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81화 (382/497)

Chapter 381 - 381. 습격 (1)

어느 날처럼 훈련을 마치고 잠이 든 날 밤.

땡땡땡땡땡땡땡-!

복도에 설치된 비상종이 갑작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는 자는 쉴 새 없이 울려서 사람들의 잠을 모조리 깨우는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었다.

"······!"

"뭐야!"

그리고 그건 방에 있던 나, 지수, 한세아, 최미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눈을 번쩍 뜨는 것과 동시에 몸을 급하게 일으켰다.

훈련의 여파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 몸 이곳저곳에서 욱신거림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 욱신거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내부 인원 파악이었다. 현재 복도에서 비상종 소리가 울린다는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으니까.

팟!

나와 한세아가 방에 설치된 조명을 키고, 최미소가 갑작스러운 소란에 울음을 터트린 지안이를 챙긴 순간.

"···아저씨, 예린이! 예린이가 없어! 엘리도!"

지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내부 구조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으나 인원이 사라졌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린 그녀는 안색이 파리해진 상태였다. 이제 보니 피 냄새도 난다는 말은 덤이었다.

"뭐?!"

지수의 외침을 들은 나는 황급히 예린과 엘리의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다는 옅은 온기와 뒤집어진 이불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이 내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둘이 화장실 갔나 봐요! 엘리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활이 없어요!"

한세아가 벽에 기대져 있는 우리의 무기를 보더니 말했다. 그녀는 어디 나갈 때면 반드시 여럿이서 다니라고 신신당부 했다며 말을 덧붙였다.

나와 지수가 무어라 답하려고 한 그때.

"꺄아아아악!"

문 너머 복도에서 비명 소리가 방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 비명은 한 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잠에서 강제로 깨어난 사람들이 비상 대피 매뉴얼대로 대피하고자 이동하는 중, 복도 상황을 보고 내지른 비명인 듯했다.

"일단 나가요! 미소씨는 일단 여기서 대기!"

우리는 두려움이 가득 담긴 그 소리를 들은 직후, 곧장 다리를 박차고 문이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예린과 엘리가 방에 없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가만히 방에 있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특히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비명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더욱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예린과 엘리를 한시라도 더 빨리 찾아서 보호해야 하니 말이다.

벌컥!

문을 부술 듯이 연 것과 동시에.

"이런 씹···."

"···우욱."

나와 지수는 순간 몸을 멈칫하며 굳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도로 나가니 주저앉은 사람들 사이로 혈향이 풍겨 왔고, 힘없이 엎어진 군인들의 시체가 보였던 까닭이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하나 같이 처참하게 파헤쳐져 있었다. 누가 보아도 괴물이 끔찍한 짓을 행했다는 걸 알게 끔 만들 정도로.

복도에 풍기는 혈향의 농도와 시야를 찐득하게 만드는 떨어진 살 조각들은 모두 그 시체에게서 나왔던 것이다.

움직임을 인지한 보안등이 내는 불빛은 사방에 튄 핏자국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혈향이 짙은데 지수가 자고 있는 동안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내게 한 가지 의문이 들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죽은 군인들의 표정. 그들의 표정은 죽기 직전까지 죽는다는 것조차 몰랐었는지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정말로 이상한 점이었다.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내부 불침번 인원들이?'

어깨 위 견장과 복장을 보니 야간 순찰을 하던 군인들이 분명했다. 그런 그들이 당했다는 건 습격이 벙커 내부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으으···."

"저기요! 정신 차려요! 주저앉지 말고 움직여요! 다른 군인들이 곧 올 테니까!"

내 뒤에서 복도의 모습을 보고 헛숨을 들이켰던 한세아는 쏜살같이 튀어 나가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정신을 수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미 짙은 두려움에 잠식된 사람들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죽은 2명의 군인을 본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고,

타타타타탕!

그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격음이 복도를 타고 웅웅 울렸기에 더욱 그러했다. 고작 한 사람의 외침만으로 지금의 혼란을 가라앉힌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으아악!"

"꺄아아아악!"

복도로 나와 있던 사람들은 귓가를 강하게 울리는 사격음을 듣자 몸을 바로 수그렸다. 몸을 스쳐 지나가는 사격음과 함께 쏘아진 탄환이 자신들에게 향하는 줄 알았던 탓에 한 행동이었다.

"지수야! 세아씨!"

나도 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안등이 켜지지 않아 어두운 전방의 복도에서 들린 사격음은 내가 지수와 한세아를 뒤로 숨기게 만들었다.

사격음이 끝나고 어두운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피투성이가 된 군인들. 군홧발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던 그들은 복도로 나와 몸을 낮추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 곧장 소리쳤다.

"민간인들은 서둘러 대피하십쇼! 매뉴얼대로 이동하세요! 여기 있으면 위험합니다!"

3인 1조로 이루어진 군인들은 상황 파악을 마치고 행동하는 중인 것 같았다. 군인들은 복도에 널브러진 시체를 봤어도 그저 이를 악물 뿐이었으니까.

"훅- 후욱-, 거주자 밀집 구역. 여기도 사망자 둘 발생. 사망자는 야간 순찰조로 보임. 본부 수신 완료했는지."

뒤따라온 군인이 무전기에 대고 말하는 내용은 확신을 더해주었다.

- 치직- ···수신 완료. 해당 구역 치지직- 통제 후, 대피실로 이동 바람. 현재 대피실에 다수의 보호 병력을 배치했다고 알림. 이상.

무전기를 다시 조끼 파우치에 넣은 군인은 다른 군인들과 함께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린 사람들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불안감이 가득한 시선들이 서로를 비춘다.

"지수야! 미소씨 데리고 나와! 지금 다 같이 이동할 때 움직여야 해!"

나는 지수에게 최미소를 데리고 나오라고 말했다. 모두가 이동하는 상황에서 혼자 방 안에 있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지 않은가.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지고 있는 이상, 고립은 죽음을 불러 올 뿐이었으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저 군인들은 뭐에 죽은 거냐고요!"

어느 남성이 군인들에게 다급히 물었다. 그가 던진 물음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물음이었고, 그 덕분에 잠시뿐이지만 근처의 시선이 모두 군인들에게 몰리게 되었다.

"······저희도 모릅니다."

"뭐라고요? 그럼 방금 총을 왜 쏜 건데요!"

"설명은 나중에! 우선 여기로 들어가서 대피하십쇼! 안쪽에는 이미 병력이 배치되었으니 복도보다 훨씬 안전할 겁니다! 이야기는 거기서 들으세요!"

군인들은 남성의 말에 답해 줄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머지않은 복도 벽에 설치된 두꺼운 돌문을 열고 그 통로로 사람들을 넘어지지 않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어서 무전기가 토해내는 내용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 모두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치직- 본부! 들리나? 이런 씨- 들려야 하는데━! 타앙-치직- 현재 아르마딜로 변종이 활동을 재개했고, 벙커 방향으로 진격 중! 1차 유인책으로 사격을 가했으나 실패! 치지지직- 멈춰! 멈추라고! 이 괴물 새끼야! 이 무전 들리면 당장 응답해! 누구라도 좋으니까!

낯이 익은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무전기. 무전 사이사이에는 잡음을 크게 일으키는 총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 후욱, 여기는 본부. 수신 완료했다고 알림! 예상 도달 시각은 얼마인가!

- 변종이 장벽 도달까지 앞으로 치직- 20분! 시간은 계속 끌어보겠지만- 어?! 이게 뭐- 꺄아아악! 치지지직-

여성의 목소리를 더 이상 전해주지 않는 무전기. 비명 소리를 끝으로 그저 잡음만 토해낼 뿐이었다.

- 박 소위! 박 소위!! 이런 제기랄! 현재 이 통신이 들리는 모든 인원에게 전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대피실로 보내! 거주 구역의 문은 습격한 놈들의 공격을 버틸 수 없다!

애써 평정을 지키려던 연대장이었지만, 결국 그는 연이은 혼란에 평정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무전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지시를 내렸다.

연대장과 군인들이 사람들을 지속해서 인솔하는 곳은 바로 벙커 안에 마련된 또 하나의 대피 시설. 일종의 패닉룸인 그곳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두꺼운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그 공간만큼은 다른 곳이 무너져도 버틸 수 있는 내구도를 가졌다는 걸 알고 있는 그들은 공포에 빠진 사람들을 다독였다. 그곳으로만 가면 안전하다고 외치면서.

그나마 군인들에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군인들에게 쌓인 신뢰 덕분인지 사람들은 그들의 통제에 어떻게든 따르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각종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 중 일부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방에 숨은 사람들은 꺼낸 건 뒤이어 도착한 또 다른 3인 1조의 군인들이었다.

"방에 있으시면 위험합니다! 놈들은 이런 문짝 같은 건 그냥 부숴 버린다고요! 저희가 보호해드릴 테니 어서 나오십쇼!"

"하, 하지만-."

"저희가 있는 한 괜찮습니다! 대피소 통로 입구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찾아내서 어떻게든 대피 행렬에 합류시켰다.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건 군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군인들은 시민들을 지킨다는 본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움직였다.

'20분?'

혼란이 가득한 벙커에서 예린과 엘리를 찾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 이곳에서 화장실까지의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체 모를 괴물들을 피해 그녀들이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그렇게 된다면 서로 길이 엇갈리게 될 것이고, 결국 20분이라는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20분이라는 시간조차 확실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르마딜로 변종이 벙커에 도달하기 전까지 거리가 상당히 남아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상황인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때.

"아저씨, 가."

지수가 나를 앞으로 밀면서 내 정신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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