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2 - 382. 습격 (2)
"어서 가. 예린이랑 엘리는 나랑 세아 언니가 찾아볼게."
지수가 한세아와 눈빛을 서둘러 교환한 뒤에 한 말이었다. 이어서 나와 눈을 맞댄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저씨는 그 변종 막으러 가야 하잖아. 마음 같아서는 나도 도와주고 싶은데 이런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
"그래요. 어서 가요, 현우씨. 이럴 시간 없잖아요."
한세아가 죽은 군인 옆에 널브러진 총기를 챙기면서 동의했다. 그녀는 이내 탄창을 분리해 안에 들어 있는 탄의 수를 가늠해 보았다.
탄창 안의 총알은 대략 15발 정도. 원래는 야간 경계 근무조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외부가 아닌 내부인 이상 실탄을 나눠 주지는 않았다.
허나, 경계를 강화하면서 연대장이 내부 경계 근무 인원들에게도 실탄을 지급하라고 했기 때문에 한세아가 현재 집어 든 총기에 실탄이 들어 있는 것이다. 비록 바람과 달리 침입한 무언가에 대응하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츠츠츠-
한세아는 총기를 비껴 맨 것과 그와 동시에 탄에 푸른 입자를 불어넣었다. 강화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노리쇠가 후퇴전진하는 소리, 총기에 묻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탄창을 탁탁쳐서 결합이 잘되었는지 확인했다. 철컥거리는 그 소리는 내게 답을 촉구하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예린이랑 엘리는 맡기겠습니다."
나는 그녀들의 행동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이 중간에 잘못되면 내가 아르마딜로 변종을 상대한다는 건 이미 연대장과, 이곳 군인들과 약조된 사항이었다.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한편, 내가 행동하기를 기다리는 군인들도 그 점을 알고 있기에 나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같이 싸우기로 했으니까.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미소씨는 사람들 따라서 대피실로 가 있으십쇼. 거기는 여기보다 안전할 겁니다."
우선 최미소가 대피실로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나는 최미소를 바라보았다. 지안이를 품에 안고 있는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까 무전기 내용 들어 보니까 난쟁이분들도 그곳에 있다고 하니까요."
그리 말하는 최미소는 손을 가늘게 떨고 있는 중이었다. 흔들림을 인지한 내 시선이 그녀의 손으로 향하자 최미소는 떨리는 손을 애써 감췄다.
"······무전기! 여분의 무전기 주세요! 빨리!"
이를 악문 나는 무어라 말을 더하는 대신 군인들에게 무전기를 받아 지수와 한세아에게 건넸다. 원래 계획대로 아르마딜로 변종을 유인하는 작전을 실행하기로 택한 것이다.
지수, 한세아, 최미소, 예린, 엘리가 걱정이 되었지만, 고민할 시간도, 고집부릴 시간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녀들이, 벙커의 군인들이 혼란에 빠진 내부 상황을 잘 수습하리라 믿는 것뿐이었다.
무엇이 우리를 공격했는지 모른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무슨 일 생기면 이걸로 바로 무전해!"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곧장 돌려 달렸다. 돌아오는 그녀들의 답을 제대로 듣지 못했으나, 한시가 급한 상황이기에 일단 몸부터 돌리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지 않은가.
'부디 무사하기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몸을 돌리자 보이는 건 대피실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키기 위해 추가로 도착한 군인들. 무전기가 쉴 새 없이 무전을 토해내는 것처럼 그들 또한 몸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부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하며 사람들을 대피실로 이동시키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다.
단순히 그것이 군인들의 임무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이 대피시키는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그들의 가족이나 다름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본디 사람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법이니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현재 병력은 3곳으로 분산되었습니다!"
내 말에 답을 준 건 내가 지상으로 향하자 눈치껏 따라붙은 군인이었다. 그는 지금 전 병력이 장벽, 벙커 내부, 대피실과 그곳으로 향하는 통로.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외쳤다.
군인이 외침을 이었다.
"벙커를 습격한 것들의 정체는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것은 그것들의 외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 치직··· 아르마딜로 변종과 그 변종을 뒤따르는 악성 변이자 무리가 장벽으로 접근 중! 규모는 대략 500 이상! 장벽 위로 신속히 추가 지원 바란다! 치지직- 지금 모인 인원만으로는 막을 수 없어!
나는 앳된 얼굴의 군인과 무전기가 전해주는 내용을 들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흩어지지 마십시오! 저희가 주변을 확실하게 지킬 테니 최대한 뭉쳐서 이동하십쇼! 대피실 입구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가는 길 중간중간 마주친 군인들은 복장을 갖춘 채로 혼란에 빠진 벙커를 통제하는 모습이었다.
대체로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양새였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복도에 규칙적인 간격으로 설치된 보안등 중 일부가 렌즈가 박살이 나서 켜지지 않는 곳들이 있었다. 그러한 공간이 어둠에 잠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러한 어둠에서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와 동시에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찔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명 소리가 멎었다. 어둠에서 몸부림치던 움직임 또한 멈췄다.
탕! 탕! 탕!
근처의 군인들이 어둠을 향해 사격을 해 보았으나, 탄은 그저 벽에 맞아 도탄이 될 뿐이었다. 무언가가 맞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씨발!! 대체 뭐가 있는 거냐고!"
"사격 중지! 사격 중지! 탄을 아껴!"
"어두운 구역으로 들어가지 마십쇼!"
군인들은 악에 받쳐 소리를 내질렀다. 아무리 사격을 가해도 사람들이 죽는 걸 막을 수가 없는 까닭이었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분명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괴물이 있는데 그것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군인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구역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폭탄을 던진다면 괴물들을 처리할 수는 있겠지. 허나, 그 폭탄의 사용 장소가 벙커 내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괴물만을 죽이는 것이 아닌 폭탄을 사용하는 우리에게도 피해가 오고 마니까.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수준이 아닌 목숨을 그대로 내놓는 수준인 것이다.
혼란이 가득한 복도를 내달리며 맡아지는 피 냄새는 내 다리를 좀 더 빨리 움직이게 만들었다.
탁탁탁탁탁-!
사람들이 내는 발걸음 소리와 군인들이 내는 군홧발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여 복도를 울린다.
끊이지 않고 맡아지는 비릿한 냄새 탓일까. 머리가 카페인에 의해 강제로 각성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핏자국이 낭자해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복도, 눈을 부시게 하는 보안등의 불빛, 귓가를 울리는 사격음과 비명 소리, 살점이 깊게 파인 사람들이 도움을 바라며 외치는 소리,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 점점 격해지는 숨소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뇌리에 직접 꽂히는 기분이었다. 여과 없이 마구잡이로 흘러 들어오는 정보들은 내가 보는 광경 사이사이에 사방에서 응시하는 시선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시선?'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내가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군인을 본 순간.
···쩌적-
군인이 있는 쪽 복도 벽 너머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씹!"
나는 그 소리를 들은 직후 군인을 잡고 설명도 없이 곧장 엎드렸다. 엎드려야만 했다. 그도 그럴게, 군인이 있는 복도의 벽이 점점 금이 가며 갈라지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스쳐 지나가면 보지 못할 정도의 실선. 그 실선은 이내 점점 두께를 늘려 나갔고, 선명한 금으로 변한 그 선은 이내 벽을 뚫으려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내게 암시해주었기에 망설임 없이 한 행동이었다.
우당탕!
"큭! 뭡니까!"
한순간에 바닥을 나뒹굴게 된 군인이 당혹성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연 그때.
쩌저적!
콰앙!
사람 팔뚝만 한 나무 뿌리가 벽을 완전히 뚫어 버리며 반대편 복도 벽에 박혔다. 깊숙하게 박힌 나무 뿌리는 군인의 입을 꾹 닫게 만들었다. 그의 떨리는 눈은 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간 나무 뿌리를 담고 있었다.
"헉- 허억···, 다친 곳은 없습니까? 조금만 늦었어도 저희 둘 다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다친 곳은 없다며 말한 군인은 총을 지지대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숨을 살려 준 내게 감사를 표한 그의 시선은 이내 무전기로 향했다.
- 방금 치지직- 소란에 대해 아는 인원이 있으면 응답하라!
- 벽이 뚫렸- 치직- 습니다! 나무 뿌리가··· 치지지직-
벙커의 벽이 뚫린 곳이 내가 있는 곳만이 아닌 듯 다급한 음성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검은 입자를 사방으로 뿌려대는 나무 뿌리가 벙커 내부로 들어온 이후부터 무전기의 통신 상태가 불안정해진 건 덤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무뿌리가 벙커를 공격한 게 방금 그 공격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벙커 내부에 강한 진동이 재차 전해지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드!
쾅! 쾅! 쾅! 쾅! 쾅!
지하 벙커를 유지시키고 있는 벽을 완전히 허물어 버리겠다는 강한 충격음이 들린다.
바닥, 벽, 천장을 가리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