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26화 (327/497)

Chapter 326 - 326. 길 (13)

"응? 왜 말이 없어!"

키가 작은 남성. 수염이 얼굴 선을 타고 나 있는 탓에 꼬장꼬장해 보이는 그는 오래도록 나를 알았던 것처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예요! 우리 아저씨한테서 손 떼요!"

순간 할 말을 잃은 나와 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다가온 지수가 경계하며 그를 밀어내자 남성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수가 자신을 직접 밀어낸 것보다 내가 지수에게 동조해 자신을 밀어낸 것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저기, 그, 제가 기억이 온전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안한 말이지만, 조금 부담스럽네요. 갑자기 다가오시는 거요."

나는 몸을 살짝 뒤로 물리며 말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난쟁이는 예전에 칼카타가 보여 주었던 사진 속 난쟁이였다.

정확히는 나, 칼카타, 난쟁이 순으로 찍혀 있는 사진에서 내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인연이니 현재 내가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

꼬장꼬장해 보이는 난쟁이는 내 말에 2차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옆에 얌전히 서 있던 다른 난쟁이에게 머리를 기댔으니까.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나, 칸. 상태가 멀쩡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머리든 몸이든 멀쩡했다면 진작에 이곳에 왔었겠지."

"···현우만큼은 괜찮을 거라고 믿었건만······."

"그래도 뭐,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그 난쟁이는 실의에 빠져 중얼거리는 난쟁이 칸을 달랬다. 이번에는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보게, 현우. 음···. 막상 이렇게 보게 되니 말문이 막히는구만. 아무튼 간에, 잘 돌아왔다. 나머지 이야기는 연대장 자네가 해주게. 나는 이 친구 데리고 돌아가야 할 것 같으니. 보수 작업도 마저 이어서 해야 하고."

자기 이름을 '조이'라고 알려 준 그는 악수를 건네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가까이 오면 부담스럽다는 내 말을 떠올렸는지 멋쩍게 손을 회수했다.

"자자. 정신 차리고 똑바로 걷게, 칸. 할 일이 산더미란 말일세. 빨리 끝내고 현우에게 줄 방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난쟁이 조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뭐라 계속 중얼거리는 난쟁이 칸을 데리고 가며 복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내 빗줄기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여전히 발을 내딛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는 벌써 저만치 멀어진 난쟁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짧은 만남이었건만, 왜 이리 피곤한지.

바로 그때.

"허, 어르신들 반응 보니까 저희가 그동안 찾던 분이 맞긴 한 것 같군요. 비가 이렇게 오는데 여기서 그대로 두는 건 좀 아니기도 하고, 나중에 어르신들에게 잔소리도 들을 것 같으니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니, 말을 잘못했네요.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흘러가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연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경계병들에게 문을 개방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한편, 우리의 의견을 물었다.

"저희는···."

나는 말을 늘리면서 차 안의 일행들을 살펴보았다.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의 얼굴에는 아직 긴장감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고, 최명철과 그의 부사수는 우리와 연대장 사이에 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였다.

그들은 내 의견을 따르겠다는 듯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쏴아아아아-

거센 폭우가 컨테이너와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콰콰콰-

유리창이 모조리 깨져 나가 건물의 뼈대가 고스란히 보이는 곳에서 생성된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우리를 응시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고 있는 중이었다. 지수와 한세아도 똑같이 느낀 듯 내게 작은 신호를 보냈다.

"음, 최명철씨. 부사수 데리고 내리세요."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예? 내리라고요?"

"네, 손목도 풀어 줄 테니까 내리시고, 연대장님이라고 하셨죠? 대신 차에 타십쇼."

내 신호를 받은 지수가 최명철과 그의 부사수의 손목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 주었고, 곧장 문을 열었다. 얼른 나가라는 뜻이었다.

"어··· 하지만."

연대장의 눈치를 보며 뭐라 말을 하려던 최명철은,

"지금 안 내리면 기절한 상태에서 내리게 될 텐데, 그러고 싶어요?"

지수가 도끼를 들려는 시늉을 하자 부사수를 데리고 부리나케 내렸다. 그를 받아 준 것은 연대장 옆에 있던 군인이었다. 그 군인은 가방에서 판초 우의 두벌을 꺼내 그들에게 내밀었다.

"무사 복귀 축하드립니다, 최 상병님. 근데 총기는 왜 안 가져오십니까?"

"······이제 내 거 아니라서."

자유를 얻은 손을 이리저리 돌리며 속이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명철과 그의 부사수. 그들의 표정은 오래가지도 못했다.

"에휴. 사수나 부사수나 쌍으로···. 다른 건 몰라도 나중에 총기만큼은 받아오십쇼. 연대장님! 인원 데리고 벙커로 복귀합니까?"

"어어, 가라. 오늘 비번인데 수고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군인은 연대장을 대답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물었다. 이대로 자신이 최명철과 그의 부사수를 데리고 가면 이 자리에 남는 건 연대장 혼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비록 김현민과 대식이라 불린 경계병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정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 사실상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괜찮아. 가서 쉬어."

"예."

그는 연대장에게 한차례 경례를 했고, 연대장이 손을 휘적거리며 어서 가라는 손짓을 받은 후에야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어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듯 말소리가 잠시 들리다가 멀어진다.

"타세요. 시트는 젖어도 괜찮으니까."

조수석 창틀에 팔을 걸친 한세아가 뒤를 가리켰다. 어느새 김현민에게 보온병을 돌려받은 그녀가 가리킨 것은 아직 열려 있는 뒷문이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피곤한 안색인 연대장은 군화를 탁탁 털더니 조심스레 차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 접이식 우산을 바깥에서 탈탈 터는 건 덤이었다.

이윽고.

쿵!

조금 강하게 닫히는 뒷문.

"대식아, 현민아. 문 개방해라. 너희 곧 교대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좀 더 고생해주고."

연대장의 지시에 의해 입구를 막고 있던 차단봉과 바리케이드들이 옆으로 움직여 길을 터줬다. 당연히 다 수동이었다.

끼리리릭-

아스팔트 홈에 박혀 있던 바퀴가 굴러가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마치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다가 풀린 느낌이었다.

"많이 시끄럽지요? 외부에서 누가 찾아온 것은 거의 처음이라 그렇습니다. 다 끝난 줄 알았었는데 말이죠."

"···전기는 아예 돌지 않는 겁니까?"

나는 차 안에 맴도는 어색한 분위기를 애써 밀어내며 물었다.

"외부까지 전력을 돌릴 정도로 푸른 수정이 충분하지가 않아서 그렇습니다. 입자는 간혹 퍼지는 파장으로 충전시킬 수 있었지만, 그 양이 너무 적어서 정말로 필요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부상을 치유하고 벙커를 유지하고 있는데에 쓰고 있다고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연대장은 완전히 개방된 정문을 보며 이제 출발해도 된다는 말을 하면서 물음에 대한 답을 덧붙였다.

부르릉···

최미소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면서 가속 페달을 살며시 밟았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차량에 의해 컨테이너 장벽 안쪽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좌측에는 평지인 여의도 공원이, 우측에는 고개를 치켜들어야 끝이 겨우 보이는 고층 빌딩들이 세워져 있었다.

다만, 그것들의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달랐다.

여의도 공원에 세워진 가건물들.

푸른 지붕과 흰색 벽으로 이루어진 건물들에는 넝쿨이 어지럽게 뒤덮고 있는 상태였다. 원래 공원에 있던 가로수들이 서로 얽혀 천연 지붕의 역할을 해주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언뜻언뜻 보이는 가건물의 문 앞에는 순찰을 돌고 있는 군인들이 있었다. 일종의 창고인 모양이다.

한때 눈부시게 햇빛을 반사했던 고층 빌딩들.

건물의 화려함을 자랑했던 유리들은 모조리 깨진 지 오래고, 그 자리에는 이끼처럼 보이는 풀과 넝쿨들이 채우고 있는 상태였다. 중간이 움푹 패여 있는 건물도 있었지만, 용케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어지간한 고층 빌딩 옥상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거목들 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건물 하단부를 뚫고 위로 솟은 나무뿌리들은 여전했다. 나무뿌리가 일종의 지지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콰콰콰-

배수구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모습에게 시선을 잠시 빼앗긴 것이 그때였고,

"좌측 가건물에는 전차, 자주포, K-6 같은 장비들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더 이상 운용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죠."

연대장이 입을 열어 그런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것이 그때였다.

그는 현재 보유하는 푸른 수정으로는 기동이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정비는 하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걸 말해 줘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또 뭐랍니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눈으로 다 보이는데."

내 물음에 연대장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눈으로 다 보인다.

각 빌딩 별로 숨어 있는 경계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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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8 팬아트

두려움을 모르는 지수 아니 강아지 변종과...

작품명: 정실 지수와 고양이 예린 입니다! [무이네]님이 그려주셨어요! 작품명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기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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