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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396화 (397/497)

Chapter 396 - 396. 습격 (16)

유인 장치 가동 1시간 5분 전, 최예린 시점.

"여기 누구 있습니까! 있으면 대답하십쇼!"

소란을 듣고 몰려온 일련의 군인들. 급하게 나온 것인지 그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된 무기가 아닌 공구를 손에 쥐고 있는 채였다. 총기는 등에 메여 있었다.

'여기로 오면 안 되는데···!'

나와 엘리 언니는 지금 군인들이 이곳에 오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도 그럴게, 지금 이 공간에는 이상한 형상의 괴물들이 자리 잡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군인들의 공격이 괴물들에게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건 둘째 치고, 애초에 일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점이었다. 맞서 싸우는 것도 상대가 보여야 할 수 있는 법이지 않나.

하지만 세상일은 언제나 뜻대로 풀리지 않는 법이기도 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군인들이 흙먼지를 손으로 밀어내면서 나와 엘리 언니를 찾았던 것이다.

"저기! 저기 생존자 2명 발견!"

좀 더 동물에 가까운 외형을 가진 군인이 야행성의 눈을 빛내며 외친 말에 같은 조에 속한 군인들의 시선 또한 우리에게 향했다. 예전의 인간이었다면 쉬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숨어 있던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세상이 변한 후에 감각이 예민하게 변한 탓이었다.

"아, 안 돼요! 여기로 오면···!"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주변의 일렁거림이 순식간에 늘어났다는 걸 눈치챈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외쳤으나, 아이를 본 군인들이 망설임 없이 달려온 것이 한 박자 더 빨랐을 따름이었다.

"어?! 예린아! 엘리! 너희 여기서 뭐 해!"

특히 서로 안면이 있는 군인. 부사수로 기억하고 있던 김철수 아저씨가그러했다. 방독면을 고쳐 쓰고 있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뛰어왔다.

"부사수 아저씨? 제가 여기로 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뭐? 왜? 아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 대피소로 들어가야 한다고! 다른 분들은 다 어디 있어?"

"그건 저도 몰라요···. 눈 떠보니까 여기에 있었단 말이에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대체! 일단 알았으니 어서 이동하자.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김철수 아저씨와 그의 동기들은 서로 신호를 주고 받으면서 나와 엘리 언니를 진영 한가운데에 넣은 것이 그때였고,

"······안 돼요. 움직이지 마세요. 가만히, 가만히 있어요···. 지금 저희 다 둘러싸였으니까."

바싹 경계심 오른 눈을 하고 있던 엘리 언니가 군인들의 이동을 막은 것이 그때였다. 언니는 몸을 굳힌 채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광장 끝에 있던 일렁거림이 체감이 확 될 정도로 우리와 가까웠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다만, 군인 아저씨들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단 우리의 말대로 행동을 멈췄다. 나와 엘리 언니에게 특별한 이능이 있다는 걸 아는 그들이기에 우선 말을 들어 준 모양이다.

"···둘러싸였다고? 뭐로부터?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기다려 봐요. 이러면 보일 수도 있어요. 부사수 아저씨랑 다른 군인 아저씨들, 이상한 게 보여도 절대로 움직이지 마요."

나는 군인 아저씨들 틈에서 푸른 가루가 든 유리병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가루를 한 움큼 집어 주변으로 뿌렸다.

그와 동시에.

째째쟁!

콰장창!

광장 구석에서 힘겹게 빛을 내고 있던 보안등들이 모조리 깨져나갔고 광장은 눈 깜짝할 새에 어둠에 잠기게 되었다.

파직···

미약한 스파크 소리를 끝으로 보안등은 더 이상 점멸하지 않았다.

우리 또한 빛이 사라진 광장의 어둠에 뒤덮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내가 흩뿌린 가루에서 나오는 빛이 은은하게 남아 있어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는 게 다행일까.

"···뭐야 씨발."

어느 군인 아저씨가 욕설을 내뱉었다. 보안등이 깨진 까닭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보안등이 깨지는 소리에 놀란 것도 아니었다.

[······]

[······]

[······]

[······]

[······]

[······]

[······]

[······]

[······]

[······]

그저 소리 없이 드러나는 붉은 안광이 주변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관찰하고 있는 괴물들의 시선이었다.

***

"방금 뭐야? 내가 잠이 덜 깨서 헛것을 본 건가?"

주변을 한가득 메웠던 붉은 안광이 이내 사라지자 저마다 중얼거리는 군인 아저씨들.

"······!"

예상보다 더 많은 괴물들의 수에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 나.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이 더 많다는 사실에 엘리 언니의 표정 또한 엉망이었다.

"······."

나는 다시 한번 더 푸른 가루를 뿌려 붉은 안광이 다시 드러나게 만들었다. 재차 보여지는 붉은 안광의 위치는 방금 전과 동일한 위치였다. 어쩌면 정말로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괴물 새끼들 뭐야. 벙커가 나무뿌리한테만 뚫린 게 아니었잖아···."

하지만 다시 한번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괴물들의 존재감에 군인 아저씨들은 끝내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방독면을 쓴 군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전투 조끼에 걸려 있는 무전기를 잡았다. 이곳의 상황을 한시라도 더 빨리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보, 본부. 여기는 제 2광장. 이곳에━"

무전기 버튼을 누르고 말을 잇는 순간.

쉬이이익!

콰직! 부우욱!

무전기는 허공에서 휘둘러지는 무언가에 의해 그대로 부서지고 말았다. 보호 장갑이 찢어지는 건 덤이었다.

후두둑-

무전기를 이루고 있던 각종 부품들이 산산조각 나며 떨어졌고, 무전기를 들고 있던 군인의 손에서는 피가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의 공격으로 장비를 박살 낼 만큼 위협적인 공격에 의해서.

그 공격은 무전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아는 행동에 가까웠다. 그게 아니면 괴물들은 우리가 움직이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거겠지.

"······."

허무하게 부서진 무전기를 멍하니 보고 있던 군인 아저씨들, 나와 엘리 언니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들의 모습이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우리도 괴물이 공격하는 장면을 놓쳤던 것이다.

푸른 가루의 빛마저 사라져 완전히 어둠에 잠긴 광장, 바닥에 밝히는 흙 알갱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벽을 허물어 버린 나무뿌리들의 꿈틀거림, 광장을 빼곡히 채운 괴물들이 있다는 사실, 숨통을 막히게 하는 긴장감, 신속한 지원을 기대할 수조차 없는 현실.

그런 상황에서 부사수 아저씨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흘깃 시선을 나와 엘리 언니에게 향하면서 입을 열었다.

"···예린아, 엘리. 너희는 도망가. 그 가루 뿌리면 괴물들이 잠시나마 제대로 보이는 것 같은데, 그걸로 어떻게 잘 도망가 봐라. 복도를 쭉 따라가면 대피소 통로 있는 거 알지? 아까 보니까 그쪽에 사람들 몰려 있는 것 같더라. 거기까지 가면 괜찮을 거야."

"···부사수 아저씨랑 다른 군인 아저씨들은요?"

"우린 군인이야. 사람을 지켜야지. 그러려고, 그러기 위해서 총을 잡았는걸. 비록 지금은 탄도 별로 없고 당장 휘두를 수 있는 건 이런 공구뿐이지만. 가. 가서 가족에게 가."

"그래,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까 신호 떨어지면 바로 뒤돌아서 달려. 대피소로 들어가면 제 2광장에 괴물들이 엄청 많으니까 지원 보내달라고 하고. 그때까지 버텨 보지 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는 군인 아저씨들의 말이 침묵이 가라앉은 광장에 작게 울렸다. 그들의 손도 떨리고 있었으나, 그들은 손을 꽉 쥐는 걸로 감췄다.

"······."

나는 알았다. 지금 나와 엘리 언니가 여기서 빠지면 이 군인 아저씨들은 무조건 죽는다는 것을. 그것도 일말의 희망도 없이 죽는다.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광장에 몰려 있는 괴물들의 수가 얼마인데 버틴다는 말인가.

지금 군인 아저씨들이 소리를 내질러서 다른 구역에 신호를 보내지 않는 것도 우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다른 신호를 보낼 틈도 없이 모조리 찢겨 죽고 말 테니까.

'···그런 건 싫어.'

이 사람들이 죽는 걸 바라지 않는다. 이 사람들에게만 한정한 바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죽지 않았으면 했다.

"당신들로는 안 돼요. 제가, 저희가 도울 수 있어요. 지원은 곧 올 거예요. 오빠나 언니들이 올 테니까."

엘리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한 모양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언니는 그리 말하며 활에 바람 화살을 매겼으니 말이다.

"맞아요. 지금 이 난리가 벌어졌으니 저희가 방에 없는 것도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러니까 오빠랑 언니가 올 때까지 같이 싸워요. 가루는 충분하니까 힘을 합치면 싸울 수 있어요."

"······. 하, 그래. 그러자. 우리 좀 도와줄래?"

군인들은 우리의 얼굴을 살펴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실랑이를 벌일 시간 따위는 없었고, 행동 방향이 정해졌다면 곧바로 다음 행동으로 이어야 했다.

콰콰콰콰콰콰!

방금 전에 군인들이 가리킨 복도에서 대량의 물이 유입되고 있으니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한 것이기도 했다. 수도관이라도 터진 건지 밀물처럼 밀려들어오고 있는 물은 어느새 광장 바닥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찰박- 찰박-

얼음장 같은 차가운 물이 발목을 적시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는다.

찰박찰박찰박찰박찰박찰박찰박-

자신들의 발소리가 아닌 괴물의 발소리가 아주 작게 귓가를 간지럽히자 긴장감에 폐부가 조여져 숨 쉬기가 어려웠다.

"···하나, 둘, 셋 하면 제가 가루를 뿌릴 테니까 바로 앞에 있는 괴물부터 공격해요. 가루가 묻어 있으면 일반 공구로도 공격은 될 거예요."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군인들의 공구에 가루를 뿌려주었다. 아직 괴물들이 우리를 관찰하는 것에 흥미를 잃지 않는 지금 이 타이밍에 최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괴물들을 공격하고 나면 그때부터 다른 준비를 할 시간은 없을 테니까.

"하나, 둘, 셋···! 지금이에요!"

푸른 가루에 의해 순간적으로 괴물들의 모습이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난 그때.

타-아아앙!

한 줄기 푸른빛이 괴물들을 관통했다.

군인들이 등에 메고 있던 총기에서 나온 빛이 아닌 물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복도 쪽에서 쏘아진 강렬한 푸른빛은 괴물들의 몸체를 뚫고 나아가며 투명한 피를 내뿜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건 괴물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조명탄이 터진 것처럼 환해진 구역에서 붉은 적색 단발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았다.

"세아 언니···!"

"후우, 둘 다 여기 있었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한 지원군, 세아 언니였다.

"없어요! 근데-."

"이야기는 나중에. 먼저 괴물들부터 처리하자."

급하게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쉬던 언니는 일부러 찰박, 찰박 물 소리를 내며 광장 중심지로 다가왔다. 괴물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주목시키기 위함이었다.

"괴물들은 제가 처리할 테니 당신들은 보조해주세요. 오면서 무전으로 지원 요청 했으니까 다른 군인들도 곧 이쪽으로 올 거예요. 저희는 조금씩 뒤로 빠지면서 최대한 복도 쪽으로 향하면 돼요."

"아, 알겠습니다!"

세아 언니는 장전을 하는 한편 군인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허무하게 몸을 눕힌 동족과 언니를 번갈아 보던 괴물들이 우리에게 달려든 건 거의 동시였다.

탕! 탕! 타앙!

푸른빛이 팡팡 터지자 광장이 푸르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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