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8 - 358. 준비 (8)
"어땠어요? 저 대단했죠?"
화려한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세아가 한 말이었다. 한껏 들뜬 그녀는 기대감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았다.
칭찬과 감탄. 그리고 갈채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네.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거 정말 멋졌습니다. 매일 같이 연습한 성과를 얻으신 것 같아 좋네요."
"흐흫,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습하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중간에 진이 다 빠진다고 포기했다면 저는 아직도 날 수 없었을 거라구요."
"그런데 그···. 다른 건 다 좋은데 나중에 창고나 칸이나 조이에게 가서 장비를 얻어야겠습니다. 상체를 고정- 아니 보호해주는 장비가 필요해 보입니다. 신발도 발목이 긴 걸로 신어야겠고요. 아무래도 허공에 뜨다 보니 은 엄폐가 불가능하잖습니까."
나는 그녀의 가슴이 너무 흔들렸다는 걸 대놓고 말하기는 좀 그래서 최대한 에둘러 말했다. 지금 나와 한세아 둘만 있는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최명철은 불가해를 본 것처럼 뭐가 형언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충격이 꽤 큰 모양이다.
그리고 장비가 필요하다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한세아가 위로 날아오르면 그녀는 즉시 다른 괴물들에게 바로 포착될 테고, 그것들의 공격을 막아줄 장비가 필요하긴 했으니까.
비행은 기동성이 생명이니 너무 무거운 장비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를 하는 것이 맞겠지.
착지할 때 충격이 꽤 클 수 있으니 신발로 군화 같은걸 신어서 발과 발목을 보호하는 것이 맞겠고.
"확실히 그런 장비가 필요하긴 해요! 안 그래도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었거든요. ······근데, 현우씨. 왜 자꾸 그런 눈으로···."
신난 기색으로 내 피드백에 동의하던 한세아는 말을 잇다가 뒤로 갈수록 말꼬리를 늘렸다. 이내 흘깃 향한 내 시선을 따라간 그녀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저 얼굴을 화악 붉게 물들이고 챙겨 온 겉옷을 입어 옷깃을 여몄을 따름이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눈치챈 듯했다.
"크흠! 아무튼 감상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그나저나 조이가 무슨 총을 준다고 했습니까?"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최명철을 대신해서 헛기침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 이 이상 화제가 진행된다면 진짜로 불이 날지도 몰랐으니까. 매콤한 손바닥을 맞은 내 등이 말이다.
어쩌면 다른 곳에서 불이 붙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한세아가 뽐내고 싶어 했던 비행 실력을 얼추 다 보았으니 이제 다음으로 해야 하는 건 근무 교대를 위해 위로 올라가는 일이지 않은가. 다른 것보다 이게 최우선이었다.
"그건 아직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저도 궁금해서 바로 물어 봤었는데, 이런 건 미리 알면 재미가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붙잡을 새도 없이 제가 만든 강화탄 들고 도망가셔서 답을 듣지 못했네요."
다행히 한세아는 별말하지 않고 푸른 실로 나와 최명철을 묶었다. 처음 날개를 펼쳤을 당시, 날개에서 나왔던 입자로 된 실은 이제 그녀의 허리춤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 또한 예전과 달라진 점이었다.
"얼마나 대단한걸 주시길래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놓으신 걸까요."
"제 말이 그 말이예요. 자, 이제 위로 천천히 올라갈 거니까 마음의 준비 하세요."
그녀는 나와 최명철을 감싼 푸른 실을 점검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대로 실이 고정된 모양이다.
"아, 최명철씨. 저희가 근무지에 따라가는 거 행정실에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최명철에게 말을 걸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그런지 그가 잔뜩 긴장하는 모양새였던 까닭이다. 말이라도 걸어 주면 그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지 않을까 해서 한 행동이었다.
"···그냥 이현우씨랑 그 외 1명 동반 근무로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조금 의아해하긴 했는데 문제 삼진 않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어깨에 메고 있는 검은 케이스를 꼭 붙잡은 최명철. 아래로 고정되어 있던 그의 시선이 내 부름에 나를 바라보았다.
"긴장 푸시라고 말 한번 걸어 봤어요. 너무 긴장한 것 같으시길래. 세아씨, 준비 끝났습니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하는 것과 동시에 한세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엄지 척 신호에 한세아가 같은 신호로 화답한 순간,
"···저기! 정말 죄송한데! 저는 그냥 계단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최명철이 다급하게 무어라 말하려고 했으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탁!
휘이이이-
한세아가 땅을 박차고 좌우로 활짝 펼친 날개로 날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얼굴과 몸이 바람을 가르는 것이 느껴진다. 엄청 빠른 속도로 급상승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압박감은 심하지 않았다. 복부를 간지럽히는 부유감도 매우 강하지 않았다.
다만,
"어우 씨."
천천히, 조금씩,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상의 풍경이 살 떨리게 다가왔을 뿐이었다. 괜스레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드는 두려움은 높이 11m 언저리에 다다를 때까지 점점 커지고 있는 중이었다.
높이 11m. 이때까지는 지상의 바닥이 제대로 보이기 때문에 사람이 느끼는 공포가 큰 것이고, 그 이상을 넘어가게 되면 훨씬 더 넓어진 시야와 흐릿해진 지상의 모습에 두려움의 크기는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분명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입자가 몸을 지속해서 강화시켜 주고 있는 탓일까.
어째 위로 점점 올라갈수록, 손에 땀이 배이는 느낌이다. 아니, 실제로 손바닥이 미끌거릴 정도로 식은땀이 나왔다.
이미 11m는 지났는데 말이다.
사방의 괴물들에게 쫓겨 한눈을 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그저 위로 올라가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주변의 풍경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아스팔트 도로, 건물 외벽의 깨진 유리창, 바람에 흔들리는 넝쿨 잎사귀, 살짝 주홍빛으로 물든 햇빛, 그것에 물든 철골과 나무뿌리, 온갖 사물이 넘어지고 부서진 사무실 내부.
여전히 지상의 바닥은 흐릿해지기는커녕 선명하게만 보이었다. 단순히 G타워 때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몸을 맡긴 것이건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걸 간과하고 말았다.
휘이이이-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지수는 데려왔어도 여기에 못 탔겠네.'
한사코 거부하며 자기는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겠다고 했겠지. 고소 공포증이 있는 그녀였으니까.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지수의 꼬리털이 막 곤두세워졌을 수도 있었다.
'청설모 꼬리처럼.'
나는 속으로 실없는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현재 높이를 가늠해 보았다. 지금 위치가 32층 빌딩의 중간 정도이니 대략적인 높이는 100m쯤 되리라.
바로 그때.
"허허."
뜬금없이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범인은 최명철. 그는 고층 빌딩의 중간층 높이에 다다르자 해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괜찮아 보이시네요. 처음에는 되게 무서워 하셨잖습니까."
"이미 여기까지 올라온 거 어쩌겠습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안 떨어진다고 하시기도 하셨고."
"······."
나는 최명철의 말에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저기, 한세아씨.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안 떨어져요.'
'예?'
'안 떨어진다고요. 그거 물어보려고 한 거 아니예요?'
'······맞습니다. 그래서 정말 안 떨어집니까? 제가 원래 고소공포증은 없는 사람인데 별다른 안전 장비없이 이렇게까지 높이 올라갈 일은 생애 처음이라 긴장이 좀 되어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만에 하나 떨어져도 제가 잡아드릴 테니까요.'
'···그냥 처음부터 떨어질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래,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최명철의 표정이 묘하게 해탈한 표정처럼 변한 것이 말이다. 단호한 한세아의 말에 그는 지금 상황을 놀이기구를 타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이현우씨, 저 위에 있는 애들 저희가 이렇게 올라오면 많이 놀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지금 이미 눈치챘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대놓고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고, 입자가 이렇게 반짝거리니까요."
"역시 그렇겠죠···. 한세아씨, 제 부탁 하나만 들어 줄 수 있습니까?"
"네? 뭔데요?"
신중한 표정으로 날개를 조정하고 있던 한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옥상에 완전히 올라가면 저부터 내려주십쇼."
"아, 그 정도야 뭐 쉽죠. 알겠어요. 제일 먼저 내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최명철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후임인 모양이고, 그들에게 장난을 칠 계획인 듯했다.
이윽고, 우리는 OneIFC 건물 옥상 부근에 다다랐다. 아래는 완전히 까마득하게 보였다. 현실감이 애매모호해질 정도로 높은 높이는 이제 감탄사만을 불러일으켰다.
휘이이이-
"안녕하세요! 근무 교대하러 왔어요."
한세아는 방긋 웃는 얼굴로 초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
"······."
그들은 계단이 아닌 날아서 옥상까지 올라온 나, 한세아, 최명철을 보며 뭐라 답하지 못 하는 상태.
당황한 그들의 심정이 얼추 이해가 갔던 나는 옆에서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최명철은 그런 그들의 이목을 끌었다. 옥상에 따로 설치된 임시 초소에 가장 먼저 몸을 밀어 넣은 그가 두 팔을 활짝 벌렸던 것이다.
"선임, 강림."
빌딩 옥상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초병들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약 드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