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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98화 (299/497)

Chapter 298 - 298. 다시 준비 (1)

탁!

칼카타는 내가 던진 수건을 가소롭다는 듯이 손쉽게 받아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수건을 빨래감이 모여 있는 세탁 바구니로 던졌다.

···폭

조용하게 수건을 받아 낸 세탁 바구니.

"무언가를 던져서 나를 맞추기에는 백 년은 이르다, 이현우. 아침부터 괜히 힘 빼지 말고 앉아서 밥이나 기다리도록. 김지수와 예린이 곧 밥을 가지고 올 거다."

칼카타는 지금 내 꼴로는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큭···."

틀린 말이 아닌 구구절절 옳은 말. 허나, 어금니를 긁적이면서 나를 비웃는 모습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아니, 열이 올랐다.

"현우씨, 어디 가지 말고 제 옆에 있어요. 현우씨가 손 놓으면 바로 넘어질 것 같으니까."

옆에서 한세아가 내 팔을 톡톡 쳤다. 그녀는 한쪽 팔로 허리를 살살 두드리는 사이에 내게 눈짓으로 얌전히 거실에 앉아 있자는 신호를 보냈다.

나도 몸 상태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내게 바싹 기댄 한세아와 함께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거실 한복판에 털썩 앉았다.

"···칼카타, 왜 자꾸 대전사답지 않은 장난을 치는 겁니까."

"뭘 그런 걸 물어보나? 의미가 없는 질문이군. 그리고 이현우.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것보다 눈 딱 감고 한번 저지르는 게 낫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만."

칼카타는 당연히 재미를 위해서라며 답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거의 확정이었어. 결국 그렇게 될 바에는 그나마 안전한 여기서 한번 풀고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위험한 곳보다는 말이다."

지수에게 발정기가 찾아왔던 일을 들먹이는 칼카타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영 틀린 말은 아니었던 까닭이다.

지수에게 발생한 문제는 시기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려면 어떻게든 내가 얽혀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한세아에게 발생한 문제는 문제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오죽 속상했으면 나를 묶어놓고 덮치려고 했겠나.

'···아니, 이미 덮쳤지.'

결국 돌고 돌아 문제는 나였고, 근래에 일어났던 일들은 칼카타의 말처럼 어떻게든 일어났을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안해요, 현우씨. 제가 좀 더 참았어야 했는데."

허리의 통증에 입술을 살짝 짓씹은 한세아가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한 말이었다. 말과 다르게 행동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미안할 게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약속을 못 지켜서 제가 더 미안하죠."

"그 약속은 이제 됐어요.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이제 우리 다시 새로운 약속 정했잖아요."

"···그거 매일해야 하는 겁니까?"

"싫어요? 싫어도 어쩔 수 없어요. 원래 패자는 승자의 말을 들어야 하잖아요. 제가 이겼고, 현우씨가 졌으니까 현우씨는 제 말을 잘 들어야 해요."

겨우 한번 이겼다고 기고만장해진 한세아. 그녀는 우쭐우쭐거리며 가슴팍을 앞으로 내밀었다. 입가에 지어진 얄미운 미소는 덤이었다.

내가 뭐라 반박하려던 그때.

"헉! 아저씨! 일어났구나!"

"오빠···!"

각자 냄비를 들고 오고 있던 지수와 예린이 거실에 앉아 있는 나를 보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왔다. 옆에 앉아 있는 한세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달그락-

그녀들은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냄비를 바닥에 내버려 둔 채, 내 얼굴을 붙잡았다. 움직임이 어찌나 빠르던지. 지수와 예린에게 아침 인사를 하려던 나는 반항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괜찮아? 세상에··· 얼굴 좀 봐···. 언니! 벌써 아저씨 망가트리면 어떡해요! 앞으로도 많이 써야 하는데!"

지수는 전체적으로 퀭한 느낌을 보내는 내 몸을 보자 민망하게 웃고 있는 한세아를 탓했다.

"앗, 망가졌다. 많이 못 썼는데···! 어째서어-!"

지수의 말을 비통하게 따라 하는 예린. 아이는 분하다는 듯 엎드려서 땅을 쳤다. 그러나 몸짓만 그러할 뿐, 예린은 이내 지금 상황이 재밌는지 깔깔 웃어댔다.

칼카타도 말만 들으면 내가 죽기 직전인 줄 알겠다며 킬킬거렸다.

"지수야, 예린아. ···나 안 망가졌어."

누구 마음대로 망가졌다고 하는가. 나는 아직 멀쩡했다.

비록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비록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거 말고 다른 할 말은 없어?"

나는 이러다가 강제로 침대에 눕혀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화제를 돌렸다.

"응? 무슨 이야기?"

"아니, 뭐···. 내가 세아씨랑 같은 방에서 나왔다던가···. 한대 때리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던가···하는 그런 거."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어차피 맞을 매 미리 맞는다는 심정으로 나는 자진 신고를 했다.

"아, 난 또 뭐라고. 괜찮아! 조금, 아니 많이 질투나긴 하지만 이야기는 어제 대충 끝냈어. 그리고 내가 아저씨한테 했던 말 기억해? 물든 건 아저씨가 아니라 나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정 신경 쓰이면 한번 안아주던가."

귀를 쫑긋거리는 지수가 내놓은 답에 나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지수를 강하게 안아주었다.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안아줄 수 있었다.

붕붕붕-

내 품에 들어온 지수는 몸을 살짝 기대며 꼬리를 붕붕 돌렸다. 어느새 다가온 예린도 폭 안기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아침부터 북적북적하네요. 식기 전에 밥 먹어요."

조용한 발걸음으로 다가온 최미소가 손뼉을 자게 치며 이목을 끌었다. 푸른 불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빠르게 몸을 회복할 수 있었고, 지금은 이렇게 혼자서도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의 말에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칼카타는 서로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수저를 들고 냄비 안에 담긴 아침 식사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지수와 예린이 아침 식사로 가져온 건 저번에 따로 남겨둔 갈비탕 국물에 미역을 넣어 새로 끓인 음식이었다. 고기는 이미 다 먹은 후라 대단하다고 할 만한 건더기는 없었으나 국물이 진한 덕분에 밥 말아서 먹기에 최적이었다.

우리는 속을 따뜻하게 덥혀 주는 국물에 만족스러운 기색을 띠며 식사를 마쳤다. 특히 한세아가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었다. 오랜만에 미역을 먹으니까 맛있다나 뭐라나.

그렇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 늦은 아침 햇볕이 주는 따사로움을 천천히 즐기고 있을 때.

"근데요, 언니. ······했어요?"

지수가 얼굴을 심각하게 만들며 한세아에게 물었다. 그와 동시에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을 찾아 일광욕을 하고 있던 예린이 고개를 불쑥 들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뭘요?"

"아니이! 그, 있잖아요. 임신이요! 임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 한세아를 본 지수는 답답하다는 것처럼 바닥을 꼬리로 탁탁 쳤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제 낳은 것들이 무정란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한세아의 배 안에 수정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랐다. 그때 당시에는 눈앞에 보이는 일곱 알의 존재가 주는 충격이 컸던 탓에 이제서야 임신 여부를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아···.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예요?"

"정말로 모르겠어요···. 지금까지는 무슨 생각을 하면 감이 좋아진 덕분에 좋거나 나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느낌이 안 나요."

"진짜 아무것도 안 들어서 그런 거 아니예요?"

"그럴 가능성이 크긴 하겠죠. 아쉽지만."

한세아가 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품고 있던 예비용 알들이 모조리 산란된 지금은 허리가 평소보다 더 잘록했다.

"혹시 모르니까 이거 가지고 있어요. 2주 뒤에 쓰면 돼요."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최미소가 주머니에서 작은 박스 하나를 꺼냈다. 흔히 임테기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아. 고마워요, 미소 언니."

"뭘 이 정도 가지고. 아직 몸 힘들지? 세아 너는 오늘 하루 푹 쉬어. 지안이는 지금 자고 있으니까 한동안 조용할 거야. 대신 현우씨 좀 빌려갈게. 오늘은 힘 쓰는 일이 주된 일이라서. 그래도 되겠니?"

"물론이죠. 조심히 쓰시고 돌려주세요."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건만. 내 의사는 배제되고 이야기가 척척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현우씨, 다 들었죠? 오늘은 저 따라다니면서 어제 못다 한 창고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아니면 현우씨도 오늘은 그냥 쉴래요?"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많이 상했다며 걱정하는 최미소였다.

"아닙니다. 미소씨야말로 벌써 이렇게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괜찮아요! 엄마는 강하거든요. 현우씨가 불어 넣어 준 푸른 불 덕분에 이렇게 빨리 나을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최미소는 팔을 휘적거리며 으쌰으쌰 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아, 창고 가기 전에 저번에 제가 말했던 발전기 확인하고 갈래요? 다 만들었는데."

"벌써요?"

"완성 직전이었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딱히 복잡한 일할 필요가 없었어요. 아마 제 남편도 지금 그쪽에 있을 거예요."

"뭐, 알겠습니다. 지수야, 예린아. 다들 각자 할 거 하고 있어. 나는 이만 가 볼게. 세아씨는 편히 쉬시구요."

일행에게 그리 말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최미소가 말한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바로 여기예요."

저소음 무한 동력 발전기가 있는 방 앞에 도착한 우리는 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헉···, 허억···."

안장에 앉아 열심히 페달을 돌리고 있는 칼카타가 곧장 눈에 들어왔다. 밥 먹고 어디에서 뭘 하나 싶었는데. 자전거에 앉아 전기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최미소가 이 방에 있을 거라고는 미리 말해줬으나, 이런 걸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소음!"

최미소는 조용하게 돌아가는 바퀴를 가리키며 외쳤다. 바퀴가 돌아가면서 겉면에 부착된 기기에서 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는 따로 연결된 인버터를 통과해 배터리에 저장되고 있었다.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매우 작은 건 인정한다. 그래, 저소음 발전기라는 건 인정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게 왜, 아니 어떻게 무한 동력이예요?"

사람이 돌리는데 어떻게 무한 동력이란 말인가.

"무한 동력 맞아요. 여보? 멈추지 말고 페달 밟아요. 얼른! 조금만 더 돌리면 지수씨가 와서 교대해 줄 거예요."

최미소는 자기 말이 맞다며 페달을 돌리고 있는 칼카타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끄응···."

눈치껏 요령을 부리려고 했던 칼카타는 아내의 시선에 다시 페달을 밟아 바퀴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짜잔! 무한 동력!"

의기양양한 최미소의 얼굴을 보니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무한 동력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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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안은 두 개가 나왔어요. 이중에서 저는 두 번째 구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러프 괜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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