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05화 (306/497)

Chapter 305 - 305. 시작과 끝 (5)

부스스······

하얀 분말이 눈처럼 떨어진다. 하늘하늘하게 내려오는 가루는 금천 소방서 옥상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들어갑시다."

나는 전방의 건물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빠른 출동을 위해 도로와 인접한 곳에 자리 잡은 차고, 천장에 간신히 붙어 있는 금속 셔터, 타이어 공기가 빠져 한쪽으로 기울어진 소방차와 구급차, 떨어진 간판.

역시나 이번에도 인기척이 하나도 없는 건물이었다. 안개의 진원지라고 해서 다를 게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내가 앞장서마. 현우와 김지수 너희는 뒤따라 들어오도록."

어깨에 매고 있는 가죽 가방을 고쳐 맨 칼카타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가 내디딘 발자국 주변으로 분말이 주위로 살짝 밀려난다.

"알았어요. 조심해요, 칼카타. ···뭐가 있는 것 같진 않지만."

픽업 트럭에 남아 있을 한세아, 최미소, 지안이, 예린에게 금방 돌아오겠다며 말한 지수가 칼카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의 꼬리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허공에는 회오리가 만들어졌다.

나도 그들에게 간단한 당부를 전한 후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한세아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차고 안으로 진입했다. 주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철그럭- 철그럭-

바닥에 널브러진 금속 셔터가 위에서 가해지는 무게감에 죽는 소리를 토해낸다.

사브작- 사브작-

간혹 하얀 가루들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을 밟을 때면,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차고를 지나 금천 소방서 중앙에 도착했고, 보이는 것은 공터였다. 바깥에서 볼 때는 몰랐으나 안으로 들어와 보니 사각형 안에 또 다른 사각형이 들어가 가운데가 비어 있는 형태인 건물이었다.

현수 하강을 위한 훈련 기구인 철탑, 바닥에 그어진 하얀 선 같은 것들을 보아 하니, 이곳은 소방관들이 훈련하는 장소인 모양이다.

더 많은 것들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안개가 워낙 짙은 탓에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와 지수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 그때.

달그락-

칼카타가 가방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천으로 둘러싼 무언가를 보여주는 건 덤이었다. 천이 풀어헤쳐지자 모습을 드러낸 건 나무 막대기였다.

등산하면 간혹 볼 수 있었던 잔가지가 살짝 붙어 있는 나뭇가지 말이다. 흡사 지팡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 칼카타, 그거 뭡니까?"

"내 고향의 물건이다."

"아니, 그거 말고요. 왜 피를 병에 담아왔냐 이 말입니다."

소소소 일어난 가루가 걷히기를 기다린 나는 그가 내려놓은 병에 특수 처리된 피가 담겨 있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뭐야. 진짜네? 칼카타, 무슨 피를 이렇게 많이 뽑았어요? 이거 미소씨가 허락한 일 맞아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올라가는 길을 찾던 지수가 훈련장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에 쪼르르 달려왔다.

상황 파악을 빠르게 마친 그녀는 칼카타에게 추궁하는 시선을 보내는 한편, 그가 매고 있는 가방에 유리병이 여러 개가 있다는 정보를 내게 알려주었다.

칼카타의 몸이 좋지 않다는 건 지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감각이 좋은 지수는 불필요한 정보까지 들으면서 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수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칼카타가 갑작스레 터진 기침을 막으면서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만일을 위한 대비다. 일이 내 생각대로 잘 풀리기만 한다면 이걸 쓸 일도 없어. 마찬가지로 이 나뭇가지도 쓸 일이 없겠지."

"그래도 무슨 대비를 하는지 저희한테는 알려주셨어야죠."

"방금 말했지 않나. 만일을 위한 대비라고. 너희한테 해가 되는 일은 아니야."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만. 누가 적진에서 시끄럽게 떠드나. 여기 일은 마쳤으니 이제 위로 올라가자."

칼카타는 손을 들어 내 입을 막고, 반론을 듣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후우···."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나는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답답함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쩌면 이런 점을 노려서 이제서야 병을 보여준 것일까. 아니, 그게 확실했다.

원래 칼카타는 차량을 이끌기만 하고, 진원지에 진입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가 몸이 좋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칼카타가 현재 우리와 함께 있는 이유는 그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대전사는 물러나지 않는다느니 뭐니 하면서.

"······일단. 일단 가자, 지수야."

"알았어. 칼카타! 길은 이쪽이에요! 그쪽이 아니라!"

"···크흠!"

지수가 방향을 바로 잡아준 칼카타는 멋쩍은 헛기침을 토해내며 나와 지수에게 다시 합류했다.

그렇게 나, 지수, 칼카타는 지수가 알려 준 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건물 안에는 바깥에서 볼 수 없었던 하얀 꽃잎과 붉은 수술을 가진 꽃들이 가득했다.

부스스··· 부스스···

꽃잎들이 살며시 떨리면서 품고 있던 하얀 가루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안개를 만들어 내는 주범인 모양이다.

"이거 다 없애면 안개가 사라지는 건가?"

지수의 의아함 가득한 중얼거림에,

"이게 아니다. 이런 작은 꽃들이 아니라 더 커다란 꽃이 있을 거다. 그걸 없애지 않는 이상 안개는 사라지지 않아."

칼카타는 이번에도 피가 담긴 유리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리병은 꽃들 사이에 파묻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피를 다 뽑은 마당에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이렇게 된 이상 칼카타의 행동을 그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칼카타를 계속 보던 시선은 위치를 옮겨 소방서 건물 복도를 눈에 담았다.

천장, 벽면, 바닥을 가리지 않고 붙어 있는 꽃들이 보인다. 하얀 안개가 생명 활동을 억제한다는 특징을 생각하면, 지금 보이는 풍경은 이질적이었다. 현재 이 복도에 가득한 꽃들은 확실하게 살아 있었으니까.

그리고 꽃들은 복도에 줄지어 설치된 철제 캐비닛에도 어김없이 붙어 있었다. 구석이 찌그러지고, 문이 울퉁불퉁해졌으며,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하얗게 물든 사진들이 붙어 있는 캐비닛에도 말이다.

꽃의 뿌리는 넝쿨이 으레 그런 것처럼 서로 어지럽게 얽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마치 수원 고등학교에서 보았던 폐차와 시체가 가득한 화원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이번에는 시체 대신 무엇을 양분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툭- 툭-

캐비닛 안에 보관되고 있던 사진 하나를 꺼내 들었다. 비록 하얀 가루의 침식으로 인해 선명도가 낮아졌으나 사진 속 인물들이 행복하게 웃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아이 하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일상 속에서 그저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이 정면을 향해 보내는 시선에 의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사진 뒷면에 아기자기한 글씨체로 적혀 있는 '언제나 구해야 하는 목숨은 하나가 아닌 둘! 그중 하나는 오빠인 거 말 안 해도 알지? 오늘도 아자아자 파이팅! ? 수영이가' 라는 문구가 나를 그렇게 만드는데 한몫하고 있었다.

"아저씨! 이쪽이야!"

"어어, 갈게!"

나는 지수의 재촉에 꽃과 철제 캐비닛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서둘러 지수와 칼카타가 있는 곳으로 따라붙었다.

우리는 앞을 향해 걸어가면서 엉망으로 변한 소방서 내부를 눈에 담았다. 여기도 폭격을 피할 수는 없었는지 멀쩡한 물건들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 같이 전부 망가진 것들이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나지는 않았으나 밑에서 대기하는 일행이 걱정된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끔 걸음을 멈출 때는 칼카타가 바닥에 유리병을 내려놓았을 때뿐이었다.

건물 옥상으로 향할 수록 복도에는 꽃들이 점점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가는 길이 맞다는 것처럼.

"아저씨, 느낌이 좀 안 좋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야겠어."

굳게 닫힌 옥상 문을 보며 지수가 한 말이었다.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기색을 띠고 있었고, 경계에 박차를 가했으나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다.

"대비해라.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이어지는 칼카타의 말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 문만 넘으면 칼카타가 예전에 말해주었던 안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보이리라. 거대한 꽃을 없애기만 하면 우리가 할 일은 끝이었다.

이윽고.

"···푸른 수정?"

옥상에 도착한 나, 지수, 칼카타는 하늘을 향해 만개한 커다란 꽃을 볼 수 있었다. 꽃이 기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크기만 한 수정과 함께.

바로 그때.

"너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이현우.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건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으시니."

하얀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 해진 소방관 옷을 입고 있는 그가, 하얀 꽃이 수북한 화원 속에 있는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예고도 없이, 우리가 눈치챌 수도 없이 갑작스레 등장한 사람. 그는 우리의 적이 확실했다.

"······?! 지수야! 칼카타! 뒤로━!"

내가 무심코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푸른 수정이 발하는 푸른빛과 남성이 쏘아낸 검은빛이 어지럽게 폭사되었고,

「하나가 되자!!!」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가 내 머리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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