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3 - 383. 습격 (3)
드드드드드-!
벙커가 진동한다. 약한 진동을 넘어선 격한 흔들림이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쾅!
벽을 뚫고 내부로 들어온 나무뿌리들. 그것들은 벙커를 완전히 무너트리겠다는 듯 난동을 피우며 천장, 벽, 바닥을 가리지 않고 뿌리로 두들겨 댔다.
터진 수도관에서 나오는 물을 게걸스럽게 흡수하며 제 크기를 부풀리는 넝쿨 줄기들. 그것들은 벽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갈라진 틈의 크기를 크게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서로 어지럽게 뒤엉키며 아직 무너지지 않은 벽을 두들긴다.
쩌저적-
부딪치는 힘이 상상 이상인지 벽은 서서히 수많은 금이 새겨지며 갈라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뛰어요! 앞으로!"
고민하는 시간은 짧았다. 나와 군인은 본능적으로 느껴진 직감에 무작정 앞으로 내달렸다. 어차피 후방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나무뿌리에 의해 막힌 상태였기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건 전진뿐이었다.
바로 그때.
콰르르르!
천장이 무너지면서 나무뿌리와 함께 토사가 쏟아졌다. 후방의 통로를 완전히 막아 버린 그 움직임은 앞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마저 집어삼키기 위해 계속해서 쏟아졌다.
조금 전까지 나와 군인이 서 있던 자리가, 죽은 군인들이 있던 그 통로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후두둑- 후두둑-
파도처럼 밀려오는 토사는 우리의 발목을 톡톡 건드렸다. 더 빠르게 뛰지 않으면 자신에게 잡힌다는 듯이.
콰콰콰콰콰-!
타타타탓-!
"더 빨리 달려요!"
발목을 따갑게 만드는 흙 알갱이들의 감촉, 잡아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포식자가 주는 눈치에 나는 도끼를 꽉 쥔 채 죽어라고 내달렸다.
전방은 보안등들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여러 불빛이 각기 다른 방향을 비추고 있는 상태였다. 복도에 설치된 보안등들이 천장이 무너진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가끔 얼굴에 물이 확 튀기도 했다. 벽에서 물줄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방금의 그 충격으로 벽에 숨겨진 다른 수도관들마저 모조리 부서진 모양이다.
그 탓에 넝쿨들과 나무뿌리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놈들에게 있어서 수분은 힘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나무뿌리와 넝쿨 줄기들은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크기를 키웠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로가 완전히 막히게 되었다. 배관이 막힌 것처럼 안에 든 내용물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쿠르륵···
뒤에서 힘을 실어 주는 추가 토사가 사라지자 나와 군인의 목숨을 위협하던 토사 또한 힘을 잃고 사라졌다.
"헉- 허억-."
토사의 전진이 멈춘 직후, 군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을 손으로 짚었다. 그의 손 위를 지나가는 짙은 흙먼지들이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보안등이 불안정하게 깜빡거리는 빛을 내면서 우리 주변 흙먼지들을 비추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네, 네···. 달릴 때 돌덩이가 머리로 떨어졌지만 방탄모 덕에 살았습니다."
군인은 느슨하게 풀어진 턱 끈을 좀 더 조였다. 그의 방탄모 위에는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는 하마터면 깔려서 죽을 뻔했다며 중얼거렸다.
"그럼 다시 이동합시다. 콜록! 이럴 시간 없잖아요."
나는 온갖 잔해로 틀어 막힌 통로를 눈에 담았다. 정확히는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우리가 지나온 이동 통로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으니 그들의 생사가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하물며 그 인원들 중에는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온몸을 뒤덮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낸 나는 이내 걱정을 한시름 덜어낼 수 있었다. 피해 상황 보고가 이어지고 있는 무전기에서 추가 사망자는 없다고 한 덕분이었다.
- 피해 보고···치직- 계속 하라!
- 제 1창고 입구 폐쇄! 물자 손실 다수! 사상자는 없습니다!
- 대피실 제 2통로 무사 치지직- 합니다! 부상자는 있지만, 경미한 수준입니다!
- 대피실 제 1통로는 완전히 막혔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제 2통로로 우회해서 이동하겠습니다!
이동 통로가 막힌 곳이 내가 있는 곳만이 아닌지 다른 군인들은 대피소로 이어지는 통로가 일부 막혔다고 보고하는 중이었다.
한순간에 무너진 벽에 의해 부상자는 다수 발생했으나, 방금 상황에서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도 다행인 일이었다. 잡다한 부상은 대피실에 마련된 수정으로 치료할 수 있으니까.
죽지만 않았다면, 어떻게든 살릴 수 있었다.
"네, 어서 가시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나와 군인은 기도와 폐부를 자극하는 먼지에 마른 기침을 토해내면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출입구를 향해 다시금 발을 놀렸다.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지 않은가.
한시라도 더 빨리 지상의 병력과 합류해야 했다. 아르마딜로 변종과 놈을 뒤따르는 나무 인간들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가 지나가면서 눈에 담는 풍경은 여전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현실의 풍경이 아닌 꿈의 풍경으로 여겨질 정도로 이질감이 심했다.
여전히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붉은 핏자국 위를 흙먼지가 뒤덮은 모습이 보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바닥에 길게 늘어진 핏자국은 무언가가 사람을 죽였다는 걸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엘리가 말한 괴물이 벙커를 습격한 건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가 방심한 것도 아니고 최대한 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벙커가 습격을 당하게 되다니.
나와 연대장은 아르마딜로 변종이 변덕을 부려 언제고 벙커를 향해 돌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벙커 내부에서 공격을 받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외부도 아니고 내부, 그것도 출입구가 한 군데로 제한된 내부인데 말이다. 전체적인 경계를 강화한 상태였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예린아. 엘리.'
내 마음을 잠식한 불안감은 지수와 한세아가 그 둘을 빨리 찾아내기를 바라며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었다. 그녀들이 무전기로 예린과 엘리의 행방을 묻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다가 사라진다.
바로 그때.
- 아르마딜로 변종 현재 1번 차고 장벽 전방 500미터 거리에서 접근 중! 본부 수신 완료 했는지? 치지직···
- 수신 완료! 사거리에 들어오면 바로 교전 시작해!
재차 울리는 무전기가 내 상념을 끊었다. 아르마딜로 변종이 벙커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내용에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03시 43분. 내가 비상 종을 듣고 눈을 뜬 직후의 시간이 03시 35분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르마딜로 변종이 박지영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르마딜로 변종의 감시역을 맡았던 박지영, 비명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된 그녀가 알려주었던 시간인 20분은커녕 그 절반인 10분이었던 것이다.
변종이 컨테이너 장벽에 도달 직전이라는 소리를 들은 나는,
"이현우입니다! 저는 곧 지상 출입구에 도착합니다! 지상의 아르마딜로 변종과 나무 인간 무리는 저와 현재 지상에 있는 병력이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 나머지 병력은 지하 괴물을 정리해주십쇼!"
무전기 버튼을 눌렀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 부디 박지영, 엘리, 예린, 지수, 한세아, 최미소가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 치지직··· 다들 들었지? 계획대로 움직여라! 대피실 통로와 시민들을 지키는 병력들은 혹시 토사에 휩쓸린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구조 활동을 재개해! 추가 장비를 착용한 지원 병력을 올려주겠다! 시민들 대피가 완료되는대로 쓸어버려!
그렇게 나와 군인은 무전기에서 전달되는 내용을 들으며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는 광장을 향해 내달렸다. 최대한 빨리 달리고 있건만,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중간 나무뿌리들이 갑작스레 휘둘러지면서 공격하는 일이 있었으나, 우리는 바닥을 굴러 피했다. 뿌리를 제거하거나 상대할 시간은 없으므로 그저 앞만 보고 달릴 뿐이었다.
이윽고.
"이쪽입니다! 여기로 오십쇼! 본래 사용하던 입구는 막혔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서 광장에 도착한 우리를 본 군인이 크게 외쳤다. 지상 경계병인 그 군인이 있는 곳은 원래 출입구가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장 방향을 틀어 그쪽으로 향했다.
그도 그럴게, 한때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이 장난을 치면서 뛰어 다녔던 광장은 예전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바뀌어 있었으니까.
바닥에서 솟구친 나무뿌리, 광장 중앙 기둥을 부술 듯이 둘러싼 넝쿨 줄기, 계단 위를 전부 뒤덮은 초록 잎사귀, 줄기 사이사이에 보이는 흙더미, 흙을 질척거리게 만드는 터진 수도관의 물, 군데군데 무너져서 밤하늘이 일부 보이는 천장.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가, 하는 착각이 순간 들 만큼 엉망이 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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