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0 - 280. 뉴연세병원 (4)
지금 나와 칼카타는 본래 있던 뉴연세 병원이 아닌 부설 건물인 별관으로 추정되는 곳에 들어와 있었다.
처음에는 7층에서 위로 올라간 직후, 건물을 마저 탐색하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8층을 비롯한 9층, 10층이 통째로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부가 무너진 와중에 7층이 무너지지 않고 용케 버티고 있는 상태였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나무 인간이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수유실에 있었던 이유도 그중 하나이겠지.
뭘 줍거나 멀쩡한 물자를 건질 것도 없었다. 그저 잔뜩 쌓인 잔해물만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길이 막히자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옆 건물로 넘어온 것이 현재 상황.
층별 안내도에 적혀 있던 10층, 산후조리원이라 음각된 글씨 오른편에 부착된 스티커가 떠올랐던 것이다.
별관이라고 써있었으니 이웃 건물도 병원에 속하는 건물이겠지. 산후조리원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 추측과 함께 짧은 고민이 이어졌고,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옆 건물로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저 넓적하게 떨어져 나간 건물 외벽을 밟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으니까.
이윽고, 판 형태의 외벽을 타고 넘어간 나와 칼카타는 별관 산후조리원 6층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쉽게 쉽게 보내주지 않으려는 현실이 다시금 찾아왔던 것이다.
[끄가가가각······]
황색으로 변색된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나무 인간 하나가 6층 복도를 어기적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벽면을 스멀스멀 타고 흐르는 안개를 헤치면서.
이 나무 인간의 존재 탓에 우리는 건물 안으로 진입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 보는 개체. 그것이 일반적인 나무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접근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칼카타. 저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확실히. 조금 기괴하긴 하군···."
나만 이상함을 느낀 것이 아니라는 듯 동의하는 칼카타. 그는 캐리어가 소음을 내지 못하게 들고 있었다.
나는 깨진 창문 너머로 고개를 살며시 내밀었다. 렌즈로 흐릿해진 윤곽선을 제대로 잡기 위해 눈을 찡그리면서 이질적으로 생긴 나무 인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마른 팔과 다리, 기형적으로 긴 목, 나무 껍질에 박혀 있는 대형 주사기들.
마치 나뭇가지를 억지로 엮어 놓은 것 같은 외형을 가진 나무 인간이었다. 주사 바늘이 단단한 껍질에 꽂혀 대롱대롱 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든 변하지 않기 위해 약물을 투여한 것일까.
이미 나무 인간으로 변한 걸 보아하니 아무런 소용도 없었던 모양이지만.
[꾸가가가각···]
그것이 내는 소리는 이상하게 겹쳐 들렸다. 소리가 나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처럼.
지수와 함께 왔었다면 어느 부위에서 소리가 나는지 쉽게 특정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아쉬웠다.
낯선 외형을 가진 나무 인간이고 뭐고, 푸른 불로 전부 태우면 한 방일 터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7층에서 6층으로 내려온 덕분에 다시금 푸른 입자의 사용이 제한되었으니 말이다.
억지로 불을 피워 올려도 충분한 피해를 주기도 전에 꺼지고 말겠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안개에서 버틸 수 있을 수도 없게 되고, 나무 인간은 놈 나름대로 마구잡이로 설치게 될 거다.
'안개 구역이라는 특성 때문인가. 하나 같이 전부 처음 보는 형태의 괴물들이 보이네.'
나는 나무 인간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칼카타, 저거 잡죠."
"괜찮겠나? 이대로 돌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만."
"여기가 별관이고 산후조리원이 맞다면, 한층만 올라가면 조리실이예요. 거기도 털어야죠."
칼카타의 말처럼 무리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허나, 돌아가기에는 물자를 충분히 챙기지 못한 상태. 종류는 골고루 챙기긴 했으나, 그 양이 너무 적었다.
게다가 칼카타도 말로만 만류했을 뿐이지 겉으로 드러난 몸짓으로는 당장이라도 돌진하고 싶어하는 모양새였다. 그도 아는 것이다. 가뜩이나 출산 직후의 여성은 몸이 약하다는 사실을.
아무리 요즘 통조림이 잘 나온다고 해도 임산부에게까지 좋지는 않겠지. 몸에 좋은 신선한 채소나 과일은커녕 현재 먹을 수 있는 채소는 라면 건더기 후레이크가 끝이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더욱 조리실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뭐라도 더 챙겨 가야 해.'
7층에 있는 조리실을 가기 위해서는 조금 위험해 보이는 나무 인간을 죽이고 통과해야만 했다.
건물 외벽에 딸린 비상구로 올라가서 나무 인간과 조우없이 지나가는 게 제일 상책. 그러나 계단 통로 자체가 무너져 내린 상황이라 불가능한 일이었다. 뉴연세 병원 건물의 상층부가 무너지면서 별관 계단을 긁어 버린 모양이다.
위쪽 창문을 타고 넘어가려고 해도 무너진 외벽이 가로막고 있는 탓에 그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남은 길은 저걸 죽이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흠. 알겠다. 캐리어는 잠시 여기에 두고 다녀오면 되겠군."
칼카타는 캐리어를 소리가 나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벽면에 기대 놓았다.
이윽고.
···저벅
나무 인간이 고개를 반대편 방향으로 돌린 사이에 나와 칼카타는 조용하게 창문을 넘었다.
안개가 바닥을 타고 흐르고 있어 불필요한 소음을 내는 유리 조각을 볼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기우에 불과했다. 두 발이 바닥을 디뎌도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까.
휙- 휙-
대화없이 손짓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칼카타. 그는 내가 도끼로 나무 인간을 후려치면 자신이 마무리하겠다고 전했다.
끄덕-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꽉 쥐어진 도끼날에서 하얀 분말이 부스스 떨어진다.
······저벅
한 걸음 내디뎠다.
아직 나무 인간은 우리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의사 가운의 손목 부근에 푸른 실로 희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 보인다. 희명 병원 의사가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저벅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그것은 여전히 가만히 서서 굳게 닫힌 어느 문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놈의 형태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삐쩍 마른 몸체는 마치 허수아비를 연상시켰다.
···저벅!
또다시 한 걸음.
방독면 특유의 숨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숨을 참고 이동했다. 덕분에 숨소리는 어찌어찌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소리가 조금 컸는지 나무 인간이 반응을 보였다.
끼긱- 까드득- [······끄그극?]
인기척을 느낀 나무 인간이 팔과 기다란 목을 이리저리 꺾어 대며 몸을 뒤틀었던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은 놈이 곧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볼 것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흐읍···!"
나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면서 도끼를 빠르게 휘둘렀다.
후웅!
허공을 둔탁하게 긋는 도끼날.
빠각!
안개를 가른 도끼날은 마찬가지로 나무 인간의 머리통을 반으로 갈랐다. 정확히 박혀 들어간 도끼를 타고 저항감이 내 손에 전해졌다. 평소보다 좀 더 묵직하고 답답한 감각이었다. 푸른 입자 도움 없이 순수 근력으로 휘둘러서 그런 모양이다.
푸슉-
말라비틀어진 몸체에서도 뿜어진 체액이 있다는 것일까. 쩍 벌어진 머리통에서 끈적한 체액이 방울방울 샘솟는다.
그와 동시에.
와르르르···
형체가 무너지는 듯 몸을 허물어트린 나무 인간. 놈은 마치 전원이 꺼진 것처럼 그렇게 쓰러졌다. 길쭉한 몸체만큼이나 길게 늘어져 있던 의사 가운도 쪼그라든 모습으로 변했다.
'···와르르?'
나무 인간이 죽은 것은 확실한데, 도끼가 놈의 머리통을 가른 것도 확실한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묘한 찜찜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때였다.
"···이현우! 뒤로 물러나라!"
뒤따르던 칼카타가 다급하게 외친 것은.
그리고.
[끄가가가각!]
[끼그극!]
반으로 갈라진 머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위인 팔과 다리가 제각기 다른 괴성을 내지르며 벽을 탄 것도 거의 동시였다.
"······!"
나는 재빨리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분리된 몸체들을 찾으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방독면 렌즈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던 까닭이다.
타타타탓- 타타탓-
한밤중에 보면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는 나무 인간의 팔과 다리. 그것들이 어찌나 빠른지 시야에 들어왔다 하면 곧장 시야에서 벗어나 사라지고 있었다.
타앗-!
[끄르아아악!]
손바닥 부분이 쩍 벌어지면서 괴성을 내지르는 팔이 달려든다.
후웅!
캉!
기껏 휘두른 도끼는 허무하게 빗나가 애꿎은 벽면을 때렸다.
"이런 씹···!"
"이현우! 머리 숙여라!"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미리 인지하고 있던 나는 칼카타의 외침에 곧장 머리를 숙였다. 바닥을 향한 내 머리 위로 무언가가 허공을 가르며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콰앙!
[끼에에에에엑!]
벽을 강타한 그것. 칼카타가 휘둘렀을 의자에 얻어맞은 나무 인간의 팔이 벽면에 고정된 채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스러운 듯 손가락을 쫙 피었다가 오므리기를 반복하는 팔의 모습이 끔찍하다.
'···이래서 소리가 겹쳐 들렸구나.'
어쩐지 소리가 뭔가 이상하더라니, 이런 연유였다.
오체로 분리되는 나무 인간. 심지어 각 부분마다 전부 발성 기관이 달려 있기까지 했다. 시체가 한데 모인 누더기 변종보다 더 기괴한 느낌을 주는 외형에 말문이 턱 막혔다.
"아직 3마리 남았다!"
칼카타는 벽면에 붙은 나무 인간 변종의 팔을 양손으로 쥐어 찢어 버렸다. 결대로 찢어진 껍질과 살점이 징그러운 선을 형성했다.
괴성을 내지르던 손바닥이 침묵에 빠진 순간이었다.
"알고 있어요!"
그러나 마음을 놓을 틈은 없었다. 머리 하나와 팔 하나를 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체가 3개나 남아 있었으니까.
[끄가가가각!]
[끼그그그극!]
타다다다다다닥!
남은 한쪽 팔과 두 다리가 제 피부 겉면에 난 나무 껍질을 이용해 천장, 바닥, 벽을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빈틈을 노려 숨통을 끊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그것들의 모습에 나와 칼카타의 눈을 절로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서로 기회를 노리다가,
콰직!
[끄가가가각···!]
변종보다 기회를 먼저 포착한 칼카타가 주먹을 내질러 변종의 다리 하나를 끝장냈다. 그의 손에 잡힌 이상 그것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찌지지직-
우지직!
그저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게 찢어지기만 할 수 있을 뿐.
'남은 건 둘···!'
나는 칼카타처럼 강대한 힘은 없었다. 대신, 좀 더 빠르게 움직일 수는 있었다.
그 순간.
타다다다다닥!
엄지가 날아간 손이 4개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내게 쇄도했다. 빠른 재생을 누른 것처럼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빨랐다. 짙은 안개를 뚫고 나오는 움직임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뻐억!
나는 당황하지 않고 도끼를 일자로 들어 팔의 접근을 먼저 막았다. 날 붙잡기 위한 것인지 손을 활짝 핀 채로 달려들어서 막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도끼 자루에 놈의 손가락이 걸리는 것과 동시에.
후웅!
···콰직! 콱!
그대로 걸린 팔을 붙잡아 아래로 내려찍었다. 벗어나지 못하게 발로 억누른 다음에 높게 치든 도끼로 수차례 내려찍는 것은 덤이었다.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침묵에 빠진 변종의 팔.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2대 1의 상황. 승기는 우리한테 있었다.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부상을 입을 일도 없으리라.
하지만.
[끼그그그극!]
타다다다닥!
눈치를 보던 변종의 남은 다리 한쪽은 달려들지 않았다. 부리나케 도망가더니 이내 안개 사이로 사라지고 말았다. 워낙 빠른 터라 잡을 새도 없었다.
그리고 안개 사이로 몸을 숨긴 이상, 먼저 존재감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잡을 수도 없었다.
나무 인간 변종과의 짧은 싸움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도망가 버렸군. 여기서 끝장냈어야 했는데."
칼카타가 도망간 변종의 다리를 쫒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거칠어지지도 않은 숨으로 아쉽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손에 묻은 체액을 털어냈다.
"후욱-, 훅···. 아, 진짜 못해 먹겠네. 후욱···."
나는 안 그래도 없는 심력이 모조리 날아가는걸 느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변종을 잡자고 말을 하긴 했지만, 짜증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방독면 때문에 숨 쉬기가 답답하고, 눈도 피로했다. 특히 안개가 주는 영향을 지속해서 받다 보니 몸은 물론이고, 정신도 만신창이었다.
그냥 너무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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