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3 - 343. 방향 (7)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이제 슬슬 가 봐야겠다."
나는 테이블 위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현재 시각은 오후 2시가 되기 10분 전. 지금 출발하면 여유 있게 수정 발전실 앞에 도착할 것 같았다.
"이제 쟤 풀어 주러 가는 거예요, 오빠?"
"그래."
"그럼 올 때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겠네요. 혼자 가서 둘이 온다···!"
초코바를 우물거리고 있던 예린은 뭐가 그리 웃긴 지 히히 웃었다. 아이의 꼬리가 웃음소리에 맞춰 휙휙 움직인다.
얼추 맞는 말이긴 한데 어감이 좀 이상한 건 내 착각일까. 아니, 애초에 맞는 소리도 아니었다. 둘이 가서 둘이 오는 거니 말이다.
"혼자 가긴 뭘 혼자 가. 처음부터 둘이 가는구만. 그리고 초코바 적당히 먹어. 그러다가 이 상한다. 미소씨랑 지안이 잘 보고 있고."
"···알았어요!"
"아, 탄. 혹시 침대 하나 더 만들어 줄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곧 인원이 하나 늘어날 것 같아서요."
나는 망설이다가 겨우 답한 예린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난쟁이 탄을 바라보았다. 수정 안의 아이가 어디서 지낼 진 몰라도 미리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 두는 편이 낫지 않은가.
그는 심심하다며 시간을 달래는 용으로 부드러운 천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밥 먹는 도중에도 한세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여기 남아 있는 것이었다.
"알겠어요. 어려운 일도 아니고요."
난쟁이 탄은 방 내부 공간을 가늠해 보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형체가 조금씩 잡히기 시작한 천뭉치를 잠시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이 나온 김에 바로 만들어 주려는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세요, 현우씨."
설거지를 끝마친 최미소의 배웅을 끝으로, 나는 짧게 손을 흔든 뒤에 방문을 넘었다. 뒤에서 웅웅거리는 수정을 이끌면서.
***
산책 시키듯 수정을 데리고 나온 나는 곧장 수정 발전실이 있는 위치로 향했다. 이번에는 중간에 마주치는 사람이 없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이 이미 열려 있네.'
아직 오후 2시가 되진 않았건만. 수정 발전실의 문은 열려 있는 상태였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난쟁이 칸이 미리 와서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이 피로에 부은 눈가를 자극한다. 잠을 자지 못해 눈이 조금 피로 했으나, 하루 정도 밤을 새는 일 정도야 별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오늘 밤에 푹 자면 될 일이었으니까.
"후우···, 가자."
숨을 한차례 크게 들이키고 내쉰 나는 눈가를 문지르며 줄을 잡아당겼다. 내 신호를 받은 수정은 허공에서 미끄러지며 거리를 좁혔다.
이윽고.
"칸, 저 왔어요. 수정이랑 같이."
"왔느냐? 딱 맞춰 왔구나. 잠깐 거기 있어 봐라. 아니다, 수정 데리고 여기 앞까지 오거라. 문은 닫고."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본 난쟁이 칸은 흘깃 시선을 올렸다가 다시 아래로 내렸다. 그의 주위에는 각종 장비가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은 수정 발전기와 연결된 장비였다.
달칵-
"뭐 하시는 거예요?"
나는 비스듬히 열린 문을 제대로 닫으며 물었다. 묻는다고 해도 작업 과정을 내가 이해할 가능성은 적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입자의 이동 경로를 만드는 중이다. 내부에 있는 입자를 바깥으로 뽑아내기 위한 작업이지. 수정의 봉인을 풀려면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하거든."
난쟁이 칸은 피뢰침 같은 쇠바늘을 수정 발전기에 꽂아 넣었다. 콱, 하고 박힌 쇠바늘 끝에서 푸른 입자들이 미약하게 응집되기 시작했다. 응집된 입자는 천천히 회전하는 중이었다.
"흠···, 이건 이상없고···."
뭔지는 몰라도 수월하게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모양. 칸은 쇠바늘을 뺀 후에 바늘이 빠져나오면서 생긴 구멍에 어지럽게 꼬인 금속 와이어를 집어넣었다.
"현우야, 이리 와봐라. 이 줄 잡은 채로 네가 데려온 수정에 손을 올리면 된다. 그 상태에서 푸른 불을 약하게 일으켜 봐라. 어찌 되나 한번 보게."
"잠시만요."
설마 위험한 걸 시키겠나 싶은 나는 얌전히 칸이 시키는 대로 차가운 촉감이 전해지는 와이어를 손으로 잡고, 남은 한 손으로 소녀가 담긴 수정에 손을 올렸다.
화륵-
푸른 불이 와이어를 타고 흐르는 것과 동시에.
파지직!
수정 발전기에서 불안한 스파크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용접을 하는 것처럼 표면을 타고 흐르는 스파크의 기세가 상당했다.
'···어? 이거 뭔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내가 황급히 푸른 불을 거둔 것이 그때였고,
"그만! 이제 손 놔라!"
흘러가는 상황을 침음성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던 난쟁이 칸이 수정 발전기의 작동을 중지시킨 것이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빛이 사라진 수정 발전기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방금 뭐예요? 꼭 터질 것 같았는데, 제 착각이죠?"
"봉인을 푸는 방법 중 하나를 시도했고, 그 방법이 실패한 것뿐이야."
"아니, 그래서 방금 터지려고 한 거 맞냐구요."
"크흠! 수정 발전기는 형태만 조금 다르지 사실상 예전에 우리가 만든 증폭기와 같은 원리의 장치다. 그래서 그···. 후우, 그래. 언제든지 폭주할 가능성이 있긴 있지."
모호하게 답을 하는 난쟁이 칸. 답을 회피하려던 그는 결국 집요한 내 시선에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
방금 내가 별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한 행동에 발전기가 터질 수도 있었다는 말이 아니던가. 나는 어째서 수정 발전실만 따로 격리된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게 되었다.
단순히 보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약 발전기가 터진다면 그 폭발의 위력을 조금이나마 상쇄하기 위함인 것이었다. 이게 가장 큰 이유일 듯했다.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말에 난쟁이 칸은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으니까.
"그래도 크기가 작아서 최소한의 안정화는 성공했고, 방금은 예상치 못한 충돌이 일어나서 에너지가 분출되려는 것뿐이었어! 그리고 이번에 봉인을 풀면서 나오는 부산물로 안정화를 더 시키면 앞으로는 폭주하려고 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라는 난쟁이 칸의 말에 나는 한숨을 애써 참으며 물었다. 잠깐 사이에 확 차오른 긴장감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그냥 위에서 하면 안 됩니까? 여기서 터지면 답도 없을 것 같은데."
"그건 안 된다. 봉인을 풀려면 네가 가진 푸른 불과 불을 도와줄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는 여기서 밖에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난쟁이 칸은 필요한 에너지가 적지 않아서 위치를 옮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에 시도할 방법은 조금 오래 걸리긴 하지만 훨씬 안전한 방법이라며 내 불안을 달랬다.
처음부터 안전한 방법이 있었다면 그걸 쓰지, 왜 사람 불안 하게 조금 위험한 방법을 썼단 말인가.
그런 내 불만은 소녀가 담긴 푸른 수정을 보자 쏙 들어갔다. 정확히는 애써 잠재웠다는 것이 옳았다.
푸른 수정의 표면에는 짙은 그을음이 새겨져 있었다. 방금 순간적으로 사방으로 튄 스파크가 수정을 긁은 모양이다.
'많이 답답하겠지.'
그 흔적을 본 나는 딱 한 번만 더 칸을 믿어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봉인을 더 빨리 풀어 주고 싶은 건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차피 봉인을 풀려면 칸의 도움이 필수적이고, 두 번째로 시도하는 방법은 훨씬 안전하다고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알았어요. 한 번 더 해 보죠. 제가 뭘 하면 되는데요?"
"잠깐 기다리고 있어라. 원래는 너를 매개체로 봉인을 한 번에 풀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수정 발전기가 출력을 버티질 못 하는군.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다. 자물쇠를 부수는 것이 아닌 열쇠로 따는 것이지."
난쟁이 칸은 발전실 구석에 놓여 있던 정체 모를 금속 상자를 가져 왔다. 상자에는 여러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전선의 끝에는 집게가 달려 있었다.
"열쇠로 딴다고요?"
"그래, 각 자물쇠에게는 그에 맞는 열쇠가 있지 않으냐. 네가 피워내는 푸른 불은 열쇠를 만들 재료가 될 것이고, 지금 내가 수정에 박는 바늘은 열쇠의 형태를 잡아줄 도구가 될 것이야."
칸은 수정 발전기에 끼워 두었던 금속 와이어를 제거하고, 다시 그 자리에 피뢰침 같은 바늘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 바늘에 집게를 물렸다.
콰각!
그는 집게가 빠지지 않게 확인한 다음에 푸른 수정의 표면에도 바늘을 박아 넣었다. 이번에는 안에 있는 사람이 다치지 않게 많이 짧고 뭉툭한 쇠바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선과 이어진 쇠바늘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표면에 고정되었다.
"자, 이제 되었다. 아까처럼 천천히, 약하게 푸른 불을 수정 안쪽으로 넣어봐라."
"···이번에는 진짜 안 터지는 거죠?"
"그렇다니까! 잔말 말고 빨리하거라! 이러다가 날 새겠다! 사내 자식이 왜 이렇게 겁이 많느냐!"
"끄응···."
남녀차별적인 칸의 호통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수정의 표면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푸른 불이라는 숨결을 수정 안쪽으로 불어넣어 준다는 느낌으로 흡수시켰다.
그와 동시에.
화르르륵-
푸른 불이 난쟁이 칸이 설치한 바늘의 끝에 모이기 시작했다.
수정 내부를 갈팡질팡하는 푸른 불이 이내 도착한 목적지였고, 이제 본격적으로 열쇠를 만들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