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62화 (263/497)

Chapter 262 - 262. 진실 혹은 거짓3 (1)

"제 2연구소."

나는 속에 담고 있던 말을 바깥으로 내뱉었다. 그러면서 사진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다. 드문드문 어둠이 자리잡은 모습과 벽면에 규칙적인 간격으로 붙어 있는 전등을 보아하니 지하인 듯했다.

나로 추정되는 사람, 칼카타, 이름 모를 사람이 서 있는 곳 근처에는 하얀 공사 안전모를 쓴 인부들이 각종 장비를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키가 작은 편이었다. 원근감에 의한 착시는 아닌 게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암반에 파고든 것처럼 보이는 건물 하나. 아마 저 사각형의 건물이 현수막에 쓰인 '제 2연구소' 건물이리라.

연구소는 흔한 창문 하나 없이 완전히 폐쇄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마치 내부에 있는 것이 외부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모양새였다.

'사진에 찍힌 건 내가 맞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내가 저런 장소에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려지지 않았다. 옆에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칼카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전히 그를 몰랐다.

그러나 이것이 조작된 사진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사진을 얼마나 많이 꺼내서 본 것인지 테두리가 전부 상당히 헤져 있기도 했고, 조작을 가할 수 있는 장비도 없을 테니까.

"아저씨가 확실하네. 아저씨, 뭐 기억나는 거 없어? 저 사람하고 이런 표정으로 사진까지 찍을 정도면 꽤 친했던 것 같은데."

"저도 지수씨랑 같은 생각이예요, 현우씨. 조작된 사진처럼 보이지도 않구요."

옆에서 유심히 사진을 살펴보던 지수와 한세아가 말했다. 역시 그녀들도 나처럼 사진이 가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다.

"오빠, 실험복도 잘 어울려요! 의사 선생님 같아요!"

내 등에 몸을 기대고 있는 예린도 몇 마디 거들었다. 비록 사진 속의 나에 대한 감상일 뿐이었지만.

"···모르겠는데. 여전히 기억나는 건 없어. 하나도."

나는 그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괜스레 피로에 부은 눈두덩이를 손으로 문질렀다.

지수, 예린, 한세아가 시선을 사진에서 눈앞에 양반다리로 앉아 있는 칼카타에게로 돌렸다. 사진에서 알아낼 수 있는 건 얼추 알아냈으니 이제는 그가 이야기해줄 차례였다.

졸린사 연구소에서 찍은 사진도 그렇고, 현 사태와 깊게 관련된 사람 같았으니 뭐라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리라.

"흠. 역시 그런가. 하긴, 사진 정도로 기억이 돌아올 리가 없지.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지 않나. 내가 이현우 너와 아는 사이였다는 것 말이다."

우리가 사진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걸 묵묵히 기다려 준 칼카타는 우리가 바라보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 기억은 나지 않지만요."

그가 말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진을 아무리 이리저리 돌려 봐도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아쉽긴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을 최소한의 준비가 된 것에 만족해야겠군. 그러니 이제 총은 좀 내려놔 주게. 경계하는 건 좋다만 이거야 원,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어."

"······."

한세아는 칼카타의 너스레에 말없이 소총을 옆자리에 놔두었다. 더 이상 등 뒤에 숨기지는 않아도 총을 치울 생각은 여전히 없다는 의지의 표명. 그녀의 얼굴 한 켠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남아 있기에 한 행동인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칼카타의 말처럼 최소한의 대화 조건만 갖추었을 뿐이지 않은가. 결정 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아, 사진 다 봤으면 이제 돌려주겠나?"

그런 우리들의 태도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칼카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오히려 우리, 정확히는 나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것인지 해 줄 말이 많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줘야 할까···. 표정들을 보아하니 이 사태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고. 이현우 네 누나를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세상이 이렇게 된 게 연구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딱 그 정도까지만 아는 것 같은데, 맞나?"

칼카타가 내가 도로 건넨 사진을 소중히 품속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네."

"궁금한 게 산더미겠군. 우선은 사진에 찍힌 연구소부터 말해주겠다. 마침 다 같이 사진을 본 뒤이기도 하니까. 사진에 찍힌, 그러니까 졸린사 제 2연구소는 증폭기를 실험하는 곳이었다."

"증폭기요?"

"그래, 증폭기. 신성한 힘을 생성하고, 강화시켜 주는 장치. 너희 인간들이 요구한 장치이기도 하지. 그 요구에 맞춰 나를 비롯한 여러 동료들이 연구소를 건설하고 증폭기 제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명을 뽑아 뼈대를 만들어야 해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다들 불만은 없었어. 대가로 우리가 살아갈 터전을 받기로 했었으니까. 미래를 생각하면 남는 장사였지. 비록 지금은 다 물 건너간 상태지만.

"

수명을 뽑는다는 이야기와 대가로 살아갈 터전을 받는다는 이야기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허나, 구체적인 질문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듣고 나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직 이야기는 중반도 오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인간의 요구대로 지하에서 실험을 시작했었고, 너희 인간 측은 어머니의 씨앗을 3개로 나눠 하나씩 발아시키는 실험을 시작했었다. 본디 어머니를 그런 식으로 다루는 건 매우 불경한 일이나 고향을 잃은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그저 일이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만 할 수 있었을 뿐."

"근데 왜 연구소를 지하에 지었던 건가요? 남들에게 숨기기 위함인가요? 제 2연구소라니···, 졸린사 연구소가 두 곳이라는 건 처음 알았어요. 보통 루머라도 돌 텐데 말이죠."

나와 달리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세아.

"···숨기려고 했다기보다는 제작 과정이 위험했기 때문이지. 까딱 잘못하면 증폭기는 그대로 터져 폭발을 일으키고 마니까. 지상에서 터지는 것보다는 지하에서 터지는 게 그나마 피해가 적지 않겠는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서 연구소에는 탈출 포트가 여럿 있기도 했거든."

그의 말이 쉬지 않고 이어지려던 그때.

"저기 한창 중요한 말 자꾸 끊어서 진짜 죄송한데, 이건 짚고 가고 싶어서요. 아까부터 인간, 너희 인간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뭐예요? 꼭 자기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뭐, 외계인이라도 된다는 건가?"

잠자코 있던 지수가 손을 들어 칼카타의 말을 막았다. 그녀는 귀를 쫑긋거리며 말을 가로채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몰랐나? 나는 인간이 아니다. 정확히는 이 지구의 인간이 아니라고 해야겠지. 나는 다른 별에서 왔으니까."

"······예?"

당장 어제만 해도 칼카타가 무슨 동물이랑 합쳐졌니 뭐니 하며 일행과 대화를 나눈 것이 생생하건만.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아예 인간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단순히 변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지구산이 아닐 줄은 더더욱 몰랐고.

"아니, 진짜 몰랐나? 내 생김새만 봐도 인간과 닮은 곳이라고는 형태뿐이지 않나."

"···그럼 진짜 외계인이예요?"

말문이 턱 막힌 우리를 대신해서 물어보는 예린. 아이는 입을 헤 벌리고 칼카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아이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담겨 반짝거리고 있었다. 예린은 어느새 칼카타에 대한 경계를 푼 후였다.

아이와 처음 만났을 때, 내게 푸른빛이 가득하다며 외쳤을 때와 같은 눈빛을 만들었던 것이다.

"외계인이라면 외계인이지. 여기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니니 말이야. 나와 내 동료들은 지구가 아닌 아주 먼 곳에서 왔다. 어머니의 뿌리를 타고."

"뿌리···! UFO, 비행접시 그런 건가···!"

꼬리를 살살 흔들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예린의 모습을 본 칼카타가 멋쩍게 웃으며 부정했다.

"꼬마 수인 아가씨, 미안하지만 어머니의 뿌리는 그런 과학적인 기술이 아니야. 과학보다는 신비라고 할 수 있지. 요컨대 마법이라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주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뭐라 불러도 상관없어. 결국 그 뿌리는 같거든."

"와! 마법! 오빠랑 언니들이 쓰는 것도 그런 거예요? 제가 친구들 보는 것도 그런 거구요?"

"그래, 본질은 같다."

칼카타는 허허 웃으며 예린을 바라보았다. 마치 할아버지가 아이의 재롱을 귀엽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외계인치고는 말을 잘하시는데요. 용어도 많이 아시는 것 같고요."

예린이 돌발 행동하지 못하게 붙잡는 지수.

"적극적으로 지식을 알려주는 이들이 있었고, 각종 영상 매체를 통해 지구에 대해 배웠다. 뭐, 넷플릭스나 유튜브같은 것들로 말이다.

가끔 위키를 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왜곡된 정보를 배우긴 했으나 이 또한 큰 문제는 되지 않았지. 어차피 잘못된 상식을 알게 된다면 검은 양복을 입은 인간들이 제대로 알려주었거든. 에프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확실하지가 않군.

"

킬킬거리며 자신이 본 영상의 한 장면을 흉내 내는 칼카타였다. 그는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언어였다는 부연 설명을 했다.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면 남산에 자리 잡은 거대한 나무는 그럼 뭡니까. 그 나무도 푸른 입자나 검은 입자에 받아 변형된 지구의 것이 아닌 외계에서 왔다는 말입니까?"

나는 두통이 생기는 걸 느끼며 그에게 물었다. 지수, 예린, 한세아가 말을 끊은 김에 나도 그냥 물어보고 싶은걸 묻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이야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남산 방향에 보이는 거대한 것이 나무란 것은 수리산 정상에 올랐을 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거대한 나무의 존재는 지수의 생존 수첩에 스크랩된 기사 내용으로 알고 있었으나, 그 크기가 상상 이상이라 놀랐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그래, 이 나라에 뿌리를 내린 거목 또한 지구의 것이 아니다. 내가 있던 고향의 것이지. 저 위에 있는 걸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

"나무의 형상을 한 신. 만물의 어머니."

칼카타는 잠시 숨을 길게 내뱉은 후에 뒷말을 이었다.

"···세계수, 라고."

━정확히는 검은 힘에 오염된 세계수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북쪽으로 향한 칼카타는 쓰게 웃으며 그리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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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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