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8 - 278. 뉴연세병원 (2)
이질적인 소리가 들리자마자 몸을 낮춰 숨은 나와 칼카타.
"···괴물이 있는 모양이로군. 준비해라."
칼카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나는 도끼를 꽉 쥐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안개가 조금 옅어지는 구역에 오니 변종이 우리를 곧장 반긴 상황. 그저 한숨만 나왔다.
"칼카타는 무기 없어도 괜찮겠어요?"
"나는 대전사다. 무기는 필요 없어. 지금은 이 주먹이면 충분해."
칼카타가 커다란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강대한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런 근육의 모습에 그를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음 소리만 내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변종을 찾기 위해 나는 시야를 좌에서 우로 천천히 훑었다.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7층. 신생아실과 수유실.
주변 환경에 예민한 아기들을 위해 내부 구조는 격리실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만, 현재는 각 구역을 나누고 있던 유리 창문이 모조리 깨져 나가 특유의 날카로움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허물어진 내벽, 뾰족한 첨단을 드러내는 유리 조각, 바닥에 잔해와 함께 떨어진 온도계, 어지럽게 엎어진 신생아들이 들어 있었을 카트, 멸균 처리된 플라스틱 상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으로 변해 버린 광경 사이로 옅은 안개가 타고 흐르는 모습은 무심코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그만큼 음산했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게다가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놓여 있던 작은 인형들이 전부 검게 변해 있거나 단추 눈이 길게 늘어져 있기까지 했으니, 그 분위기는 배가 되었다.
나와 칼카타는 천천히, 묵묵히 발걸음을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그냥 뒤로 물러나는 방법도 있었지만, 여기서 겁이 난다고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바로 그때.
[이이이이이이-!]
타타타타탓!
작은 발돋움 소리와 함께 빠르게 접근하는 작은 형체가 보인다.
나와 칼카타가 옅은 안개를 뚫고 나온 그 형체를 인식한 것과 동시에.
퍼-엉
순식간에 몸이 부풀어 오른 그것의 몸체가 터졌다.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후두둑-!
사방으로 비산한 육편이 바닥, 벽, 천장을 가리지 않고 전부 달라붙는다. 아주 끈적한 체액인듯 그것들은 벽에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저 진득하게 눌어붙은 모양새로 바뀌기만 할뿐.
'···방금 대체 뭐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하는 내게,
철퍽!
점성이 있는 체액이 날아왔다. 하얬던 시야가 붉게 물든다. 방독면 렌즈에 무언가가 묻은 것이다.
"······뭐야. 뭐냐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렌즈를 붉게 만든 것을 긁어냈다. 손가락에 묻어 나온 건, 응고된 피를 마구잡이로 주물러 쭈글쭈글해진 것처럼 보이는 살점이었다.
작은 형체가 우리에게 가까이 오기도 전에 터진 터라, 몸에 직접적인 피해가 생기진 않았지만. 정신에 한해서는 직격타였다. 뇌가 상황 파악을 억지로 거부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감기지 못하는 눈은 주변 상황을 계속해서 머리로 올려 보냈다.
'···터, 졌어···?'
나는 터졌다는 사실이 아닌 무엇이 터진 것인가에 주목했다.
작은 형체. 아마도 여기 있었을 신생아. 그 아기들이 변종으로, 정확히는 자살 특공대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머릿속이 텅 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기들이 빛을 얼마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 해도 속이 답답한데. 언제나 최악보다 더 심한 현실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아기들을 괴물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차라리 폭탄에 쓸려나가 한 번에 죽은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현실에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정신 차려라, 이현우! 밀려 온다!"
"······!"
귓가로 곧장 꽂히는 칼카타의 고함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 여기서 멍청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일단 움직여야 했다. 그것이 도망치는 움직임이든, 잔해 사이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변종들을 죽이는 움직임이든 간에 상관없이.
"퇴로가 막혔다! 죽이는 수밖에 없어! 도끼를 들어라!"
칼카타가 다시 한번 고함을 내질렀다. 천장에 생긴 균열에서 나온 변종들이 비상구쪽 길을 막았던 것이다.
[이이이이이이!]
[아우! 아우우우!]
오랜만에 제 발로 찾아온 먹잇감을 이대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듯 나와 칼카타를 노려보는 작은 눈이 식욕과 살의로 번들거린다. 아기 특유의 순박한 눈망울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눈이었다.
"이런 씹!"
나는 다급하게 도끼를 휘둘러 사방에서 몰려드는 변종들을 걷어냈다.
퍼억-!
허공을 때리는 도끼날을 버티지도 못하고 퉁겨져 나가는 작은 괴물들.
퍼-엉!
달려드는 기세 그대로 뒤로 밀려난 그것들은 이내 몸을 울룩불룩하게 만들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몸 안에 가스라도 차 있는 것인지 폭발의 기세가 상당했다.
화마가 치솟는 폭발이 아닌 뼈와 썩은 살점으로 이루어진 폭발.
━철퍽!
재차 사방으로 비산하는 살점들이 7층을 좀 더 붉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도 방독면을 벗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변종들의 체액과 살점을 그대로 얼굴에 뒤집어썼을 테니까. 냄새도 지독했겠지.
아기 변종들은 체구가 작은만큼 속도가 빠르다거나 손에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무언가가 접근하는 낌새가 느껴지면 몸을 터트리는 것이 전부였다. 질량도 가벼운 탓에 압도적인 기세라고 할 것도 없었다.
"큭!"
다만 나와 칼카타는 속절없이 밀리고 있는 중이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짐작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손목을 붙잡은 망설임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둘 중 하나가 크게 다칠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폭발은 우리가 복도 끝에 밀리면 밀릴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접근을 막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바로 그때.
"흐으읍···!"
고민을 끝마친 칼카타가 바닥에 엎어진 서랍장을 드는 것과 동시에 변종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내던졌다.
후우웅!
쿵! 촤즈즈즉!
대기와 안개를 둔탁하게 가르며 날아간 서랍장은 곧장 떨어지며 바닥을 인정사정 없이 긁어댔다. 그 과정에서 기어 다니고 있던 괴물들이 쓸려나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콰직! 콰드득!
누가 괴물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는 풍경 속에서, 나와 칼카타는 변종들을 하나씩 줄여 나갔다.
발로 차고, 도끼로 찍고, 목을 베고, 서랍장으로 짓누르고, 단숨에 숨을 끊지 못해 터지는 폭발을 견디며,
그렇게 하나씩 줄여 나갔다.
점점 붉어지는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
"상황은 얼추 끝났군. 여기서 뒤로 물러나겠나?"
칼카타가 숨을 고르며 물었다. 끈적한 체액이 그의 팔뚝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둘 다 다친 곳은 없었다.
단지.
단지 조금 더러워졌을 뿐이었다.
"아뇨, 이렇게 된 거 쭉 둘러보죠. 얻을 만한 건 챙겨 가야 하잖아요. 아직 캐리어 공간도 남았는데. 저기 앞만 보면 될 것 같아요."
나는 억지로 고개를 저었다. 애써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키면서.
스윽-
렌즈에 묻은 것을 닦아내도 붉게 물든 주변의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적나라하게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차라리 푸른 불로 전부 태웠다면 이렇게 처참한 광경은 아니었을 텐데.
안개를 버티기 위해 푸른 입자를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 속으로 어쩔 수 없었다며 되뇌고, 괜스레 바싹 굳은 손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숨을 답답하게 만드는 방독면을 당장 벗어 던지고 싶기도 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방독면을 새 걸로 갈아 끼우는 건 일을 전부 마치고 나서였다.
칼카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끝으로, 우리는 검붉게 물든 복도를 따라 걸었다. 둘 사이에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찌덕···
신발 밑창에 눌어붙은 살점이 바닥에 비벼질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이 끔찍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다리에 더 힘을 주어 걸었다.
저벅- 저벅-
신생아실과 수유실쪽으로 항하면 향할 수록 길목에는 바리케이드를 친 것처럼 여러 잔해물들이 점점 쌓이고 있었다. 잡다한 가구와 장비들이 쌓인 모양새는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는 걸 알려주었다.
여기서 누군가가 버티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풍경에 내 마음속 불안감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그 탓에 지금이라도 칼카타에게 돌아가자고 말할까 말하지 말까 갈등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멈추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
복도 끝에 있는 수유실에 도달한 나와 칼카타. 우리는 눈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역시 이곳에 오지 말 걸, 중간에라도 돌아갈 걸이라는 후회가 머릿속을 순간 스쳐 지나갔다.
[끼이이이···]
좁은 수유실 내부에는 벽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 하는 나무 인간 하나와 바싹 마른 줄로 연결된 보자기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잔뜩 헤진 천을 걸치고 있는 나무 인간은 팔다리가 뼈만 남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삐쩍 말랐으나, 복부만큼은 단단한 나무 껍질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뚜껑이 활짝 열린 분유통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찌그러져 있거나 아직 개봉되지 않은 분유통 옆에는 어디서 구해 온 것인지 모를 커다란 대야도 함께 놓여 있었다. 물이라도 담아왔던 것일까.
신생아실에 있던 변종들이 우리의 접근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도 이 나무 인간때문일까.
"씨발."
기분이 나락까지 떨어진 것과 상관없이 아직 뚜껑이 개봉되지 않은 분유를 챙겨야만 하는 현실에 미칠 것 같았다. 그래도 어쭙잖은 마음가짐으로 멀쩡한 물자를 두고 간다는 선택지를 고를 시기는 이미 지났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행동해야 했다.
무정하더라도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리 해야 한다. 나 혼자 사는 것만이 아닌 책임져야 할 일행들이 있지 않던가.
"······죄송합니다."
나는 도끼를 들면서 말했다. 이미 괴물로 변해 버려 내 말을 알아들을 수조차 없을 테지만, 사과를 내뱉었다. 그리하지 않고서는 몸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끼이···끄그극-]
그것은 마지막까지 보자기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괴물은, 나무 인간은, 그 여성은 도끼가 자기 목을 베는 그 순간까지 저항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보자기 안에 든 것이 자기 보물이라는 것처럼. 보물만큼은 절대로 내어 줄 수 없다는 것처럼. 그렇게 품었다.
쐐애액!
그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물며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그리고.
콰직!
······세상을 되돌려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