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6 - 306. 시작과 끝 (6)
짹! 째잭! 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창문을 투과하는 햇볕이 눈을 자극해 부신 느낌이 든 나는 황급히 눈을 떴다.
"허억!"
급하게 숨을 들이키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입고 있는 옷은 축축했다. 몸에 식은땀이 잔뜩 난 탓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처음 보는 아니, 예전 내 자취방과 비슷한 장소였다.
"···뭐야."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 기절한 것일까. 단순히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건만. 한순간에 장소가 바뀐 것이다.
"끄응···."
나는 무거운 몸과 현기증이 도는 머리를 이끌고 창가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창문 너머로 멀쩡한 도시와 출근 준비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당연히 안개는 보이지 않았다.
"······뭐냐고."
단순히 안개만 보이지 않았다면 지수와 칼카타가 진원지를 없앤 것이라 여길 수 있었을 텐데, 현재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은 그것보다 앞서 나간 풍경이었다. 그것도 너무나도 앞서 나가서 현실감이 들지 않는 풍경 말이다.
'이게 말이 되나? 지수와 칼카타는 어디 갔지? 세아씨는? 미소씨와 지안이는? 예린이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지금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인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짹! 째잭!
창틀에 앉은 새가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대며 지저귄다. 생명력이 넘치는 움직임이었다. 생기가 넘치는 지저귐이었다. 활기찬 생명이 무방비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쥔 내가 멍하니 참새 한 마리를 보고 있을 때.
벌컥!
방문이 열리고, 젊은 여성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야! 뭐 해! 일어났으면 나와서 밥 먹어!"
곧장 나를 부르는 여성.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하건만 사람의 목소리까지 머리를 웅웅 울리니 더 엉망진창이 되는 느낌이었다.
조금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누나?"
그리 생각하며 힘없이 고개를 돌린 나는 이내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내 방으로 들어온 여성은 내 누나였으니까.
초록색 머리칼과 초록색 눈동자. 싱그러움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빚어낸 느낌을 자아내는 내 누나 말이다.
"그럼 내가 누나지 누구겠어? 네 방에 들어올 사람이 나 말고 더 있니? ······응? 뭐야, 너 얼굴이 왜 이래? 악몽이라도 꿨어?"
누나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한다는 듯 삐딱하게 서 있다가, 내 표정을 보고 나선 순식간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누나가 여기에? 나, 나는 분명··· 안개의 진원지를 없애고···."
이해가 되지 않는 현 상황에 나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기억을 더듬었다. 누나의 말대로 악몽이었던 것일까. 기억이 희미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다.
"없애고···?"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 누나는 퀭한 내 눈가를 조심스레 손으로 쓸었다. 그녀의 초록색 머리칼이 미약하게 흔들린다.
"탈출하려고 했는데···."
여전히 제대로 떠올려지지 않는 기억. 그나마 떠올렸던 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물에 풀린 물감처럼 확 퍼져 희미해져만 가고 있었다.
"했는데···? 응? 탈출? 어디를?"
"그, 도시를···. 근데 눈을 떠보니까 여기고···?"
"여기고···? ···풉, 푸하하하핫! 꺄하하하핳!"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들어 주던 누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내게 게임 좀 그만하라며 나무랐다.
퍽! 퍽!
그러면서 주먹으로 내 상체를 치는 감각에 나는 억울함이 더해져만 갔다. 아니,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이런 반응은 좀 너무하지 않나. 그러나 누나의 반응에 이곳이 현실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정말로 꿈?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게 전부 꿈이라고?'
하긴 사람이 어떻게 푸른 불을 손에서 피워 올리겠는가.
어떻게 사람에게 동물 귀나 꼬리가 달리겠는가.
어떻게 죽은 사람이 괴물로 되살아나겠는가.
괴물로 가득해진 지구가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가.
군인들이 서울에 폭격을 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개꿈을 꿔도 참 요란하게 꿨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해왔던 것이, 만나왔던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거라는 사실에 허무함이 느껴졌던 까닭이다.
그러나 느껴지는 건 허무함뿐만이 아닌 안도감도 함께였다.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지 않았다는 말이었으니까. 모두 다. 살아있다는 말이었으니까.
"···누나. 누나 이름이 뭐였지?"
"너 진짜 어디 아파? 메이벨이잖아. 아니면 뭐, 한국식 이름을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니지?"
5월의 종. 무슨 꽃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눈 앞의 누나에서는 그 향이 맡아지지 않았다.
머리로는 분명 내 누나가 맞다고 하는데 말이다. 괴리감이 강하게 들었으나, 그것은 이내 멍한 느낌과 함께 사라졌다.
"아무튼 잠 다 깼으면 나와! 아침 차려 놨어."
나를 빤히 응시하던 누나는 어린 놈이 벌써부터 머리가 오락가락한다며 혀를 찼다. 나랑 겨우 한 살 차이나는 주제에 매번 이렇게 늙은이 흉내를 내는 그녀였다. 정말 나이 많은 취급을 하면 속상해 하며 삐질거면서.
"어어, 바로 나갈게."
나와 누나는 같이 방을 나섰고, 서로 마주 보는 위치로 의자에 앉았다.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가 끓여진 냄비가 있었다.
"밥 먹으면서 들어. 누나 오늘 하루 휴가 내서 출근 안 하거든?"
작은 입으로 밥을 옴뇸뇸거리며 먹는 누나.
"그래서?"
"너 할 일 없는 거 누나 알고 있으니까 오늘 하루는 누나 따라다니라고."
"뭐 할 건데?"
"뭘 특별한 걸 하진 않을 거야. 그냥 거리나 좀 돌아다니고, 길 가다가 맛있는 식당 보이면 들어가서 밥 먹고, 그런 거지."
누나는 거절은 받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초록 눈동자가 오롯이 나를 담았다.
"···알았어."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크으···, 날씨 좋다-!"
"나보다 더 아저씨 같은 소리를 하네."
"이게 죽을라고."
"악! 그만 좀 때려! 누누이 말하지만 누나는 손부터 나가는 버릇을 좀 고쳐야 해."
"어디 계속 말해 봐."
"악! 아악!"
식사를 마친 나와 누나는 함께 설거지를 끝내고,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밖에는 반려 동물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과 요즘 유행하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동물 귀나 꼬리가 달린 사람은 없었다.
"누나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햇빛을 쬐겠니? 이번에 프로젝트 또 들어가면 한동안 연구실 밖으로 나가기가 요원한데."
"···힘들면 조금 쉬어도 되잖아. 일할 사람이 누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누나가 한번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어지간해서는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누나를 챙겨 주는 건 내 몫이었다. 내가 연구소로 면회를 가야만 누나가 어기적거리며 나왔으니까.
"그야 그렇긴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네. 현우야, 누나가 이번에 만든 거 뭔지 알고 있어?"
고개를 좌우로 젓는 내 모습에,
"아, 저기 봐봐. 너무 뚫어져라 보지는 말구. 그건 실례니까."
누나는 내게 팔짱을 끼며 어느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교복을 입고 있는 남학생과 중년의 여성이 나란히 서 있었다.
"아들, 학교 잘 다녀올 수 있지?"
"그럼 내가 누구 아들인데? 저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엄마나 조심해요."
남학생은 한쪽 다리와 팔이 불편한지 어색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라도 움직이고, 설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현일아, 조금이라도 힘들면 선생님한테 말해서-."
그런 아들의 표정에도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인 중년의 여성.
"아잇! 나는 괜찮다니까? 우리 서현경 여사 이제 출근해야지! 나도 출석해야 하고! 그러니 걱정은 그만하셔. 마침 저기 내 친구들 지나가네. 뭔 일 있어도 쟤네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돼."
엄마의 걱정을 일축한 남학생은 몸을 돌려 정류장 앞에 줄 서고 있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같은 교복인 걸 보니 같은 학교 학생인 모양이다.
이내 친구들과 합류한 남학생은 서로 무엇이 그리도 웃긴 지 서로를 보며 낄낄댔고, 차례대로 버스에 탔다.
중년의 여성은 학교로 향하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작게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버스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중년의 여성은 힘찬 발걸음으로 몸을 돌렸다.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와서 웃어, 현우야. 내가 조금만 힘을 낸다면 말이야. 이게 내가 바라는 미래야."
「네가 바라던 미래.」
누나는 자신이 만든 특수 의족이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옆으로 한 무리의 여대생들이 지나간다. 그들은 무거운 전공책이 들어 있는 가방을 옆으로 매고 있었다.
"지수야, 너 그거 봤어?"
간단히 후드티를 입고 있는 흑발의 여대생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는 동기.
"뭐? 뭔데?"
"야야, 다 모여봐. 한 번에 보여 줄게."
그녀는 주변을 슬쩍 살피더니 스마트폰 화면에 띄운 걸 같이 있는 동기들에게 공개했다.
"······오. 야, 이거 내 톡에도 보내줘. 미쳤네."
하나 같이 감탄사를 내뱉은 여대생들은 서로를 보더니 깔깔거리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 신입생으로 누가 들어왔니 MT에 참가하니 안 하니 뭐니 하면서.
그렇게 멍하니 있는 내게 이번에는 옆에 있는 하이마트에서 사람들이 각 패널에 앉아 토론하는 화면이 보여졌다. 화면 구석에는 생방송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우리나라 모 기업에서 대기오염을 획기적으로 정화할 수 있다는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기사 다들 보셨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에 시범적으로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거 정말 괜찮을까요?
- 저는 괜찮다고 봅니다. 이미 기술 검증은 끝난 상황이고, 남은 건 상용화 문제였는데 이것마저 해결하고 있다고 하니 긍정적으로 생각이 되는군요. 다만, 안전성은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요.
- 일단 여기 수치를 보시면 미세 먼지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졸린 사- 크흠! 이 부분은 편집해주십쇼. 아니, 어차피 모 기업이라고 해봤자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거 아닙니까. 아무튼 이런저런 수치를 보면 기술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생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의 박사가 저지른 실수에 방송에서는 킥킥 웃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토론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나와 함께 토론 방송을 지켜보던 누나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우리 아빠가 참여한 프로젝트네. 저것도 사실상 끝난 프로젝트지. 엊그제 아빠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지? 난 아빠가 그렇게 웃는 모습 처음 봤어."
「우리가 꿈꾸던 현실.」
누나는 슬슬 목 마르지 않냐며 내 손을 이끌고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하늘은 매우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