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84화 (385/497)

Chapter 384 - 384. 습격 (4)

정갈했던 석재 광장에서 식물투성이로 변한 광장.

휘이이이···

균열이 생겨 무너져 내린 천장의 빈 공간에서 차가운 새벽 공기가 안으로 새어 들어온다. 질주를 하느라 체온이 오른 내 몸에 부딪치는 바람은 그것이 가진 한기를 똑똑히 느끼게 만들었다.

촤르르-

터진 수도관에서 솟는 물줄기가 바닥에 고인다. 흙더미 위를 흐르는 물줄기는 조금씩 흙을 좀 먹어가며 밑으로 가라앉았다. 간혹 형성되는 물웅덩이에는 넝쿨 줄기들이 뿌리를 내렸다.

엉망으로 변한 광장의 풍경. 어찌 보면 이 광경이 당연했다. 벙커 내부로 나무뿌리들이 들어와 엉망으로 헤집어 놓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 광장이라고 해서 그것들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허나, 내가 순간 마른침을 삼켰던 것은 토사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이 있었던 까닭이다.

사람들이 사는 거주 구역과 이곳 광장의 깊이 자체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마디로 천장의 두께가 똑같이 두껍다는 말이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곳에는 지상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다는 것뿐. 그 하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큰 것인지 현재 광장의 천장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자리 잡게 된 모습이었다.

광장이 이렇게 변하게 된 건 출입구를 부술 듯이 비집고 들어온 나무뿌리들이 아래로 파고들면서 통로를 메웠기 때문인 모양이고.

정확히는 메운 것을 넘어서 좁은 공간을 강제로 넓히기 위해 나무뿌리들이 난동을 부린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이쪽입니다! 여기로 오십쇼!"

나와 군인들은 우리를 부른 군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크기를 부풀리는 나무뿌리와 넝쿨 줄기들을 애써 무시한 채로.

"지금 바로 올라가야 합니다! 저희 쪽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혹시 따로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군인들의 무리가 있는 곳에 도달하자, 우리를 불렀던 군인이 한 말이었다. 아르마딜로 변종을 막을 채비를 마친 그들의 발치에는 입구가 활짝 열린 여러 탄통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드드드드드드-!

옅은 진동이 다시금 시작된다. 발아래를 울리는 진동은 곧 제 2파가 온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바깥으로 나가라고 떠미는 진동에 나와 군인은 황급히 각자 챙긴 물건을 확인해 이상이 없음을 인지했다.

"없습니다! 바로 가면 돼요!"

나는 어떤 순간이 와도 놓지 않은 도끼를 들어 보이며 말했고, 시선을 아래로 내려 탄통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비어 버린 탄통에 들어 있었던 건 한세아가 만들어 두었던 강화탄들인 듯했다.

강화탄 특유의 입자가 탄통 안에 잔향처럼 남아 있었으니까.

"좋습니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이름 모를 군인이 전투 조끼 파우치에 강화탄 탄창을 쑤셔 넣으며 입을 열었다. 그는 현재 변종과 악성 변이자 무리가 접근 중인 장벽에 일부 병력이 이미 올라간 상태이며, 자신들을 끝으로 한동안 추가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상 병력의 본대는 장벽에 위치해 있고, 지금 나와 함께 이동하는 군인들은 연대장이 추가로 보내준 지원 병력이었던 모양이다.

광장이 한순간에 나무뿌리에 의해 휩쓸리면서 각종 잔해와 토사에 묻힌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장벽 위로 올라간 난쟁이 탄 꺼내준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구출된 사람들은 대피실로 이동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한세아가 제작한 강화탄이 들어 있는 탄창을 총기에 결합한 군인들에게 물었다.

"···탄이 위에 있고, 추가 지원 기대는 불가능이라. 알겠습니다. 그럼 강화탄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 거에요?"

"생각만큼 보유분이 많지 않아서 일단 보이는 대로 다 가져 왔습니다. 소총탄 40여발, 저격탄 10발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반탄은 충분하다는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군인들은 탄창이 총기에 잘 결합이 되었는지 밑을 탁탁 쳐올렸다. 철컥, 하는 소리가 가볍게 주변을 울렸다.

'50발.'

그동안 한세아가 강화탄을 최대한 많이 만들긴 했으나, 지금 우리가 보유한 강화탄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실험하면서 소모된 강화탄도 많았기에 지금 만들어진 양은 기껏 해야 50발. 얼핏 많은 수로 보이지만 이것이 탄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탄약은 매우 빠르게 소모되는 소모품 중에 하나이니 말이다.

물론, 강화탄이라는 특성상 어느 정도 그 속도가 줄어들게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현재 보유한 강화탄이 일반 군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위력을 조절한 버전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이 역시 크게 의미가 있는 양이 되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 탄약의 종류가 나누어져 있다면 더욱 그러했고, 강화탄을 사용한 실전이 처음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지금 우리가 가진 탄약이 충분한지 부족한지는 예상이 불가능했다. 그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비장의 무기가 강화탄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연대장이 추가 지원으로 보낸 군인들 중 일부의 등에는 연료통이 메어져 있었으니까.

무언가를 몰아내고 불태우는 데에 최적화된 화염 방사기 카트리지였다. 그 탓에 일부 군인들은 커다란 건전지를 메고 있는 모양새였다.

"호스 상태 확인해! 정비하긴 했지만 불량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

다른 군인들이 장비한 수정 패치보다 조금 더 큰 수정 패치를 부착한 군인들은 노즐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다리를 바삐 놀리고 있는 중이었다.

대피실에서 장비를 갖추고 올라온 화염 방사기 분대는 벙커 정리와 지상 지원을 위해 두 병력으로 나눠진 상태였으나, 나와 달리는 인원들로도 나무 인간들의 무리를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겠지.

후두둑- 후두둑-

나는 군인들과 함께 서로 부축해주면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잔해 위로 발을 올렸다. 흙 알갱이나 자갈 따위들이 신발밑창에 밀려나면서 옆으로 떨어진다.

"경사가 높으니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십쇼!"

"여기 탄이 만들어둔 발판 밟고 올라가! 다른 곳은 밟지 마! 지반이 불안정해져서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어!"

우리는 난쟁이 탄이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만든 사다리 형태의 발판을 밟아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 지상으로 연결된 구멍을 봤을 때는 거의 일직선이나 다름없는 구멍이었기에 어떻게 올라가나 막막했는데, 다행히 탄이 땅 울림으로 사다리를 만들어 둔 덕분에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흙벽을 뚫은 나무뿌리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훌륭한 손잡이가 되어 주었다. 단단한 그 뿌리는 사람이 체중을 지탱해도 버텨 주었으니까.

- 치직··· 아르마딜로 변종과 악성 변이자 무리 장벽 앞 100m 지점까지 도달! 50m까지 접근하면 교전을 시작하겠습니다!

- 거주 구역 대피 치지직- 완료했습니다!

- 추가 지원 병력과 함께 해당 구역 정리를 실시하라!

내가 발판을 딛고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무전기 또한 쉬지 않고 상황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아르마딜로 변종이 이제 코앞까지 접근했다는 소리에 군인들은 몸을 위로 밀어 올리는 속도를 더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윽고.

"주변 경계해! 장벽으로 가기 전에 당하면 끝이야!"

우리는 전부 지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눈을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지상으로 올라왔다고 해서 지하 벙커를 습격한 괴물들을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한 고비를 넘겼다고 방심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위험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온 신경을 주변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희미한 달빛이 벙커 내부와 마찬가지로 난장판으로 변한 지상의 풍경을 비춘다.

전차와 각종 차량을 보관 중인 가건물들.

가건물들 절반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져 있었다. 형편없이 꺾이고 부러진 샌드위치 판넬 사이로 묵빛의 장갑이 돌출된 것이 보였다. 간혹 철판이 날카롭게 찢어진 곳도 있었다.

언제든지 전차가 발진할 수 있도록 정비를 끝마친 상태였지만, 잔해와 나무뿌리가 저렇게 쌓여서야 사람이 들어갈 수도 전차가 나올 수도 없었다.

나나 난쟁이 탄이 땅 울림으로 잔해를 들어 올리면 치울 수 있겠지. 허나, 당장은 그럴 시간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한눈을 팔았다가 무력하게 장벽이 뚫릴 수 있었으니까.

빌딩을 관통한 거대한 나무뿌리들.

세상이 변한 이후부터, 빌딩 자리를 탐내 건물 중심부를 관통한 나무뿌리들은 크기가 더 커진 상태였다. 그것들은 건물을 완전히 붕괴시키려는 듯이 실시간으로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아직는 철근 콘크리트로 이우러진 건물 특유의 단단함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몰랐다. 그 사실을 이해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나무뿌리들이 난동을 부리게 된 시점이 벙커가 보이지 않는 괴물들에게 습격을 당한 이후부터이니 그 괴물들을 제압해야 나무뿌리의 성장이 멈추게 되리라.

'···아니.'

정확히는 제발 그러기를, 반드시 그러기를 바랐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겨우 마련한 거점마저 잃게 되고 마니까.

애써 지키고 있던 전력을 허무하게 잃지 않기 위해서는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그리 판단하며 30명 남짓의 군인들과 함께 컨테이너 장벽으로 내달렸다. 혹시 괴물들에게 당해 낙오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경계심을 바싹 끌어올리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우! 여기로 올라와요! 계단은 무너졌어요!"

우리의 접근을 인지한 난쟁이 탄의 인도를 받아, 우리는 무사히 장벽 위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컨테이너 장벽 위로 올라가자 보이는 건 달빛보다 환한 빛을 내는 등껍질을 가진 아르마딜로 변종과 놈을 뒤따르는 나무 인간들 무리였다.

그와 동시에.

[구아아아아악!]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그 변종이 고개를 길게 빼며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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