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24화 (325/497)

Chapter 324 - 324. 길 (11)

"입 벌려 봐. 혀 세게 씹었어?"

나는 지수의 얼굴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렸다.

현재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 군인들이 탄 픽업트럭은 계단을 타고 다리 위로 올라온 상황.

다만, 그 과정에서 지수가 혀를 살짝 씹은 것 같아 잠시 차량을 정차하고 상태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으움, 살짝."

무어라 웅얼거리는 지수. 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프기는 아픈지 울상을 짓는 지수였다.

"그러게 가만히 있지 왜 입을 열고 그래? 차가 그렇게 흔들리는데."

"······."

지수는 말없이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소 언니가 약속을 안 지켰잖아, 말하면 차가 멈출 줄 알았는데 안 멈추고 오히려 더 빨리 움직였잖아. 잘못한 건 미소 언니인데 나한테 뭐라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같은 말을 시선으로 전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보란 듯이 정수리에 난 혹을 가리켰다. 쫑긋거리는 귀 사이에 작은 혹이 뾱 튀어나와 있었다. 천장에 세게 부딪치며 생긴 흔적이었다.

"···상태 괜찮습니다. 다친 사람 없어요. 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미소 씨. ···그, 이번에는 진짜 천천히 부탁드립니다."

나는 지수를 달래며 운전석에 있는 최미소에게 말했다. 혹 정도는 푸른 입자가 금방 가라앉혀 줄 것이고, 트렁크에 실린 짐도 떨어지지 않았으니 다시 출발할 차례였다.

최명철과 그의 부사수도 괜찮아 보였다. 얼굴 안색이 살짝 안 좋아지기만 했을 뿐.

"알았어요. 이번에는 진짜 조심히 가 볼게요."

최미소는 여전히 거세게 내리는 폭우가 시야를 가리고 있는 풍경을 보며 가속 페달을 살며시 밟았다.

쏴아아아아아-

부르릉···

요란한 빗소리 사이사이에 달달 떨리는 엔진음이 섞여 들린다. 차량은 비의 폭격을 뚫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리의 폭은 픽업 트럭이 지나가기에 충분했다. 일반적인 도로와 비슷한 폭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문제는,

덜덜덜덜덜-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진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게 엔진에 의해 차체가 흔들리는 것인지, 다리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 나무판자가 흔들리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잔진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다리가 폭삭 주저앉지는 않겠지."

보조 손잡이를 꽉 잡은 지수가 중얼거렸다. 물어본 말인지 혼잣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어··· 아마도?"

"뒤에 있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말 아니예요?"

"예, 괜찮을 겁니다."

"···늦었잖아요. 이미 말해 놓고선."

지수의 원망스러운 말에 최명철은 조용히 머리를 손으로 가렸다. 사수와 부사수는 서로 닮는다고 하던데 가만 보니 둘이 닮은 구석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도끼는 내려놓고 가만히 있어, 지수야. 금방 건너갈 수 있을 거야. 엄청 긴 다리는 아니라서."

나는 여차하면 도끼로 창문을 깨고 탈출하거나 최명철의 머리를 깰 준비를 마친 지수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면서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쏴아아아아-

후두둑- 후두둑-

한강. 정확히는 샛강의 수면 위에는 굵은 빗줄기에 의해 수많은 파문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었다. 원형으로 퍼지는 파문들은 빗방울이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 오를 때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샛강은 기본적으로 수위가 낮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내가 보고 있는 샛강의 풍경은 예전과 크게 달랐다.

어제 오후부터 내린 폭우에 의해 한강물의 수위가 크게 높아진 상태였던 까닭이다. 한강이 범람하기 일보 직전인 아니, 범람한 것과 다름없는 탓에 문화 다리 아래쪽에 있는 올림픽 대로가 잠겨 있기도 했다.

한강 물 자체는 깨끗하게 변했다고 할 수 있었으나 물살이 수면의 위아래를 바꾸면서 색이 어두웠다. 밑바닥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그치지 않고 더 많이 오고 있으니 앞으로 수위는 더 높아지겠지.

철썩-

거센 물살로 인해 발생한 흙탕물이 와류에 의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팍, 튀어 오른다. 금이 쩍쩍 갈라진 올림픽대로 위를 덮었다가 스르륵 물러났다가 다시 덮기를 반복했다.

촤르르-

금이 간 아스팔트 도로의 틈을 채우는 흙탕물은 얼핏 죽은 혈관이 넓게 퍼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덜덜 떨리는 다리, 휘청거리는 철선, 삐걱거리는 나무판자, 휘어진 난간, 판자를 파고든 넝쿨, 산산조각 난 조명, 흉하게 변한 조형물.

그리고 점점 다리와 가까워지는 한강.

그런 불안한 풍경 속에서도 차량은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근데 여기 다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 이 다리가 거의 유일한 다리라면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경계인원들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예요?"

나는 다리의 중반에 다다르자 보이는 갈림길을 보며 군인들에게 물었다. 아무리 벙커가 있다고는 해도 외부를 감시하는 인원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 의견이 종종 나오기는 했지만···. 장벽을 지키는 것도 벅찬 게 현실이라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괜히 어설프게 인원을 빼면 여기저기 구멍이 생긴다면서요. 아, 저기 그, 최미소 씨. 저기 오른쪽 갈림길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왼쪽은 계단이라 차량이 못 내려갑니다. 폭이 좁기도 하고요."

최명철의 말에 차량은 자연스럽게 조금 우측으로 틀어졌고, 이내 오른쪽으로 휘어진 다리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지수, 예린, 부사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덤이었다.

드르르르륵-

픽업트럭이 울퉁불퉁하게 솟은 나무판자들을 짓누르며 나아가는 사이에 최명철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의도 세마 벙커를 둘러싼 반경 300미터 정도인 컨테이너 장벽. 여의도 공원을 포함하는 범위라도 제대로 지키자는 연대장의 의견에 다리를 지키는 인원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서로 통신할 수 있는 장비도 모자란다는 말과 함께.

'물자보다 인원 부족 문제가 크다라···.'

그리고 그의 설명을 들은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더 벙커 상황이 열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쿵!

차량은 낮은 턱을 지나 보도 블록 위로 내려오게 되었다. 무사히 다리를 건넌 것이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시고 여의대로쪽에 진입하시면 됩니다. 거기서 직진하면 장벽이 보일 겁니다. 얌마, 부사수! 이제 정신 차리고 있어. 곧 정문에 도착할 테니까."

"끄응···, 알겠습니다."

"저희는 다른 군인들한테 뭐라고 말하면 돼요? 다리는 없다고 쳐도 문 앞에는 있을 거 아니예요?"

살짝 칭얼거리려는 지안이를 달래던 한세아. 그녀가 백 미러로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음···. 다짜고짜 총을 쏘지는 않을 겁니다. 초반에는 경계가 심할 수도 있는데, 뭐 괜찮습니다. 수하만 잘 따르시면 됩니다."

최명철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다짜고짜 경계병의 머리만 깨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전했다. 그의 시선은 모호하게 지수를 향해 있었다.

"뭐예요. 눈 안 치워요?"

지수는 몸을 살짝 움찔한 것도 잠시, 묘한 시선을 보내는 최명철에게 눈을 부라렸다.

"······."

그는 괜스레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건 장담할 수 없네요. 일단 벙커로 간다고 말은 했지만, 그 뒤는 그곳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결정할 일인 것 같으니까. 야속하게 들리더라도 이해해주십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군인들이 부탁한 것처럼 무작정 도끼부터 들진 않겠으나 도착한 후의 상황이 어찌될지 판단할 수가 없으니 경계는 계속해야 했다. 아직 군인들의 포박을 풀어 주지 않은 것도 그런 연유였다.

아직 완전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군인들이나 난쟁이라 불리는 이들이 우리를 정확히는 나를 기다려왔다고 해도 지금은 또 모르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니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었다.

'연구소쪽 주변 상황이 생각보다 더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군인들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기는 하지만···.'

여차하면 바로 차량을 돌리자는 신호를 최미소에게 보낸 나는 지수, 한세아와 함께 전방을 주시했다. 최대한 빨리 경계병을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콰콰콰-

빗물이 살짝 기울어진 고층 빌딩의 표면을 타고 흐른다. 한때 화려 했을 것이 분명한 유리 빌딩은 흉하게 변한 상태. 쉴 새 없이 쏟아 붓는 빗줄기마저도 그 흉함을 가려주지 못했다.

<←영등포역 ↑국회의사당 마포대교→>

표지판이 대롱거리는 사거리에 도착한 것과 동시에 저 멀리 컨테이너로 이루어진 벽이 보였다.

<우리는━>

파랑과 빨강으로 이루어진 컨테이너 벽에는 어떤 문구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는데, 아직 거리가 멀고, 넝쿨들이 가리고 있는 터라 잘 보이진 않았다.

조금 더 앞으로 가야 보일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글자를 충분히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컨테이너 근처에 설치된 임시 초소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한 글자씩 보이던 문구가 무엇인지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것이 엉망으로 변한 컨테이너 장벽에 쓰인 문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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