의 모습이 살벌하게 다가왔다.
"세아씨! 어디까지 갈 수 있습니까? 방향도 슬슬 틀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뭔가 고도가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안양천을 따라 무작정 위로 올라가고 있는 우리. 앞으로 쏘아지면서 옆으로 풍경이 휙휙 지나간다. 지상과 떨어진 높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확실하게 낮아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희미하게 보였던 가로등의 윤곽선이 또렷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나무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지상에 발을 디딜 듯했다. 늦기 전에 다시 고도를 올려야만 했다.
살려면 말이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저, 저는 활강만 할 줄 안다구요! 아니, 활강도 처음이예요!"
"예?!"
"그리고 방향도 틀어본 적이 없는데···! 일단 해, 해볼 게요···! 이잇···!"
한세아는 긴장과 오한에 하얗게 질린 얼굴을 더욱 희게 만들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무슨 시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방향도 바뀌지 않았고, 고도는 계속 낮아지고 있었다.
나와 지수의 얼굴도 희게 질렸다. 곧 나무 인간들의 밭에 떨어진다는 상상에 심장이 거세게 쿵쿵거렸다.
그때였다.
"제가 한번 해볼게요! 얘들아! 바람 좀 불어 줘!! 시끄럽게도 해 줘!!"
예린이 크게 소리치며 푸른 가루를 한움큼 집은 것은. 아이는 가루를 허공에 뿌리며 요정에게 바람을 불어 달라는 부탁을 전했다.
그와 동시에.
휘이이잉!
강한 돌풍이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몸을 높게 띄웠다. 고도가 다시 안정권으로 올라가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휘잉!
다음에는 우측에서 돌풍이 불었다. 우리가 움직이는 방향은 자연스럽게 직진에서 좌측으로 방향이 변경 되었다. 마침 사거리에 도착한 참이라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빠앙-! 빠앙-! 빠앙-!
방치된 차량들 중 일부에 불이 들어오며 경보음을 요란하게 내기도 했다. 캠핑장에 있던 험비처럼 그 안에 전기를 머금고 있던 요정이 있었나 보다.
사방에서 울리는 경보음과 도로를 강타하는 빗줄기가 내는 소리가 서로 뒤섞여 엄청난 혼란을 만들어냈다.
[크아아아아악!]
바로 앞에서 시끄럽게 구는 차량에 이끌린 나무 인간들의 일부는 방향을 돌려 차를 노렸다.
쾅! 빠각! 콰지직!
놈들의 괴력에 차체가 형편없이 구겨진다. 그러다가 배터리의 수명과 내구도가 다한 듯 잠잠해졌다.
"현우씨! 이제 어디로 가요?"
"찾아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요!"
이미 푸른 날개로 주변의 시선이란 시선은 전부 끌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손전등 몇 개가 더해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
딸깍-
나는 버튼을 눌러 전방으로 빛을 쏘았다. 그러자 원형으로 퍼진 빛 사이로 굵은 빗방울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 형성된 전방의 안개도 시야에 들어왔다. 지상에 구름이 내려앉은 것처럼 운무가 도시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개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아파트 단지가 뒤이어 보였다. 유리가 전부 깨져 나가 내부가 훤히 보이는 광경은 오히려 안심이 들게 했다. 안에는 괴물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건물은 폐허로 변한 상태였으나 건물 중간 층에 초록색의 무언가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러 개의 줄이 서로 얽힌 그물이었다. 공사 중에 설치된 안전망인 모양이다.
"세아씨! 저기 아파트! 아파트로 가십쇼! 예린아! 바람으로 방향 좀 맞춰줘!"
"알았어요, 오빠! 저만 믿어요!"
우리는 예린이 조종하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방향을 조금씩 바꿔가며 아파트에 설치된 안전망을 향해 움직였다.
후-웅!
안개가 짙게 깔린 구역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어? 어어?! 현우씨! 날개가!"
한세아가 불안정하게 깜빡이는 날개를 보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푸른 날개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입자가.'
푸른 조각 안에 담긴 입자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모습은 여전했으나 그 방향이 달랐다. 푸른 날개를 가동시키는 것이 아닌 외부의 힘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개 구역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내 심장 속 입자도 요동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도시를 잠식한 안개는 일반적으로 형성된 안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요! 거의 다 왔습니다!"
나는 한세아의 푸른 조각에 남은 입자를 모조리 몰아주며 외쳤다. 그것마저도 금세 소모되었으나 덕분에 날개의 수명이 조금이나마 늘어났다. 아니, 늘어났을 것이다. 그리 믿었다. 믿고 싶었고.
이대로 떨어지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었으니까. 날개가 조금만 더 버텨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픽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맥 빠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 날개가 꺼지고 말았다. 우리의 바람이 엉망으로 짓밟힌 순간이었다.
"······!"
활강을 유지하던 날개가 사라지자 급격하게 복부를 간지럽히는 부유감이 느껴졌다. 머리카락을 마구 휘날리게 하는 바람이 아찔했다.
그래도 관성이 남아 있는 덕분일까.
우리는 여전히 앞으로 쏘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휘이이이잉-!
포탄이 쏘아진 것 같은 모양새에 아파트와의 거리는 꾸준히 좁혀졌다.
높았던 고도가 순식간에 낮아지며 지상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휙!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철골이 아슬아슬하게 우리를 빗겨나갔다.
하마터면 꼬챙이에 꿰인 신세가 될 뻔했다는 생각과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냉기에 몸이 바싹 굳었다.
"다들 꽉 잡으십쇼! 입 열지 마시고!"
나는 예린을 가운데에 두고 지수와 한세아를 꽉 끌어안았다. 내 등이 바닥을 향하게 만들었다. 내가 먼저 부딪혀서 충격을 최대한 흡수할 심산이었다.
본래는 날개로 서서히 속력을 줄여 진입하려고 했으나 날개가 없어졌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아프긴 하겠지만 푸른 입자가 어떻게든 몸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다.
'···아.'
뒤늦게 내 심장에 남은 푸른 입자를 한세아의 조각에 몰아 넣어 주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철썩-!
지지직!
아파트 벽면에 설치된 안전망이 우리를 담았다. 충격을 받은 그물이 넓게 퍼지며 속도를 확연히 줄였다. 그러다가 힘을 더 버티지 못한 그물이 끊어지고 말았지만.
우당탕!
그물이 우리를 놓치자 몸 이곳저곳이 긁히고 바닥을 퉁퉁 튕기게 되었다. 그나마 속도가 줄어서 이 정도였다. 아니었다면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콘크리트 건물에 몸을 박았으리라.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꼴이 되었겠지.
"악!"
"컥!"
충격이 시간차를 두지도 않고 우리 몸을 연달아 강타한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몸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그러다가 간혹 뼈가 딱딱한 바닥을 찧을 때면 찌르르 몸을 울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콰직!
내가 놓친 손전등이 벽면에 부딪치면서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손전등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우욱···."
바닥을 구르면서 머리를 부딪쳤는지 시야가 흔들리고, 구토를 유발하는 어지러움에 우리는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으니.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손에 도끼만 제대로 들려 있기만 하면 됐다.
"헉···, 허억···!"
나는 황급히 바닥을 손으로 짚어 몸이 흔들리는 것을 막았다. 그러면서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다행히 우리를 노리는 나무 인간들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지이이익-!
-쿵!
질질 끌리는 소리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폐허로 변한 아파트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바로 그물에 걸린 우리가 있는 위치였다.
"콜록! 콜록! 진짜 가지가지하네···!"
이번에는 또 뭐가 다가온다는 말인가.
적어도 숨 돌릴 시간은 주어야 하지 않은가.
진원지와 가까운 도시인 서울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쉬지도 못하고 위험을 겪게 되니 치가 떨렸다.
저벅- 저벅-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 소리는 명백하게 우리 쪽에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의 발걸음 소리다. 다리 여러 개 달린 변종이 아니라.'
이제서야 깨닫게 된 사실. 그물은 설치된 장소나 형태를 보면 애초부터 놓여 있던 것이 아니었다. 분명하게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보였던 것이다.
지금 접근 중인 사람은 아마 그물을 설치한 장본인이리라.
그리고 안전망을 설치한 사람이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은 높다 못해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이런 세상에서 적들은 나무 인간이나 변종들 같은 괴물들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도 위험했으니까.
서로 안면이 있어도 위험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판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면 더욱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겠지.
"큭···! 세아씨! 지수야!"
"언니! 빨리 일어나아-!"
다급함을 느낀 나와 예린은 정신을 잃은 그녀들을 깨우기 위해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주륵-
기절한 한세아의 하얀 피부를 타고 붉은 선이 이마에 얇게 그려진다. 황급히 머리칼을 들어 올려 상처 부위를 확인하니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다. 단순히 살짝 긁힌 상처였다.
그래도 부상을 입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그녀들을 감쌌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난 곳이 없을 수가 없었으니까.
"아윽! 나는 괘, 괜찮-."
지수 또한 머리를 부딪쳤는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정신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으나 계속 비틀거렸다. 충격의 여파에서 회복하기 힘든 모양이다.
떨어지는 속도를 최대한 줄여 본다고 몸부림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락 속도가 빨랐던 탓에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잡다한 부상을 입게 되고 말았다.
그물이 대부분의 속도를 흡수해준 덕분에 어찌어찌 목숨은 건졌지만, 그뿐이었다.
촤르륵-
빠르게 그물을 걷어낸 나는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거한을 향해 도끼를 치켜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위험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사람이 일정 거리 이상으로 다가오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예린은 내 뒤에 숨어 고개만 내밀었다. 아이는 그 사이에 한세아와 지수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최대한 챙겼다.
'피부가 녹색?'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거한의 피부색. 순간 변종인 줄 알았지만 이내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쏴아아아아-
빗소리를 뚫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이 들려왔던 것이다.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가만히 있어라. 괜히 거기서 더 움직이면 부상이 악화될 거다. 아주 요란하게도 들어오더군. 너희들은 목숨이 여러 개인가? 어차피 괴물들은 안개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테지만 그런 행동 방식은 아주 무모했- ···아니, 잠깐."
위협을 가하는 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녹색 피부의 거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지수, 예린, 한세아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내 쪽에 시선이 다다르자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눈을 끔뻑끔뻑 뜨며 손으로 눈가를 비비기도 했다.
마치 헛것이라도 본 것 같은 행동이었다.
"······이현우? 너. 내가 아는 이현우가 맞나?"
"···누구십니까?"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아봤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도끼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풀릴 뻔했다. 놀란 심장을 간신히 움켜쥐고 다시 도끼를 꽉 쥐었다.
'내 이름을 알아?'
이상하게 낯이 익기는 해도 내 기억에는 없는 사람이다.
처음 보는 사람.
그것도 녹색 피부의 강대한 육체를 가지고,
어금니가 입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마치 나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