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86화 (387/497)

Chapter 386 - 386. 습격 (6)

"곧 재장전 해야 합니다! 총열 교체와 재장전 소요 시간 10초!"

쉴 새 없이 불을 뿜는 중기관총을 다루고 있던 군인들이 외친 말이었다. 그들은 탄띠가 말리지 않게 손을 봐주는 한편, 우리의 신호가 떨어지면 바로 총열을 교체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투두두두두-!

끊이지 않는 발사음과 함께 총구 끝에서는 뿌연 연기가 새어 나온다. 뜨겁게 달아오른 총열이 내뿜는 연기였다.

해당 총열은 아직 더 사용할 수는 있기는 하다. 허나, 지금 타이밍에서 한번 교체를 하고 넘어가는 것이 옳았다. 그동안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했다고 해도 외부 환경에서 거치해 놓았던 총기의 부식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으니까.

그 부식을 막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검은 입자의 침식과 동일한 그 부식은 수정으로만 막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최근에서야 여분의 수정을 다른 장비에 장착시켰다는 걸 감안했을 때, 부식은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러한 이유가 있기에 중간에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것보다 지금 총열을 미리 교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탄 떨어지면 바로 교체 시작해! 시간은 어떻게든 벌어 줄 테니!"

"잔탄 떨어지기까지 앞으로 5초!"

소대장의 지시받은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는 순식간에 끝부분에 다다른 탄띠를 보았다.

···틱!

이어서 공이가 빈 공간을 때리는 소리를 들은 그들은 곧장 말을 이었다. 총열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과열된 총열을 분리하면서.

"잔탄 소모! 재장전 중!"

괴물의 전열을 힘으로 밀어내고 있던 기관총이 사라지는 10초의 공백. 귀를 먹먹하게 만들던 소리가 순간 멈추자 주변은 마치 침묵에 걸린 것처럼 조용해졌다.

정확히는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울리던 기관총 소리가 더 이상 울리지 않게 된 덕분에, 긴장감이 가득 차 귓가에 심장 박동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탓에, 귀가 인식하고 있던 주변 소음의 수준이 확 내려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다.

탕! 탕! 탕!

[끼에에에에에엑!]

주변의 상황을 재인식한 귀가 다시금 주위의 소음을 인지하기 시작했으니까.

그저 앞만 보고 달리던 나무 인간들이 외치는 괴성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지시를 내리기 바쁜 군인들이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 따위들을 말이다.

[구아아아아악!]

화력이 줄어드니 나무 인간들과 그 변종이 기세를 회복하는 것 또한 금방이었다. 속도를 올리는 걸 저지하던 기관총이 사라지니 그것들은 성을 부술 거대한 파도가 되어 몰아치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탄, 준비됐죠?"

"네. 언제든지 시작만 해요. 바로 보조할 수 있어요."

나와 탄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군인들이 총열을 교체하는 순간, 우리가 나설 타이밍이라는 걸 직감했기에 한 행동이었다. 마침 손에 석벽을 세울 만큼 힘이 충분히 모인 참이기도 했다.

'석벽을 세울 위치는 전방 15m 부근.'

나는 손에 응집된 힘을 한층 더 압축시키며 전방의 광경을 눈에 담았다. 퐁,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유탄과 계속해서 쏟아 부어지는 예광탄 덕분에 군인들이 현재 어디를 노리고, 어디에 명중하는지 전부 보였다.

그 덕분에 어느 지점에서 벽을 솟아나게 해야 하는지 잘 볼 수 있었다. 유성처럼 지나가는 예광탄 사이로 푸른빛을 이끄는 강화탄의 존재 또한 내가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만드는데 한몫하고 있었다.

푸른빛줄기의 정체는 강화 소총탄이었다. 강화탄이 노리는 건 내가 초반에 인지했던 껍질이 유난히 두껍고, 체구가 큰 나무 인간들. 일반적인 나무 인간이 단순 보병이라면, 그것들은 중장갑을 착용한 기사와 같은 모양새였다. 물론, 생김새는 기사와 달리 기괴했지만 말이다.

퐁- 퍼-어엉!

그것들은 유탄을 직격으로 맞아도 잠시 비틀거릴 뿐, 죽지도 넘어지지도 않았다. 우직하게 발을 옮기는 모습에 군인들은 강화 저격탄을 놈들에게 쏘려고 했으나, 그건 내가 말렸다.

강화 저격탄은 아르마딜로 변종에게 사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갑을 두른 나무 인간들은 내가 막으면 그만인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석벽을 세우는 것이었다.

'강화 소총탄도 그다지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어.'

결국 아르마딜로 변종과 나무 인간 변종을 막을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나. 속으로 중얼거린 그 순간.

"흐읍···!"

나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압축된 힘을 지상을 향해 해방했다. 고된 훈련과 실전으로 다져진 통로인 근육과 혈관이 한순간 저릿해질 정도로 강하게.

콰드드드득!

대지를 덮은 아스팔트 도로를 부수고 솟구치는 석벽. 내가 최대한 힘을 넓게 퍼트려서 기둥 다발을 세우자 난쟁이 탄이 내가 퍼트린 힘을 다시 한번 제련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사격 중지! 지금 이 틈에 재정비해라!"

기관총의 공백과 괴물들의 돌진을 막는다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석벽은, 두꺼운 두께와 단단한 내구도를 가진 석벽은 지평선을 가릴 정도로 솟아났다. 비록 잠시에 불과해도 전방의 괴물들의 모습이 가려질 정도였다.

나와 난쟁이 탄이 석벽을 솟구치게 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르마딜로 변종의 속도를 최대한 줄여서 장벽이 받아 내는 충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었다. 나무 인간의 돌진은 무시해도 되지만, 나무 인간 변종과 아르마딜로 변종의 돌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하물며 나무뿌리의 난동으로 인해 지반이 약해지고, 장벽 사이에 틈이 생겨난 상황이 아니던가. 충격을 흡수해 줄 벽을 만드는 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하는 건 벙커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장벽을 지키는 일이었다. 벙커를 지키는 컨테이너 장벽이 망가지면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 벙커의 안전 또한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오늘같은 일들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기도 하니 장벽을 최대한 지켜야만 했다.

"현우! 괜찮아요?"

얼얼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 손을 쥐었다 피고 있는 내게 난쟁이 탄이 건넨 물음이었다. 벽 바깥쪽에 가시를 만드는 것으로 땅울림을 마무리 한 그는 벌써 장벽을 보조하는 석벽을 만들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 벽이 오래만 버텨준다면요."

"···아쉽지만 바로 다음 벽을 준비해야 해요.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 저희의 예상과 달리 벽에 부딪힌 괴물들이 별로 없어요. 거리와 타이밍은 딱 맞았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러고 보니 나무 인간들의 몸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사격도 멈춘 지금 귓가에 들리는 건 긴장감에 격한 숨을 내뱉고 있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뿐이었다.

철-컥!

기관총의 총열과 탄띠를 무사히 교체한 사수와 부사수가 뻑뻑한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소리는 덤이었다.

그때였다.

······쿵!

석벽 너머에서 육중한 충격음이 들린 것은.

쿵! 쿵! 쿵!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이내 점점 커져서 공성추로 성문을 두들기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나와 난쟁이 탄, 장벽 위 군인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 그걸 코앞에서 멈췄다 이거지."

아래에서 솟구친 석벽을 어떻게 눈치챘는지 몰라도 석벽에 충돌하기 전에 제동을 걸어 멈춘 모양이다.

석벽과 충돌시켜서 일반 나무 인간들의 물량을 줄이고, 나무 인간 변종과 아르마딜로 변종이 벽을 부수면 바닥에 깔린 잔해로 인해 놈들의 속도를 줄이려고 했던 우리의 노림수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콰직! 우지직!

콰드드득!

조명이 비추고 있는 부분의 석벽에 금이 생기다가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다. 와르르 무너지는 벽 사이로 나무 껍질이 다닥다닥 붙은 팔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끄아아아악!]

[키아아아악!]

팔을 이리저리 휘적거려 앞을 가로막은 벽을 치운 괴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그극-

쿠웅!

벽이 통째로 뒤로 넘어간다. 위협적인 커다란 가시가 달린 벽에는 나무 인간들이 꼬챙이처럼 꿰여 있기는 했다. 허나, 그 수는 전체 수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쏟은 힘에 비해 얻은 것이 매우 적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시발.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네."

"조준과 동시에 사격 개시! 방식은 전과 동일하다! 좀 더 신중하게 머리를 노려! 장벽에 붙게 해서는 안 된다! 장벽에 붙는 걸 최대한 늦춰!"

"현우! 다시 힘을 모아요! 이번에는 장벽 앞에 만들어야 해요!"

군인들과 난쟁이 탄이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키운 순간이기도 했다.

나름 비장의 한 수였던 전방 15미터에 솟구친 석벽이 무용지물이 되자 괴물들의 군세 사이의 거리는 약 10m로 좁혀지게 되었다. 수를 많이 줄이지도 못하고.

쿵! 쿵! 쿵쿵쿵!

중갑을 두른 나무 인간 변종이 자세를 낮추더니 순식간에 속도를 높여 내달리기 시작했다. 쿵쿵거리는 발걸음에 아스팔트가 형편없이 파이거나 조각난다.

우직하게 걷기만 했던 나무 인간 변종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니 그 위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거대한 체구를 가진 놈이기에 특히 그런 느낌이 강했다.

타타타타탕!

퐁- 퍼어엉!

군인들이 화력을 집중해서 놈들의 속도를 줄여보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무 인간 변종들은 껍질이 얼마나 두꺼운 것인지 장막도 두르지 않은 주제에 유탄과 탄환 세례를 버텨내는 것이다.

티티티팅!

총알이 미끄러지는 궤적이 눈에 고스란히 보인다. 주홍빛의 선을 그리며 껍질 위를 달리는 총알은 이내 갈 곳을 잃고 사방으로 튀었다.

콰드드득!

그그극!

나와 난쟁이 탄이 힘을 합쳐 장벽을 보조하는 석벽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돌진으로 남은 거리를 빠르게 좁힌 나무 인간 변종들이 벽에 몸을 부딪혔다.

쿠웅-!

쩌저저적!

그리고 말 그대로 석벽이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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