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66화 (367/497)

Chapter 366 - 366. 준비 (16)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지수, 한세아는 세면대 앞에 나란히 서서 양치질을 하고 있었고, 최미소는 일행을 등지고 지안이에게 수유를 하고 있었다.

엘리는 그런 최미소와 지안이의 모습을 홀린 듯이 보고 있었다. 꼬물거리는 아기가 귀여운 모양이다.

"음······."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예린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초코바를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는 팔짱을 낀 채 고민하는 소리를 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 배 터지게 먹어 놓고선 표정이 왜 그래?"

나는 예린을 보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침밥을 분쇄한 예린. 그런 아이가 본래 자신답지 않게 먹을 걸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혹여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그 걱정은 이내 빠르게 침몰했다.

"이걸 먹을까 말까 고민 중이예요. 아니, 정확히는 이걸 먹어도 괜찮을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 중이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유통기한이라도 지났어? 그럼 탈 나니까 먹지 말고."

"그건 아닌데··· 민트 초코 맛이잖아요···. 이런 초코바는 처음 본다구요. 화이트 초코바도 아니고, 쿠앤크 초코바도 아니고, 아몬드봉봉 초코바도 아니고 민트 초코바라니! 이런 법이 어딨냔 말이예요···!"

그렇다. 아이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초코바를 선뜻 입에 넣기를 망설이고 있는 이유. 바로 그건 이번에 배급으로 섞여 나온 간식거리가 일반적인 초코바가 아닌 색다른 맛의 초코바였기 때문이었다.

나름 초코계의 플래그쉽 자리를 차지하는 브랜드인 H사의 초코바가 배급되었다는 걸 깨달은 예린은 처음에 방방 뛰며 좋아했지만, 그것이 민트 초코맛이라는 걸 보게 된 이후로 죽 이런 상태였다.

'근데 솔직히 이렇게 유난을 떨 일인가···?'

초코바가 무슨 맛이든 간에 입에 넣으면 매우 달아서 먹을 만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고개를 휘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아이 나름대로 맛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을 테니까. 예린이가 누렁이도 아니고.

바로 그때.

"그래서 안 먹겠다고? 참 별일이네. 안 먹을 거면 이리 내. 나중에 훈련하다가 힘들면 내가 먹게.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뭔가 요즘 당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라."

가벼운 세안을 마친 지수가 예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안 돼! 먹긴 먹을 거야, 언니! 맛을 한번 봐야 나중에 어떻게 처리할지 정할 수 있으니까!"

예린은 화들짝 놀라며 테이블 위 초코바를 품으로 회수했다. 누가 가져갈 새라 아주 다급한 몸짓이었다.

부스럭!

초코바의 포장지가 예린의 손에 잡히며 구겨지는 소리를 낸다. 그 포장지는 이내 아이의 손에 의해 조금씩 찢어졌고, 안에 담고 있던 내용물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럼 먹겠습니다···!"

요리 대회의 출전자가 만든 음식을 맛보는 심사위원처럼 엄숙하게 말한 예린.

아침부터 일어난 촌극에 나, 지수, 한세아, 최미소, 엘리는 예린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어느 때처럼 결국 맛있게 먹겠지라는 생각하면서.

모두의 시선을 받은 아이는 겉보기에 일반적인 초코바처럼 보이는 그것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와 동시에.

냠-

얇게 코팅된 초콜릿이 부서지며 그 안의 민트 초코로 이루어진 층계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민트색 배경에 자잘한 초코칩이 들어 있는 모양새였다.

···냠

예린은 작게 한입 먹은 것을 한참 우물거리고 있다가 신중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작게 베어 물었다. 그리고 조금 더 천천히 오물오물 씹었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기미 상궁도 아니고.'

내가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 아이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아이의 표정은 점점 묘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예린은 입을 작게 벌리고, 한 번 더 베어 물려다가 멈칫하고 몸을 굳혔다. 그리고 손에 들린 초코바를 얌전히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뭔데? 뭐 어떻길래 그래?"

한세아가 일련의 행동을 보고 웃음을 꾹 참으면서 물었다. 예린의 표정을 살핀 그녀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인 모양이다.

"제 14년 인생에서 민트 초코맛은 처음 먹어 보는데요. 뭔가··· 뭔가··· 오묘해요. 달달하다가 점점 화해지다가 다시 달달해지다가···. 그 반복이 생각보다 괜찮은데··· 음. 그래도 제 취향은 아니에요."

"의외네. 예린이 너라면 맛있게 먹을 줄 알았거든."

"······초코가 불쌍해요. 왜 이런데 들어간 걸까요···. 그냥 혼자 있었으면 내가 맛있게 먹어 줄 수 있는데 말이에요···."

"아하핫!"

민트와 섞인 초코가 불쌍하다는 심사위원 예린의 말에 기어코 웃음이 터진 한세아. 그녀는 킥킥 웃으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기 기대를 처참히 배신한 초코바 탓에 축 늘어져 있던 예린의 꼬리가 다시금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못 먹겠다는 건 아니지?"

지수는 포장 뜯었으니까 먹긴 먹어야 한다며 테이블 위에 고독하게 방치된 초코바를 가리켰다. 아이가 소심하게 귀퉁이를 2번 베어 문 흔적이 남은 초코바였다.

"···최악은 아니라서 먹을 순 있어. 있는데···."

"그럼 그냥 먹으면 되겠네. 자, 얼른 먹어. 너 먹는 거 보고 훈련하러 갈 거니까."

"으, 응···."

장난기 가득한 지수의 말을 들은 예린의 꼬리는 조금 전까지 살랑거렸던 것이 무색하게 다시금 축 늘어지게 되었다.

그런 꼬리는 아니, 예린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휙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푸른 눈망울에 내가 한가득 담겼다.

"···오빠! 오빠 이거 절반 먹을래요? 먹을 만해요! 진짜예요! 먹어 주세요! 제발···!"

아이가 찾은 해답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 일견 필사적인 행태가 어이없게 다가왔다. 최악은 아니라고 한 주제에 사실은 최악이었던 것일까.

"에라이, 줘."

여기서 질질 끄는 것도 시간 아깝고, 후딱 해치워서 훈련하러 나가야 하므로 나는 예린에게 받은 초코바를 정확히 6등분했다.

"···뭐야. 아저씨 그걸 왜 나눠?"

"다 같이 나눠 먹자고."

"나 방금 양치했는데?"

"나도 했어. 세아씨, 미소씨, 엘리. 이거 하나씩 받아요. 자, 예린아. 이건 네 몫이야."

우리 속담에 기쁨은 나눌 수록 커지고, 고통은 나눌 수록 줄어든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걸 실천한 것뿐이었다.

"어째서···! 저는 먹었잖아요, 오빠! 그런데 제 몫은 왜 또 생긴 거예요! 이건 사기야! 불공평해!"

불공평하다는 걸 주장하듯 예린의 귀가 뒤로 접혔다.

"그래서 네가 먹었던 부분만 떼어서 주는 거잖아. 처음부터 교환을 해 달라고 하던가. 이렇게 남기면 누가 처리하라는 거야?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어라, 예린아."

"그럴 수가···!

"이거 안 먹으면 진짜로 초코바 통제야."

"주세요. 빨리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기 몫을 챙긴 예린은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아이를 필두로 지수, 한세아, 최미소, 엘리 또한 각자 몫으로 나눠진 초코바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 과정에서 지수가 질색하는 일이 있었지만, 한세아를 비롯한 최미소와 엘리는 나름대로 입맛에 맞는 듯 맛있게 먹었다. 특히 엘리가 매우 좋아했다. 단순히 초코만 들어 있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나 뭐라나.

나도 그녀들처럼 H사의 민트 초코바를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 아침 식사 전에 방문한 군인에게 전달받은 내용을 머릿속을 떠올렸다.

최명철이 중간 지점인 효창 공원앞역에 도달했다는 것과 아르마딜로 변종이 등촌역 부근에서 이동을 잠시 멈췄다는 내용이었다.

유인 장치를 설치하는 장소까지 남은 거리 대략 3km.

등촌역과 여의도 세마 벙커 사이의 거리 대략 6km.

꾸준히 벙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아르마딜로 변종이 현재는 잠시 멈춰 선 상태라고 하니 최명철이 임무를 마칠 때까지의 여유는 조금 있는 셈이다.

그가 유인 장치를 설치하는 즉시 무전을 통해 상황을 알려주기로 했으며, 예상 작전 개시일은 3일 뒤였다.

물론, 이쪽에서 일단 예상한 개시일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장치를 설치하는 장소가 1차 작전이 이루어졌었던 후암동 일대이고, 그 후암동 일대에는 수많은 나무 인간들과 온갖 변종들이 득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안을 잠입해서 설치해야 하는 일이니만큼 이동 시간보다 숨는 시간이 더 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당연히 숨는 시간만큼 작전 개시일이 뒤로 밀려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 말이다.

확실한 건 그 개시일은 곧 온다는 것이고, 그러니 당장 내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이 왔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가자, 지수야. 엘리, 너도."

그리 생각한 나는 입을 화하게 만드는 초콜릿을 꿀꺽 삼키면서 지수와 엘리에게 위로 올라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오늘부터 같이 훈련하기로 했고, 아침 식사도 마쳤으니 다음으로 할 일은 명백하지 않은가.

"응! 빨리 나가자!"

입을 물로 헹구고 있던 지수가 내 신호에 벽면에 기대져 있던 훈련용 도끼를 가지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흡사 산책 나가자는 말을 들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붕붕 휘두르는 건 덤이었다.

마찬가지로 엘리도 활을 챙긴 후 나와 지수에게 따라 붙었다.

이윽고.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이따 저녁 시간에 봬요!"

나와 지수, 엘리는 한세아, 예린, 최미소의 배웅을 받으면서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민트 초코바는 역시 내 입맛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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