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83화 (284/497)

Chapter 283 - 283. 기적 (2)

열탕 소독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젖병은 아기의 입에 직접 닿는 부분이니 더욱 확실하게 소독을 해야 했다.

젖병 세정제니, 젖병 전용 건조대니 이런 것들이 없는 만큼 세척에 주의를 더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 당장 젖병이나 기타 아기 용품을 쓰지는 않아서 무의미한 행동이 될 수도 있겠지. 아니, 무의미한 행동이 맞았다.

허나, 이러지 않고서야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도 그럴게,

달달달달달달-

새벽 내내 잠을 설친 것으로 보이는 칼카타가 쉬지도 않고 다리를 떨어댔으니까.

"···칼카타. 다리 좀 그만 떨어요. 저까지 떨리게 되니까."

나는 실리콘 집게로 젖병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물이 끊는 모습이 마치 칼카타가 다리를 떨어서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나 지금 떨고 있나?"

"예. 아주 그냥 진동 그 자체인데요. 불안한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너무 떠는 거 아닙니까. 이러다가 건물 무너지겠어요."

"···그러는 너도 손이 떨리고 있다만."

"이건 그···. 하아."

칼카타의 지적에 나는 뭐라 말하지 못하고 젖병만 굴렸다. 괜스레 주먹을 쥐었다 피며 긴장을 풀려고 했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내가 이른 아침부터 눈을 뜨게 된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였다.

잠결에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흐느낌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고, 부리나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움직이니 그곳에는 최미소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런 최미소 옆에는 한세아가 부축을 하고 있었고.

분만실로 이동하고 있었던 것 같은 추측에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끝났을 그곳을 정리하기 위해 문을 열었지만, 이미 대부분의 작업이 마무리가 되어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었다.

그때 한세아에게서 전말을 간단하게 듣자 하니, 결국 잠을 자지 못한 칼카타와 한세아가 새벽 내내 바쁘게 돌아다니며 분만실 준비를 끝마쳤다고 했다. 그나마 한세아 혼자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게 다행일까.

아침에 눈을 뜨면 지수의 상태를 간단하게라도 보고 오자고 한 결심이 무색하게 나는 상황에 휩쓸려 지수와 예린을 보고 오지도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이 그 결과였다.

"흑···, 아흐······."

어떻게든 분만실 침대 위에 몸을 눕힌 최미소가 땀과 함께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진통을 견디고 있는 중이고,

"미소씨, 숨 멈추지 말고 계속 쉬어야 해요. 자, 천천히 내쉬고···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고···."

한세아는 최미소 옆에서 같이 식은땀을 뚝뚝 떨어트리며 그녀를 돌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힘도 없을 텐데.

간단하게 죽이라도 끓여서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먹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기를 낳을 최미소는 혹여 구토를 할까 싶어 물조차 마실 상황이 아니고, 유일하게 최미소를 챙겨줄 수 있는 여성인 한세아 또한 숨을 돌릴 시간이 없었으니까.

보글보글···

그 과정에서 할 것이 없어진 나와 칼카타는, 거실로 쫓겨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다리를 떨거나 괜히 물을 끓이거나 최대한 신경을 다른 쪽으로 쏟기 위해 애썼다. 당연히 아무런 소용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 한 가지 내가 한 일이 도움이 되는 일이 있긴 있었다.

"현우씨! 여기 물 좀 갈아줘요!"

바로 미지근하게 식은 물을 따뜻하게 데운 물로 교체해주는 것.

조금의 고통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몸을 마사지해주는 수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용도였다.

"네! 갑니다!"

나는 재빨리 냄비의 물을 작은 냄비로 옮겨 담고, 벌떡 일어났다. 칼카타도 덩달아 일어나서 나를 따라왔다.

이내 살짝 열린 분만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퀭한 눈가의 한세아가 우리를 힘없이 반겼다.

"···물은 여기에 담아주세요. 너무 뜨겁거나 그렇지는 않죠?"

"네네. 조금 식혀둔 거라 온도는 딱 맞을 겁니다."

"가, 감사해요······. 으흐윽···."

가물가물한 눈을 간신히 떠 이 와중에도 감사를 전하는 최미소. 그녀는 손이 하얘지도록 이불을 꼭 쥐고 있었다. 안색도 창백했다. 아직은 진통만 오고 있을 뿐인 모양이다.

"여보···. 나 아파요···. 아흐으···."

그녀는 남편인 칼카타가 눈에 보이자 울상을 지었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걱정을 하는 사이에 칼카타가 나를 불렀다.

"이현우,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예? 뭔데요?"

"내 아내에게 축복을 내려주면 좋겠다. 그럼 몸이 조금 덜 힘들어할 것 같아서. 이걸로도 모자란 모양이고."

칼카타는 분만실 이곳저곳에 놓인 피가 담긴 유리병을 가리켰다. 살짝 푸르스름한 기가 도는 유리병들은 한세아가 가진 푸른 조각과 공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축복? ···아, 푸른 불 말씀하시는 거죠? 알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요. 지금 바로 할게요."

나는 축복이란 단어를 되뇌다가 그것이 검은 입자를 정화시켜 주는 푸른 불을 일컫는 말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확실히 푸른 불이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몸을 불태우는 것도 아니니 위험한 행위는 아니었다.

오히려 신체를 정화시켜 몸을 강하게 만들어 주니 하면 좋은 행위였지. 실제로 몸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의왕시 캠프 생존자들 전원에게 푸른 불을 나눠 주지 않았던가.

왜 진작에 이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건지. 속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내 머리를 원망했다.

화르륵-

짧은 불만을 중얼거리며 나는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최미소가 놀라지 않게 작게 피운 푸른 불을 그녀의 몸에 가져다 대었다는 말이었다.

푸른 입자의 총량이 살짝 줄어든 것이 느껴진다. 몸 주위를 빙빙 돌던 푸른 불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최미소와 그녀의 복부에 있는 아기였다.

"하아······."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드는 푸른 불을 느낀 최미소는 한결 편해진 얼굴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고통이 없어지지는 않은 듯 여전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지만 말이다.

바로 그때.

왈칵-

상태가 한결 나아진 최미소를 보고 칼카타가 눈물을 터트렸다.

"······? 아니, 칼카타. 아직 울 타이밍이 아니잖아요."

분명 최미소가 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된 건 잘된 일이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안도감이 든 것을 감안 해도 칼카타가 우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매번 말하는 대전사의 태도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이 자리에는 아내를 매우 걱정하는 남편만 있었다.

"쉿! 조용히! 현우씨는 이제 나가요. 칼카타는 여기 남고요."

"내, 내가 여기 남아도 되는 건가?"

"그럼 남편이 밖에서 뭐 하게요! 아내는 힘들게 애 낳고 있는데! 잔말 말고 미소씨 옆에 딱 붙어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 남편이 옆에 있어야 미소씨가 그나마 안심이 될 테니까. 남편은 남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구요."

"그, 그렇군···. 알겠다. 나는 여기 남겠다. 그리고 이현우, 네 덕분에 아내가 덜 힘들어 하는군. 고맙다. 여긴 내게 맡기고 어서 나가 봐라."

칼카타는 눈가를 거칠게 닦았다. 그의 눈은 다시 다부진 눈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내쫓기는 듯 문 바깥으로 밀린 나는 어디 갈 곳도 없어서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지수에게 가 볼까 싶었으나, 그러기도 애매해지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크아아아악!"

칼카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최미소도 소리를 지르는 것 같긴 한데, 그녀의 소리는 칼카타의 소리에 먹혀 잘 들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혼돈.

혼돈이었다.

분만실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무심코 침을 삼켰을 때.

벌컥- 도도도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작은 체구가 내게 곧장 달려와 안겼다.

"오빠! 여기 있었네! 왜 어제 안 왔어요! 오늘 아침이라도 올 줄 알았는데!"

예린이었다.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어제 둘을 보지 않고 잔 것이 내심 서운한 모양이다.

"미안, 어제는 시간이 너무 늦기도 해서 일부러 안 갔었어. 괜히 깨울까 봐. 오늘은 보다시피 상황이 이래서 또 신경을 못 썼네. 진짜 미안. 근데 방 옮겼더라? 구석 방으로 옮긴 거야?"

"뭐 괜찮아요! 어제는 어차피 오빠가 방에 왔다고 해도 제가 못 들어가게 막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방은 오빠 말대로 구석에 있는 작은 방으로 옮겼어요.

아픈 언니를 옮겨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 방이 작긴 한데, 언니 돌보기에는 딱 좋은 크기예요. 작동되진 않지만 이동식 라디에이터도 있구, 꽤 많이 낡았지만 책상도 있구, 언니 도끼도 있어요! 아, 커다란 창문하고 지도도 있어서 심심하지도 않았구요.

"

예린은 어제 지냈던 방을 여러 손짓으로 묘사하며 말했다. 아이는 잠을 푹 잔듯 얼굴이 말끔해 보였다.

"구석 방이라···. 일단 알았어. 그럼 지수 상태는 어때? 네가 옆에 없어도 될 정도로 많이 나아졌어?"

"네! 음, 아뇨!"

"······?"

나는 답을 모호하게 하는 예린을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네와 아니오가 같이 나온 대답이라니.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것인가. 여전히 나쁘다는 이야기인가.

"저는 언니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 보여서 나온 거예요. 물론, 언니 상태가 많이 나아··· 나아진게 맞나? 아무튼! 어제보다는 확실히 상태가 나아졌고, 눈도 뜨기도 했지만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그렇구나. 다행이네."

"그리고 언니가 자꾸 오빠 찾길래 그냥 오빠가 어딨나 위치 확인할 겸 나온 거기도 해요."

"나를 찾았다고?"

"어어! 오빠, 일어나지 마요! 아직 때가 아니예요. 말했잖아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구요! 아직 뜸이 덜 들었어요!"

예린은 지수가 나를 찾았다는 소리에 황급히 일어나려는 나를 온몸으로 막았다. 그래 봤자 체구가 작은 아이라 내 몸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결과만 만들 수 있을 뿐이었다.

털썩-

어째서인지 필사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행동에 나는 아이가 이끄는 대로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여기 있어요! 저는 저기 안에 들어가서 있을 거라서요. 나중에 때가 되면 제가 언니한테 가라고 말해줄게요!"

내가 얌전히 바닥에 앉는 걸 보고 만족스럽게 웃은 예린은 이내 분만실 문을 열고 들어가 사라졌다. 기분 탓일까. 아이의 웃음은 뭔가 아이답지 않게 음흉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뜸이 뭔데 대체···."

내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껏 예린이 와서 말동무라도 해주나 싶었는데. 아이는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품에서 빠져나가고 말았다.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진 아이였다.

"크아악···!"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칼카타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를 듣는 것뿐.

***

시간이 지나 해와 달이 자리를 교체했을 때.

"응애애!"

분만실에서 우렁한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아기는 울음 소리로 자신이 태어났음을 알리려는 듯 대차게도 울어댔다.

내가 애를 낳는 것도 아니건만. 초조함과 불안 함에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던 나는 굳게 닫혀 있던 분만실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이런 생각을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일어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혹여 산모나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내가 가진 푸른 입자를 전부 쏟아 부어서라도 살리기 위함이었다.

이윽고.

"오빠, 이제 들어와도 된대요."

예린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나를 조용히 부르는 것과 동시에 나는 방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멈칫거릴 시간은 없었으니까.

피 냄새가 가득한 분만실 내부는 여태 울렸던 신음 소리가 전부 사라진 후였다. 그저 약간의 훌쩍거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딸이예요, 미소씨.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

진이 전부 빠져 버린 한세아가 아기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은 보자기를 최미소에게 건네고 있었다.

"···지안. 지안이. 내 아가."

최미소는 환하게 웃으며 아기를 품에 안았다. 목이 잔뜩 쉰 목소리로, 부르튼 입술로 아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리고.

"아······."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진 칼카타가 쭈글쭈글하고 못생긴 아기를 보면서 바보같이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무사히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아기는 칼카타보다는 엄마인 최미소를 더 닮은 듯했다. 피부도 살색이고, 머리에 약간 혹처럼 생긴 뿔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닮은 건 조금 자라 있는 머리카락이 칼카타의 머리색과 똑같다는 것일까.

아기, 지안이는 울음보가 터진 칼카타를 보자 울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그에게 울음을 자신처럼 뚝 그치라는 듯 작은 손으로 그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자기 손가락을 잡은 아주 조그마한 손을 본 칼카타는 둑을 전부 터트렸다.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 모습을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나와 한세아의 눈시울도 조금 붉어졌다. 예린은 방금 막 태어난 아기가 신기한지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기적은,

내가, 지수가, 예린이, 한세아가 푸른 입자를 소모해서 일으키는 것만이 아니다.

기적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꽃을 피우는 생명을 위한 말이었다.

찬란한 생명의 탄생.

그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기적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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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대신 세아가 무릎 꿇고 빕니다. 제발 기대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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