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6 - 316. 길 (4)
지수가 차량에서 뛰쳐나간 직후,
덜컹!
휘이이이잉!
픽업 트럭이 지수의 도움 닫기에 의해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어찌나 빨리 뛰쳐나갔는지 순간적으로 강한 돌풍이 불 정도였다. 파지직 튀는 스파크는 덤이었다.
"지수야! 이런 씹! 세아 씨! 일단 여기서 대기하십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오지 마세요!"
나는 눈 깜빡할 새에 멀어진 지수를 다급하게 부르다가 이럴 시간조차 없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홀로 급발진한 지수가 걱정되었던 까닭이다.
그녀를 혼자 나가게 둘 순 없지 않은가.
"아, 알았어요!"
한세아는 소총을 집어 들며 알았다는 뜻으로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미소는 지안이를 품에 묻어 아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오빠! 조심해요···!"
예린은 푸른 가루가 든 유리병을 꼭 쥐었다. 언제든지 가루를 뿌려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함인 모양이다.
덜컹!
타탓! 타타탓-
나는 그녀들에게 답을 주지도 못한 채 차량에서 튀어 나갔다. 뭐라 말을 해주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나가는 게 지수를 위한 길이었으니까.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멀찍이 달려 나가는 지수와 그녀를 보며 당황한 군인들이 보인다. 군인들은 여전히 엉거주춤한 자세로 지수에게 수하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어어? 저, 정지! 정지! 움직이면━!"
선두의 군인이 지수에게 멈추라는 말과 함께 총구를 겨누려고 했으나, 멈춘 것은 그가 하는 말과 총구였다.
깡!
잔상을 남기며 몸을 움직이는 지수가 총구가 자신을 완전히 겨누는 것보다 몇 박자나 더 빠르게 도끼날 옆면으로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방탄모와 부딪힌 묵직한 도끼날에서는 이상하게도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게 선두의 군인이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을 것이다. 정통으로 한대 얻어맞은 군인은 으겍, 하는 꼴사나운 비명과 기절하고 말았으니까.
"미친."
부사수처럼 보이는 앳된 군인은 자기 사수가 기절하자 입을 작게 벌렸다.
그는 전우를 무자비하게 기절시킨 도끼가 이내 자신을 향하니,
"하, 항복! 살려주세요!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악!"
곧바로 총을 내려놓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릎도 꿇었다.
"헉- 허억-."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후였다. 최대한 빨리 움직인다고 움직인 건데, 지수가 상황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느렸던 것이다.
탁!
촤르륵-
내가 다가온 것을 흘깃 본 지수는 바닥에 내려놓은 총을 발로 찼다. 그러자 K2C1이라 불리는 총이 자갈밭 위를 긁으면서 멀어졌다.
"제압 완료! 어디서 멈추지 않으면 쏜다느니 뭐니 하는 무서운 말을 하고 있어? 확 죽을라고."
"히익!"
지수가 도끼로 바닥을 찍으며 으름장을 놓으니 군인은 양팔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군인답지 않게 심성이 매우 유약한 모양이다.
"지수야, 이게 대체 뭔···. 왜 이렇게 성급하게 행동했어? 그러다가 다쳤으면 어떡하려고!"
"이것들이 우리 안 멈추면 쏜다고 그러잖아. 우리 차에 아기도 있는데 진짜로 총 쏘면 어떡해?"
군인들이 시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하에 의해 벌어진 일. 실제로 위협을 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상관없이 위협감을 느낀 지수가 움직인 것이었다.
"이 사람들이 끝이 아닐 수도 있잖아. 주변에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는데 맨몸으로 나가는 건 좀 성급했다는 이야기야."
당장 눈앞에 보인 군인들은 두 명뿐이었지만, 이 주변에 또 다른 군인들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두 명의 군인을 제압한다고 해도 그게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었고,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 잘못했어?"
고개를 갸웃하는 지수. 그녀는 내 대답 여하에 따라 귀를 축 늘어트리거나 꼬리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잘했어."
이어지는 내 대답에 꼬리를 붕붕 돌리는 지수였다.
'주변에 사람이 숨어 있다면 지수가 진작에 알아차렸겠지.'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몸부터 움직인 건 아니리라 믿었다.
"······근데 이 사람 죽인 건 아니지?"
나는 미동도 없는 군인을 내려다보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방탄모는 쪼개지지 않았다.
"안 죽었어! 안 죽었···을 걸? 응, 아직 안 죽었네! 숨 쉬고 있어. 그냥 기절만 한 거야!"
지수는 그 군인을 유심히 살피면서 말했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는 부사수가 기절한 사수를 보며 불쌍한 시선을 보내는 일이 있었지만, 고개 돌리라는 지수의 일갈에 그는 얌전히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지수와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지수가 제압한 군인들을 포박하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고,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이제 손 내리고, 뒤로 내미십쇼."
나는 지수와 함께 벨트 가방에서 꺼낸 밧줄로 군인들을 묶기 시작했다. 예전에 군대에서 배웠던 포승줄 묶기. 이걸 군인한테 쓸 줄은 몰랐다.
꽈악-
장난식으로 어설프게 묶었던 그때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일행의 안전을 위해 제대로 묶었다.
지금 내가 묶은 사람들이 진짜 군인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고 있는 상황.
만약 이들이 단순히 군복만 입고 있는 것이 아닌 정말로 국군이라면 우리는 더욱 이들을 경계해야만 했다.
특히 이런 세상에서는 말이다.
살아남은 군인들이 있다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다는 것은 분명 희소식이다. 허나, 그것이 군인이라면 경계심은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비록 총을 자유롭게 쏠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긴 해도 이들이 무장 집단이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군인.
그들의 의무는 국민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는 것.
하지만 주변에는 국민의 일부만 남아 있을 뿐, 국가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정부 기관이나 명령 체계를 유지하는 상부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군인들이 악하게 변했을지 누가 아는가.
미안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우리의 불안감을 느꼈는지 군인도 순순히 협조하는 모양새였다.
"아악! 조금만 살살 묶어 주십쇼···! 제가 습관성 탈구가 있어서···! 부탁합니다···!"
······아닌가 보다.
***
"현우씨, 이 사람들 뭐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요?"
군인들의 짐을 뒤지고 있던 한세아가 한 말이었다. 그녀는 군복 주머니나 그들이 매고 있던 작은 가방을 탈탈 털었다.
나온 건 한세아의 말대로 정말 별것 없었다. 그저 잘게 부서진 건빵이나 스틱 설탕 3개, 닭가슴살 통조림 2개, 생수 4병 정도가 끝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탄창에도 총알이 몇 발 들어 있지도 않았다. 약실에 한 발, 탄창에 한 발. 그렇게 단 두 발. 그 이상은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영등포 롯데 백화점 아래에 있던 군인들이 가지고 있는 짐이라고 치기에는 매우 초라한 수준이었다.
"일단 다 챙겨 주십쇼, 세아씨.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된 거 어쩌겠습니까."
나는 한세아에게 군인들의 짐을 챙기라는 말을 전한 다음 옆을 바라보았다.
현재 픽업 트럭의 운전석에는 다시 최미소가 앉아 있는 상태였다. 예린이는 조수석에 앉아 지안이를 꼭 안고 있었다.
지수와 내가 군인들을 제압한 직후, 내 신호를 받은 그녀가 차를 이끌고 승강장이 있는 곳 근처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 불안했지만, 이러는 수밖에 없었다.
후두둑- 후두둑-
서서히 비까지 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외부에 그대로 둘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정말 당신들이 끝이라고요? 이 근처에 더 없는 거 확실해요?"
지수는 어느새 눈을 뜬 군인을 심문하고 있었다.
머리를 맞고 기절했었던 군인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완전히 털려 버린 자신들을 보며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외부로 나온 인원은 저희가 끝입니다."
"그럼 어딘가에 다른 군인들이 더 있다는 거네요."
"저희들이 지내는 벙커에 있습니다. 혹시 세마 벙커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저 앞에 있는 여의도에 있는 건데."
인식표에 최명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던 군인은 지수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처음부터 묘하게 협조적인 태도가 이상해서 그 부분을 지적하니, 군인들은 대답 대신 나를 빤히 바라보았었다. 내 생김새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찾던 사람과 유사하게 생겼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러나 그들의 말을 증명하는 물건이 없으니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군인들을 믿기에는 그들과 처음 조우했을 때 느껴졌던 긴장감이 아직 식지 않았던 탓이었다.
- 아! 저희 짐에 당신 얼굴이 그려진 몽타주가 있을 겁니다! 한번 확인해 보십쇼! 정말입니다!
이어진 최명철의 말에 짐을 한 번 더 확인했으나, 그런 건 나오지 않았었다. 그리고 가만히 눈치를 보던 부사수가 입을 연 것이 그때였었다.
오늘 벙커에서 나왔을 때 까먹고 챙겨 오지 않았다는 부사수의 말에 말문이 턱 막힌 표정이 된 최명철. 이내 그의 이마에는 혈관이 돋아났고, 그는 말없이 시선으로 부사수에게 온갖 욕을 날려댔다.
인식표도 두고 온 부사수가 깨갱하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지금 지수가 군인들을 계속 심문하는 것이 현 상황.
'···믿기 힘들지만 나를 알고 있는 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찾고 있었다는 건 무슨 이유일까.
여러 가지 가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고, 그중 정답일 확률이 가장 큰 가정은 군인들이 연구소 관련 인물인 나를 찾아다녔다는 것이었다.
서울에 도착해, 남산 연구소로 진입하려던 군인들이라면 졸린사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었을 테니까.
군인들이 바보도 아니고 여기까지 도착했으면 이미 여러 정보들을 알고, 얻었지 않겠는가.
내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저기요. 총알 더 없어요? 이 정도면 뭘 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자진납세하면 봐 줄 테니까 숨기지 말고 말해요."
한세아는 지수에게 총알 냄새를 맡게 해서 군인들이 꽁꽁 숨겨둔 총알을 더 찾으려는 한편, 고개를 돌려 최명철에게 물었다.
"그게 끝입니다. 숨기는 것도 없어요. 어차피 두 발 이상은 못 쏘거든요. 연발로 당길 게 아니라면요. 하나는 제 머리에, 나머지 하나는 제 부사수 머리에. 그렇게 두 발입니다. ······산 채로 물어뜯기는 것보다 머리에 한 발 쏘는 게 덜 아플 테니까."
- 뭐, 도망도 칠 수 없이 총을 쏴야 하는 시점이라면 뭘 해도 이미 늦었겠지만 말입니다.
최명철은 그리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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