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47화 (348/497)

Chapter 347 - 347. 방향 (11)

'···개인실이라.'

나는 차오르는 한숨을 꾹 참으면서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만약에 개인실이 하나 생겼을 때의 미래를.

"······."

그렇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매일 같이 거기에서 일어나는 상상뿐.

난쟁이 조이가 기껏 만들어 준 방은 가끔 들리는 곳으로 변하는 상상만 들었기에 서둘러 고개를 휘저어 상상을 흐트렸다. 괜스레 얼굴이 달아오르고 헛기침이 나왔다.

따악!

"악!"

"···애들 다 있는데 얘가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나는 지수의 이마에 딱밤을 약하게 날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씨이···. 왜 때려! 이거 가정 폭력이야! 아저씨 표정이 너무 굳어 있길래 풀어 주려고 농담 한번 한 건데!"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어디까지나 농담이었다 외치는 지수. 그녀는 꼬리털을 바짝 세웠다.

지금 와서 농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말이나 몸짓이 너무 진심이었던 것이 느껴졌었지만,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여기서 한 번 더 놀리면 깨물릴 것 같기도 했고, 어느새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앉아서 밥만 먹는 것보다 숟가락이라도 테이블 위에 미리 깔아 놔야 하지 않겠나.

"알았으니까 이제 의자에 앉자. 때린 건 미안해."

사과의 의미로 바짝 선 지수의 꼬리털을 가라앉혀 주기 위해 꼬리를 잡고 천천히 쓸어내렸다. 복슬복슬한 털이 손에 눌리면서 부드러운 자극을 주었다.

"···히윽!"

"얌전히 앉을 거지?"

"네, 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듯 순간 두 팔을 상체에 딱 붙이고, 발뒤꿈치를 살짝 든 지수는 내 말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언제 내 팔을 붙잡았냐는 것처럼 호다닥 뛰어갔다.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눈 깜빡할 새에 테이블에 도착해서 수저를 하나씩 놓고 있는 그녀였다.

"누가 암캐 아니랄까 봐···. 미소 언니, 분유 온도는 어때요? 이 정도면 먹이기 딱 좋게 식은 것 같은데."

나와 지수의 모습을 본 한세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뜨거운 물을 따로 담아둔 병에 분유를 탔다. 그녀는 병에 손등을 대어 온도를 확인한 다음에 최미소에게 건넸다.

"응, 지금이 적당해. 조금만 더 식으면 되겠다."

"여기서 온도가 더 낮아야 하는구나···. 따로 더 필요한 거 있어요?"

"음···. 아니, 이제 없네. 챙겨줘서 고마워. 지금 밥만 다 지어지면 준비는 다 끝난 거지? 도와줄게."

최미소는 분유가 식을 동안 도와주겠다며 평소보다 큰 냄비로 향했다. 아무래도 인원 수가 늘어난 지라 평소에 쓰던 밥 냄비로는 양이 부족했던 까닭이었다.

뜸을 들이고 있던 냄비의 뚜껑을 열자 위로 확 퍼지는 김과 포근한 냄새. 안에는 먹기 좋게 고슬고슬한 흰밥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는 실리콘 주걱으로 안쪽을 몇 차례 휘적거려 위와 아래를 바꿔 주었다.

이윽고.

"다들 팩 하나씩 받아요. 매번 통조림만 먹기는 좀 그래서 오늘은 카레로 가져 왔어요. 뭐, 이것도 인스턴트인 건 마찬가지지만요."

최미소는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나, 지수, 예린, 엘프리데에게 즉석 카레를 건넸다. 다음에는 카레 분말로 제대로 만들어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잘 먹겠습니다···!"

팩 상단부를 뜯어 자기 몫으로 나온 밥에 곧장 카레를 부은 예린이 꼬리를 휙휙 움직이며 외쳤다. 아이는 주변을 보며 눈치를 보았고, 먼저 먹으라는 우리의 끄덕거림에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카레를 후후 불어 식힌 다음 수저를 입에 집어넣은 예린.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우물우물 씹었다. 그렇게 맛있을까.

"자, 잘 먹겠습니다······."

예린의 옆자리에 앉은 엘프리데 또한 아이가 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설프게 숟가락을 쥔 것을 보니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려는 모양이다.

오늘 나온 즉석 카레는 순한 맛.

'맵지는 않겠지만 그건 우리 입맛 기준이고.'

카레 자체에 있는 자극적인 맛이 기본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묘하게 긴장이 되는 순간에 나, 지수, 한세아, 최미소의 시선이 엘프리데에게 집중되었다.

만약 먹기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다른 거로 바꿔 주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지레짐작으로 혼자만 다른 밥을 준다면 그건 과한 배려이지 않겠는가.

"······?"

"아냐 아냐, 먹어."

예린을 제외한 인원이 자신을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거린 엘프리데는 그런 우리의 걱정을 불식시키려는 듯이 잘 먹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행히 가리는 것이 없는 듯했다.

"···저희도 이제 먹어요, 현우씨."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세아를 선두로 나, 지수, 최미소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소 단조로운 맛인 통조림에 비해 훨씬 다채로운 맛이 담긴 카레가 입에 들어오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 세아씨. 지금 엘프리데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서 저희가 하나씩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차근차근히."

"네?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왜 여기에 있는지도? 현우씨, 그럼 엘프리데씨는 아직 바깥에 안 나가 봤다는 말이네요?"

심각한 표정을 지은 한세아에게 나는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에서 막 빠져나온 참인 엘프리데는 그저 나를 따라서 이 방에 왔을 뿐, 다른 곳을 보지는 못했으니까.

"엘프리데가 본 건 눈을 뜬 직후에 본 발전실 내부와 여기까지 오면서 지나온 복도뿐입니다."

언어와 가장 기본적인 상식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엘프리데는 그녀의 종족에게 있어 어머니격인 세계수가 오염되었고, 그 오염된 세계수가 세계를 엉망으로 망가트렸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입을 열어 알려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으니 말이다.

모든 것이 엘프리데 같은 인간이 지구로 넘어오면서 생긴 일은 아니지만 그건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지 않은가. 그래서 접근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와 한세아의 대화를 들은 엘프리데는 불안해진 눈초리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엘프리데, 혹시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의 범위를 파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 또한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겠지.

"부, 불타고 있는 고향에서 여기로 넘어오는 수정을 탄 거하고, 눈을 뜨니 이현우 당신이랑 만난 게 기억나요···. 그 외엔 아무것도···."

"······."

"혹시 여기에 저랑 같은 사람이 오지 않았나요···? 그 작은 방에서 본 무서운 분 말구요. 이, 이렇게 저처럼 귀가 긴 사람들이요! 다, 다 같이 수정을 탔었는데 아무도 안 보여서···."

자신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는지 묻는 엘프리데. 아직 고향의 언어와 지구의 언어가 완전히 매치되지 않은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내뱉었다.

"······."

"······."

나, 지수, 한세아, 최미소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내뱉어야 할 말들이 서로 먼저 나가겠다며 싸우다가 입이 막힌 느낌이었다.

"···일단. 후우, 일단 밥부터 다 먹고 내일 해가 뜨면 같이 위로 올라가 보자. 오늘은 이만 쉬는 게 좋겠어. 앞으로도 여기 계속 있어야 하니까 시간은 많아."

"네에···."

"세아씨, 전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설거지는 갔다 와서 할게요."

"에이, 그 정도야 그냥 제가 해둘게요. 잔반도 없고 저기에서 씻으면 금방인 걸요."

"저, 저도···!"

엘프리데는 내가 방을 나서려고 하니 화들짝 놀라면서 따라붙으려고 했다. 내가 없는 방에 있게 되는 상황이 무서운 것 같았다.

"엘프리데씨는 저희랑 여기 있어요. 알려줄게 많아요.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면 저희가 알려줄 수 있는 선에서 알려드릴게요."

엉거주춤 일어선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힌 건 한세아였다. 그녀는 내게 안심하고 나가라는 눈짓을 보내는 한편, 불안해하는 엘프리데를 챙겼다.

"아···."

한세아의 말에 엘프리데는 탄식을 내뱉었고, 나와 한세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내 결정을 내린 듯 몸에 힘을 풀었다. 귀도 살짝 쳐졌다.

"아저씨, 너무 늦게까지 밖에 있지 말고 얼른 돌아와. 걱정되니까."

"내가 애도 아니고···. 알았어. 나도 그렇게 오래 있지 않을 거야. 금방 올게."

"오빠, 반지 아직 가지고 있죠? 그거 두고 가거나 잃어 버리면 절대로 안 돼요! 그럼 제가 오빠를 바로 못 찾으니까."

"뭐야, 위치추적기야?"

피식 웃으면서 한 말에 예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시선을 피했다.

"바, 밥 먹었으니까 이제 초코바 먹어야지···! 지금만큼은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해! 지수 언니도! 세아 언니도!"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고 주머니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는 예린은 평소와 똑같았다. 그런 모습에 잠시 생겼던 의문은 금방 사라졌다.

"아저씨, 안 나가?"

"어어, 나가야지."

나는 지수에게 대강 손을 흔들어 준 후 방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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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한 밤이 내려앉은 지상.

끼익··· 덜컹-

나는 벙커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흐린 밤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난쟁이 칸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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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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