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81화 (282/497)

Chapter 281 - 281. 뉴연세병원 (5)

무슨 저런 변종이 다 있는 건지. 지금까지는 머리통만 부수면 어떻게든 죽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지를 전부 박살 내야 한단 말인가.

"칼카타 고향에서도 저런 건 없었죠?"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물었다. 순간적으로 몸이 바싹 긴장을 했더니 온몸에서 뻐근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 나도 처음 보는 개체다. 내가 뭔가를 알고 있었으면 미리 알려주었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칼카타. 그는 계속 손에 묻은 체액을 털어내는 중이었다. 체액이 워낙 끈적거리는 터라 잘 떨어지지도 않는 모양이다.

아마 5체가 분리되는 나무 인간 변종이 만들어진 건 안개가 주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넝쿨이 쉽게 자라지 못하는 환경이니만큼 나무 인간들이 넝쿨로부터 양분을 얻을 수 없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 탓에 양분을 얻기 위한, 즉 먹잇감을 찾기 위한 탐색을 멀리 해야 했을 것이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몸체를 줄여야 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사지가 따로 노는 변종의 탄생이었다. 게다가 발성 기관이 각 부위에 달린 점은 나무 인간 변종이 하나의 인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짐작하게 만들었다.

각기 다른 괴성을 내지르는 팔과 다리를 떠올리면 끔찍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머리통을 한 방에 보내지 않았다면 머리통까지 괴성을 내질렀겠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소름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다리가 도망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안개 속으로 사라진 이상 그것을 찾는 건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으니까.

하물며 건물 위가 아닌 아래로 도망갔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쪽으로 도주한 걸 보면 나무 인간 변종은 짙게 깔린 안개 속에서도 조금은 버틸 수 있는 모양이다.

"다시 이동합시다, 칼카타."

나는 기댄 벽에서 몸을 떼며 말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칼카타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 벽을 기준으로 절반 이상 차오른 안개.

그 안개는 드라이아이스 연기처럼 바닥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마치 물결이 치는 것처럼 넘실넘실거리기도 했다.

복도 끝과 끝이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진 복도.

중앙에 자리 잡은 엘리베이터 앞 홀을 제외하면 건물 끝까지 뻥 뚫려 있는 형태였다. 실제로 벽면이 뚫려 있기까지 했다. 건너편 복도 끝 벽이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폭탄에 맞아 허물어진 모양이다.

복도 좌우에 위치한 5개의 방문들.

검게 그을린 자국을 가진 방문들을 지나칠 때마다 슬쩍슬쩍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내부는 개인실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어지간한 원룸 크기보다 큰 걸 보니 조금 비싼 방인 듯했다. 비록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넓은 입구, 신발장, 벽면의 에어컨과 난방 조절기, 가족을 위한 간이 소파, 산모를 위한 큰 침대, 구조가 간단한 이동식 서랍장, 미니 냉장고, 창문에 설치된 햇빛 가리개, 화장실 등등.

방 안에는 산모의 편의성을 위한 여러 장비들이 있었다. 허나, 의미가 없었다. 하나 같이 전부 망가진 상태였던 까닭이다.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악취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지, 여기서 방독면을 벗는다면 코를 찌르는 악취가 상당하리라.

그리고.

INFORMATION 7F: 조리실, 바닐라홀 6F: 쟈스민실 5F: 로즈마리실 F: 민트실 3F: 라벤다실, Healing zone 2F: 신생아실, 수유실, 상담실 1F: 주차장 B1: 샤프란홀

-뉴연세산후조리원

중앙 홀에 도착하니 벽면에 붙어 있는 안내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행히 건물을 착각하고 잘못 들어온 것이 아니었기에 일말의 안도감이 들었다.

이어서 [소비자분쟁해결기준], [협력업체 부가서비스 이용 안내], [뉴연세 산후조리원 계약 해지 안내], [뉴연세 산후조리원 가격 안내] 따위의 안내문도 보였지만,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기에 신경을 껐다.

텅 비어 버린, 적막한 중앙 홀을 바라보던 칼카타는 잽싸게 제일 멀쩡해 보이는 쿠션 몇 개를 주워 왔다. 'U'자 형태 쿠션이었다. 나도 챙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던 쿠션이기도 했다.

"깔고 앉는 방석일까요? 아니면 아기 받침대일까요?"

나는 그가 챙긴 것 중에서 홀로 생김새가 다른 쿠션을 집어 들었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쿠션은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용도가 무엇이면 어떻겠나. 사람이 쓰고 싶은 대로 쓰면 그게 용도인 거겠지. 그나저나 올라가는 길은 이쪽이다. 여기에 중앙 계단이 있군."

하긴, 칼카타의 말이 맞았다. 도구의 용도는 결국 쓰는 사람이 정하는 거니까.

이윽고, 나와 칼카타는 중앙 계단을 타고 7층 조리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7층 높이로 올라오게 되니 안개가 매우 옅어진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7층에는 바닐라홀이라는 금색 글씨가 적힌 교육실도 있었다. 그곳에는 각종 분유 샘플과 팜플렛이 떨어져 바닥을 장식하고 있는 중이었다.

교육실이라길래 최미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간단하게 확인을 하긴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그런 건 구할 수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하얀 보드판만 볼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엄마의 기준이 앱솔루트의 절대적 기준입니다.>

당당하게 쓰여 있는 광고 문구를 잠시 보던 나는 이내 다시 조리실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더 이상 한눈 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슬슬 해가 저물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조금 더 서둘러야 했다. 그래야 밤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나.

조리실이라고 해서 막 특별하게 생긴 기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싱크대와 화구가 딸린 일반적인 부엌의 모습이 있을 뿐이었다.

식사도 어차피 개인실에서 했기 때문일까. 흔히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 또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있었다가 사라진 걸 수도 있겠지. 허나, 이 또한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우리의 목표는 그깟 테이블이 아닌 벽면에 주르륵 붙어 있는 철제 냉장고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가동이 되지 않아 내부에 있는 식자재들은 대부분 썩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칼카타, 냉장고나 그 옆에 딸린 보관함에 쌀이나 건식들이 있을 겁니다. 저흰 그것만 챙기면 돼요. 종이팩에 들어 있는 주스도 있을 텐데 그것도 아직 먹을 수 있을 거예요. 포장만 멀쩡하다면요."

우리가 노리는 건 유통 기한이 길고, 보관을 조금 험하게 해도 멀쩡한 식자재들이었으니 말이다.

덜컹!

내 말을 들은 칼카타는 바로 행동으로 옮겨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쾅!

황급히 문을 다시 닫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칼카타가 열었던 냉장고 안에는 검고 푸른 지옥이 있었으니까.

거리가 조금 떨어진 나조차도 안에 든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심각했다.

"······."

"···칼카타, 그 옆에 있는 것도 열어봐요."

"이번엔 네가 열어라."

"아, 기왕 앞에 서 계신 거 한 번에 열어 줘요 좀. 어차피 방독면 써서 냄새는 안 나잖아요. 아니, 살짝 나나? 아무튼요."

"후우···. 이번만이다."

"역시 대전사! 감사합니다!"

칼카타는 답을 하는 대신에 방금 본 광경을 잊기 위함인지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다시 옆에 있는 냉장고 문에 손을 올렸다.

그 뒤로, 우리는 각종 서랍장과 냉장고를 뒤지면서 그나마 상태가 제일 멀쩡한 것들을 하나, 둘씩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박스채로 구할 수 있는 식자재들이 상당했다.

[옛날: 자른 미역]x7, [내 사랑-포도]x2, [내 사랑-사과]x1, [내 사랑-오렌지]x5, [미개봉 쌀 20kg]x2, [매일 두유: 뼈로 가는 칼슘]x5, [쁘띠첼 과일 젤리- 복숭아]x1.

하나 같이 유통기한이 넉넉한 제품들. 비록 종류는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 양만큼은 충분히 만족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특히 마른 미역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역이 임산부나 산모에게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칼카타는 눈이 돌아가서 보관함에 가득 들어 있는 미역 봉지를 전부 캐리어에 쑤셔 넣었다. 싱크대쪽 선반에 널려 있던 젖병이나 실리콘 집게는 덤이었다.

물론, 캐리어를 정리하는 건 내 몫이었다. 칼카타가 지옥을 전부 눈앞에서 봤으니 나는 정리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불만은 없었다.

나중에는 캐리어로도 공간이 모자라서 가져온 줄로 남은 물자들을 단단하게 묶어 챙길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기회가 없는 만큼 최대한 많이 챙겨 가야 했다.

"하아, 됐어요. 칼카타, 집 갑시다."

"좋다."

우리는 텅 비어 버린 조리실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챙길 건 다 챙겼으니 이제 정말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풍경 속에서.

끼기긱-

도르래가 돌아가면서 와이어가 비틀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덜컹!

그러한 소리는 이내 어딘가에 고정되는 소리로 바뀌었다. 임시 승강기가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돌아온 나와 칼카타가 집에 돌아왔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복귀하는 길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간에 혹여 나무 인간 변종과 조우할까 싶은 생각에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피곤할 따름이었다.

몸도, 마음도 기진맥진해져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주저앉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건 칼카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또한 말이 점점 없어졌으니 말이다.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짐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를 둘러싼 안개와 적막한 도시가 주는 분위기에 압도당한 탓이었다.

태양마저 사라지니 압박감이 장난으로 넘어갈 수준으로 넘길 수 없었던 것이다.

"후우···."

나와 칼카타가 숨을 편하게 쉬기 위해 방독면을 벗은 그때.

"현우씨! 칼카타!"

와이어가 움직이는 것으로 이미 우리의 접근을 눈치채고 있던 한세아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녀는 완전히 엉망진창인 꼴인 나와 칼카타의 모습을 보고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와락-

우리의 상태를 보고 무언가를 짐작이라도 한 것일까.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나를 보던 한세아는 말도 없이 안겨 왔다. 정확히는 나를 끌어안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더럽습니다. 아직 가루도 다 못 털어냈고요."

겨우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내가 내뱉은 말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느꼈던 만족감은 진작에 사라진 후였다.

"괜찮아요, 현우씨···. 괜찮아요···. 그냥 제가 이러고 싶어서 그래요."

밀어내는 듯한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한세아는 이내 내 등을 천천히 토닥거렸다.

그러한 그녀의 손짓이 나를 안심시키고 있었고,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생명력 가득한 온기가 차갑게 식은 나를 덥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아."

그제야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생각에 바싹 굳어 있던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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