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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357화 (358/497)

Chapter 357 - 357. 준비 (7)

"어서 와요, 현우씨."

내가 방에 들어오자 지수 대신 반겨 주는 한세아. 그녀는 최미소와 함께 침대에 대자로 누워 기절한 예린과 엘리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있는 중이었다.

"이야기는 잘 마치고 오셨어요?"

한세아는 내 시선이 그녀들을 향하는 걸 보았고, 아이들은 한창 떠들다가 방금 막 잠이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하긴, 엘리가 피곤할 만도 했다. 그녀는 요 이틀 사이에 긴장감을 늦춘 적이 없었으니까. 몸을 바싹 굳히던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지금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겠지.

예린은 처음에 안 자려고 했으나, 엘리가 한순간에 곯아떨어진 모습을 보자 졸음이 전염이라도 된 건지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잠이 들었다고.

지수는 아직 훈련에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네, 일단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방향과 작전 같은걸 듣고 왔는데 어찌어찌 잘 끝난 것 같습니다. 저희가 나설 차례는 아니었더라고요. 아직 정찰이나 이런 게 끝나지 않아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그럼 이제 쭉 방에 계실 거예요?"

"아뇨, 다시 나가 봐야 합니다. 방은 세아씨랑 어디 같이 갈 곳이 있어서 잠깐 들린 겁니다."

"네? 저랑요?"

한세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함을 표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아무렴 좋다는 듯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붉은 단발이 살며시 찰랑거린다.

"뭐, 알았어요. 어디 가는데요?"

"빌딩 옥상입니다. 최명철씨를 따라서 잠깐 거기로 올라갈 일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세아씨, 혹시 지금 날개 펼칠 수 있습니까?"

내가 한세아를 데리러 방으로 온 이유. 그건 한세아의 날개로 한 번에 위로 쭉 올라가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엘리베이터가 가동되지 않다 보니 옥상 근무조와 교대하려면 계단으로만 올라가야 하니까.

도르래로 작동하는 임시 승강기를 설치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예전에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기각되었었다고.

덕분에 근무조들이 죽어 나가고, 그 탓에 최명철이 교대 전에 여유 시간을 충분히 두고 출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려 32층에 달하는 고층 빌딩의 옥상에 올라가야 하니 말이다.

단순히 근무 교대만 하는 것뿐인데 소모되는 체력도 체력이지만, 그 과정은 시간이 만만치 않게 소모가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당연하죠. 안 그래도 보여주고 싶은 게 생겼었는데 마침 잘됐네요. 지금 나가는 김에 보여주면 되겠어요."

처음에 나와 단둘이서 가는 줄 알고 반색했던 한세아는 실망스러운 기색을 애써 털어냈고, 손목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아직 해가 질 시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는 사이에 다녀오면 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 현우씨, 제가 따로 준비할 건 없나요? 그냥 이대로 나가요?"

"음···. 아무래도 위로 올라가는 일이다 보니 겉옷은 챙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해가 금방 지진 않겠지만, 바깥 공기가 생각보다 쌀쌀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바깥으로 나가면서 연대장실에서 나눈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한편, 예린과 엘리를 사이에 두고 침대에 앉아 있는 최미소를 바라보았다.

"미소씨는 애들 부탁하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나가서 바람 좀 쐬게 해드리고 싶은데 방에 애들만 두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아서요."

"제 걱정은 마시고 다녀오세요. 오히려 다들 바쁘게 움직이시는데 저 혼자 방에서 쉬고 있는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쇼. 몸 건강 회복이 제일 중요합니다.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망설이지 마시고 바로 이야기해주시고요."

"그렇게 할 테니 현우씨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게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진짜 미안하단 말이예요."

내 말투를 일부 따라 한 최미소는 챙기는 것도 너무 과하면 독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우선으로 챙기니 부담스러워서 미치겠다고.

확실히 한세아나 지수가 최미소를 챙기는 모습이 자주 보이긴 했으니, 최미소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예린도 알게 모르게 최미소를 돕기도 했고 말이다.

누군가는 편하게 그 챙김을 받으면서 지내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허나, 그건 최미소의 성미와 맞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 난쟁이들과 비슷한 기질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있어 더 큰 만족감이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최미소는 이러다가 해 지겠다고 말하면서 딸랑이를 흔들었다. 어서 나가라는 신호인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세아씨, 옷은 챙겼습니까?"

나는 그녀의 말에 일부 동의하면서 일단 한수 물러났다. 괜한 고집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최미소를 챙기는 건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살짝 두께감이 있는 겉옷을 2벌 정도 챙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세아는 나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넵! 이제 나가기만 하면 돼요! 현우씨 옷도 챙겼으니까 추우면 말해요."

"감사합니다. 어서 나가죠. 최명철씨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현재 시각은 오후 3시 51분. 단순히 방에 잠깐 들리는 일에 10분 이상 소요되고 말았다. 정확한 근무 교대 시간이 언제 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은 아직 여유 있다고 믿었다.

한 번에 위로 올라가면 옥상에 다다르는 건 한순간이지 않겠는가.

나와 한세아는 최미소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한 후, 나란히 방을 나섰다.

***

지상으로 올라가는 벙커 계단 출입구.

"최명철씨! 오래 기다렸습니까?"

등에 기다란 검은 케이스를 메고, 입구에서 초조한 듯 발을 툭툭 두드리고 있는 최명철을 본 나와 한세아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 이현우씨.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서 괜찮습니다만, 조금 서둘러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엄청 여유가 있는 건 아니라서요."

이내 합류한 나, 한세아, 최명철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근무 시간이 정확히 언제인데요?"

"4시 30분에 교대해 줘야 합니다. 지금이 3시 53분이니까 37분 남았습니다. 보통 옥상까지 30분 정도 걸리니 지금 가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에이, 뭐야. 엄청 많이 남았네요. 교대 시간은 너무 걱정하지 마요. 제가 한 번에 데려다 드릴 테니까."

한세아는 자신만 믿으라며 자신만만한 어조로 최명철의 걱정을 일축했다. 그녀의 말에 최명철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한세아는 위로 올라가면 바로 알게 될 거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윽고.

덜컹-

끼이이익···

지상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온 우리는 몸을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에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것도 잠시, 한세아가 몸을 쭉 피면서 한 말에 나와 최명철은 몸에 달라붙은 한기를 털어내고 그녀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현우씨, 저 잘 봐요. 이걸 보여주려고 연습 진짜 많이 했으니까. 최명철씨도요."

"······?"

여전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최명철을 뒤로 한 한세아는 4차선 도로 한복판에 섰다.

"후우···."

심호흡을 통해 긴장을 가라앉힌 그녀는 이내 수정 조각을 손에 꼭 쥐고,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맞잡았다. 수정 안의 입자가 회전하면서 외부로 빠져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한세아의 등 뒤에 모였다.

그와 동시에.

팟-

그녀의 등에는 예전에 G타워에서 탈출할 때 보았던 날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형체가 잡히지 않고 약간 흐느적거렸던 날개가 점차 모양이 잡히고 있는 것이었다.

츠츠츠-

날개뼈가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뒤로 뻗어진 날개. 그 날개는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는 모양새이더니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완전히 각이 진 여러 개의 판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각이 진 판 형태의 날개는 서서히 펼쳐지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 과정에서 푸른빛이 주변으로 내뿜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한세아는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돌려 어깨 쪽에 자리 잡은 날개를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짠! 어때요?"

날개를 확인한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인 다음에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외쳤다. 그녀답지 않게 우쭐하는 기색과 팔을 허리 양측에 올린 채로.

어찌나 우쭐거리던지 코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이게 뭔."

갑작스레 날개가 튀어나오자 당황했던 최명철은 나와 한세아를 번갈아 가면서 보더니, 이내 그저 그러려니 하는 얼굴이었다. 이제 뭐가 나와도 놀랍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와. 형태가 잡혔네요."

"흐느적거리는 날개는 효율이 너무 안 좋아서 압축 한번 해봤어요. 강화탄을 만드는 방식과 동일하게 사방으로 퍼지는 입자를 꾹꾹 눌러봤는데 이런 모양이 만들어지더라구요. 이상하지는 않죠?"

"엄청 멋진데요? 하나도 안 이상합니다."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면서 물개박수를 짝짝짝 쳤다.

"흐흫. 이렇게 만들면 제 마음대로 날 수도 있어요!"

그리 말한 한세아는 땅을 살짝 박차더니 몸을 위로 띄웠다. 그녀의 몸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와!"

나는 더욱 감탄하면서 박수를 거하게 쳤다. 예린이가 만들어 내는 바람을 타야만 고도를 높일 수 있었던 그녀가 이제는 스스로 고도와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니. 이게 대단하지 않다면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지금처럼 몸을 허공에 고정시켜서 총을 쏠 수도 있겠더라구요. 조이가 제 모습을 보더니 저한테 딱 맞는 총이 있다고 했어요. 나중에 선물로 주겠대요."

그녀는 허공에서 사격 자세를 잡는 시늉을 했다.

"와!!"

내 박수에 한층 더 우쭐거리는 기색이 강해진 한세아는,

"지속 시간이 짧긴 하지만 한 번에 속도를 크게 올릴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앞에 뭐가 나타나면 급제동!"

그동안의 성과를 자랑하듯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가 날개로 이동할 때마다 주변에는 푸른 입자가 흩뿌려졌다.

반짝이는 푸른 입자가 마치 눈처럼 흩날리는 모습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었다.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말이다.

잔뜩 신난 기색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한세아가 귀엽기도 했다.

그러나.

"······와."

이번만큼은 차마 박수를 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한세아를 볼 뿐이었다. 시선을 확 잡아채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 대단했고, 엄청 흔들렸다.

······가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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