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3 - 303. 시작과 끝 (3)
"···그가 옵니다, 어머니. 사람들의 안식을 방해하려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세 명의 사람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제가 구한 사람들을 죽이려는 그가 오고 있어요."
그의 이름은 이도윤.
전직 소방관이자, 현재는 안전한 도시를 유지시켜주는 꽃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그런 남자의 옆에는 나무 인간 변종의 다리 한쪽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변종은 이미 생을 마감한 듯 말라비틀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도윤은 소란스러움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도시 전체에 흐르는 적막을 좋아했다.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고, 오로지 조용하다는 것은 특별한 위험이 없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이도윤은 손을 천천히 휘저었다. 그의 손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꽃가루들이 소소소 일어나 이리저리 휘날린다.
흙먼지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총구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포신에서 흘러나오는 포연처럼 보이기도 하는 꽃가루의 안개.
타타타탕!
연기가 휘날린다.
'중지!! 사격 중지하라고!!'
연기가 휘날린다.
콰아아아앙!
좀 더 많은 연기가 휘날린다.
'전부 다 죽여버려!!'
살의에 가득 찬 고함이 그의 귓가를 울린다.
이도윤이 정신을 차린 직후부터 그의 눈과 귀는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들리는 비명과 괴성,
내부를 진탕시키는 사격음과 포격음,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궤도 돌아가는 소리와 전투기가 하늘을 통과하는 소리.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걸 죽여대는 소리가 이도윤을 잠식했기 때문이었다.
「키킥.」
이도윤의 뒤편에는 거대한 꽃이 있었다. 무엇보다 하얀 꽃잎과 무엇보다 붉은 수술이 있는 꽃에서는 도시를 잠식한 안개를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외부 자극을 받지 않아도 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하얀 분말을 마구 뿜어냈다.
"지켜야해."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그의 눈에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보여지고 있었다.
꿈이었다.
***
[끼에에에에엑!]
탕! 타타탕-!
"전방 악성 변이자 처리 완료!"
"다음 구역으로 이동한다! 낙오 당하지 않게 서둘러!"
"알겠습니다, 박 병장님!"
소대 규모의 군인들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면서 사주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달려드는 사람들 아니, 악성 변이자라 명명한 괴물들을 모조리 쏴 죽이면서 이동했다.
"더 빨리 움직여, 이 새끼들아! 곧 포격이 떨어진다고!"
군인들이 그토록 서둘러 움직이는 이유는 곧 그들이 있는 자리부터 서울 전역에 포격이 떨어지는 까닭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서울 전역이 아닌 남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포격이었지만.
한차례 대규모 포격으로 거리에 있는 악성 변이자들과 고층 빌딩 위에 자리잡은 거목을 쓸어버린 후, 텅 비게 된 거리를 단숨에 돌파한다는 작전. 단순한 내용이었으나 그 과정과 결과는 결코 우습지 않았다.
그래, 절대로 우습다고 할 수가 없었다.
한때 나라의 수도였던 서울을 향해 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그들이 서울의 수복을 포기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불태우고, 붕괴시키는 포탄과 미사일은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인프라들을 전부 박살내 버릴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대한 나무를 불태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작전이었다. 어떻게든 그곳에 도달해, 그 아래에 있는 연구소에 진입해야 했으니까.
여의도에 자리를 잡은 선발대를 위해서라도.
타타타탕!
두두두두-!
탁-탁-탁-탁-탁-
군홧발 소리가 총성과 함께 거리 곳곳에서 들린다.
대규모 포격을 실시하기에 앞서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한 다급한 발걸음이었다. 그것이 군인들에게 남은 마지막 인간성이었다.
어떻게든 한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이 근처에 남은 생존자 없는 거 확실해?!"
박 병장이라 불린 이가 급하게 후퇴하면서 옆에 있는 후임에게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후임인 최 일병은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박 병장은 그가 망설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쐐-애애애액!
그러나 머리 위를 지나가는 전투기 편대가 내는 소리에 탈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박 병장.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가만히 시간을 보낸다면 괴물들과 함께 불타 사라지고 말뿐이었다.
그들이 지나가고 있는 곳은 금천 소방서 건물 앞. 후퇴 지점인 석수역까지 가려면 한시 바삐 다리를 놀려야만 했다.
'씨발···! 간신히 지렁이 새끼한테 벗어났더니 다시 거길 가야 한다고?'
지렁이 변종의 추격을 간신히 뿌리치고 올라온 서울이건만. 이제는 다시 제발로 죽음이 가득한 그곳으로 가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욕이 절로 나오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불타 죽기 싫으면 물러나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일단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들로부터 사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이봐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소방서 문을 열고 급하게 뛰쳐나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주황색 복장은 입은 그는 이도윤. 3월 6일 당직을 서던 중에 이상 현상이 전국을 뒤덮었고, 시간이 상당히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었다.
이도윤이 정신을 차린 당시에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같이 당직을 서던 동료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매우 더러워졌다는 것과 이상하게도 그의 머릿속에 동료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는 것뿐.
"······!"
군인들은 그들에게 달려오는 것이 악성 변이자인줄 알고 총구를 급하게 들었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일단 이쪽으로 오십쇼! 여기는 위험합니다! 얘들아, 항상 하던 대로!"
"알겠습니다!"
박 병장은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이도윤의 주위를 분대원들로 둘렀다. 사방에서 날뛰고 있는 악성 변이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문득 군인들의 코에 비릿한 혈향이 맡아졌지만, 이내 착각이라는 듯 짙은 화약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혼자이십니까!"
"네, 네! 눈 뜨고 보니까 저 혼자였어요! 서울이 왜 이렇게 된 건가요?!"
이도윤은 단순히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총성과 포성이 난무하고 있는 서울의 모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설명은 나중에 해드리겠습니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규모 포격이 폭격과 함께 퍼부어질겁니다!"
박 병장은 매뉴얼대로 이도윤이 기침을 하는지, 몸에 이상한 나무 껍질이 돋았는지 확인하면서 답을 이어갔다.
다행히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앞에서 사람을 쏴 죽이지 않아도 되었으니.
바로 앞에서 피가 튀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
"뭐라고요? 포격이요?"
"설명은 나중에 해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선은 뛰십시오!"
"아니, 여기 전화 가능하신 분 없어요?! 제 아내랑 아들이━."
이도윤은 다급하게 움직이는 군인들을 붙잡고 간절하게 외쳤다. 아니, 외치려고 했다.
쐐애애액!
콰-아아아앙!
하늘에서 순간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섬광과 함께 무거운 쇳덩어리가 소방서 뒷편에 있는 단독주택 단지를 강타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퍼버버버벙-!
허공에서 큼지막한 불덩어리가 수백개의 작은 불꽃으로 나뉘어 비처럼 쏟아졌고, 지상을 강타하자 일차적으로 작은 폭발들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하얀 연기가 쉴 새없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살려줘!! 제발!"
건물 안에 꽁꽁 숨어있던 생존자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것은 덤이었다.
"아직 작전 시작 시간이 아닌데 왜?! 아니, 씨발! 야 최 일병 이 개새끼야!! 생존자 없다고 했잖아!!"
꺼지지 않는 불을 보며 경악한 박 병장은 최 일병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의 눈은 휘날리는 연기만큼이나 흔들리고 있었다.
"커헉! 저희 담당 구역에는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저기 뒤쪽은 3소대가 맡아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최 일병 또한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이 담당한 구획에는 온전한 생존자들이 없었고, 대부분 이미 크게 다쳐 있거나 죽기 직전에 놓여있었으니까.
저렇게 힘차게 비명을 내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는 말이었다.
바로 그때.
"포격 중지!! 포격 중지하라고 해! 지금 건물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요!!"
씨발, 씨발 거리는 박 병장을 이도윤이 밀쳤다. 박 병장은 불시의 기습에 바닥을 나뒹굴게 되었고, 그를 본 후임들이 이도윤의 행동을 막기 위해 붙잡았다.
철컥!
"떨어지십시오! 물러서지 않으면 발포합니다!"
정확히는 공격성을 드러낸 이도윤에게 총구를 겨눴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크윽, 다들 총구 내려. 난 괜찮으니까."
박 병장은 후임들을 말리는 한편, 이도윤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를 죽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박 병장은 이도윤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도윤씨, 많이 혼란스럽다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포격은 멈출 수 없습니다. 멈추지도 않을 거고요."
"아예 포격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입니까! 당장 무전 쳐서 구조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하면-!"
"무전기는 작동을 중지했습니다. 요 근래 들어서 전파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거든요."
"······뭐라고요?"
"그리고 무전기가 터지는지 터지지 않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포격은 가져온 포탄이 떨어질 때까지 지속될 겁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한 작전이었으니까. 그러니 살고 싶으면 저희랑 같이 가셔야 합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이도윤은 주먹에 힘을 풀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쾅! 쿠르르륵-
불타고 있는 건물의 외벽이 폭격 당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단단한 콘크리트 철근이 어찌어찌 충격을 버티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뿐이었다.
탕- 타타탕!
"전부 쏴 죽여!"
거리 곳곳에 아직 후퇴하지 못한 군인들이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죽인다.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쏘고 보고 있었다.
그것이 설령 부상을 입어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끄아아아아악!]
[끼에에에에엑!]
괴물들.
그래, 분명 그가 보아도 이상한 괴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나무 껍질이나 체구가 비정상적으로 커진 기괴한 것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죽고 죽이고 있는 이곳은 광기의 현장 그 자체였다.
"······안 돼. ···다들 미쳤어."
"어디 가시는 겁니까! 돌아오십쇼! 당신 아무것도 모르고 있잖습니까!! 돌아와!! 가면 죽는다고!!"
이도윤은 그를 붙잡으려는 군인들의 손을 뿌리치고, 그가 나왔던 소방서로 다시 들어갔다.
군인의 말이 맞았다.
몰랐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괴물은 뭐고, 군인이 서울에 폭격을 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특히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나무는 또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가 눈을 뜬 건 얼마 되지 않았기에.
하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을 구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정보가 아니었으니까.
그리 생각한 이도윤이 곧장 향한 곳은 각종 소방 장비들이 보관되고 있는 캐비닛이었다. 비상 사이렌이 울리지 않기를 매일 기도하며, 곧장 출동할 수 있게 해주는 장비들이 있는 곳은 눈 감고도 갈 수 있었다.
벌컥-
끼익!
녹슨 소리를 내며 열린 캐비닛 문에는 젊은 여성과 어린 아이가 사이좋게 찍힌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가족 사진이었다. 언제나 그의 목숨을 구해주는 부적이기도 했다.
"···수영아. ···내 아들."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통화권을 이탈했다는 전자음만 들려오기에 현재 생사를 알 수 없는 그의 아내와 아들이 매우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가 해야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해야할 일은 여전히 명백했다.
바로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것.
언제나 그랬듯이.
쾅!
그는 사진 한장을 조심스럽게 떼어내 품에 갈무리한 후, 캐비닛을 닫았다.
이윽고, 장비를 갖춰 입은 이도윤은 사람을 죽이는 군인들 대신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불타는 건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매번 출동할 때마다 되뇌었던 기도문을 중얼거리면서.
망설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