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88화 (389/497)

Chapter 388 - 388. 습격 (8)

"······모두 충격에 대비━━!"

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외친 지시에 난쟁이 탄, 소대장들을 포함한 군인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자세를 낮추었다.

쿵- 쿵쿵-!

쿵쿵쿵쿵!

군홧발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에 따라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도 거세졌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한 빛을 발하는 푸른 장막이 긴장감에 몸을 딱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구아아아아악!]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르마딜로 변종의 포효까지 뒤집어쓰니 순간적으로 몸이 더욱 굳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의 손가락은 여전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총구가 향한 곳은 장벽에 달라붙은 나무 인간 변종과 악성 변이자들. 아르마딜로 변종이 돌진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을 처리하는 속도를 늦추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었다.

한시라도 방아쇠를 푼다면, 장벽 아래 쌓인 사체들을 밟고 놈들이 위로 올라오고 마니까.

장벽을 조금이라도 내주면, 그 뒤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으니까.

투두두두-!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는 단단하게 고정된 거치대를 붙잡았고, 떨어지지 않게 벨트로 묶었다. 그들이 다루는 중기관총은 쉴 새 없이 화염을 토해내며 악성 변이자들의 몸체와 머리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끄아아아악!]

[끼에에에엑!]

중기관총의 탄환 세례와 군인들의 사격이 이어지자 장벽을 두드리고 있던 나무 인간들이 우후죽순으로 쓰러졌다. 대부분은 온전한 상태로 죽지 못했다.

퍼엉!

몸에 두르고 있던 나무 껍질이 형편없이 부서져서 톱밥처럼 휘날리고, 그 밑에 숨기고 있던 썩은 살점이 터져 찐득한 체액과 함께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유탄에 직격한 놈들은 특히 더 흉측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다.

타닥- 타닥-

그 위를 화염 방사기 노즐에서 뿜어지는 붉은 화염이 뒤덮었다. 화르륵 타는 화염이 사체와 아직 죽지 않은 괴물들 위를 지나갈 때마다 장작 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리고.

타-아앙!

전방으로 쏘아지는 탄환과 화염 줄기를 가로지르는 강화 저격탄이 발사된다. 그동안 타이밍을 노리고 있던 저격탄이 향하는 곳은 장벽에 부딪치기 직전인 아르마딜로 변종의 장막.

까앙-!

푸른빛무리를 이끌며 앞으로 쏘아지는 강화탄은 푸른 장막을 강하게 강타했으나, 그뿐이었다. 강화 저격탄은 이내 장막의 굴곡을 타고 미끄러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피잉-

장막에 부딪힌 속도 그대로 경로를 이탈하는 강화탄은 여타 다른 총알들처럼 박히지 않고 도탄이 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군인들은 장벽에 설치해 두었던 크레모아를 격발시킬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안에 담긴 수백 개의 쇠구슬이 장막에 튕기면서 역으로 자신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

거리가 더 가까워야 하는지, 애초에 파괴력이 모자란 것인지, 장막의 굴곡이 커서 탄환이 직격으로 박히지 않은 것인지 알아내야 하는 의문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허나, 지금 당장은 아르마딜로 변종의 돌진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탄!! 지지대!"

나는 어느새 눈앞을 가득 메운 아르마딜로 변종을 보며 외쳤다. 손에 모은 힘을 장벽에 쏟아 부었고, 군인들이 잡고 버틸 수 있는 지지대가 만들어진 건 거의 동시였다.

"버텨!!"

군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지지대에 몸을 고정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몸을 바싹 엎드렸다.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콰드드드득!

탄의 보조를 받아 내구도가 올라간 석벽이 장벽 앞에 2차적으로 솟아올라 놈의 장막과 부딪힌다.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이 무너진다. 변종의 속도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씹···!'

판단은 빨랐다. 그 모습을 본 나와 난쟁이 탄은 장벽이 밀리지 않게 후방에도 석벽을 세우려고 했다.

쿵쿵쿵쿵쿵!

하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변종이 돌진하는 속도가 월등히 빨랐을 따름이었다. 놈은 우리가 추가 대처를 할 시간도 없이 장벽에 몸을 들이받았던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흡사 포탄이 바로 앞에서 터진 것처럼 순간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다.

움푹 패여 찌그러진 컨테이너 장벽,

장벽이 밀려나면서 내는 소리들,

지지대가 부러져 뒤로 날아가는 일부 군인들,

전방에 위치하고 있던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가 아래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 장벽 사이에 생겨난 틈, 붕 뜨는 부유감을 느꼈다가 복부에 곧장 느껴지는 고통, 절그럭대는 총기와 함께 굴러가는 군인들, 사방으로 튕겨나가 떨어지는 장벽 앞에 쌓인 사체들,

변종의 돌진을 피하지 못해 두꺼운 껍질이 으깨지고 부서진 나무 인간 변종들, 위로 솟구치는 석벽의 파편들.

내가 이 모든 광경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때는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였다.

키이이잉!

그것들보다 먼저 내 눈에 각인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마딜로 변종이 장벽에 몸을 들이받은 순간, 놈의 푸른 장막이 순간적으로 넓게 펼쳐졌고, 그 장막 위로 충격파가 형상화되어 물결치는 모습이 눈에 선명했다.

장막이 출렁거리자 도마뱀 형상의 무언가가 모습을 순간적으로 드러냈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다만 그건 워낙에 짧은 순간이었기에 내 눈이 본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쪽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대형 버스보다 커다란 체구를 가진 변종이 장벽과 부딪혔을 때 생긴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을 거다. 그런 충격을, 자신이 받은 피해를 전부 무효로 돌려 버리는 광경은 내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포탄과 미사일이 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새삼 깨달았을 정도로.

수면에 이는 파문처럼 일렁거린 충격파는 이내 하늘로 쏘아지며 사라졌다. 남은 건 큰 손상을 입은 장벽과 높이가 낮아진 사체들의 산뿐이었다.

크게 뜨인 내 눈에 다음으로 보인 건 총구가 하늘로 들어 올려진 중기관총이었다.

투두두두···

틱- 틱-

충격으로 인해 제어를 잃은 중기관총이 쏘아내는 탄환이 하늘로 빗발치는 중이었다. 어둑어둑한 밤하늘에 주홍 별들이 수놓아진다. 그 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졌다.

방향이 하늘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면 2차 피해로 이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잔탄이 전부 소모되기 직전이었던 덕분에 아군의 사격에 다치는 인원은 없었다.

주위로 퍼져나간 충격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장벽 앞 괴물들이나 장벽 위 사람들이나 서로 공격을 멈추고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빨리 정신 차려! 놈이 뒤로 물러나서 다시 돌진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

난쟁이 탄이 만든 지지대를 붙잡고 충격을 겨우 버틴 소대장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충격을 버텨 낸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일부 군인들은 뒤로 넘어가 추락했고, 장벽에서 전해지는 충격을 고스란히 몸에 받은 일부 군인들은 구토를 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상태.

앞으로 추락한 군인들은 손쓸 틈도 없이 전사했지만, 그나마 뒤로 추락한 군인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을 뿐 살아는 있었다.

"큭···."

나는 미처 지지대를 붙잡을 시간은 없었던 터라 도끼를 철판에 박아 넣고 버텨야만 했다. 도끼를 놓치면 죽는다는 생각에 자루를 있는 힘껏 잡았던 탓일까. 팔에 힘을 풀자 잔떨림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손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손은 무의식적으로 자루를 꽉 쥐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거치된 중기관총 5정 중 2정 완전 파괴, 부상으로 인해 전투 수행이 불가능한 9명의 부상자들 전력 이탈, 전사한 5명의 군인들, 사라진 허리춤의 무전기. 그리고 내 시야 아래로 보이는 장벽의 틈.

이 정도가 당장 내가 파악한 우리 측의 손실이었다. 어느 하나 뼈아프지 않은 손실이 없었다.

특히 장벽에 틈이 생겼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일을 막막하게 느끼게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나무 인간들이 들어올 정도의 틈은 아니었으나, 아르마딜로 변종이 다시 한번 장벽에 몸을 들이받는다면 틈이 더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게 된다면 나무 인간뿐만 아니라 나무 인간 변종들마저 장벽을 비집고 들어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여태껏 장벽이 있는 덕분에 놈들을 저지라도 할 수 있었는데, 고지의 효과를 누리지 못 하는 이상 우리는 끝없이 불리해지고 말겠지.

확실히 나무 인간을 포함해서 괴물들이 가진 비정상적인 힘은 무시무시했다. 일반적인 사람이 절대로 버텨 내지 못할 정도였으니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부상자는 후방으로 빠져!"

"콜록! 콜록! 더 싸울 수 있습니다!"

"아니, 행동이 불가능한 사람은 오히려 방해야! 임시 초소 내부에 치료용 수정이 마련되어 있으니까 그걸로 부상을 치료해!"

그러니 그전까지 장벽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소대장의 지시에 부상을 입은 군인들은 어쩔 수 없이 임시 초소가 있는 지점까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르마딜로 변종의 돌진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든 장벽.

[크르르르륵···]

돌진의 여파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무 인간 변종들 덕분에 나와 군인들은 본의 아니게 재정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반 토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낮아진 전력이었기에 재정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아직 뚫리지 않았다. 아직 더 움직일 수 있다. 벙커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장벽을 지켜야 한다. 그리 중얼거리며 그저 남은 탄약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다시금 장벽 위에 섰을 뿐.

현재 아르마딜로 변종은 장벽을 완전히 돌파하기 위해서 뒤로 물러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견제용으로 날린 푸른 불에 얻어맞더니 몸을 뒤로 돌린 것이었다.

장벽을 몸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한 번 더 돌진해서 들이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건지는 몰라도 놈이 발톱으로 바닥을 긁을 때면, 놈의 등껍질이 재차 빛나기 시작한다면 곧장 장벽으로 돌진하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장벽은 완전히 뚫릴 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다음 돌진을 우리가, 장벽이 버틸 수 있을까, 무심코 든 생각에 모두가 어두운 낯빛을 하고 있는 그때.

"이현우씨! 소대장님! 최명철 상병과 연락이 닿았다고 합니다···!!"

희소식이 들려왔다. 후방으로 빠지고 있던 부상자가 무전기를 들고 황급히 외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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