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31화 (332/497)

Chapter 331 - 331. 길 (18)

5평 남짓한 방 안에서,

웅웅-

농구공만한 크기의 푸른 수정이 진동한다. 각종 전선에 연결된 채.

수정 표면에 달라붙은 전선들의 일부는 피뢰침 같은 금속 막대기에 끼워져 있었고, 그 금속 막대기는 수정 내부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피뢰침 같은 막대기의 끝에는 푸른 입자들이 응집되어 회전하는 중이었다.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는 벙커 시설 유지에 필요한 전력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수정 내부에 절반 정도 차 있는 푸른 입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소모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오···. 이거 다른 발전기는 없고 이게 끝인가 보네요?"

나는 눈을 부시게 만드는 푸른빛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 크지 않은 방은 마치 이곳이 벙커의 심장부, 즉 가장 중요한 장소임을 알려주는 형태였다.

"그래, 이거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괜히 수정을 사용해서 기름 발전기를 돌릴 필요는 없어. 변환을 두 번 거치는 것보다 한 번만 거치는 것이 훨씬 효율이 좋으니까. 뭐, 우리가 없었다면 그렇게 했어야 했겠지만."

"대단해요!"

꼬리를 살랑거리며 눈을 반짝이는 예린. 아이는 눈을 크게 뜨며 수정 장치를 바라보았다. 지수, 한세아, 최미소, 지안이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그러느냐? 이게 기술이다."

"기술···."

"그래, 기술. 너희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인 기술. 지금 너희들이 보는 장치에 크고 작은 기술이 녹아들어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도 하나의 기술이다."

난쟁이 칸은 수정 발전기의 상태를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작은 톱니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그것을 만들 광석을 구하고, 그 광석을 구하기 위해 땅을 파고, 땅을 파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방법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얼마나 정밀하게,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따지면 딱 우리가 살아가는 삶 같지 않으냐?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스쳐 간 삶이 정하는 거니까."

"······."

"그리고 우리 난쟁이는 그런 기술을 다루는 기술자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한 사람 취급받는 거다. 그런 내가 손수 안내해주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말을 길게 하나 싶었는데, 결국은 자기 자랑이었던 모양이다. 으쓱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예. 영광입니다, 칸."

"영광입니닷···!"

가만히 있다가는 괜히 호통을 들을까 싶은 나는 서둘러 허리를 숙였다. 어느새 내 손을 잡은 예린도 눈치껏 허리를 같이 숙였다.

"허허. 뭘 이런 걸 가지고."

난쟁이 칸은 수염을 실룩거렸다. 주체가 되지 않는 입꼬리가 수염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럼 여기 엄청 중요한 곳이네요?"

주변을 휙휙 둘러본 지수가 한 말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들어온 입구를 흘깃 보며 물었다.

"그렇지. 모든 에너지를 이걸로 충당하고 있으니까. 여기가 무너지면 벙커는 죽는다. 제일 중요하니까 사람도 두지 않는 거다."

보안을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은 근처에 인원을 아무도 두지 않는 것이다라며 말을 덧붙인 난쟁이 칸. 그는 그렇기 때문에 수정을 통제할 수 있는 난쟁이들만이 출입할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들어온 입구도 칸이 능력을 쓰기 전까지는 문이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가 이곳이 입구라는 말을 해주기 전까지는 예린도 눈치채지 못했고. 단순히 출입구가 보이지 않는 것뿐만이 아닌 일종의 격리 구역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그렇구나···. 근데 이거 푸른 입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이래도 괜찮은 거 맞아요?"

이번에는 한세아가 한 말이었다. 그녀는 응집되어 소용돌이치고 있는 푸른 입자를 눈에 담았다. 천천히 소모되고 있는 미량의 푸른 입자가 공기 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어제부터 파장이 퍼지지 않아서 푸른 입자는 더 이상 충전되지 않고 있지만, 이 또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너희들이 가져온 그 꼬마 귀쟁이가 담긴 수정의 봉인을 풀면서 나오는 부산물로 충전시키면 될 일이니까."

"그 수정으로요?"

"너희들도 안에 있는 꼬맹이를 풀어 주고 싶을 거 아니냐. 비활성화 상태인 수정의 잠금장치를 풀면 소멸되지 않는 수정이 나오는데 그걸로 이 발전기를 보완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그 뒤부터는 주변의 입자를 흡수해서 자가 충전이 되니 입자가 떨어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이기도하고."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머리 아픈 이야기가 나오는데 더 듣고 싶냐는 칸의 질문에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도 머리가 아픈데 여기서 더 머리 아프게 만드는 내용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확실히 푸른 수정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칼카타의 부탁을 들어 주기 위해서는, 아이를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들어 주기 위해서는 수정안에 봉인된 아이를 풀어 줘야 했으니 말이다.

"이제 나가자. 더 둘러볼 곳은 없고 나머지 사소한 곳들은 너희들이 지내면서 알아가는 것도 좋겠지."

난쟁이 칸은 흐트러진 전선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이윽고.

달칵- 콰르르륵-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가 바깥으로 나오자 벽에 손을 댄 칸이 입구를 다시 막았다. 좌우로 벌어져 있던 벽면이 가운데로 모이면서 자갈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눈 깜빡할 새에 출입 금지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던 문은 하얀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따라와라. 너희들이 지낼 거처를 보여주마. 지금쯤이면 정리가 다 끝났을 거야. 지상에서 지내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거기를 보고 나서 정하는 게 좋을 것이야."

우리는 칸의 인도에 따라 다시 기다란 복도로 이어진 길목으로 나왔다.

팟!

어두웠던 복도는 움직임을 감지한 보안등에 의해 순식간에 밝혀지며 제 본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닌 듯 복도는 황량했다.

저벅- 저벅-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경로를 가늠해 보았다. 여러 갈래로 나뉜 갈림길은 없었고, 기본적으로 앞으로만 걸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벙커의 기본적인 모양이 사각형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사각형 안에 작은 사각형이 여러 개 들어 있는 형태이리라.

바로 그때.

쫑긋!

나와 나란히 걷고 있던 지수가 몸을 휙 둘려 후방을 응시했다.

그와 동시에.

호다닥-!

누군가가 놀라는 소리와 함께 부리나케 도망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큰 발소리가 아닌 작은 발소리인 걸 보니 체구가 작은 듯했다.

"···꼬맹이들이 따라붙은 모양이군. 참, 골칫덩이 녀석들이야."

그 모습은 본 칸이 못 말린다는 것처럼 혀를 쯧쯧 찼다.

"여기 애들이 좀 있나 봐요? 아까 입구에서는 몇 명 못 본 것 같은데."

"많이는 없다. 기껏 해야 대여섯 명 정도인데 얼마나 말썽을 부리는지. 여기가 제 세상인 줄 알고 활보하는 녀석들이지."

수정 발전실을 꽁꽁 벽으로 싸매는 것도 아이들 지분이 일부 있다는 칸의 설명에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분명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는 건 골치가 아픈 일이 맞지만, 그건 그만큼 벙커의 분위기가 풀려 있다는 말이었으니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일부러 조성된 분위기이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분위기이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제일 먼저 벙커에 흐르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이들이었으니까.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는,

"엇. 어···, 그."

"안녕하세요···?"

"아, 오늘 들어오신 분이구나. 네, 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나온 생존자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면서 복도를 걸었다. 서로 낯설다는 듯이 보는 시선에 이름 모를 사람은 헛기침하며 자리를 이동했다.

별다른 소개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우리가 누군지 아는 기색이었다. 하루가 채 지나지도 않았건만, 소문이 참 빨리 퍼진 모양이다.

복도에 쭉 설치된 문을 열고 사람들이 간혹 나오는 걸 본 우리는 지금 걷고 있는 구역이 거주 구역이라는 걸 쉽사리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순찰하는 군인들과도 마주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이 칸인 것을 보고 고개를 숙이며 지나갔다. 어깨에 총을 매고 있긴 했으나, 탄창은 결합되지 않은 상태였다.

"언니, 많이 힘들죠? 금방 도착할 것 같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요."

"아냐, 난 괜찮아. 내내 앉아만 있다가 이렇게 걸으니까 오히려 좋은걸."

한세아는 조금 뒤처진 최미소를 돌보며 일행에게 따라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기다. 만약에 쓴다면 방은 여기를 써라."

우리는 어느 문 앞에 도착했다. 지하 벙커에서 지낸다면 한동안 지내게 될 방이었다.

"와!"

예린이 문이 열리면서 보이는 방 내부에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깔끔하고 큼지막한 방에 나와 그녀들도 감탄하는 얼굴을 만들었다.

벙커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계속 놀라는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보는 것마다 전부 상상 이상이라 감탄사가 절로 나오건만.

목재가 아닌 반질반질한 돌로 이루어진 방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운치 있었다. 천장에 달려 있는 작은 전구 덕분에 내부는 그다지 어둡지도 않았다.

바로 그때.

"왔는가? 생각보다 빨리 왔군. 그래도 마무리는 다 했으니 이제 쉬기만 하면 된다네."

이미 내부에 있던 난쟁이 조이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오기 전까지 방을 손보고 있었나 보다. 그는 방구석에 설치된 수도꼭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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