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92 - 392. 습격 (12)
콰아아아아!
- 부적, 잘 썼다고 전해주시고. 살아서 봅시다. 이상.
최명철이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었던 말이 기둥의 빛과 함께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린다.
나는 그가 말한 부적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세아가 건네준 강화탄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게 여기서도 보일 정도로 커다란 푸른빛의 기둥을 만들만큼 강한 위력이 담겨 있었는지는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서로 죽이기 위해서 무기를 들고,
각자 살아남기 위해서 팔을 휘두르고,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소리치고,
상대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해서 괴성을 내지르고.
그런 인간과 괴물의 구분 없이 모두가 푸른빛의 기둥에 시선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어둑한 밤하늘 꿰뚫은 빛이 느닷없이 보인 탓도 있었지만 기둥에서 퍼져 나온 에너지 파장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에너지는 급박하게 싸우던 중에도 무심코 고개를 돌리게 만들 정도로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이목을 이끌었으니까.
아니, 그건 이 장벽 일대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파장이 퍼진 면적에 포함된 모든 생명체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본래 유인 장치의 효과의 예상치는 이렇게 크지 않았다. 유인 장치를 제작한 난쟁이 탄이 장담한 내용이니 확실하겠지. 허나, 지금 이런 효과를 지니게 된 건 무언가의 시너지를 받았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최명철이 사용한 강화탄일 가능성이 컸다.
"······."
"······."
푸른빛의 기둥은 이내 사라졌지만, 파장은 여전히 퍼지고 있는 덕분에 장벽 일대는 여전히 침묵에 빠진 상태였다. 마치 한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군인들의 목숨을 노리던 나무 인간과 그 변종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지르던 괴성을 멈추면서 나온 결과였다.
그것들의 시선은 기둥이 있었던 위치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기둥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로 그때.
[구아아아아아악!]
푸른 장막이 다시 재생된 아르마딜로 변종이 커다란 괴성을 내질렀다.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로 고개를 고정시킨 채로.
놈은 자주대공포의 기관포에 맞아 몸 곳곳에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아직 건재하다고 할 수 있는 놈의 포효를 들은 나무 인간과 그 변종들이 따라서 괴성을 내질렀다.
[끼아아아아악!]
[키에에에엑!]
철컥!
바싹 굳어 있던 괴물들이 움직임을 되찾은 것이 그때였고, 이후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었던 우리가 놈들에게 총구를 겨눈 것이 그때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내 무의식적으로 총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아르마딜로 변종을 포함해서 일대의 나무 인간들이 대부분 기둥이 보였던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으니까.
쿵쿵쿵쿵쿵쿵!
처음에 아르마딜로 변종과 나무 인간 변종이 장벽을 뚫기 위해 속도를 높여 돌진한 것과 동일한 행동이었다. 장벽을 쉴 새 없이 두드리던 소리가 멎은 건 거의 동시였다.
"······물러나잖아."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린 어느 한 군인. 생채기가 가득 새겨진 군인의 얼굴에는 검댕이와 핏자국 또한 가득 묻어 있었다.
"아직 마음 놓지 마! 방심하지 마라! 모조리 유인된 게 아니야! 아직 장벽 앞에 살아 움직이는 괴물들이 있다!"
그런 군인의 정신을 차리게 만든 건 소대장들이었다. 그들은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하며 재차 총기를 들었다.
그래, 분명 지금은 전투가 일단락이 된 상황인 건 맞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고, 상황이 전부 끝나 안심할 수 있는 순간이라는 건 아니었다.
머리와 두 다리가 어느 정도 온전한 상태의 나무 인간은 하나 같이 아르마딜로 변종과 함께 기둥을 향해 뛰어갔지만, 몸체에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머리가 움푹 파여 있는 것들은 따라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지를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머리가 온전하지 않았기에 에너지 파장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건 나무 인간 변종도 마찬가지였다. 부위가 파손된 놈들은 기어서라도 가려고 했으나, 특유의 무거운 나무 껍질 탓에 그저 바닥만 긁을 수 있을 따름이었으니까.
결국은 군인들의 바람인 쉴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이다. 소대장들이 말했듯이 장벽 앞을 전부 정리하기 전까지는 쉴 수가 없었다.
다행히 파장의 영향 자체는 제대로 받아 무력화된 나무 인간과 그 변종들이었기 때문에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을 듯했다.
"···소대장님."
나는 군인들이 방심하지 않고 무력화된 나무 인간들을 사격으로 처리하는 걸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사격음이 귓가에 맴돈다.
"가십쇼. 여긴 이제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내 부름에 고개를 돌린 소대장이 곧장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내가 이미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도 되겠어요? 혹시라도 되돌아오는 놈들이 있으면-."
"괜찮습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되돌아오는 놈들이 있으면 무전하겠습니다. 통신 상태가 불량하긴 한데, 아무튼 저흰 그 전까지 저걸로 어떻게든 또 버텨보죠. 탄도 있고요."
내가 없어도 몇 분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소대장의 말. 소대장, 소위 김창석은 여전히 장벽의 틈에 박혀 고정된 비호 복합을 가리켰다.
막바지에 다다라서 탄약이 바닥났던 자주대공포는 보급을 받아 새로이 재장전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투투투투퉁!
포탑이 좌우로 조정되면서 기관포를 정렬한 그것은 군인들이 소형 화기로 처리하기 곤란한 나무 인간 변종을 막 갈아버린 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계에 다다른 두꺼운 나무 껍질은 맥없이 부서져 나갔던 것이다.
비록 유도미사일 포드에 미사일을 장착하지는 못했어도 기관포만으로도 무력화된 나무 인간 변종을 처리하기에는 충분했다.
"한 번에 한 마리씩 죽여요! 무리하게 여러 마리씩 죽이려고 하지 말고 뭉쳐 다녀요!"
난쟁이 탄은 군인들 옆에서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보조하는 중이었다. 그의 지시를 따라 군인들은 괴물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다.
"오히려 벙커로 내려가시는 건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이쪽 상황은 거의 다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지만, 벙커 내부는 아직 한창인 것 같으니까요."
상황 보고는 자신이 하겠으니 소대장은 어서 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의 시선은 간혹 발에 전해지는 진동이 퍼지는 벙커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진동은 벙커 내부를 침식한 나무뿌리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건 벙커 내부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뒷정리 부탁합니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내가 올라왔던 출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소대장이 건네준 여분의 무전기에서는 고막을 자극하는 잡음이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다급한 음성은 덤이었다.
장벽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에게 맡기고, 나는 벙커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겠지.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아르마딜로 변종이 없어졌고, 완전 파괴된 중기관총을 대신하는 기관포가 남아 있으니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지수, 한세아, 최미소, 예린, 엘리가 무사히 대피소로 들어가 화를 피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 했다.
"지수야! 세아씨! 지금 다들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무전기 버튼을 꾹 눌러 입을 열었다.
드드드드!
그렇게 통신이 제대로 연결되기를 바라면서,
부디 우리가 갈 때까지 최명철이 기둥이 솟은 곳에서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옅은 진동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는 벙커로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 사위가 조금은 더 밝아진 하늘을 뒤로한 채로.
***
유인 장치 가동 1시간 20분 전, 김지수 시점.
"언니, 우리도 어서 움직이죠."
나는 오빠가 뛰어가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돌려 세아 언니를 바라보았다.
"알았어요."
언니는 곧장 고개를 끄덕인 후에 반대편 복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소 언니가 무사히 대피소로 피난하는 걸 보고 난 이후였다.
처음에는 미소 언니를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대피소에는 난쟁이 아저씨들이 있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타탓- 타타타탓-
우리는 복도를 따라 달렸다. 벙커 내부는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화장실은 한 군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지내는 방을 기준으로 지상 출입구 쪽 광장에 위치한 화장실은 거리가 가장 먼 곳이고, 제일 가까운 화장실은 우리가 이동하는 복도를 지나 갈림길 근처에 있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낮이 아닌 새벽에 방을 나섰으니 예린과 엘리는 굳이 멀리 있는 화장실을 가지는 않았을 거다.
'정말로 화장실에 간 것이 맞다면 말이지.'
아무리 훈련에 지쳤다고 해도 내가 그 아이들이 나가는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과 방을 나서고 나서야 혈향이 제대로 맡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감각이 바로 둔하게 변하는 것도 내가 불안감을 느끼는데 한몫하고 있었다.
몸이 이렇게 변하고 나서 내가 평소에 느껴지는 감각은 예전과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런 감각이 이상해졌다는 건 무언가가 수작을 부렸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수작을 부린 건 분명 벙커를 습격한 괴물들이겠지.
까득-
무심코 이를 악문 나는 세아 언니와 함께 이동하면서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움직임을 인식하고 켜지는 보안등의 빛에 눈을 찌푸렸다. 최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려고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눈이 받아들이는 빛이 강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 몇 명을 데리고 대피실로 이어진 통로로 다급하게 이동 중인 군인들을 볼 때마다 예린과 엘리를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당신들 여기서 뭐 하고 있습니까! 대피실 통로는 반대쪽입니다!"
"사람을 찾고 있어요! 혹시 예린이랑 엘리 본 적 없어요?"
"예린이랑 엘리? 저흰 그 아이들 못 봤습니다! 이미 대피실로 가 있는 거 아닙니까?"
군인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곱씹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아이들의 얼굴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둘은 벙커 내부에서 워낙 유명 인사였으니까.
"···아뇨, 대피실에는 없어요. 시간 뺏어서 죄송해요. 어서 사람들 대피시켜 주세요."
군인의 물음을 받은 건 세아 언니였다. 차가운 총기를 매만진 그녀는 일련의 무리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만난다면 무전기로 연락 넣어 주시구요!"
"알겠습니다! 마주치면 바로 연락 넣어드리겠습니다! 다들 바싹 붙어서 이동하십쇼! 통로 입구가 코앞입니다!"
군인들은 사람들을 인솔하면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와 세아 언니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그들은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길 뿐이었다.
우리도 다시 다리를 놀리기 시작했고, 이내 좌우로 나뉘어지는 갈림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팟!
화장실이 위치한 복도 끝에 설치된 보안등이 뜬금없이 켜졌다.
보안등의 빛이 비추는 건, 그 앞에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