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35화 (336/497)

Chapter 335 - 335. 길 (22)

"······."

"······."

나와 최미소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돌로 된 테이블 위에는 초 하나가 켜진 상태였다.

전구나 손전등은 너무 밝았기에 지수, 예린, 한세아의 잠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촛불 하나의 밝기 정도면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충분했다.

먼저 대화를 부탁한 것은 최미소였으나, 우리 둘 사이에는 완연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촛불 상단부가 중단부로 스며들었을 때,

작은 촛불에 의해 공기가 포근하게 덥혀지고 있을 때.

"······그이가 당신에게 남긴 것이 있어요."

짧은 심호흡을 한 최미소가 품에 넣어 두고 있던 종이 뭉치를 꺼내 들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에 촛불이 일렁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

나는 말없이 그녀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종이 뭉치를 건네받았다. 몇 장 되지 않는 듯 얇은 두께를 가진 종이 뭉치였다. 열어서 내용물을 보니 안에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칼카타가 내게, 최미소에게, 우리에게 남긴 편지였다.

「이현우,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야. 책을 좀 더 읽어 둘 걸 그랬어. 막상 글로 무언가를 쓰려니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군. 물론, 펜이 너무 작은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가벼운 내용으로 시작한 편지. 칼카타가 어금니를 긁으면서 킬킬 웃는 모습이 훤하게 보이는 문장에 순간 눈이 질끈 감겼지만, 이내 감긴 눈을 억지로 떠서 앞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구나. 지금 네가 이것을 보고 있을 때면 나는 없을 거라는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고리타분한 말을 네게 전해야 할까. 그것들도 아니면 시답잖은 이야기로 너를 달래야 할까.

······전부 다 해야겠구나.

나는 지금 거실에 있다. 너희들이 자는 사이에 몰래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지. 어두컴컴한 밤하늘에는 별이 수놓아져 있고, 그 수많은 별들은 빛을 내며 제각기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사는 곳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하늘을 장식하는 별이 보이는구나.

네가 있는 곳에서도 별이 보이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을 나중에 너랑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건만, 그때는 내가 옆에 없겠지. 나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사실.

그건 칼카타의 수명이 얼마 가지 않아 다 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건강이 악화되었던 것이 아니었던 사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는 있지만, 가끔 참을 수 없는 기침이 야속하구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근데 막상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더군. 하지만 단 한 가지, 만일을 대비해 시간을 버는 것. 그 한 가지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너는 걸어라.

나는 여기 남을 테니.」

순간 힘이 들어간 손에 의해 종이가 살짝 구겨졌다. 나는 꽉 쥐여지려는 손을 억지로 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다른 시간대에서 적힌 듯했다. 시점이 바뀌어 있었으니까.

「지금 바깥에서는 비가 내린다. 그리 강한 비는 아니지만,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그 많던 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군. 그렇게 아름다웠던 밤하늘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모습이지만, 괜찮다. 어둠이 무서워 구석에 몸을 웅크리는 시절은 지났고, 무엇보다 나는 대전사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계속 불편한 것은 미소와 지안이 때문이겠지. 가끔 귀를 시끄럽게 하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질 때면 둘 다 미간을 찌푸렸으니까.

누가 모녀 아니랄까 봐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이 똑같다.

가만히 손을 잡아주면 금방 진정하는 것도 똑같고.

예전의 나는 혈기만 가득 찬 놈이었는데, 지금 내 모습을 형제들이 보면 웃음을 참지 못할 테지. 단 하나의 목표. 그저 투쟁만을 위해 함성을 내지르던 나는 어디 갔냐며 말이다.

옛날 같았으면 웃음거리가 된 순간에 주먹부터 내질렀겠지만, 이젠 그러진 않을 거다. 그냥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행복한 놈이니까.

밤이 아무리 길어도,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태양이 뜰 것이고 끝내 아침이 오는 것처럼.

그러니 너는 걸어라.

나는 여기 남아 뒤를 지킬 테니.」

칼카타는 형제들이라는 단어를 쓸 때, 무의식적으로 펜에 힘을 더 주었는지 그 단어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내 시선도 한동안 그 단어에 사로잡혔다.

하루하루 형제들이 차가운 바닥 위에 몸을 뉘일 때마다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일상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내게 걸으라는 말로 끝맺는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바로 다음 장에서 알 수 있었다.

「참, 이렇게 적고 보니 내 형제들이 나를 놀리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위에 있는 난쟁이들이 나를 놀리는 건 못 참을지도 모르겠어. 수염을 잔뜩 기른 녀석들이 놀리는 건 곱절로 열 받거든.

나쁜 녀석들이 아니라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에 제 명에 못 살았을 수도 있다. 예전에 네가 칸 그놈과 합세해서 나를 놀리던 기억이 나는군. 그때 그 꼬장꼬장한 놈의 수염을 내가 면도기로 다 밀어 놨었지.

우스운 꼴이 된 칸을 보며 어찌나 웃었던지.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당연히 노발대발하며 펄쩍 뛰었지만, 뭐 어쩌겠나. 다 자업자득인 것을.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내가 하려는 말은 이거다.

힘든 시간도, 어두운 기억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처음에는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오래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단순히 슬퍼만 해서는 슬픔을 달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 자신들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말을.

단순히 환경뿐만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기어코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움직여서 슬픔을 달랠 희망을, 미래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아직 많은 사람이 살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살아 있는 많은 사람이 고난 끝에 뜰 태양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걸어라.

그 사람들이 다시 걸어서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이 기나긴 밤을 끝낼 태양이 뜰 수 있도록.

나는 너희의 등을 지키겠다.

그 무엇도 너희를 막을 수 없게.

그 무엇도 너희를, 우리의 꿈을 방해하지 못하게.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걸어라.

살아라.

멈추지 마라.

계속 걸어라.

너희는 할 수 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정말 진부한 말들뿐이군. 이래서야 책 좀 더 읽어 둘 걸 그랬다는 것이 농담이 아니게 되고 말았지 않나.

진짜로, 진작에 이 세상을 좀 더 알아 둘 것을 그랬어.

내 삶에 후회는 없으나,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현우 너와 김지수와 한세아와 최예린과, 그리고 내 아내와 아기를 더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일까.

조금만, 아주 조금의 시간이라도 더 있었다면···.

그래도 내 시간이 완전히 다하기 전에 너를 만나서 내 가족을, 미래를 구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난 그것에 감사한다. 이 이상을 바라는 건 분명 욕심이겠지.

그래, 마지막으로 제일 진부한 말 한마디만 더 하겠다.

······너를 믿는다.

대전사인 내가, 너를 믿는다.」

그 문장을 끝으로 편지의 내용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한 장이 더 남아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넘겼다.

마지막 장에는 사진 하나가 붙어 있었다. 바로 나, 칼카타, 칸이 중심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칼카타가 소중하게 여기던 사진이기도 했다.

짐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던 사진이었는데, 이제 보니 편지 사이에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스륵-

나는 종이 사이에 끼워져 있는 사진을 꺼내 무의식적으로 뒤집어보았다. 그와 동시에 뒷면에 적힌 문구가 보였다.

-????? ?????

미래를 위하여.

서투른 글씨체로 쓰인 문구.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쓰인 문구.

칼카타가 정말로 내게 하려던 말.

내가 예전에 그에게 해주었던 말.

"······하."

그 짧은 문장을 본 내가 무심코 내뱉은 숨소리에는 떨림이 가득했다. 갈팡질팡하는 감정이 만들어 낸 떨림이었다. 애써 억누르고 있는 감정이 터지기 위해 반항하는 움직임이었다.

바로 그때.

툭!

사진이 떨어지고 남은 자리에 비스듬히 붙어 있었던 포스트잇이 아래로 떨어졌다.

-연구소 구조는 난쟁이들에게 물어봐라. 나는 까먹었다.

왠지 모르게 어금니를 긁적이는 칼카타가 멋쩍게 웃으면서 썼을 것 같은 내용에,

"···끄, 윽······."

나는 이상하게도 어이없는 웃음이 터지는 대신 속이 꽉 막힌 느낌이 들었고, 결국 바보같이 조금 울어 버리고 말았다.

어둠이 무서워서, 천둥소리가 두려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아이처럼.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그렇게 뚝, 뚝.

숨죽여 토해내는 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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