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28화 (329/497)

Chapter 328 - 328. 길 (15)

"흐읍···!"

"······아저씨, 뭐해?"

어정쩡한 자세로 손을 수정에서 떼어내려고 용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며 지수가 한 말이었다. 근처에서 예린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귀를 쫑긋거리며 다가왔다.

"아니, 이게 안 떨어져···!"

지금 내 자세가 바보 같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수정 표면에 무언가가 묻어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왜 손이 안 떨어진단 말인가.

"뭔 소리야. 어디 봐봐."

보다 못한 지수가 나를 뒤에서 힘껏 잡아당겨도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푸른 수정은,

덜컹!

자신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내며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우웅거리는 건 덤이었다.

"지수야, 이거 원래 이렇게 떠다녔던가······?"

"아니? 아닐 걸? 적어도 그때는 그 꽃이 붙잡고 있었으니까 둥둥 뜨지는 않았었지."

나와 지수는 트렁크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온 수정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웅웅웅-!

귀가 긴 소녀가 들어 있는 수정 안에서 푸른 입자가 응집되는 소리가 들렸다. 곧 파장을 멀리 퍼트릴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소리였다.

"어어? 안 돼! 그만! 멈춰!"

나는 그리 외치긴 했으나, 내 손은 갈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섣불리 손을 대었다가 그 손마저 붙는 것이 걱정되었고, 의도치 않게 연결된 부위에서 내가 가진 푸른 입자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던 까닭이다.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수정이 왜 이제 와서 난리를 치려는 건지 모르겠다.

벙커로 들어온 첫날부터 사고를 거하게 칠 수는 없으니 막기는 해야 하는데 막는 방법을 모르니 참 난감한 상황.

물론 파장이 퍼진다고 해도 위험한 일이 생기진 않을 테지만, 괜한 이목을 끄는 건 사절이었다.

웅웅-!

그런 내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수정은 파장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에서 멈췄다. 정확히는 멈췄다기보다는 잠시 일시 정지를 누른 느낌에 가까웠다.

"현우씨, 지수씨. 뭐예요? 뭔 일 있어요?"

한세아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지안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최미소를 돌보고 있다가 차 안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언니! 아니, 이게 아저씨 손을 안 놔준다고 그래서···. 아저씨, 진짜 장난치는 건 아니지?"

"장난 아니라니까! 지금 수정 상태 너도 보고 있잖아."

나는 수정 중심부를 응시하며 떠듬떠듬 말했다. 수정이 흡수한 푸른 입자를 다시 내 쪽으로 끌고 오려고 했지만, 이미 제어권을 상실한 듯 내 의지에 따르지 않았다.

수정도 눈치를 보며 응집한 푸른 입자를 터트릴까 말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쏴아아아아······

기세가 조금 줄어든 빗소리가 우리 주변을 빙빙 맴돈다.

그렇게 나와 푸른 수정 사이에 미묘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을 때.

"···뭐 하느냐?"

어느새 다가온 난쟁이 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이 짧은 사이에 뭐 하냐라는 질문만 3번이 넘어가게 듣다니, 그만큼 내가 이상하게 보인다는 의미일까.

"아, 칸! 아니, 칸씨! 이거 손이 안 떨어지는데 해결 방법 아십니까?"

"오글거리게 칸씨는 무슨. 그냥 칸이라 불러라. 그리고 수정이 널 안 놓아준다고? 가만히 있어 봐라. 한번 살펴볼 테니."

코웃음을 치며 손을 휘적거린 난쟁이 칸. 그는 이내 가까이 와서 수정을 이곳저곳 살폈다. 작게는 수정 안에 들어 있는 표식부터 크게는 전체적인 수정의 모양까지.

이윽고.

"흥, 누가 꼬맹이 아니랄까 봐 고집 부리는 꼴 하고는. 고집 그만 부리고 손 놔라! 현우가 곤란해 하지 않느냐!"

난쟁이 칸은 말도 못 하는 수정에게 호통을 쳤다.

"그런다고 손이 풀릴 리가-."

나는 칸이 지었던 떨떠름한 표정을 따라 하며 말하려고 했지만 수정에게서 일어난 변화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손이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웅

꼬장꼬장한 난쟁이에게 호되게 혼난 수정은 힘없는 소리를 토해내며 내 손을 풀어 주었고, 가져갔던 입자도 되돌려주었다.

"이게 되네?"

무사히 떨어진 내 손을 보며 지수가 한 말이었다. 지수 옆에 있던 한세아는 내 손을 가져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나쁜 뜻은 없었을 거다. 그냥 많이 외로웠던 모양이야. 계속 홀로 방치해 두었나 보지?"

"둘 곳이 없어서···. 근데 저거 지금 상태에서 의식이 있는 겁니까?"

안개의 도시에 있을 때도 혼자였을 것이고, 꽃을 제거한 이후에도 홀로 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무게도 무게고 크기도 생각보다 커서 어딜 들고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은데 말이다.

"아니, 무의식이다. 흠, 꿈을 꾸고 있는 상태라고 하는 것이 옳겠군. 더 정확히는 꿈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 있다."

"꿈······."

"뭐, 됐다. 자세한 건 나중에 차차 이야기하고. 현우, 너는 어디서 지낼 테냐. 밑에 너희들이 다 같이 지낼 방을 따로 만들어 두기는 했다만."

난쟁이 칸은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 지안이 순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가 연대장이 말한 안내역인 모양이다.

"어···, 저희는 일단 이 건물에서 지내려고 하는데요."

그의 말에 답한 건 한세아였다. 그녀는 스타벅스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비록 유리가 흉하게 깨져 있기는 하지만 비바람을 피하기에는 썩 괜찮은 건물이었다.

넝쿨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도 크게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저 그러려니 할 뿐.

"왜? 여기는 난방도 안 되지 않느냐?"

"아무래도 지하로 내려가는 것보단 주변이 보이는 지상이 익숙해서요···?"

"별달리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직 결정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렷다?"

"그렇죠?"

"그럼 일단 나를 따라와라. 벙커 시설을 소개해주마. 거기 현우 가족들도 따라와라. 차는 이대로 둬도 된다. 어차피 가져갈 놈들도 없어."

난쟁이 칸은 어디에서 지내든 크게 간섭은 하지 않겠지만, 기본적인 시설의 위치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를 벙커로 이끌었다.

"어어? 칸! 잠시만요! 저 수정은 이대로 두고 가요?"

나는 이번에도 홀로 두면 사고를 칠 것 같은 수정을 보며 입을 열었지만,

"저걸 들고 내려갔다간 동물원 원숭이가 될 텐데 그러고 싶으냐? 나는 상관없다만."

칸의 답에 슬그머니 의지를 꺾었다. 대신 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시선을 보내는 건 잊지 않았다.

우웅!

알겠다고 답한 건지 말썽 부리지 않을 테니 자기도 데려가라는 답을 한 건지 몰라도 한차례 소리를 울리는 수정이었다.

"예린아, 이제 이리 와! 물장구 그만치고."

"네!"

"지수야, 너는 세아씨랑 미소씨 좀 챙겨줘."

"걱정하지마셔."

나는 띄엄띄엄 흩어진 일행을 한데 그러모아 여의도 세마 벙커 앞에 집결시켰다. 밑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몰라도 한때 유리로 만들어졌던 입구는 현재 금속과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SeMA Bunker]

흡사 동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외견을 가진 벙커 입구를 보며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아래로 쭉 이어진 계단이 음침해 보인 까닭이었다. 비가 와서 하늘이 어두워진 탓일까.

"뭘 그리 굳어 있느냐. 다 사람 사는 곳이거늘."

난쟁이 칸은 앞장서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탁!

천장에 붙어 있던 전등에 불이 들어와 어두웠던 공간이 환하게 밝혀졌다.

"···여기서부터 불이 들어오네?"

계단 안전 손잡이를 잡으며 한 칸씩 신중히 내려가려던 지수가 중얼거린 말이었다.

나도 그녀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벙커 시설을 돌린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이렇게 초입부터 전등이 켜질 지는 몰랐으니까. 아무래도 벙커가 보유하는 푸른 수정이 우리 생각보다 꽤 큰 모양이다.

"일단 내려- ···세아씨, 어디 싸우러 가요?"

나는 난쟁이 칸에게 따라붙기 위해 한 발 내디뎠다가 삐끗할 뻔했다. 뒤를 잠깐 바라보았을 때 한세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총기를 2정이나 매고 있었다. 대체 어느 틈에 총기를 들고 온 것인지.

"네? 아, 그게 아니라 이거 돌려주려고요. 헌 거 주고 새것 받아오고 싶기도 하고. 저흴 무사히 벙커에 받아줬다는 건 지원해 준다는 뜻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총보다는 총알이 더 필요하기도 하구요."

"···빨리 돌려줘야겠네요."

총기 멜빵이 그녀의 가슴을 가로지르고 있어 조금 민망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기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다른 사람들이 한세아를 보지 않게 그녀 앞에 서는 것을 잊지 않은 채.

"온종일 거기 있을 거냐!"

어느새 밑에 도착한 칸이 우리를 보며 외쳤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어서 내려오라며 재촉하고 있었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칸이 새삼 더 작아 보였다.

"갑니다! 가요!"

우리는 그 말을 끝으로 계단을 내려갔고, 세마 벙커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을 취하고 있는 벙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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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누나인 메이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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