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93 - 393. 습격 (13)
유인 장치 가동 1시간 15분 전, 김지수 시점.
어째서일까.
단순히 보안등에 불이 들어오는, 별것도 아닌 광경인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언니."
"응."
쉴 새 없이 달리려던 나와 세아 언니는 그 모습을 보고 다리를 멈췄다. 뭐라 말하지도 않았건만, 세아 언니가 멈춘 걸 보니 언니 또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뜬금없이 켜진 것과 그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 둘 다 평소에는 또 오작동이구나, 하고 넘어갈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오작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허나, 새벽에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고,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 대수롭게 넘어갈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소한 것 하나 놓쳐서는 안 되었다.
가뜩이나 상황 파악을 위한 정보가 부족한 참이 아니던가.
"······."
나는 전방에 시선을 집중했다. 한번 작동하면 몇 초 동안 켜져 있게 설정된 보안등이었기에 조금 전에 켜진 보안등은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8초, 9초, 10초.'
하지만 보안등에 설정된 그 몇 초는 이미 지났다.
앞에 무언가라도 서 있었다면 이해라도 했을 텐데, 보안등이 밝히고 있는 공간에는 그 어떤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보안등이 밝히고 있는 공간의 빛이 나와 세아 언니 앞에 있는 어둠 너머에 있을 따름이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는 갈림길. 보안등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는 위치는 예린과 엘리가 갔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화장실 근처였다.
예린과 엘리 둘 다 정령을 다룰 수 있고, 볼 수 있으니 그 정령들의 영향으로 갑자기 불이 들어왔다고 하면 이상하진 않다. 그러나 정령들이 벙커에서 모조리 사라진 지 꽤 지난 시점이지 않은가.
사라진 정령들을 찾겠다고 이 근방을 샅샅이 뒤진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바로 그때.
······팟!
그 다음 위치에 있는 보안등에 불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전조없이 켜진 보안등의 빛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고, 우리와 한층 더 가까워졌다.
아니, 이번에는 빛이 비추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무성하게 자란 넝쿨들이었다. 미약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거 보니 수도관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세아 언니, 언니는 이쪽으로 가서 애들 찾아요. 저는 원래 계획대로 저기 가서 찾아볼게요. 화장실에 간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나는 시선을 전방으로 고정한 채로 팔을 들었다. 내가 한쪽 팔로 가리킨 방향은 화장실이 있는 쪽이 아닌 제 2광장이 있는 쪽이었다.
"역시 뭔가가 있는 거지?"
세아 언니는 나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기랑 같이 상대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언니도 아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시간이 끌리는 것보다 흩어져서 한시라도 빨리 아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걸 말이다.
"···확실하진 않아요. 일단 가요. 시간 없어요."
"가서 빨리 애들 찾아볼게. 무리하지 말고, 불리하면 바로 물러나. 꼭이야."
"알았어요. 저는 알아서 잘 빠질 테니까 언니는 예린이랑 엘리 찾으면 먼저 대피소로 들어가 있어요. 미소 언니 지켜야 하잖아요."
세아 언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후 우측 길로 진입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잠시 뒤로 돌려 후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들을 흘깃 바라보았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피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대피소로 이어지는 통로, 그 통로에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대열을 보호하기 위해 바싹 긴장한 얼굴로 경계하는 군인들.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세아 언니를 다른 곳에서 보낸 건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아직 사람들의 대피가 모두 완료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린과 엘리가 이 앞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그 아이들이 다른 곳에 있다면 흩어져서 찾는 것이 더 빠르지 않겠나.
'무사히 찾는다고 해도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야.'
아이들을 찾아내고 대피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통로가 유지되어야 한다. 정확히는 그곳까지 가는 길목이 유지되어야 하고, 그 근처를 지키는 군인들이 살아 있어야 한다.
비록 그들이 벙커를 습격한 괴물들과 맞상대할 수는 없어도, 저지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군인들이 허무하게 죽지 않도록 이 길목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 앞에 예린과 엘리가 있다면 내가 구하고, 없다면 세아 언니가 아이들을 구해 올 때까지 말이다.
바로 그때.
······팟!
보안등의 빛이 한차례 더 앞으로 이동했다. 세아 언니가 내게서 떨어진 순간과 거의 동시였다. 그러한 빛의 움직임은 내 쪽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걸 기다렸다는 듯한 움직임으로 다가왔다.
'···안 보여.'
아무리 시선을 집중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좀 더 무성해진 넝쿨만 보일 뿐이었다.
내가 도끼를 강하게 꽉 잡는 것과 동시에.
······팟!
······팟!
······팟!
거리를 빠르게 좁혀 오는 것처럼 보안등이 빠르게 점멸하며 무언가의 접근을 알렸다.
"······!"
나는 본능적으로 푸른 입자를 담은 도끼를 앞으로 들어 올렸다. 꺼짐과 켜짐을 반복하는 보안등은 여전히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 주지는 않았다. 그저 진한 넝쿨 냄새가 맡아지기만 했다.
마침내 코앞의 보안등이 켜졌을 때.
팟!
나는 도끼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
···카앙!
붉은 소방 도끼가 벽면을 강타한다. 일직선을 그리며 옆으로 휘둘러진 도끼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후두둑-
밑으로 벽면을 이루고 있던 석재가 일부 부서져 도끼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분명 바로 앞에 무언가가 있다고 온 감각이 경종을 울려 댔는데 맞추지 못한 것인지 손에는 벽을 강타해 찌르르 울리는 느낌만 남아 있었다.
일부러 면적을 크게 공격하기 위해 가로로 휘둘렀는데 말이다.
"빗나갔━?!"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하려다 말고, 급히 헛숨을 들이키며 허리를 숙여야만 했다. 순간 쫑긋거린 귀가 미세한 소리를 포착한 까닭이었다.
쉬이이익!
내가 급하게 자세를 낮추는 것과 동시에 머리 위로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 느낌은 중간에 멈추지 않고 내가 도끼를 휘둘렀던 것처럼 그대로 옆 벽을 긁었다.
촤자자작!
3갈래의 스크래치 자국이 길게 남는다. 그에 따라 벽면에 붙어 있던 넝쿨 줄기가 인정사정 없이 끊어져 안에 담고 있던 체액을 사방으로 뿌렸다.
푸쉬이익!
고정이 풀린 호스인 것처럼 줄기를 비틀어 대며 체액을 내뿜는 넝쿨. 그것의 체액이 방울방울 무리를 지어 뿌려지는 광경이 눈에 담긴다.
심상치 않은 위력. 다른 감각의 경고를 무시하고 시각에만 의존했더라면 바로 죽었을 수도 있을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다.
"뭔가가···! 있, 긴 있네···!"
본의 아니게 주변의 냄새를 중화시켜 없애는 체액을 뒤집어쓴 나는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다리로 하단을 긁었다. 나를 공격한 것이 바로 앞에 있으니 바닥을 스치듯 공격하면 뭐라도 하나 걸리지 않겠나, 라는 생각에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걸리는 건 없었다. 때마침 바닥을 딛고 있지 않았던 것인지, 공중을 떠다니는 놈인지, 아니면 바닥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달라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쐐애액!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나는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마자 도끼로 바닥을 찍어 스파크를 퍼트렸다.
파지지직!
도끼를 중심으로 팡, 하고 터지는 스파크가 주위를 전부 채웠다. 조금씩 바닥을 채우기 시작한 물기와 스파크가 서로 만나니 그 효과는 배가 되었던 것이다.
가시화될 정도로 강한 스파크는 바닥, 좌우 벽면, 천장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스파크가 천장 구석에 닿는 순간,
[━━!]
조용한, 아주 조용한 비명이 들렸다. 감각을 최대한 키워 놓고 있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만큼 매우 작은 비명이었다.
그 작은 소리에 고통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몸을 마비시키는 스파크가 제대로 먹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으나, 나는 후속타를 날려 괴물을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급하게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괴물이 여전히 보이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다. 형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감각으로 괴물의 위치 정도는 어떻게든 특정해낼 수 있었으니까.
다만, 내가 뒤로 물러난 건 벽 너머에서 약한 진동과 함께 갈라지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드드드드드-!
벽면에는 어느새 수없이 많은 금이 새겨져 있었고, 점점 더 커진 그 금 사이로 나무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쾅!
벽을 부수고 튀어나온 나무뿌리가 난동을 부린다. 복도 안을 인정사정 없이 헤집는 나무뿌리는 안에 뭐가 있든 상관없이 두들겨댔다.
끼기기기-퍼엉!
벽 안에 내장되어 있던 수도관이 나무뿌리에 의해 완전히 파손되어 물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화장실이 있는 복도인 탓일까. 이곳에 집중되어 설치된 수도관이 모조리 터져 나가면서 쏟아지는 물이 복도 전체를 물바다로 만들 기세였다.
"으아아···!"
나는 위, 아래, 좌우 가리지 않고 휘몰아치는 나무뿌리의 공격을 뒤로 물러나는 걸로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어푸! 어푸푸! 아 씨, 한 마리 잡을 수 있었는데···!"
분통을 터트리는 와중에 혹시라도 그 괴물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수도관에서 뿜어지는 물줄기에도 눈을 감지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