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64화 (365/497)

Chapter 364 - 364. 준비 (14)

똑똑똑-

"칸, 지금 일어나 있어요?"

나는 이른 아침부터 칸의 방문을 두드렸다. 땅울림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난쟁이들이 땅울림을 사용하는 방식과 내가 그 이능을 사용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방식이 다르다고 하기보다는 내 땅울림이 미숙하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난쟁이들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당연히 나도 그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 하려고 개인적으로 연습해 보았으나,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다. 의자는커녕 그저 기껏해야 이상한 돌 뭉치가 살짝 솟고 말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른 아침부터 칸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건 오늘 유인 장치 설치 작전을 나가는 최명철을 배웅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지만, 나보다 더 빨리 일어나서 준비한 그는 이미 외부로 나갔던 것이다. 며칠 동안 홀로 외부에서 버틸 수 있는 물자를 가지고서.

그 탓에 배웅도 해주지 못했고, 그 덕분에 오전 시간이 붕 떠버린 나는 이렇게 칸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을 하루하루 허투루 보낼 여유는 없지 않은가.

연대장이 보낸 정찰조들이 아르마딜로 변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돌아오면, 최명철이 유인 장치를 설치했다고 무전을 친다면, 우리도 바로 다음 작전을 수행해야 하니까.

그러니 그전까지의 시간 동안 최대한 강해지는 것이 최우선이겠지.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부스럭-

벌컥!

내부에서 인기척이 느껴진 것과 동시에 문이 열렸고, 부스스한 수염이 모습을 드러냈다. 칸이었다.

"현우? 아직 해도 뜨지 않았건만, 무슨 일이느냐? 아니, 일단 안으로 들어 오거라. 새벽 공기가 차다."

그는 눈을 끔뻑거리면서 나를 보다가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다행히 심기가 불편한 기색은 아니었다.

"저기 의자에 앉아 있거라. 난 차 좀 타마. 아침에 이걸 마시지 않으면 이상하게도 잠이 잘 안 깨거든."

칸은 벽면에 붙어 있는 선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선반에 도착한 그는 포트기로 물을 데우기 시작했다. 포트기 안에는 녹차 티백이 들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녹차 한 잔 마실수 있게 된 것은 역시 수정 발전기가 개량되었던 덕분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뜨거운 물이 아닌 차가운 물에 우린 녹차를 마셔야 했겠지.

"제가 칸 잠을 깨운 건 아니죠? 너무 이른 아침부터 온 것이 실례라는 건 알고 있지만, 꼭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나는 난쟁이 칸이 가리킨 의자에 얌전히 앉으면서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처음 들어온 그의 방은 정갈한 분위기보다는 수집 창고 분위기에 더 가까웠다.

무언가 복잡한 장식품이나 화려한 수집품이 있는 건 아니었다. 석재로 이루어진 선반 위에 여러 조각상들이 올려져 있을 따름이었다.

고퀄리티의 고성 형상의 조각상이나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고 있는 거구의 사내, 활짝 펼친 날개로 허공을 날고 있는 용 아니, 드래곤. 그 옆에서 같이 날고 있는 배 형상의 무언가.

아무래도 칸의 고향에 있던 존재들인 모양이다.

"아니, 어차피 나도 슬슬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으니 신경 쓸 것 없다. 잠시만 기다려라. 곧 물이 다 데워지니 그때 이야기하자꾸나. 나도 잠이 좀 더 깨야 하고."

"알겠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본 난쟁이 칸은 아침 산책은 나온 할아버지처럼 허리를 조심스럽게 뒤틀었다. 에구구 앓는 소리는 덤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한편, 방 내부를 더 둘러보았다. 방에는 내가 들어온 문을 제외하고도 2개의 문이 더 있었고, 석재 서랍장 위에는 무전기와 함께 비상종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선 우측에 있는 문.

이 문 너머에는 패닉룸으로 곧장 향하는 통로가 있을 것이다. 벙커에 온 다음날, 행정실에서 온 사람이 우리에게 건넨 비상 대피 매뉴얼에 따르면 말이다.

비상시 생존자들이 각자 방에서 버티는 것이 아닌 별도로 마련된 대피 장소에 모여야 한다고 쓰여 있었으니 맞겠지.

실제로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최미소, 엘리가 같이 지내는 방 근처 복도에 저 문이 있었다.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게 큼지막한 글씨로 대피 장소라고 쓰인 문이었다.

보통은 저 문이 방 내부에 있지 않고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복도에 설치되는 편인데, 칸은 최중요 인물이라 방에 바로 패닉룸으로 가는 문이 따로 있는 듯했다.

다음은 좌측에 있는 문.

이 문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다른 문보다 먼지가 덜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문 너머에는 이번에 새로 생긴 하우스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을 것이다.

전력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고, 그걸 활용하자는 엘리가 있었으며, 엘리가 책임지고 관리한다고 하자 허락한 난쟁이들이 새로 만든 공간인 하우스. 한마디로 식량을 뽑아낼 수 있는 식물을 키우는 곳이었다.

비록 지금은 단순히 흙과 비닐, 전구만 있을 뿐이지만, 언젠가는 달콤한 과실이 되어 돌아오리라. 그 과실은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고.

바로 그때.

"그래, 배우고 싶은 게 있다고? 뭐가 그리 배우고 싶어서 아침부터 나를 찾아왔을까. 내가 한번 맞춰 보마. 땅울림. 이걸 더 배우고 싶은 것이지?"

난쟁이 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가 담긴 컵 2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 네. 맞아요. 저 혼자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굳이 고집부릴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이 근처에 있는데. 물론, 칸이 허락만 한다면요."

나는 그렇다 고개를 끄덕였고, 손가락에 이능을 담아 석재 테이블을 두드렸다.

끄드득···

미약한 부스러기 소리와 함께 뭉툭한 돌이 뾱 솟았다. 손목의 복숭아뼈 같은 외형이었다. 이게 지금 내가 만들 수 있는 한계였다. 칸처럼 의자나 각종 형태의 물건들을 만든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수준에서는 말이다.

"뭐가 문제인지 바로 알겠구나. 너는 그저 사방으로 힘을 뿌릴 뿐이야. 제어를 하지 않고, 파도처럼 앞으로 밀어내기만 하니 방금처럼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지."

내가 만든 결과물을 멍하니 보다가 한참을 웃은 난쟁이 칸이 한 말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나한테서 뭘 배우고 싶다는 건 좋다. 나도 너한테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 전에 너는 먼저 힘을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해. 단순히 무식하게 힘을 쏘아 보내는 것만이 아닌 쏘아낸 그 힘을 다시 회수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 다른 무엇보다 이게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 같구나."

"회수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걸 지금 알려주려고 하는 게 아니더냐. 자, 내가 하는 걸 잘 보거라."

칸은 내가 만든 걸 손짓 한 번에 순식간에 지워 버리고 땅울림이라는 이능을 천천히 운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눈으로 보기 쉽게 힘을 느리게 움직이고, 힘의 이동 경로를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날 때부터 땅울림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는 우리와 다르게, 너는 푸른 입자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흉내를 낸다. 그렇기에 너는 더 확실하게 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어. 효율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어떠냐. 힘이 움직이는 길이 보이느냐? 안 보이면 안 보인다고 솔직하게 말해라."

"보여요. 아주 잘 보여요."

"그럼 다행이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이동 경로를 놓치지 마라. 분명 네가 무언가를 놓친 게 있을 것이야. 그리고 그 점을 해결하면 방금 같은 이상한 결과물이 나오진 않겠지. 너는 재능이 있으니 그 문제점만 찾으면 나머지 다른 문제들은 문제도 아니게 될 것이고."

애초에 재능이 없었다면 난쟁이들에게만 허락된 땅울림을 흉내 내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난쟁이 칸. 그는 여유롭게 차를 호록 마시면서 한쪽 팔에는 계속해서 땅 울림을 사용했다.

콰르르륵-

덕분에 석재 테이블은 아주 난리가 난 상태였다. 온갖 돌 무더기가 솟거나 갑자기 돌 무더기들이 뭉쳐 사람의 형상인 골렘이 되거나 했으니까.

그 와중에도 녹차에는 돌 부스러기가 튀지 않는다는 점은 그의 이능 사용법이 얼마나 능숙한지 알게끔 만들었다.

나는 그의 팔과 손끝에서 일어나는 이능의 이동 경로를 계속 눈에 담았다. 그가 능력을 발현하는 부분까지는 나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다른 점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땅울림을 발현한 이후 골렘 조각상을 무너트렸을 때였다.

"······어? 칸! 방금 그거 한 번만 더 보여주세요!"

"뭐가 다른지 찾았느냐?"

난쟁이 칸은 허허 웃으면서 내 부탁을 들어 주었다. 그는 완전히 동일하게 방금 있었던 일을 재현해주었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틀림없었다.

그가 내보낸 힘은 내보내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능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보이지 않는 선은 마치 힘을 제련하는 것처럼 결과물의 형상을 잡아주고 있기도 했다.

그것이 힘을 제어하는 방법인지는 몰라도 저 선 덕분에 힘의 회수와 제련이 자유롭다는 건 확실했다.

'···근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선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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