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07화 (308/497)

Chapter 307 - 307. 시작과 끝 (7)

딸랑딸랑-

편의점 문에 기본적으로 달려 있는 문열림 종이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 앉아 있던 젊은 남성이 들어온 손님을 반겼다. 그는 보고 있던 낡은 폰을 황급히 멀리 치웠다.

"현우야, 뭐 마실래? 오늘은 누나가 쏜다!"

"나는 그냥 아무거나."

나와 누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대충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곧장 진열대로 향했다. 약간 후덥지근한 외부와 달리 편의점 내부는 시원했다. 진열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냉기 덕분일까.

"또 한대 맞기 전에 제대로 말해. 내 사전에 아무거나라는 단어는 없어."

성의없는 내 답에 주먹을 들어 올린 누나. 그녀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며 답을 재촉했다.

"포카리! 포카리 마실게!"

작은 주먹이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는 나였기에 나는 황급히 눈에 들어온 아무거나를 입에 담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아? 이건 괘씸죄 추가라서 맞는 거야. 다음부터는 대답 한번에 잘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기어코 매콤한 주먹을 날렸다.

"컥!"

나는 욱신거리는 배를 움켜쥐었다. 운동도 안 하는 주제에 아픈 곳을 어떻게 이렇게 잘 찾아 때리는 건지 모르겠다. 저 주먹꾼을 누가 데려갈 수나 있을까.

"뭐. 한대 더 맞고 싶다고?"

내 불퉁한 시선을 눈치챈 누나는 야무지게 쥔 주먹을 휘휘 휘둘렀다.

"아니야···."

나는 곧장 꼬리를 내렸다.

이윽고.

"자, 괜히 뒤적거리지 말고 바로 앞에 있는 거 가져가."

"아, 내가 알아서 좀 하게 내버려 둬. 뒤에 있는 게 더 차갑다고."

우리는 냉장고 앞에 나란히 서서 각자 마실 음료수를 고르기 시작했다.

"아잇!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저리 가라고 했다."

"어어? 너 누나 밀어? 어어어? ···꺅!"

그리 강하게 밀지도 않았는데, 계속 뒤로 밀리던 누나는 근처에 있던 아이 하나를 밀치게 되었다.

"으앙!"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한 아이가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낡은 옷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헉! 괜찮니?"

누나는 황급히 몸을 숙여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혹여나 다칠까 조심스러운 손길로.

"······저는 괜찮아요!"

카운터 쪽을 잠시 바라본 아이는 벌떡 일어났고, 도도도 달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주 잽싼 달리기에 누나는 아이를 잡지도 못하고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마음에 드는 캔을 찾은 내가 한 말에 누나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고, 눈치 없이 행동한 나는 매를 번 대가를 몸으로 겪었다.

욱신거리는 부위를 매만진 나는 살짝 의기소침해진 누나를 데리고 카운터로 이동했다. 카운터에는 아까 본 어린아이와 젊은 남성이 같이 서 있었다.

"어? 꼬마야! 아까는 안 다쳤니? 정말 미안해. 언니가 미처 못 봤어."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다."

누나는 아이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나와 누나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아까 실수로 부딪혔거든요. 죄송합니다."

"아아, 그래서 아까 그런 소리가 난 거였구나. 은지야, 어디 다치진 않았지?"

"네에···, 아빠. 다친 곳 하나도 없어요."

재차 상태를 묻는 물음에 아이는 귀찮은 내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바이트생이 아빠이고, 옆에 같이 있는 아이가 딸인 모양이다.

삑! 삑!

아이의 대답을 들은 젊은 남성은 우리에게 괜찮다는 시선을 보낸 후, 카운터에 올려진 물건들의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이것도 같이 해주세요!"

누나는 그 모습을 보더니 카운터 밑에 마련된 젤리 매대에서 꿈틀이 젤리 한봉지를 꺼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산을 마친 아르바이트생에게 봉투는 필요 없다고 말한 누나는 아이에게 방금 계산한 젤리를 내밀었다.

"우리 꼬마 친구 이름이 은지니? 은지야, 이거 언니가 주는 선물이야.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영 미안해서. 받아줄래?"

"네···! 감사합니다···!"

우물쭈물거리며 아빠의 눈치를 보던 아이는 그의 허락에 얼굴을 환하게 만들며 누나가 내민 젤리를 받았다.

"아빠! 이거! 아빠부터 먹어요!"

은지는 누나에게 받은 젤리를 바로 뜯어 잽싸게 아르바이트생의 입에 하나 넣어주었다. 이내 아이는 자신이 먹여줬으니 자신도 먹여달라는 듯 입을 작게 벌렸고, 아이의 아빠는 피식 웃으면서 딸의 입에 젤리를 조심스럽게 넣어주었다.

화기애애한 부녀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은 나와 누나가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어?! 은지야! 아빠 합격했다! 다음달부터 출근하래!"

"조, 좋은 거에요···?"

"당연히 좋지! 은지 오늘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빠가 다 사줄게!"

"그럼 나 치킨···."

"알았어! 오늘 퇴근하고 집에 갈 때 치킨 한 마리 아니, 두 마리 사가지고 가자!"

"좋아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환호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편의점 카운터에 있는 아이와 아빠는 서로 얼싸 안은 채 함박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부녀가 참 보기 좋네. 그렇지?"

「너와 내가 만들어 낼 수 있었을 세상.」

누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싱그러움을 담은 초록빛 눈동자에 푸르른 하늘이 비쳐졌다.

나는 여전히 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웃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가 행복해하는 그 풍경을.

***

그 뒤로, 나와 누나는 그동안 놀지 못한 걸 오늘 하루만에 다 보충하려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주문한 커피 위에 올려진 휘핑크림으로 서로 장난을 치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들이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고, 시끄럽게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 옆을 괜스레 지나가 붙들려 보기도 하고, 사람을 유혹하는 델리만쥬 냄새에 넘어가려고 하는 누나를 질질 끌어당겨 막기도 하고, 다리 아프다며 칭얼거리는 누나를 업은 채 거리를 걸으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어느덧 주위는 어둑어둑해졌다. 저녁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어두워진 하늘을 대신해서 도시가 형형색색의 빛을 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아빠! 나 저거 사줘!"

한 아이가 자극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는 분식집을 보며 눈을 빛내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한테 말해. 아빠 돈 없어."

"엄마! 나 저거 사줘!"

"안 돼. 곧 저녁 먹을 거니까."

"···이잉."

엄마아빠의 손을 사이좋게 잡은 여자아이는 단호한 엄마의 대답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제 초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아이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닭꼬치를 미련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부는 그런 아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꽉 잡았다. 당연히 멈추지 않는 발걸음에 아이는 입을 더 삐죽 내밀었다.

금슬이 좋은 부부와 약간은 말괄량이인 딸로 이루어진 가족. 그들은 서로를 보면서 걸었다.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 걸려 있었다.

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내가 무심코 손을 뻗어 붙잡아 더 지켜보고 싶을 정도로.

"이제 집에 갈까?"

화목한 가족을 바라보던 누나가 물었다.

"···응."

나와 누나는 아침에 떠났던 집으로 돌아왔다. 친숙한 집 냄새가 맡아진다. 정신이 없는 아침에는 맡지 못했던 냄새가 집으로 돌아옴으로서 맡아진 것이다.

- 이게 조작된 영상이라니! 난 그런 말 못 들었소! 지금 날 무시하는 거요?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거실에 있는 TV에서 노호성이 터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침에 나갈 때 TV를 끄지 않고 나갔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켜져 있던 TV가 갑작스레 꺼졌다.

띡! 띠딕! 띡!

누군가가 전자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그건 내 착각이라는 듯 조용해졌다. 문도 열리지 않았다.

나는 멍한 얼굴로 벽면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각은 오후 6시 34분.

째깍-

초침이 움직인다.

째깍-

초침이 다시 한번 움직인다.

하지만 초침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저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나아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째깍- 째깍-

시간이 넘어가지 않았다.

쿵!

심장이 크게 박동한 순간, 한 가지 더 확실한 걸 알게 되었다.

'···꿈. 꿈이잖아.'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광경이 전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바보같이 이제서야 깨닫고 만 것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 오랜만에 겪은 일상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행복한 것이 현실이 아닐 리가 없다, 내가 있는 이곳이 절대로 꿈일 리가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나는 여기에 있으면 안━'

불현듯 깨달은 사실에 이를 악물고 있을 그때.

"오늘 하루 어땠어?"

어느새 옆에 자리 잡은 누나가 내게 물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 나는···."

34분. 시간이 넘어가지 않는다.

"다들 행복해 보였지? 너도 행복했니?"

34분. 여전히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응."

나는 점점 목이 메어 오는 느낌에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꾹 다물었다. 누나의 말대로 오늘 내가 본 풍경 중에서 행복하지 않은 풍경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도.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금쯤은 쉬어도 되련만."

누나 아니, 그것은 무어라 입을 열지 못하는 나를 품에 안았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전부 알고 있다는 행동이었다.

"여기에 남아 있으면 너는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슬퍼하지 않아도 돼.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아파하지 않아도 돼."

"······."

"바깥을 봐봐. 사람들이 돌아다녀. 모두가 함께 웃으면서 어울리고 있어.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야. 나와 함께 여기서 살자. 영원히."

"······."

"너한테는 오만할 자격이 있거든. 내가 너에게 곁에 있어도 된다는 걸 허락했으니까. 그러니 너는 다른 것과 달리 오만할 자격이 있단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네가 나를 버리기 전까지의 이야기지만 말이야. 그래도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게. 잠시의 자유를 줄게.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지만이라도. 이게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자비야."

네가 원하는 걸 가져. 가질 수 있는 건 모조리.

네가 원하는만큼 꿈을 마음대로 해. 신경 쓰지 말고.

대신 내게 조각을 돌려줘. 나는 그거면 돼.

"······."

「여기서는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해. 그러니까.」

그것의 말이 이어질수록 나는 감싸 안은 그 품이 너무나 포근해서, 계속 그 품에 기대고 싶어서, 떨리는 몸으로 달라붙었다.

그런 나를 완전히 옭아매기 위함일까. 바닥에서 이질적으로 자라나고 있는 넝쿨이 서서히 내 몸을 타고 기어오른다.

그리고.

「이제 하나가 되자.」

악의를 품은 손길이 내 심장 속 조각이 있는 곳으로 스멀스멀 기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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