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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301화 (302/497)

Chapter 301 - 301. 시작과 끝 (1)

2주 가까이 머물렀던 임시 거처에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예린아! 창고 가서 혹시 뭐 두고 온 거 있나 확인하고 와 줄래?"

"알았어요!"

"지수는 승강기 안쪽으로 어제 다 못 옮겼던 물자 좀 마저 옮겨줘!"

"응!"

나는 지수와 예린에게 떠나기 전 마지막 부탁하는 한편, 눈을 쉴 새 없이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임시 승강기 앞에는 여러 물자가 담긴 PP박스가 쌓여 있었다. 허나, 그 양은 거처에 있던 창고 크기에 비하면 확연히 적었다. 대부분의 물자는 이미 지수가 끌고 온 픽업 트럭에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승강기 앞에 놓인 박스들만 챙기면 여기서 더 챙길 건 없었다.

이번에는 승강기에서 시선을 떼고, 근처에 있는 칼카타와 최미소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칼카타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처음에는 그가 걱정되었지만,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는 오늘따라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어디 아픈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미소, 답답하면 말해라."

그는 최미소와 지안이에게 비닐 옷을 씌워주고 있었다. 아기인 지안이는 방독면을 쓸 수가 없으니, 모녀 전용으로 따로 만들어 준 것이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생각만큼 그렇게 막 답답하지는 않네요. 고마워요, 여보."

투박하지만 애정이 어린 손길을 받는 최미소는 그녀의 남편을 보며 살짝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슬픈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 뒤로, 최미소와 칼카타는 서로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서로 보지 못한다는 것처럼.

바로 그때.

"오빠! 깜빡하고 놓친 건 없어요!"

"아저씨, 나도 물자 안으로 옮겨 놨어. 이제 바로 가면 돼."

지수와 예린이 각자 맡은 일을 마치고서 내게 신호를 보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그래, 가자. 칼카타, 미소씨. 준비는 다 끝났답니다.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하세요?"

"아니, 우리도 준비 끝났다. 자, 어서 가지."

덜그럭 소리가 나는 가방을 고쳐 매며 등을 돌린 칼카타.

"아뇨! 저흰 나중에 내려갈게요. 어차피 한 번에 다 못 내려가잖아요? 먼저 내려가세요."

그가 한 답을 고쳐 말하며 움직임을 살짝 막은 최미소.

최미소는 먼저 내려간 한세아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나, 지수, 예린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녀의 말처럼 한세아가 차량 정비를 하고 있었기에 우리도 내려가서 돕는 것이 맞았고, 수개월간 이곳에서 지낸 칼카타와 최미소에게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기도 했기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덜컹-

한 사람씩 들어올 때마다 덜컹거리는 승강기. 그래도 여전히 벽면에 잘 고정되어 있어서 안심이었다.

"이제 출발!"

방독면을 제대로 착용한 예린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아이의 몸짓에 피식 웃은 나와 지수는 고정된 도르래 손잡이를 풀어 천천히 돌렸다.

그와 동시에.

끼긱··· 끼기긱-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지상으로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승강기가 내려감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시야가 조금씩 바뀌어 간다.

나, 지수, 예린은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던 임시 거점을 잠시 눈에 담았다. 그동안 몸과 마음을 편하게 지냈던 탓일까. 이곳을 떠나는 순간이 오니 묘하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크기에 비해 인원이 별로 없어 처음에는 휑하게 느껴졌던 공간.

비록 잠시뿐이었지만 우리 일행의 합류로 생기가 조금 돌았던 장소.

그리고 이제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다시 휑하게 느껴지게 될 집.

언젠가 우리가 집이라고 느끼고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며 멈추지 않고 도르래를 돌렸다.

그때까지 모두가 무사하기를.

그때가 오면 다 같이 웃을 수 있기를.

그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새삼 되새기면서.

***

더 이상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는 지상.

쿵!

갈라진 아스팔트 도로 위로 내려온 승강기가 바닥을 디디며 멈춰 섰다.

"세아씨!"

나는 승강기 근처에 있는 픽업 트럭을 보며 곧장 외쳤다. 그러자 차량 뒤편에서 적색 단발을 가진 여성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현우씨! 미소 언니랑 칼카타는요?"

차량 주변에 세워진 비닐 칸막이 문을 나온 한세아. 그녀는 예린을 서둘러 칸막이 안쪽으로 이끌었다. 현재 픽업 트럭 주위에는 일종의 비닐 하우스가 설치된 상태. 차량을 손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안개로 위장한 하얀 가루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저희 다음으로 내려올 겁니다. 지수야, 내가 물자 트렁크에 실어 놓을 테니까 두 사람 좀 데리고 와 줘."

나는 승강기에 실린 박스를 하나씩 빼며 말했다. 승강기를 움직일 수 있는 도르래 손잡이가 내부에 설치된 만큼 승강기가 다시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한 명 다시 타야 했으니 말이다.

"알았어."

자꾸 왔다 갔다 일을 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으나, 다행히 지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윽고.

"아저씨, 갔다 올게."

남은 물자를 차량에 싣는 작업이 끝나자 지수는 잽싸게 승강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손을 살짝 흔들면서 도르래를 돌렸다. 승강기가 다시 위로 올라가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차뿐이네.'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하나씩 끝나고 있는 준비. 한세아의 손에 이끌려 칸막이 안쪽으로 들어간 나는 차량 앞쪽에 끼워진 견인 고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질긴 로프가 매듭 지어져 있었다.

안개 속에서 차량이 달릴 수가 없는 까닭에 진원지를 없애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차량을 견인해야 했다. 조금 힘들긴 아니, 많이 힘들겠지만 어쩌겠나. 그저 나중에 빠르고 편리한 이동을 위해 감수해야만 하는 요소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차량 안의 연료도 충분히 남아 있고, 호스를 통해 일부 뽑아낸 휘발유가 아직 변색되지 않았다는 것일까.

'6개월이 지나긴 했지만, 차량을 오래 쓸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괜찮지.'

뒤에서 차량을 슬쩍 앞으로 밀어보니, 픽업 트럭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앞으로 밀렸다.

"세아씨."

"넵?"

"세아씨도 그냥 뒷좌석에 타는 게 어떻습니까. 굳이 뒤에서 밀어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지금 우리가 이렇게 차량 바깥에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건 칸막이 덕분이었다.

비록 허술하긴 했어도 일시적으로 가루를 막는 데에는 탁월한 비닐 하우스. 이것의 영역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차 문을 열어서는 안 되었다. 뒷좌석에는 아기가 타고 있는 상황에서 문을 열면 큰일이 나도 단단히 날 테니까.

그러니 처음부터 차에 타서 무리하지 말고 쉬고 있으라는 뜻으로 그리 말한 것이다.

"어제부터 계속 말했던 거지만, 저는 괜찮아요. 신경 써 주는 건 진짜 좋거든요? 근데 자꾸 이러시면 곤란해요!"

방독면을 쓰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녀의 표정이 뾰로통해졌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분명 입을 삐죽 내밀고 있겠지. 그녀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며 투덜거렸다.

"언니, 오늘도 알 안 나왔잖아요. 그럼 진짜 임신한 거 아니에요?"

한세아를 배를 콕 찌른 예린.

"그건···."

몸을 살짝 움츠린 한세아는 별다른 말하지 못하다가,

"에잇! 예린이 너는 조용히 하고, 얌전히 차에 타 있어!"

"으아앗···!"

반론을 받지 않겠다는 듯한 행동에 예린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차량에 탈 수밖에 없었다.

달칵-

차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예린은 진한 선탠이 된 창문 안쪽에 자리 잡게 되었다.

내가 속으로 한숨을 작게 내쉬며 무어라 말하려던 그때.

"아저씨! 두 사람 데려왔어! 바로 가자!"

지수가 칸막이 문을 열고 비닐 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그녀 혼자가 아닌 최미소와 칼카타가 함께였다.

"어어, 잘했어. 고마워."

지수의 귀를 쓰다듬는 나와 눈이 마주친 한세아는 고집스레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한번 마음먹은 건 어떻게든 이뤄내는 그녀였기에 더 이상 내가 무어라 말을 한다고 한들, 통하지 않을 듯했다.

"미소, 조심히 차에 타라."

칼카타는 하얀 가루가 비닐 하우스를 오염시키기 전에 서둘러 문을 닫았다. 그의 어깨에는 여전히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가죽가방이 메여 있었다.

"알았어요, 여보. 현우씨, 지수씨, 세아야. 저기··· 그, 미안해요. 다들 힘들게 차 끄는데 안에서 편하게 앉아만 있어서···."

비닐 옷을 입은 최미소는 우리를 보며 미안한 시선을 던졌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 걱정은 마시고, 어서 차에 타시죠. 안쪽에서 신호 보내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최미소는 칼카타를 잠시 바라보다가 힘없이 몸을 돌렸다. 그녀는 아기를 안고, 조심히 뒷좌석에 자리 잡았다.

덜컹!

똑똑-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신호. 안전하게 차량 내부가 밀폐되었다는 의미였다.

"줄은 미리 묶어 뒀으니 잡아당기기만 하면 돼요."

"김지수와 한세아. 너희는 후미에 서라. 나와 현우가 선두에 서겠다."

칼카타의 지시에 따라 나, 지수, 한세아는 차량 앞뒤에 섰다. 그녀들은 차가운 금속판에 손을 올린 채, 나와 칼카타는 묵직한 로프를 단단히 붙잡은 채.

그렇게 우리는 출발했다.

안개의 진원지인 금천 소방서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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