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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389화 (390/497)

Chapter 389 - 389. 습격 (9)

"놈들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최대한 처리해야 해! 준비되는대로 쏴!"

군인들이 후들거리는 팔로 총기를 견착했다.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총구는 일시적으로 기절 상태에 빠진 나무 인간과 그 변종들을 노렸다.

탕! 탕! 탕!

짧은 간격으로 이어지는 단발 사격음. 소총탄은 충격의 여파를 적게 받아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나무 인간들을 향해 쏘아졌다.

장벽 바로 앞에 있는 괴물들은 우선순위가 낮았다. 그도 그럴게, 기절한 상태이고 사체와 뒤엉켜 있는 놈들은 후방의 나무 인간들이 진입하는 걸 막는 일종의 장애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장벽에 달라붙어 있는 놈들도 처리하기는 하겠으나, 그건 소총수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장벽 위에는 소총수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화르르르륵!

주변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는 붉은 화염 줄기. 앞으로 길게 뿜어지는 화염은 장벽 아래에 위치한 사체들의 산을 불태웠다. 그로기에 빠진 나무 인간 변종들과 함께.

타닥- 타다닥-

놈들이 두르고 있는 껍질이 붉게 달아오르며 탁탁 튀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고, 균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내 두꺼운 장갑이 펑, 하고 터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드러난 부위 전부 긁어버려!! 탄 아끼지마!"

이어진 소대장의 지시에 남은 3정의 중기관총이 각자 목표를 노리고 불을 뿜었다. 나무 껍질과 썩은 살점을 모조리 터트리는 화망이 형성된다.

투두두두두-!

천둥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과 동시에 집중된 화력을 받은 나무 인간 변종은 맥없이 무너졌다.

[그아아아아악!]

뒤늦게 스턴 상태에서 벗어난 변종들은 훤하게 드러난 약점을 급하게 가리려고 했지만, 놈들 또한 무력하게 당할 뿐이었다. 급소가 드러난 이상 놈들을 처리하는 건 손 쉬운 일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장벽 앞에 널린 나무 인간과 변종들이 하나둘씩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 괴물의 수는 상당히 남은 상황이고, 아르마딜로 변종의 돌진을 다시 막아야 하는 상황이기에 전황이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지금 군인들이 화력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괴물들이 움직임을 잠시 멈춘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재차 장벽을 노리려는 지금은 막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으로 이어지겠지.

그런 상황들 속에서 나는 쉴 새 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잠시라도 팔을 멈추면 장벽에 올려지는 것이 나무 인간들의 손이 아닌 놈들 그 자체가 되고 마는 까닭에 한눈을 팔 시간 따위는 없었다.

쐐애액!

콰직!

"최명철씨랑 연락이 되었다고 했습니까!"

한 번의 휘두름으로 나무 인간의 머리를 몸에서 분리한 나는 시선을 전방으로 향한 채 소식을 들고 온 군인에게 외쳤다. 내가 벙커에서 챙겨 온 무전기는 아르마딜로 변종이 일으킨 충격에 의해 잃어 버린 상태였다.

소대장이 보유하고 있던 무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조끼 파우치에 고정시킨 무전기는 나처럼 잃어 버리지는 않았지만, 공중에 떴다가 낙하하는 충격에 박살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파우치에는 산산조각난 파편만이 들어 있을 따름이었다.

설령 무전기가 멀쩡했어도 우리는 무전기의 통신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도 그럴게, 나와 군인들은 끊임없이 몰아치는 괴물들을 밀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싸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탓에 지금까지 무전기가 계속 울린 것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바로 옆에서 고막을 때리는 사격음에 귀가 멍한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예! 채널 5번으로 맞춰 놓았습니다! 지금 연대장님이랑 통신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후방으로 가서 부상을 치료하십쇼!"

나는 군인에게서 무전기를 받고 그를 뒤로 이동시켜야만 했다. 소식을 들고 온 군인이 입은 부상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이마가 찢어졌는지 볼을 타고 뚝뚝 흐르는 피, 어깨를 관통한 파편, 이상하게 한쪽만 풀려 있는 동공, 골절로 보이는 오른팔.

지금이야 몸이 각성 상태라 고통이 심하게 느껴지지 않겠으나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거다. 전투 수행이 불가능한 몸 상태, 부상자가 근처에 있으면 전투에 방해된다는 걸 생각하면 빨리 후방으로 보내는 편이 나았다.

- 치직- 장벽 상황은 어떻다고 합니까.

- 그다지 칙- 좋지 않다고 보고 받았네. 벙커 내부도- 입구 막아! 뿌리! 뿌리부터 불태워! 저게 있으면 통로가 무너진다! 치지직- 벙커 내부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내가 받은 무전기에서 들리는 최명철과 연대장의 목소리. 최명철 쪽에서 먼저 무전하지 않는다면 우리 쪽에서 연락할 길이 없었는데.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연락이 닿은 모양이다.

최명철이 괴물들을 피하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움직인 덕분일까. 언제 출발하고, 어디까지 도착했는지 수시로 보고하는 최명철이었으니 때마침 출발 직전에 우리에게 연락한 듯했다.

여기서 울리는 사격음이 최명철이 있는 곳까지 울렸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는 못한다. 풀벌레 소리나 다른 잡다한 소음들이 사라진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조용한 새벽이었으니 최명철이 어렴풋이나마 총 소리를 인지했을 수도 있겠지.

- 하, 어쩐지 주변 괴물들이 소란스럽더라니. 벙커를 괴물들이 습격해서 그런 거였습니까.

연대장은 계속해서 무전을 이었다.

벙커가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습격당했고, 나무뿌리에 의해 벙커 시설이 상당히 파괴되었다는 것.

아르마딜로 변종이 갑작스레 활동을 재개했고, 이현우를 포함한 병력들이놈과 악성 변이자 무리를 필사적으로 저지 중이라는 것.

그리고 놈을 감시하던 박지영 소위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중간에 연락 두절된 상태가 되었다는 것.

연대장은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르마딜로 변종이 장벽을 부수고 있다는 말만 전했어도 최명철은 움직였을 테니까.

허나, 연대장은 그러지 않았다. 숨기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 ···박 소위님은 무사하실 겁니다.

무전기에서 나지막하게 울리는 최명철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 이현우씨, 지금 듣고 있습니까.

"네, 듣고 있습니다! 거기! 너무 앞으로 가지 마십쇼! 끌려갑니다!"

- 시간이 얼마 없으니 간략하게 말하겠습니다. 버티세요. 최대한 버티고 계세요. 제가 장치를 설치하기 전까지만.

"앞으로 가지 말라니까!! 후우, 할 수 있겠어요?"

나는 죽은 나무 인간 변종의 사체를 사다리 삼아서 올라오는 나무 인간들을 저지하면서 물었다. 도끼를 휘두르자 날에 묻어 있던 끈적한 체액이 하늘로 튀었다.

- 해야죠. 일단 버터 보십쇼. 원거리에서 작동만 된다면 15분 정도 걸릴 겁니다. 제 쪽에서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가능한 최대한 빨리요.

그 무전을 끝으로 무전기는 더 이상 최명철의 목소리를 전해주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유인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연락을 끊고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대장 쪽도 상황을 정리하느라 무전할 틈이 없는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연락을 좀 더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지수, 한세아가 예린, 엘리를 찾았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아쉽지만 지금은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말하기 위해 무전기 버튼을 누르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라도 무기를 휘두르는 팔만큼은 멈춰 서는 안 되니까.

터엉!

'15분.'

제발 지수와 한세아가 그녀들을 찾아서 보호하고 있기를 바란 나는 장벽 위로 머리를 들이민 나무 인간을 걷어내며 생각했다. 현재 시각은 04시 53분. 장벽 위로 올라온 시각이 03시 46분이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지금은 그때보다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지난 시각이었다.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몰랐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곧 해가 뜨는 걸 볼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다.

'15분.'

다시 돌아와서 15분이라는 시간을 속으로 곱씹었다.

지금까지 나와 군인들이 장벽 위에서 보낸 시간의 절반도 되지 않는 시간.

나무 인간들 수백을 막아 내고, 아르마딜로 변종의 돌진을 한 번 더 막아 내야 하는 시간.

이 시간을 버틸 수 있냐, 없는냐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버틸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최명철이었다. 그가 현재 어디쯤에서 출발하는지는 몰라도 그가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은 매우 험난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으로서는 그가 어떻게든 잘 가리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가 자기 할 일은 하는 것처럼 나도 할 일을 해야겠지.

"15분!! 15분만 버티면 활로가 열립니다! 그러니까 다들 버텨요!"

나는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나무 인간들을 보며 외쳤다. 내 외침은 장벽 위 군인들에게 닿았다.

"얘들아, 버텨라!! 15분이다! 앞으로 15분!"

그들은 내 외침을 옆으로 전파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열기로 달아오른 총열과 열기가 빠져나가는 총구에서 연기가 새어 나온다. 그럼에도 군인들은 방아쇠 당기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구아아아아아아악!]

아르마딜로 변종이 다시 돌진할 준비를 마쳤다.

1차 돌진 때와 마찬가지로 눈 부시게 환한 푸른 장막을 두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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