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54화 (355/497)

Chapter 354 - 354. 준비 (4)

연대장실 앞.

안쪽에서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있었다. 한창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인 모양이다.

"상병 최명철입니다."

최명철이 노크하면서 나를 데려왔다는 말을 안쪽에 전했다. 나와 최명철은 잠시 대답을 기다렸고, 이내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다.

벌컥-

"들어가시죠."

나는 최명철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 연대장실에 모여 있는 여러 사람들은 회의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흘깃 바라본 석재 테이블 위에는 여러 보고서가 산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창고 물자 추가 손실 보고서, 정찰 결과 보고, 근무 시간표, 그 외 여러 작전안 같은 것들 말이다.

"어서 오게."

"저를 부르셨다고요."

"그래,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이 정해졌거든."

연대장은 나를 환영하는 한편,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작전안 하나를 가리켰다. '아르마딜로 변종 유인 작전'. 그것이 테이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 뒤로 물러나면서 드러난 작전안의 내용이었다.

"···아르마딜로?"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르마딜로.

내가 알기로는 '아르마딜로'라는 단어는 빈치류 중에서 피갑목 동물의 총칭이었다. 헌데 갑자기 이런 단어가 왜 나온단 말인가.

저번에 면담을 받았을 때, 잠깐 본 적은 있었다.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나 싶어 의아했는데, 이제 보니 잘못 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의문은 연대장이 곧장 풀어 주었다.

"조금 의아할 거야. 어째서 아르마딜로라는 이름이 뜬금없이 튀어나왔는지 말일세. 일단 정확한 종명을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이렇게 부르고 있는 중이라고 이해하면 되네."

"어디서 나온 겁니까?"

"강서구에 위치한 호서직업전문학교. 그곳 특수 동물실에서 탄생한 변종이라고 추정하고 있지. 사태 초창기에서부터 있던 놈이야."

연대장은 종이를 뒤로 넘겨 어떤 그림을 보여 주었다. 전기를 특수 조건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당시에 찍은 아르마딜로 변종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푸른빛을 강하게 내뿜고 있는 변종의 등껍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시가지를 정리하면서 전진하고 있었던 당시의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선제사격으로 타격을 가했었지. 위험해 보이면 바로 총을 쏘거나 포탄을 쏴서 제압을 하는 것이 우리측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는 그는 지휘봉으로 아르마딜로 변종의 부위 이곳저곳을 짚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아르마딜로 변종은 매우 위험해 보였어. 대형 버스와 비견되는 육중한 체구, 광택이 흐르는 등껍질, 날카로운 발톱, 주변을 망가트리는 꼬리. 이런 부위 하나 하나가 전부 인간에게 있어 큰 위협으로 다가왔거든."

"······."

"그동안 숱하게 봐온 악성 변이자들과 달리 완전히 처음 보는 변종 개체에 그냥 지나가자는 의견이 나왔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지. 변종이 막고 있는 길목을 뚫어야 후발대가 올라올 수 있었고, 앞을 뚫어 주는 것이 우리 선발대가 할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쐈다네.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곧장 후퇴할 수밖에 없었지."

"네? 갑자기 후퇴했다고요?"

중간과정이 생략된 느낌에 의문이 든 내가 되물었다.

"놈에게는 우리가 가진 탄약이 통하지 않았거든. 우리가 사격을 가한 순간, 놈의 등껍질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모든 총탄을 막아냈다. 그 이상한 장막은 폭약이나 포탄을 이용해도 뚫을 수가 없었어. ···그래, 마치 연구소의 그 장막처럼."

아르마딜로 변종의 등껍질 표면을 뒤덮는 장막에 의해 모든 공격이 막혀 버렸고,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나는 침음을 흘렸다.

"모조리 도탄되는 총알과 포탄.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 하는 폭발. 순식간에 전력이 반 토막 난 우리는 초라하게 변한 채 후퇴해야만 했어. 그것만이 살길이었고. 그래도 공격이 완전히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던 것인지 변종은 길목에서 자리를 비켰지. 덕분에 후발대가 철도를 타고 올라올 수 있었다네."

-뭐, 공격이 통했다고 하기보다는 계속 귀찮게 하는 우리가 더러워서 피한 느낌에 가까웠지만.

연대장은 그때가 우리의 연이은 실패 중 첫 실패였다며 말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그 뒤로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변종들을 상대하면서 연패에 연패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말이 이어질수록 그의 표정은 점점 더 쓰게 변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이 아르마딜로 변종은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면 먼저 싸움을 걸어오지 않는다는 점일까. 복수할 방법도, 맞서 싸울 방법도 없었던 우리에게는 참 다행인 일이었지."

놈이 어디를 가든 그냥 내버려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연대장.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고, 겪었던 아르마딜로 변종의 이야기였네. 이 다음부터는 안개가 여기 근처를 전부 뒤덮어서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해. 아니, 이것도 어제까지의 이야기이군. 자네가 안개를 없애고 이곳으로 온 순간,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정찰조를 파견하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어제 정찰조의 보고가 들어왔다네. 활동을 다시 시작한 아르마딜로 변종을 발견했다고 말이야."

그는 강서구 일대가 안개 구역에게 집어삼켜졌을 때 놈은 수면 상태에 접어들게 되었었고, 안개가 사라진 지금은 잠에서 깨어난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요? 먼저 건들지 않으면 이 변종도 공격하지 않는다고 말하셨잖습니까. 그럼 저희가 괜히 또 건드리는 건 긁어 부스럼이 아닐까요?"

나는 아르마딜로 변종 유인 작전안을 가리키며 의문을 표했다. 정확히 내가 가리킨 것은 유인이라는 단어였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해가 되지 않을 변종이고, 그 변종을 건드린다고 해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오는 의문이었다.

바로 그때.

"그 부분은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한 발 앞으로 움직이며 입을 연 남자가 있었다. 박종수라는 명찰이 달린 흑복을 입고 있는 그는 지도에 표시된 원을 손으로 짚었다.

"정찰조의 보고에 의하면, 주변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일종의 경계선 역할을 하던 안개가 사라진 탓에 확실하게 나눠져 있던 변종의 영역들이 전부 개방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리킨 선. 즉, 변종들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이 흐려진 모습이 보인다. 비록 불규칙하게 나뉜 구역이긴 했지만, 안개는 변종들의 영역을 확실하게 나누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안개로 이루어진 장벽은 현재 소실된 상태. 그 원인은 나였다. 내가 이곳으로 올라오기 위해 안개의 진원지를 없애 버렸으니까.

비록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고 해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머리가 복잡했다.

"덕분에 가만히 있었던 변종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현재 벙커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르마딜로 변종 또한 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종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그쪽도 공격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졌다는 건 알고 있어서 우리도 섣불리 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현우씨, 당신 말대로 긁어 부스럼이니까요."

"······."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질문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변종. 그러니까 이 아르마딜로 변종의 상태가 이상해졌다는 겁니다. 고층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근무조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이 변종은 닥치는 대로 파괴를 일삼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돌진해서 그 공간을 부순다던가, 달라붙어 있는 무언가를 떨치려는 듯 갑작스레 몸을 굴린다던가, 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

박종수는 현재 이 변종과 벙커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아르마딜로 변종이 벙커로 오게 되는 건 필연이라는 말과 함께.

"그래서 이 폐기된 작전안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겁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 아르마딜로 변종을 벙커로 오지 못하게,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것입니다. 놈의 힘을 생각하면 벙커 주변을 둘러싼 컨테이너 장벽은 단순히 시간 벌이용으로도 사용하지 못할 테니까."

"이동 경로를 틀어야 한다는 말이네요. 이왕 유인하는 거면 세계수 근처로 유인해서 겸사겸사 그쪽 일대를 난장판으로 만들 계획이고요."

지도에 표시된 복잡한 선들을 유심히 살펴본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놈과 부딪치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최대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트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인 작전이라는 박종수. 그는 세계수 근처에 자리 잡은 악성 변이자들과 각종 변종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탄과 폭약, 그것들의 공격을 막아줄 차량과 전차들이 모자란 상황이기에 이 작전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정신이 이상해진 아르마딜로 변종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주변을 휩쓸 터다.

우리 인간이 그 점을 이용해서 세계수 근처 일대에 자리 잡은 괴물들에게 한 방 먹이면 그것만큼 이득인 상황도 없겠지.

다만.

"좋습니다. 다 좋은데··· 유인은 어떻게 할 겁니까?"

총탄도, 포탄도 통하지 않는 이 변종을 어떤 방식으로 한강 너머에 있는 곳으로 유인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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