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91 - 391. 습격 (11)
장벽이 밀려나 틈이 벌어진 상황.
급박하게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밑에 내려가서 막아야 하는지, 위에서 벽을 세워 틈을 메워야 하는지, 그렇게 하면 메울 수는 있는 것인지, 그 시간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 건지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틈조차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끼리리리리릭!
틈이 벌어진 직후에 자주대공포라 불리는 비호 복합 1대가 후방에서 곧장 이곳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짙은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 치지직- 손잡-치직 꽉 잡아! 부딪힌다!!
- 으아아악! 이거 시발 이래도 돼?!
- 알 게 뭐야! 치지직··· 안 하면 다 뒤진다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소대장의 조끼 파우치에 고정된 무전기에서 낯이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의 정체는 나와 소대장이 핑계를 만들어서 후방 임시 초소에 보낸 군인들이었다.
심한 부상을 입어 전투 수행이 불가능했던 아니, 우리가 그렇게 판단했던 군인들 말이다.
덜컹! 그그극-
바닥에 깔린 나무뿌리와 넝쿨을 궤도로 짓누르면서 기동하는 비호 복합은 차체가 덜컹거리는 만큼 속도를 더 올렸다. 비호 뒤로 뿜어지는 연기가 더 많아진다.
그와 동시에.
콰앙!
속도를 더욱 올린 자주대공포는 이동하던 속도 그대로 장벽의 틈에 틀어박혔다. 주홍 불똥이 마찰된 면에서 파박 튀는 건 거의 동시였다.
쿵━!
후미가 살짝 들릴 정도로 강하게 들이받은 비호는, 역八자 형태로 밀려난 장벽 사이에 제대로 박혀 전방 백미러가 날아간 비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부아아아앙!
엔진에 무리가 갈 정도로 궤도를 움직여서 점점 안쪽으로 틀어박히기 시작한 것이다. 부상자들이 이끌고 온 자주대공포는 철판에 닿아 긁히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쉴 새 없이 토해냈다.
장벽과 비호 사이의 충돌을 피하고자 자세를 낮춘 상태인 나와 군인들은 조종 실수인 줄 알았다. 처음에는 말이다.
콰가가가각!
- 더 밟아! 괴물 새끼 한 마리도 못 들어오게!
허나, 요란스럽게 흙이 밀려나는 소리와 함께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은 우리는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실수가 아닌 의도였던 것이다.
끼기기긱!
파바바바바박!
거센 엔진음을 내는 자주대공포는 좀 더 좁아진 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빈공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비집고 들어갔다. 철판이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전차 후미에서 흙, 자갈 따위들이 마구 튀는 모습이 보인다.
후두둑- 후두둑-
땅을 파낼 기세로 움직이던 궤도는 기어코 외부 장갑이 철판에 딱 붙고 나서야 멈췄다. 하지만 궤도만 멈췄을 뿐, 양쪽에 30mm 기관포가 달린 포탑은 멈추지 않았다.
기이잉-
- 더 못 들어가! 이제 갈겨!! 아니, 끊어서 쏴! 한 번에 다 갈겨서 탄 바닥나면 그때부터 이건 그냥 깡통이야!
한순간에 몰려 입구에 몸이 뒤엉킨 나무 인간과 그 변종들을 향해 포구를 움직인 포탑.
[크아아아악!]
[끼에에에엑!]
자신들을 바라보는 검은 동공과 시선이 마주친 나무 인간들은 온갖 괴성을 질러대며 팔을 휘적거렸다. 쩍 벌려진 입, 보기 흉한 나무 껍질, 그사이로 드러난 썩은 살점, 탁한 동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그와 동시에.
투투투투퉁!
투투투투퉁!
양측의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총구가 향한 방향으로 회색 연기와 함께 쏘아진 탄환은 전방을 가득 채운 나무 인간들을 모조리 벌집으로 만들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비행체를 격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자주대공포였으나, 그 위력은 지상의 괴물을 향해도 전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강력한 화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퍼억-
제일 먼저 몸을 들이밀어 가장 선두에 있던 나무 인간 변종들의 몸체가 터져 나갔다. 이미 어느 정도 내구도가 한계에 달했던 두꺼운 나무 껍질은 작은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위가 펑 터져 주위로 살점을 흩뿌렸다.
철퍽!
부서진 나무 껍질과 끈적한 체액이 묻은 썩은 살점이 철판에 달라붙는다. 점성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 그 살점은 철판에 아예 눌어붙은 모양새였다.
티티티팅-
기관포 탄피가 배출될수록 주변으로 튀는 살점 또한 점점 많아졌다. 다행히 차체보다 작은 포탑이었기에 탄피가 배출될 공간만큼은 충분했다. 그렇게 좌우로 토해내지는 탄피와 고정 클립은 컨테이너 철판을 인정사정 없이 강타했다.
기관포 발사 시에 나오는 연기가 장벽의 틈을 메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콜록! 콜록!"
좁은 틈 사이를 메운 연기는 이내 장벽 위까지 올라와 나와 군인들의 코와 기도를 자극했다. 매캐한 연기를 손으로 계속 걷어내던 나는 난쟁이 탄에게 신호를 보냈다.
"탄! 콜록! 벽! 지금, 이 틈에 벽으로 막아요!"
"콜록! 잠시만요!"
난쟁이 탄은 숨을 참은 채로 땅 울림을 사용해 석벽을 세웠다. 비호 앞에 뚫린 틈을 일시적으로나마 메우기 위함이었다. 이미 한번 뚫린 이상 저 위치는 계속해서 뚫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 남아 있는 나무 인간과 그 변종들이 계속 뚫린 부위를 공격할 테니까.
그렇기에 석벽이 오래 버텨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숨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도 족했다.
기관포 사격으로 인해 일직선으로 뻥 뚫려 있던 괴물들의 군세가 주춤하고 있고, 아르마딜로 변종이 아직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그때.
"너희 뭐야 이 새끼들아! 전차용 수정은 아직 준비가 안 됐을 텐데━!"
손짓으로 다른 군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던 소대장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는 안도, 당황, 곤혹 같은 감정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치직- 어차피 다 같은 수정 아닙니까! 그냥 이걸로 떼웠습니다!
그 무전을 끝으로, 해치가 덜컹 소리를 내며 열렸고 손가락만한 수정이 손에 들린 채로 나왔다. 소대장의 말대로 전차를 기동하게 하고 포를 쏴도 소화제가 달라붙지 않게 만들어 주는 수정은 준비되지 않았었다.
지금 군인들이 들어 보인 수정은 임시 초소에 마련된 치료용 수정이었다. 그 안에 담긴 입자는 현재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군인들이 자신들의 부상을 치료하지 않고, 치료용 수정으로 전차를 기동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정을 꽉 쥐고 있는 손은 쉴 새 없이 떨렸고, 그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창백했다. 고통과 출혈로 인해 만들어진 창백한 안색이었다.
"······너희들. 아니, 지금 남은 탄약은 얼마나 있어! 한 번 더 쓸어버릴 수 있겠어?"
장벽 위의 우리는 할 말이 많은 표정이 절로 지어졌지만,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부상을 입은 그들이 전차와 장갑차를 깔아뭉갠 가건물의 잔해를 무슨 생각으로 치웠는지 알 것만 같아서.
지금 그 말을 하기에는 상황이 여유롭지 않으니까.
"반 정도 남아 있어서 한 번쯤은 충분히 막아 냅니다! 밑은 저희가 맡을 테니 소대장님과 이현우씨는 걱정 하지 마시고 위를 맡아주십쇼!"
현기증이 이는 듯 순간 몸을 비틀거린 주제에 정말 부상이 심한 전우들은 안전한 곳에서 모여 있다며 당당히 말하는 군인들이었고,
"···죽지 마라!"
"예!"
이를 악문 채로 말하는 소대장의 지시에 있는 힘껏 외치는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이내 해치를 닫으면서 내부로 들어갔다.
"아르마딜로 변종은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당신들은 나무 인간 변종부터 처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나와 난쟁이 탄, 군인들은 다시 장벽 위에서 싸움을 재개했다.
비록 화염 방사기가 불을 뿜다가 카트리지의 연료가 바닥나서 중간에 픽, 하고 꺼지는 일이 있었지만, 여분의 카트리지도 전부 소모했기에 더 이상 화염 방사기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는 어떻게든 시간만 벌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인 장치가 가동되면 인근의 모든 괴물들이 이끌릴 테니 무리해서 나무 인간들을 죽이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더 이상 장벽이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괴물들을 상대하면 될 따름이었다.
유인 장치의 역할은 단순히 괴물들을 한 자리로 모으는 것에서 끝이 아니다. 애초에 변종들이 장치에 이끌리는 건 장치에서 퍼지는 특유의 파장이 그것들의 감각을 교란시키는 까닭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유인 장치에게 몰린 괴물들이 서로 난리를 치면서 자기들끼리 피해를 입히는 걸 기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투투투퉁! 투투투퉁!
투두두두-!
탕! 탕! 탕!
어느새 석벽을 무너트리고 얼굴을 들이민 나무 인간을 향해 쏘아지는 기관포 소리, 이제는 1정밖에 남지 않은 중기관총이 내뿜는 사격 소리, 남은 탄을 속으로 가늠하며 신중하게 단발로 악성 변이자들의 머리를 터트리는 소리.
"후우···."
어지럽게 고막을 울리는 소리들 속에서 나는 심호흡을 내쉬었다. 내가 눈에 담고 있는 건 여전히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아르마딜로 변종. 나무 인간 변종은 군인들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기에 저 변종의 상대는 내 몫이었다.
[그으으으으-]
놈은 옆으로 몸을 굴러 막 일어선 참이었다. 변종이 다시 자세를 잡기 전까지 남은 유탄과 수류탄을 던져 피해를 주려고 했으나, 뒤집어진 상태에서도 대부분의 공격이 먹히지 않았었다.
똑같이 총탄과 파편을 튕겨낼 따름이었다.
'중화.'
같은 푸른 입자로 이루어진 불과 장막. 내가 피우는 푸른 불 또한 공격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장막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장막을 정화의 불로 두들겨서 얻은 결론이었다.
내가 노리는 건 군인들의 공격이 통할 수 있게 장막을 내 불로 중화시키는 것.
그렇게 놈이 함부로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
자꾸만 아르마딜로 변종이 장막이 흔들리는 즉시 몸을 내빼는 바람에 완전히 중화가 되면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장막이 깨지거나 약화될 거라는 건 기대할 수 있었다.
웅웅웅!
'더. 좀 더.'
나는 도끼에 푸른 불을 최대한 응축시켰다. 한계까지 모인 불은 플레어가 터지는 것처럼 간혹 불줄기를 내뿜었다. 도끼에 달라붙어 있던 체액이 전부 증발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구아아아아악!]
아르마딜로 변종은 장벽 위를 바라보지 않았다. 놈이 보는 건 허물어진 석벽 너머로 보이는 자주대공포였다. 푸른 장막이 다시금 눈 부신 빛을 발한다.
투투투투투퉁!
티티티티티팅!
나무 인간 변종을 대신해서 틈새 앞에 선 아르마딜로 변종은 기관포를 그대로 받아냈다. 탄환이 장막에 부딪힐 때마다 장막에는 파문처럼 원형의 파장이 일렁거렸다. 당연히 장막이 유효한 이상 기관포라 하더라도 통하지 않았다.
"머리 숙여!"
군인들은 황급히 자세를 낮춰 사방으로 도탄이 되고 있는 탄들을 피해야만 했다.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 아닌 그 충격의 방향을 돌리는 푸른 장막이기에 장막이 튕겨 내는 탄에는 원래의 힘이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기관포는 제 신호가 떨어지고 나면 재사격 실시하십쇼!"
- 알겠습니다!
어차피 장막을 없애기 전까지는 통하지 않을 공격이라는 걸 아는 군인들은 곧장 무전을 통해 답했다. 그들이 나설 차례는 내가 장막을 중화시키고 난 이후였다.
화르륵!
나는 천천히 도끼를 위로 들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높게 치켜든 도끼에서는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것처럼 푸른 불이 넘실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웅!
그리고 최대치로 압축한 푸른 불이 담긴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안에 담긴 힘이 자연스럽게 허공을 그으면서 순간적으로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쏘아진다.
퍼어엉!
유선형으로 날아가는 푸른 불 응집체는 곧장 장벽 앞 아르마딜로 변종에게 폭음을 내며 직격했고, 그 여파를 순식간에 퍼트려 근처의 나무 인간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그아아아악━!]
[끼에에에에엑!]
장막과 몸에 달라붙은 푸른 불이 기세를 키우며 타오르자 놈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들은 바닥을 나뒹굴면서 불을 끄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럴수록 하단에 쌓인 사체에게 불을 옮겨 힘을 얻은 푸른 불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쩡!
돔 형태의 유리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파편이 떨어지는 소리로 이어지지 않은 그 소리는 변종의 푸른 장막이 처음으로 깨져 나가는 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아르마딜로 변종이 돌진하는 중이 아니고, 장벽 앞에서 이를 드러내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막 제거 확인!! 기관포 있는 대로 쏴!"
무적처럼 보이던 푸른 장막이 내 정화의 힘으로 깨져 부서지는 모습은 군인들의 눈에 똑똑히 각인되었다.
투투투투퉁!
아르마딜로 변종이 장벽을 밀어내기 전에, 장막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은 놈이 뒤로 물러나기 전에 군인들의 화기가 더 빠르게 불을 내뿜었다.
[구아아아아아악!]
통하지 않았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한 듯 변종의 몸체에서 피가 튄다. 아르마딜로 변종은 나무 인간과 달리, 우리 인간처럼 붉은 피를 흘렸다.
"화기가 통한다! 장막이 재생되기 전에 놈을 최대한 밀어내! 장벽에 더 오지 못하게 막아야 해! 곧 15분이다! 조금만 더 버텨!"
소대장은 핏발이 선 눈으로 군인들을 다독였다.
강화 소총탄, 저격탄, 화염 방사기 카트리지, 여유 탄통에 들어 있던 일반 탄약, 수류탄 전부 소모.
남은 건 자주대공 포에 남은 탄약과 전투 조끼 파우치에 끼워진 탄창 정도.
추가 보급을 받지 못해 처음보다 확연하게 낮아진 화력이었지만, 그들의 정신만큼은 여전히 또렷했다.
바로 그때.
- 허억- 허억··· 이현우씨, 소대장님. 후우- 들립니까?
최명철에게서 무전이 왔다. 매우 가쁜 숨소리가 뒤섞인 무전이었다.
"최명철씨! 장치는 설치했습니까!"
방금 전에 소대장에게서 무전기를 건네받았던 나는 드디어 약속의 15분이 지났다는 생각에 반색하며 무전에 답했다.
- 치지직···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둘 다 있습니다.
불안하게 내 답을 받은 최명철. 나는 순간 몸을 굳히며 되물었다.
"뭐라고요?"
- 하나는 장치 설치를 어떻게든, -끼에에에엑! 치지직- 으헉! 성공했다는 겁니다. 비록 마지막에 들켜서 괴물들에게 쫓기고 있는 중이지만, 이게 좋은 소식입니다.
괴물에게 쫓기고 있다는 말과 함께 괴성 소리가 무전에 섞여 들린다.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으나, 최명철이 현재 계속 달리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 하나는 이거, 원거리 작동이 안 됩니다. 키가 안 먹혀요···! 크아아-치지지지- 가시화될 정도로 많은 검은 입자들이···! 이런 씨발! 타앙-치지직!
우당탕 소리가 무전기 너머에서 전해진다. 이어서 무전기가 인식할 수 있는 소리를 넘어선 사격음이 만들어 내는 잡음까지.
- 아무튼 검은 입자들이 리모컨에 혼선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나뿐만이 아닌 그 무전을 듣고 있던 군인들이 몸을 멈칫할 정도로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현 상황을 해결할 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거리 작동이 되지 않는다면 남은 방법은 수동으로 직접 작동시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바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괴물들에게 쫓기고 있는 그인데 어떻게 그 말을 전한다는 말인가.
당장 도망치기에 급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라는 건 전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미 그가 지나온 길에는 발을 디딜 틈도 없이 괴물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을 테니까.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작전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확신이었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유인 장치를 가동시켜야 하는가.
내가 버틴다는 목적에서 어떻게 해서든 아르마딜로 변종을 여기서 죽인다는 목적으로 바꿔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최명철의 무전이 이어졌다.
- 작전, 실패해서 죄송합니다. 마지막에 치지직- 들켜 버렸네요. -끄에에에엑!- 쾅! 콰르르!
무전기가 무거운 한숨을 토해낸다. 최명철이 변종을 피해 도망치는 소리, 변종이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 그가 다시 황급히 자리에서 벗어나 공격을 피하는 소리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 거의 다 왔- 하. ······아니. 아니지. 이현우씨,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살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살았다면 잘 숨어 있을 테니 너무 늦지 않게 와 주십쇼.
그랬던 그는 갑자기 중간에 말을 멈추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숨을 고르고 있는 듯 가쁜 숨소리를 가라앉히면서.
통신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얼핏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이래서 사람은 언제나 두 가지 방법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최명철씨! 최명철씨!!"
- 부적. 잘 썼다고 전해 주시고. 살아서 봅시다. 이상.
내 외침이 전해지지 않는 것인지 최명철은 자기 할 말만 했다.
그리고 그 직후, 통신이 완전히 끊기는 것과 동시에 지평선 너머에서 기둥이 솟았다.
어스름한 하늘을 관통하는 푸른빛의 기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