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06화 (407/497)

Chapter 406 - 406. 기도 (6)

부스럭- 부스럭-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잠결에 몸을 뒤척이는 일행이 내는 소리로 이해한 나는 잠깐 들었던 정신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부스럭-!

다시 한 번 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들리는 소리에 눈을 떠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잠에 취해 가물가물한 시야로 시계를 확인해 보니 현재 시각은 오전 4시 53분. 그리고 시계 너머로 작은 등 하나가 보였다.

"끄응···, 분명 하나 더 남았을 텐데···."

작은 등을 가진 체구의 주인과 소리를 내던 범인은 바로 박지영이었다. 그녀는 부목을 대지 않은 멀쩡한 팔 하나로 낑낑거리며 본인의 짐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은 새벽에 엄마 몰래 김치찌개에서 고기만 빼먹는 사람 같았다. 손전등도 켜지 않고 어두운 구석에서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으니 그러한 감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

내 옆에 붙어 자던 지수도 소리를 듣고 이미 눈을 뜬 상태였다. 지수는 무슨 일이 또 생겼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말없이 괜찮다는 뜻으로 그녀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툭툭, 등을 살며시 두드려주는 손길에 의해 지수는 비음을 얇게 흘리며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박지영씨, 일어나셨습니까?"

나는 아직도 가방을 뒤적거리는 것에 열중하는 박지영을 조용하게 불렀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군인들은 한차례 교대를 마쳤는지 자기 전까지 보이지 않던 군인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자는 모습이 보인다. 연대장과 난쟁이들은 복귀하지 않은 듯했다. 아무래도 아직 현장의 일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박지영을 부른 것과 동시에.

"힉!"

부목을 댄 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다치지 않은 팔 하나로 가방을 탐색하는 것에 어찌나 집중하고 있었던 것인지 박지영은 내 부름에 꼬리를 일자로 곤두세우며 화들짝 놀랐다.

부상자들이 몸을 뒤척거리는 소리를 제외한다면 대피소는 아주 조용했다. 귀를 기울이면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말이다.

그 탓에 박지영이 순간 낸 소리는 커다란 대피소 내부에 쭉 울려 퍼졌다. 그녀도 그것은 인지한 듯 소리를 낸 입을 서둘러 막은 상태였다.

"뭐 하고 계세요?"

"별건 아니고 그냥 먹을 걸 좀 찾느라···. 많이 시끄러웠어요? 죄송해요."

하도 바깥에서 활동하다 보니 지금 시간대가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대라는 말을 덧붙인 박지영.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작게 말했다.

"아뇨, 그건 아닌데. 많이 배고프세요?"

"기술을 많이 쓰면 그날은 이상하게 허기가 심하게 지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박지영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변명을 내뱉었다. 자신은 절대 한밤중에 무언가를 먹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서.

그녀가 말하는 부분은 나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능을 사용하면 할 수록 체내의 에너지를 사용하므로 몸이 에너지 보충을 위해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극심한 공복감이라는 느낌으로 말이다.

체내에 푸른 입자가 충분하다면 그걸로 보충이 가능하지만 박지영은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는 되지 않으니 그런 거겠지.

"저기 주머니에서 그냥 꺼내 드시지."

내가 배급 주머니를 가리키자 박지영은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됐어요. 아까 보니까 양도 별로 없던데요."

"저거 박지영씨 몫도 같이 들어 있는 겁니다. 저흰 아까 박지영씨 잘 때 나눠 먹었으니 건빵 한 봉지는 당신 몫이에요."

"······그래요?"

"그럼요. 저희가 박지영씨 몫을 남겨두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요. 어서 드세요."

"감사합니다···."

실실 웃은 박지영은 가방에서 스포츠 음료 하나를 겨우 찾아내서 꺼냈고, 건빵 봉지를 뜯었다. 부스럭거리는 비닐을 헤치고 건빵 하나를 집은 그녀는 오도독 씹다가 멈칫거렸다.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났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좌우로 살핀 박지영은 이내 조용히 우물거리며 건빵을 먹기 시작했다.

"···하나 줄까요?"

자기 혼자만 먹으니 무안한 느낌을 받았는지 박지영이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정확히는 예의상 한번 물어 봤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녀의 손은 건빵 봉지를 꽉 붙잡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가 가방에서 찾아낸 음식은 방금 꺼낸 스포츠 음료 캔 하나가 끝이었다. 가방에는 먹을 것보다 탐사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그 이유였다.

원래는 좀 더 많았겠지만, 일행과 내게 나눠준 것이 있었기에 가방에는 캔 하나만 남았었다고 봐야겠지.

"아뇨, 박지영씨 다 드세요. 안 뺏어 먹습니다."

"···헤헤."

혹여 하나 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던 박지영은 이어진 내 답에 안심하고 건빵 하나를 입에 더 넣었다. 볼이 빵빵하게 오른 모습은 고양이가 아닌 먹이 주머니에 먹이를 보관하는 다람쥐를 연상케 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내가 그녀에게 자신들이 자는 동안에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물어보려고 한 그때.

끼이익······

대피소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인원은 바로 연대장과 난쟁이들이었다. 남들보다 훨씬 긴 하루를 보내고 온 사람들이기도 했다.

"······."

"······."

말할 기운도 없는 듯 조용히 대피소 내부를 둘러보는 그들은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내가 있는 곳으로 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바닥을 내딛는 군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읍···!"

다가오는 인기척을 눈치챈 박지영이 입에 담고 있는 건빵들을 급하게 씹어 삼키며 연대장에게 경례하려고 했으나, 연대장이 곧장 손을 들어 막았다.

"동작 그만. 경례하지 말게.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깨게 만들 일 있는가? 경례 같은 건 안 해도 되니까 먹고 있는 거나 잘 먹게."

좌수 경례는 받을 생각 없다는 연대장. 그는 괜히 다친 팔로 무리하지 말고 편히 쉬라고 말했다.

"넴···."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박지영은 마저 우물거리면서 묵례만 건넸다.

"이거야 원, 다람쥐가 따로 없군. 누가 건빵을 그렇게 무식하게 먹는다고 하더냐? 쯧쯧."

"···흥."

혀를 쯧쯧 차며 지적하는 칸과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면서 음료를 벌컥 들이키는 박지영.

그들은 시간도 늦었는데 그냥 잠이나 자지 여기는 왜 왔냐며 서로 티격태격 대화를 나눴다. 물론 나누는 대화만 그러할 뿐, 속뜻에는 서로의 상태를 걱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연대장님."

"시간도 늦었는데 왜 안 자고 있나?"

"그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저는 계속 자다가 방금 일어난 거라서 괜찮은데, 연대장님이야말로 왜 바로 안 주무시고 여기로 오신 겁니까?"

"···허허, 막상 일을 얼추 마치고 돌아오고 나니 자기에는 시간이 모호하더군. 그래도 아예 쉬지 않을 수는 없어서 잠깐 앉아만 있을까, 하고 내려온 거라네."

그리 말하는 연대장은 새치가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고, 이마에 꼬질꼬질하게 변한 붕대를 감고 있었다. 눈가뿐만이 아닌 온몸에 깊은 피로감이 새겨져 있다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현재 시각은 05시 14분. 연대장의 말대로 지금 자기에는 애매한 시간이 맞긴 하다. 허나, 그건 지금까지 쭉 자다가 깬 사람들의 경우다.

어제 새벽부터 오늘 새벽까지 계속 움직인 사람의 경우는 아니었다. 연대장은 지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래도 눈을 붙이시는 게 나을 텐데요."

그리 생각한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아니, 아직은 쉴 시간이 아닐세. 그나저나 자네 몸 상태는 어떤가? 처음에 봤을 때는 상태가 그때까지 정신을 어떻게 차리고 있었는지 싶을 정도로 아주 최악이었거든."

겨우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대피소로 돌아온 그는 그 시간을 잠을 자는 것에 쓰지 않고 나와 대화하는데 쓰는 것이었다.

"제 몸은 뭐, 원체 회복이 빨라서 다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됐습니다. 아직 군데군데 아프긴 하지만요."

"그런가. 다행이군."

연대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그렇게 입을 다문 채로 대피소 내부를 계속해서 눈에 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빠짐없이 부상자들이 누워 있었다.

치료용 수정으로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넘긴 사람들을 보며 연대장은 쉽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어르신, 다른 난쟁이들은 어디 있어요? 왜 혼자 와요?"

나와 연대장이 잠시 침묵을 유지하는 사이에, 난쟁이 칸과 박지영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은 건빵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놈들은 위에서 잔다. 탄은 장벽 임시 초소에서, 조이와 르한 그 친구들은 창고쪽 흙을 퍼내다가 기절했어. 그래서 나만 내려온 거다. 하여튼 약해 빠져 가지고, 옛날 같았으면 3일 밤낮을 철야해도 멀쩡했건만. 뭐, 다들 나이가 든 거겠지."

물자 확보를 위해 우선적으로 창고쪽 시설을 복구하고 있다는 난쟁이 칸.

"···그렇다고 혼자 와요? 적어도 조이 어르신이랑 르한 어르신은 데려올 수 있었잖아요."

"힘들게 왜? 어차피 계속 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거늘. 눈을 뜨자마자 일터에 있어야 효율이 높지 않겠느냐."

"······무슨 효율이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박지영.

"다시 그곳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것에서 시간을 아끼는 걸 말하는 거다. 눈을 뜨자마자 일터에 있고, 그 덕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효율적이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뭐가 효율적이라는 거야. 악마세요?"

박지영은 악마도 그렇게 부려 먹지는 않겠다며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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