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32화 (333/497)

Chapter 332 - 332. 길 (19)

"문 앞에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오게."

"아, 네!"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는 조이의 손짓에 방 안쪽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그러면서 방 내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반질반질한 돌로 이루어진 침대나 작은 테이블 같은 가구들, 방구석에 만들어진 세면대, 그곳에 있는 넝쿨 몇 가닥, 천장에 있는 환기구, 살짝 울퉁불퉁한 벽면에 설치된 안전 손잡이.

마치 동굴 호텔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방이었다.

침대가 인원 수에 맞게 들어 있는 방은 간격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여유 공간이 넉넉해서 널찍한 공간을 자랑하고 있었다.

"원래 다른 방에는 개인 세면대가 없지만, 여긴 인원이 많아서 특별히 만들어두었다네. 아, 넝쿨이 있는 건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차피 뜯어도 다시 자라고, 또 그렇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거든. 넝쿨이 수도꼭지만 감싸지 않게 하게."

난쟁이 조이는 환기구가 미처 순환시키지 못한 공기를 넝쿨이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방이 생각보다 커져서 환기구도 하나 더 뚫어 놓았다는 말과 함께.

콸콸콸-

조이가 수도꼭지를 틀어 수압이 적당한지 확인하는 사이에 난쟁이 칸의 말이 이어졌다.

"서로 흩어지기는 싫을 것 아니냐. 다 같이 지내려면 방이 커야 할 테고. 그리고 추가로 방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방들을 하나로 합쳤을 뿐이니 큰 수고가 들지도 않았다.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편하게 지내기만 하면 나는 그걸로 족해."

"···허허, 이 친구 좀 보게? 일은 내가 다 했는데 생색은 자네가 다 내는구만."

수질과 수압을 체크하고 어느새 다가온 난쟁이 조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자기 친우를 바라보았다.

"크흠! 내가 나중에 부탁 하나 들어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만 조용히 하라는 시선을 보내는 난쟁이 칸.

"됐네. 이 친구야. 나는 간만에 자네 얼굴이 살아난 걸 본 것으로도 충분하네."

난쟁이 조이는 칸에게서 시선을 떼고 우리를 눈에 담았다. 그는 방금 들었던 것처럼 힘든 일은 없었고, 이 방은 칸이 너희를 위해서 준비한 곳이다는 말을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칸, 조이. 정말로요."

정신없이 방을 둘러보고 있던 우리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표했다.

"어떡할래? 여기서 지내는 게 낫지?"

나는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에게 의견을 물었다. 다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이긴 했으나, 그래도 한차례 생각을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좋아. 햇빛이 들지 않는 건 아쉽지만 그건 어쩔 수 없고, 여기 시설이 내 생각보다 더 괜찮아서 찬성이야."

지수는 내가 말하기가 무섭게 동의하는 말을 꺼냈다. 그녀의 꼬리가 좌우로 살랑거리는 걸 보니 매우 마음에 든 모양이다.

"저도요. 위에서 텐트치고 자는 것보단 여기가 훨씬 낫죠. 나중에 트렁크에서 짐을 좀 가져와도 공간이 남을 것 같아서 더 좋아요. 나중에 매트리스만 얻어와서 깔아두면 그냥 특이하게 생긴 호텔이나 다를 바가 없는 걸요."

한세아는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가방은 한세아가 어딜 가나 절대 빼놓지 않는 각종 도구가 담긴 가방이었다.

"전 여기! 이 침대가 좋아요!"

예린은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았는지 한가운데에 있는 침대 앞에서 방방 뛰고 있는 중이었다. 휙휙 리듬을 타는 꼬리도 잔뜩 신난 기색이었다.

"미소씨는요?"

내 물음에 최미소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지안이를 품에 안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그럼 우린 이만 가보마. 정신없는 상태에서 조금 오래 걷느라 힘들어 보이는데 푹 쉬고. 길은 얼추 다 외웠지?"

종아리를 톡톡 치는 최미소를 본 난쟁이 칸과 조이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네, 길은 어느 정도 머리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바쁘세요?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가 차라도 한잔 드리고 싶어서요. 겸사겸사 저희가 어떻게 지내 왔는지 이야기도 들려드리고요."

나는 그런 그들을 붙잡으며 손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는 한세아가 꺼내놓은 소분한 꿀과 가스 버너가 올려져 있었다.

"마침 저녁 시간대라 다 같이 밥도 먹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부담스러우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맞아요! 다 같이 밥 먹어요!"

근사한 방을 선물 받은 덕분에 난쟁이들에 대한 호감도가 치솟은 예린이 그들의 옷깃을 살짝 붙잡았다.

"허허. 그럼 그럴까. 어차피 밥을 먹긴 해야 하니 여기서 먹는 것도 좋을 것 같군."

수염을 매만지며 웃은 난쟁이 조이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손을 올리더니 의자를 여러 개 만들었다. 난쟁이들이 갖춘 능력인 땅울림으로 순식간에 의자를 만든 것이었다.

난쟁이 칸도 슬그머니 의자를 만들어냈다. 그가 만든 의자는 조이가 만든 의자보다 좀 더 세련된 외형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기가 만든 의자가 완성도가 더 높다며 자랑하는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일까.

어찌 되었든 안 그래도 앉을 자리가 부족해서 바닥에 앉을까 하던 참이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세면대에서 간단하게 손을 씻은 다음, 사이좋게 테이블 주위에 빙 둘러앉았다. 오늘 먹을 저녁 분량 정도의 식량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덕분에 위로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내일 먹을 식량은 자고 일어나서 가져오면 될 일이다. 아니면 여기서 배급을 받던가.

"여기 사람들은 밥 어떻게 해결해요? 배급식이라는 건 아까 얼추 듣긴 들었는데."

가방에서 꺼낸 통조림이 차곡차곡 쌓이는 걸 본 지수가 난쟁이 칸과 조이에게 물었다. 그녀가 물어본 것은 나도 궁금했던 것이기에 귀를 기울였다.

"너희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이렇게 통조림을 주로 먹지. 아, 가끔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와서 먹기도 하는군."

"물고기요?"

"그래, 날이 좋으면 군인들과 함께 한강으로 가서 낚시를 하거든. 그렇게 잡아 온 물고기를 나눠서 각자 방에서 먹거나 출입 계단 쪽에 있는 홀에 모여서 다 같이 먹는다. 대부분은 모여서 먹는 편이고."

난쟁이 칸은 먹을 수 있는 물고기와 먹을 수 없는 물고기를 철저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성이 있는 부위를 깔끔하게 손질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그러지 못한다면 탈이 나도 단단히 난다고.

"모여서 먹는다라···. 근데 그런 것치고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던데요?"

나는 벙커의 시설을 둘러보면서 마주쳤던 사람들의 수를 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간 사람들까지 후하게 쳐도 스물이 넘지 않는 수였다.

지수의 귀가 계속 쫑긋거리는 걸 보면 이곳 사람들이 내가 본 수보다 많다는 건 맞는데 말이다.

물론 다들 방 안에만 있다가 모이는 시간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지. 허나, 마냥 그렇다고 하기에는 사람들은 대체로 혼자 다니고 있었다.

보글보글···

가열을 받아 점차 끓기 시작하는 냄비의 물. 조금씩 하얀 김이 위로 스멀스멀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거야 오늘 들어온 너희들 때문이지. 아, 너희를 탓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다들 겁이 많아서 낯선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아까 몰래 뒤따라온 아이들 만큼은 아니지만."

그러니 오늘은 벙커가 특히 조용했다며 말한 난쟁이 칸은 따뜻하게 데워진 통조림을 크게 한 숟가락 퍼냈다. 곧장 입안으로 들어간 숟가락이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왔을 때는 기름기가 하나 없이 깔끔해진 상태였다.

"크으···. 간만에 따뜻한 게 입에 들어오니 좋구만. 속도 뜨뜻하고."

"어? 화기 아예 안 쓰세요? 전기가 아예 돌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요."

한세아가 조이에게 뜨거운 꿀차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허, 쓰려면 쓸 수야 있지. 하지만 일부러 쓰지 않고 있는 중이다. 여기 사람들에게 입자를 아끼기 위해 화기 사용을 제한한 것이 바로 우리인데, 그런 우리가 화기를 쓴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건 원래 위에서부터 모범을 보여야 아래가 잘 따르는 법이라네."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화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난쟁이 조이의 말이었다.

좋은 말.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기도 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조금 곤란한 말이었다. 혹시 모를 균을 없애기 위해서 그동안 차가운 음식을 먹는 건 최대한 피해 왔으니 말이다.

"어··· 그럼 저희도 쓰면 안 되는 겁니까?"

"아니, 너희는 써도 된다. 정확히는 써야 한다는 것이 옳겠군. 아기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이 가진 수정을 사용하는 것이니 벙커의 에너지를 쓰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을 하자면 화기를 쓰는 건 이 방에서만 쓰는 것이 좋겠구나. 다른 사람들이 서운함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야. 그 사람들이 너희를 귀찮게 할 수도 있고."

난쟁이 조이가 입과 수염을 우물거리면서 말을 멈춘 사이에, 대화를 이어나간 건 난쟁이 칸이었다.

"계속 그러라는 말은 아니다. 수정이 자가 충전을 할 수 있게 되면 이곳 사람들에게도 화기를 쓸 수 있게 해 줄 계획이니까. 공용으로 쓰는 부엌을 만들면 되겠지. 그러니 너무 눈치 볼 것 없다. 당당하게 써라. 나는 네가 기죽는 모습이 보기 싫다. 네 아기가 차가운 걸 먹는 건 더더욱 보기 싫고."

그는 나와 지안이를 신경 쓰는 티를 팍팍 내며 우리를 두둔하는 말을 꺼냈다. 그 호의가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나와 난쟁이 칸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이 더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우리를 이렇게 챙겨 주는 건가 싶어서.

"그, 제 아기는 아니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네 애가 아니라고? ······그럼 누구 애냐?"

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지안이에게 짤막한 손가락을 내밀면서 장난을 치고 있던 난쟁이 칸이 눈을 끔뻑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