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94화 (395/497)

Chapter 394 - 394. 습격 (14)

유인 장치 가동 1시간 5분 전, 김지수 시점.

"으윽···."

나는 물에 푹 젖은 꼬리에 묻은 회색 돌 가루들을 털어내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리 끝에서는 뿌연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 방금 치지직- 소란에 대해 아는 인원이 있으면 응답하라!

주머니에 넣어 둔 무전기가 다급한 목소리를 토해낸다. 현재 무전기에서는 조금 전 나무뿌리에 의해 발생한 소란에 대한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른 곳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현재로서 중요한 일이기에 나는 무전 내용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으나,

- 벽이 뚫렸- 치직- 습니다! 나무뿌리가··· 삐이이익-

보고가 이어지던 중 무전기는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기묘한 소리를 끝으로 소리가 죽고 말았다.

혹여 전원 버튼이 눌린 것인가 싶어 버튼을 꾹꾹 눌러보았지만 장비가 켜지는 일은 없었다. 장비가 켜지는 대신 무전기 하단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뿐이었다.

아무래도 미처 피하지 못한 물줄기를 무전기가 고스란히 뒤집어쓴 모양이다.

"아이 씨."

물을 탈탈 털어내도 작동이 되지 않는 무전기를 본 나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면서 무전기를 다시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주머니 지퍼를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작동되지 않긴 해도 나중에 무전기가 다시 정신을 차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던가. 굳이 버릴 필요는 없었다.

"······."

나는 한바탕 난리가 끝난 복도의 앞뒤를 바라보았다.

"다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다시 이동 시작하겠습니다! 서로 떨어지지 마십쇼!"

후방의 복도에서는 사람들이 나무뿌리의 난동을 피해 몸을 바싹 엎드린 상태였고, 그런 사람들을 재빨리 정신을 차린 군인들이 다독이며 챙기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곳에 비해 나무뿌리에 의한 피해가 크지 않아 보였다.

"어서 일어나요···! 통로가 바로 코앞이라고요! 여기서 이렇게 있다가 죽을 거예요? 빨리 일어나요!"

공포와 두려움에 빠져 몸이 굳은 사람들을 부축해서 일으킨 사람들이 외친 말이었다. 그들은 누구 하나 버리지 않은 채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후우."

나는 흘깃 향했던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짧은 간격으로 점멸하는 보안등과 물무리가 생긴 복도.

복도 벽에는 나무뿌리와 함께 자라난 넝쿨 줄기가 허공에 분무기처럼 물을 분사하는 중이었다. 그 탓에 물무리가 생겼던 것이다. 허공을 떠다니는 물 입자가 이리저리 휘날리는 것이 보인다.

실시간으로 크기를 키워나가는 나무뿌리와 넝쿨.

바닥에 고인 물을 끊임없이 퍼 마시고 있는 그것들은 물을 들이킨 만큼 몸을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 따라 벽이 점점 더 허물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너진 벽면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과 그 표면에 붙은 작은 돌 조각들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검은 구멍.

정확히는 복도 끝에서 벽을 뚫고 나온 나무뿌리가 만들어 낸 통로가 시선의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외에는 난리통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거나 다치지 않은 것처럼 나를 노렸던 괴물 또한 죽거나 다치지 않은 듯 새로이 추가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속이 텅 빈 나무뿌리 통로에서 무언가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느낌만 전해질 따름이었다.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물무리가 이상하게 흔들리는 거 보니 무언가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구멍에서 나오고 있는 건 내 목숨을 노렸던 괴물과 같은 종류의 괴물이겠지.

'···소리도 안 들려.'

나는 눈을 아무리 집중해도 그 괴물들을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종류의 괴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린아! 엘리! 거기 있어? 있으면 대답해! 말을 못 하는 상황이면 뭐라도 두드려 봐!"

천천히 심호흡을 한 나는 복도 끝 화장실이 있는 위치를 향해 외침을 내질렀다. 혹시라도 그 아이들이 저곳에 있다면 내 외침을 인지할 수 있게 말이다.

허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역시 아이들이 화장실에 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아니, 감각에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그건 내 외침을 인지한 예린과 엘리가 아니었다. 나를 시야에 담고 있는 괴물들의 희미한 존재감이었다.

'···열? 스물?'

몸을 콕콕 찌르는 시선에 온몸의 감각이 경종을 울린다. 나무뿌리가 벙커 내부로 들어오기 전에 확실하게 느꼈던 존재감이 하나였다면 지금은 수십 배가 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장, 바닥, 벽 구석구석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 살피는 눈에 포착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마른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스파크를 날려 공격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특히 지금은 엄폐물로 형성된 나무뿌리가 있으니 더욱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통하지 않는 공격하는 건 괜히 체력과 힘만 빠지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남은 건 보이지 않는 괴물이 활개를 치게 될 터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보는 건 답이 아니야.'

시각은 직관적이고 단순명료하다. 그렇기에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맹신해버리고 만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정답이 아닌 걸 알고 있어도 무심코 믿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달은 나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눈을 감는 것. 눈을 감아서 불필요한 감각의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눈을 감는 건 감각을 차단하는 일종의 편법이고,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지 않은가.

눈으로 주변을 보는 것이 아니다.

시각을 차단한 영향으로 예민함이 더 올라간 다른 감각들, 청각이나 후각 따위의 감각들을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몸에서 울리는 심장 고동 소리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소리와 그 소리가 닿는 부위를 인지한다. 그렇게 주변을 느껴지는 그대로 읽어 내린다.

괴물들이 눈으로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위장을 하고 있다고 해도 움직일 때 소리가 아예 안 날 수는 없어.

마찬가지로 괴물들이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체취 또한 완전하게 숨길 수는 없어.

제 아무리 넝쿨 체액을 뒤집어써서 주변의 냄새와 뒤섞였다고 해도 말이야.

그러니.

소리를 들어.

냄새를 맡아.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 두 개 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거잖아.

이런 상황이 이렇게 벌어지기 직전에, 하다못해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바로 알아차렸으면 좋았을 테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훈련이 고되어서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 늦었다거나 괴물들이 수작을 부려서 감각에 혼선이 생겼다는 건 다 변명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지나간 일을 아무리 곱씹어도 과거는 고칠 수 없기에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러니까,

'오빠를 위해서, 언니와 아이들을 위해서.'

집중해.

나는 눈을 감은 채로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드드드드드!

이곳이 아닌 다른 구역에서 전해져 오는 진동이 느껴진다. 거리가 꽤 있는지 발에 전해지는 진동은 약했다.

탕! 타타탕!

뒤이어 전해지는 진동은 사격에 의해 발생한 공기의 떨림이었다. 그 공기의 흔들림과 함께 들리는 건 군인들의 고함 소리였다. 어두운 곳을 최대한 피하라는 경고성이 담긴 고함이었다.

"예···! 어디 있···!"

다른 방향에서 들려오는 세아 언니의 목소리. 언니는 격하게 숨을 몰아쉬면서 아이들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거리가 좀 있고, 길목이 이리저리 꺾여 있어서 소리를 확실하게 특정해낼 수는 없었다.

"꺄아아악!"

"머리 숙이십쇼! 구역 소각 개시!"

화르르륵!

무언가가 분사되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더 가까워진 소리는 군인들이 보이지 않는 괴물을 잡기 위해 화염 방사기로 구역을 통째로 태우는 소리였다.

하지만 결국 괴물은 잡지 못했는지 욕설이 섞인 말만 들려올 따름이었다.

나는 귀를 쫑긋거려 귀가 인지하는 소리의 범위를 점점 더 좁혀 나갔다. 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리를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점점 좁아지는 소리의 공간에는 온갖 미세한 소리가 다 들렸다. 물방울이 떨어져 비산하는 소리, 넝쿨 잎사귀가 흔들리는 소리, 나무뿌리 통로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바람 소리 따위가 말이다.

눈을 감아 감각을 최대한 집중하고 있는 바로 그때.

······툭

미세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최대한 감각을 집중해서 키운 청각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바로 내 앞에서 들려왔다. 복도 끝에 있던 괴물들이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모르고, 방금 들은 소리가 그 괴물들이 낸 소리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흐읍···!"

숨을 크게 들이킨 나는 도끼에 스파크를 순식간에 모아 휘둘렀다. 도끼가 휘둘러지는 찰나의 시간 동안에 모을 수 있는 최대치로 담긴 스파크가 허공에 퍼진다.

파지지직!

가시화된 전류가 물과 만나 빠르게 퍼지는 것 같은 광경이 복도에 새겨진다.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니 힘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판단 하에 이루어진 광경이었다.

쐐애애액!

도끼날이 허공을 가르는 것과 동시에.

[━━━!]

투명한 체액이 팍, 튀었다. 순간적으로 모습이 드러난 괴물이 뒤로 넘어가는 모습은 덤이었다.

도롱뇽일까, 카멜레온일까. 그것을 의인화하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괴물이 조용한 비명과 함께 명을 달리했다.

놈은 죽으면서 어지간해서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단말마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건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인지 그 단말마의 파장이 복도에 퍼지면서 그곳에 모여 있던 괴물들이 모조리 내게 달려드는 건 거의 동시였다.

"이제 한 마리━━!"

이미 도끼를 회수해 2격을 날릴 준비를 마친 나는 전방을 노려보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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