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4 - 314. 길 (2)
내가 비틀거리다가 기어코 균형을 잃어 털썩 주저앉았을 때.
"현우씨!"
차량에서 내린 한세아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녀는 혹시나 아직 상황이 전부 끝나지 않았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주변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어깨에 소총 한 자루를 매고서.
다행히 공격이 빗나가 살아남은 나무 인간 변종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재만이 흩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변종들은 전부, 콜록! 처리했습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리 말했으나,
"지금 그게 문제예요?!"
돌아오는 답이 매서웠다.
"왜 혼자 무리한 거냐구요···. 왜······."
입술을 짓씹은 한세아는 나를 부축하면서 원망스레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원망은 이내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던가, 피를 토하는 모습에 또 누구를 잃는 줄 알았다던가하는 그런 말들.
많이 불안해하는 그녀를 달래는 건 내 몫이었다.
이윽고.
쿵!
나는 한세아의 도움을 받아 픽업 트럭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한세아는 조수석에, 나는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조수석에 앉은 한세아는 나를 잠시 걱정스레 바라보다가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운전석에 앉은 최미소와 함께 앞으로 이동해야 할 경로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동시에.
부르릉-
차량은 멈춰 있을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천천히 속도를 내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일단락되었으니 그녀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촤자자자작-
타이어에 각종 잔해가 깔리며 말려 들어가는 소리가 차량 내부를 빙빙 돌다가 사라진다.
"오빠···!"
뒷좌석에 있던 예린이 안으로 들어온 나를 보고 반색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상의를 물들인 피를 보더니 다급하게 마른 천을 꺼내 들었다.
지혈을 하기 위함일까. 작은 손을 꼭 쥔 것을 보니 내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줄 안 모양이다.
"괜찮아. 마른 거 말고 거기에 물 좀 적셔서 줄래? 뭘 하더라도 그 전에 얼굴이랑 몸 좀 닦아야 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어요! 제가 닦아줄게요!"
수건을 받기 위해 팔을 뻗었다가 느껴지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린 나를 본 예린은 내 팔을 밀어내며 다가왔다. 아이는 귀와 꼬리를 축 늘어트린 채 꼼꼼히 굳은 피를 떼어내거나 흙알갱이들이 붙은 피부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빠."
"응?"
"아프지 마요···. 아픈 사람이 더 늘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옷에 가려져 있던 상처. 가시가 박혀 들어가서 생긴 부상을 본 예린이 한 말이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으나, 우는 것처럼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응."
나는 구태여 말을 덧붙이는 것보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선택했다. 아이의 울적한 시선이 기절한 지수를 향해 있는 걸 본 까닭이다.
"지수는 금방 나을 거야. 나도 그렇고."
그리 말하면서 예린의 축 늘어진 귀를 펴주었다. 지수는 어느새 새 옷으로 갈아입혀졌고, 간단하게 응급처치가 끝난 상태였다.
그녀의 목걸이에서 나온 푸른 입자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입자가 몸의 회복을 돕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심장이 무리를 한 탓에 입자가 생성되는 속도가 시원치 않았지만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부상이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빠, 이제 됐어요. 많이 아프면 약 먹을래요···? 진통제랑 물 다 있는데···."
"아냐, 그건 괜찮아. 안 먹어도 돼."
급한 대로 연고와 붕대로 상처를 틀어막았을 때.
"치료 끝났으면 속도 좀 더 올릴게요, 현우씨. 비가 오기 전에 최대한 멀리 가야 하니까."
백 미러로 나를 보고 있던 최미소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가는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눈물이 거칠게 닦이면서 생긴 자국이었다.
"후우···, 네. 부탁하겠습니다."
곧장 고개를 끄덕인 나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 푸르렀던 하늘 끝자락에서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쿠르릉······
구름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먹구름들. 대기에 메아리치는 천둥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 행위다.
아직는 경계선 바깥에 있는 괴물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거리를 점령하기 전에 최대한 앞으로 가야 하고, 무사히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지렁이 변종이 모습을 드러내었던 금천 소방에서 거리를 충분히 벌리고 나서야, 세계수가 있는 남산까지 거리를 최대한 좁히고 나서야, 외부의 위험을 막아줄 장소를 찾고 나서야,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나와 최미소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현재 상황에 필요한 말만 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걸까.
아니면···.
부아아앙-
내 심경이 복잡한 것에 상관없이 차량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현재 우리가 있는 위치는 남부순환로 한복판. 4차선으로 이루어진 도로인 덕분에 차량이 지나갈 공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수록 도로 곳곳에 방치된 전차와 흔히 두돈반이라 부르는 군용 트럭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중앙선 위에 설치된 가드레일을 깔아뭉갠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량들 사이의 공간으로 지나갈만 했다. 골목길이었으면 아예 나아가지를 못 했겠지.
휘이이이잉···
도시를 잠식하고 있었던 안개는 어느덧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시야를 가리고 있던 안개가 사라지자 흉한 도시의 몰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상단부가 사라진 건물, 그사이로 드러난 철골, 바람에 나부끼는 호로, 움푹 파인 아스팔트,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콘크리트 조각, 벗겨진 건물 외벽.
그리고 어두운 곳을 향해 빛을 난반사시키는 날카롭게 깨진 유리창.
마치 여기도 보라면서 아무것도 없는 건물 내부를 비추고 있는 유리 조각의 행태에 눈을 감고 말았다.
눈을 다시 뜨니 보이는 건 건물 중간에 처박힌 헬기였다. 꼬리 프로펠러만 간신히 내놓고 있는 헬기는 조종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툭 튀어나온 쇠 파이프에 걸린 헬멧이 애처롭게 흔들린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번에 보이는 건 3차선으로 좁아진 도로였다. 도로 경계선인 하얀 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스팔트 위가 갈려 있었다.
그렇게 좁아진 도로는 점점 위로 올라가더니 양측에 줄지어 세워진 건물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시작했다.
[가리봉 철도 고가]
땅에 박혀 홀로 우뚝 서 있는 가로등에 붙어 있는 초록 배경의 표지판이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우측에는 우후죽순 세워진 낡은 빌라 건물들이, 좌측에는 높게 세워진 빌딩들이 있었다.
마치 고가 도로가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그 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이 목적지까지 가는 험난한 길이 되었든, 우리 사이에 풀리지 않은 대화들이 속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든 간에 상관없이.
"···조금 흔들려요. 손잡이 잡고 있어요."
전방의 상태를 확인한 최미소가 한 말에 나, 예린, 한세아는 보조 손잡이를 잡았다. 지수와 지안이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 그들은 아직도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쿵!
급격하게 앞으로 쏠리는 느낌과 함께 차량이 앞으로 기울었고,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철도 위를 가로지르는 고가 도로가 끊어진 상태라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쿵! 기기긱-
내려가는 기울기를 가늠해 보니 도로가 끊어진 것이 아닌 다리를 지탱하는 하단 기둥이 균형을 잃고 쓰러진 듯했다.
커다란 기둥이 넘어졌다면 위에 올려진 도로판이 기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그래도 그 덕분에 멀리 돌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지금까지 이동한 거리는 대략 4km 정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희소식은 없지 않은가.
쿵!
그렇게 1호선 철도 위로 내려온 픽업 트럭이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트렁크에 실린 푸른 수정도 크게 흔들렸으나, 다행히 고정이 풀리지는 않았다.
"···다들 다친 곳은 없죠?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언니, 힘들면 이제 제가 교대━"
"아니. 내가 계속 운전할게, 세아야. ···뭐라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알았어요."
한세아는 한숨을 겨우 참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그녀는 이내 최미소에게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길목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철도 위에는 형형색색의 컨테이너들이 올려진 평판차들이 있었고, 일부 컨테이너는 거대한 무언가에게 밟힌 것처럼 납작해진 것들이 있기도 했다.
그것들 대부분은 선로를 이탈한 상태였기에 차량이 지나갈 틈을 잘 찾아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멈춰야 할까.'
영등포역? 신길역?
모르겠다.
비가 온다면 영등포에 도착하기 전에 숨을 곳을 찾아야 할 것이고, 비가 오지 않는다면 당초 예상보다 더 멀리까지 갈 수도 있겠지.
모든 것들이 애매한 상황 속에서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우리는 다음 도착지인 구로역을 향해서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전 역을 뒤로한 채,
다음 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